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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학력 보장이 학생 인권 보장이라구요?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학생들을 능력주의 경쟁에 밀어 넣는 전북교육청

최근 전북의 학교들은 '학력 신장'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서거석 전북교육감은 2023년 10대 핵심 과제로 기초학력 보장을 내놓으며, 학력을 올리는 것은 공교육의 중요한 목표이자 학생의 인권 중 하나라고 말했다. 교육감이, 이 사회가 이야기하는 기초학력은 무엇이며, 이런 정책이 정말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가?

기초학력은 누구의 책임인가

기초학력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그 중에서 전북교육청의 2024 학력 신장 지원 기본 계획에 따르면 기초학력은 '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성취 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이고, 나아가 '기초학력을 바탕으로 해당 학년의 교과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성취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을 기본학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전북교육청이 이야기하는 학력은 사실상 평가 등으로 산출되는 학생의 성적인 듯 보인다.

그러면, 기초학력의 성취기준은 누가 정하고,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하는 것일까? 보통 기초학력이라고 하면 간단한 읽기, 쓰기, 사칙연산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기초학력이라는 말로 학생에게 일정한 성적과 능력을 요구하고 있고, 그 허들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전북교육청은 기초학력에서 나아간 기본학력이라는 개념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역시 성취기준을 '학생이 궁극적으로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도달점'이라 명시한 것을 보면 이는 '기본'학력이라기엔 그저 교육과정과 교육제도에서 정한 요구 사항일 뿐이다.

또한, 기초학력이라는 것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기준선이 높아지는데, 나이에 따라 인간의 능력 수준이 규정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사람은 모두 다른 성장 배경 등을 가지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같은 나이에 똑같은 학력 수준을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말이다.

전북교육청은 학력 신장 정책에 '기초학력 책임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이름은 마치 학력 보장이 학교의 책임이라고 자처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기초학력은 결국 사회가 학생에게 요구하는 능력이고, 학력을 신장하려면 교육과정에 맞추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학생에게 책임과 부담이 지워진다.

과연 기초학력 미달의 책임이 학생에게 있을까? 그 원인은 교육 시스템에 있을 수도 있고, 가정과 사회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교육 제도는 국가와 학교가 설정한 '길'을 학생이 따라오고 있는지 일률적으로 평가할 뿐, 교육 제도나 환경에 문제가 있는지 돌아보지도 않고, 학생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도 않는다. 기초학력을 신장하려는 정책은 결국 교육 환경이나 가정 등의 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당장 학생에게 더 많은 공부를 시키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야자 많이, 일제고사 많이 하는 게 학력 신장?

학교가 학생들을 '기준선'에 맞추기 위하여 시행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은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바로 시험 횟수를 늘리는 것과 학생들이 더 오래 공부하게 하는 것이다. 전북교육청의 사례를 보면 초2부터 고2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시행하여 미달인 학생을 걸러내고, 그들에게 맞춤 교육을 제공한다. 심지어 전북교육감은 전북 모든 학교에 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을 최대한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이런 과정에서 실제로 학생의 휴식할 권리는 침해되고, 교사에 의해 강압적으로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하게 되는 사례는 늘어난다.

또한 전북교육청은 이런 학력 신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기존의 '역량중심교육'을 축소했다. 역량이란 평가를 통해 산출되는 성적뿐이 아니라 특정 맥락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능력으로서 감정, 가치 등 사회적 요소와 인지적, 실천적 요소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전에는 학생이 다양한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일제식 평가를 줄이고 다양한 방식의 수행평가를 강화하고 있었는데, 서거석 교육감이 이것을 축소하고 기존 일제식 평가들을 다시 부활시키면서 학생이 전인적이고 다양한 교육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강압적으로 학습량을 늘리는 것과 시험을 자주 치르는 것이 올바른 교육의 방향일 수 없다. 학생 대부분이 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성적에 따라 학교 안에서부터 이후의 삶이 서열화되고 차별받음을 알고 있기에 생존을 위해서 하는 싸움일 뿐이지,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주체가 스스로 배우고자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이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존중받는 학교에서 학력이란

전북교육청은 학력 신장 정책 추진 배경으로 '기초학력은 개인이 존엄을 지키며 사회적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필수적 전제 조건으로 근래에는 인권으로서의 의미가 부각'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개인이 노력하여 뛰어난 능력을 갖춰야 사회적 삶을 유지할 수 있고, 그것이 행복이자 인권이라는 것은 다분히 능력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능력'은 노력 등 개인에게만 달린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에 큰 영향을 받으며, 그 능력에 따라 사람을 차별 대우하는 것은 소수자를 억압하는 사회를 만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학교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 인권이 존중받는 학교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학교, 평가와 과도한 학습을 강요하는 학교에서는 학력 신장 정책이 절대로 인권친화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서거석 교육감은 '기초학력 보장은 학생의 인권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북교육청의 정책은 야간자율학습 참여 독려 등으로 휴식권이 침해될 위험을 키워 놓고, 학생에게 공부할 의무와 부담을 더 무겁게 지우고 있다. 그렇게 인권 침해 같은 부작용에서는 눈을 돌린 채 학생을 능력주의적 경쟁에 밀어 넣는 방법이 학생을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권에 무지한 교육감의 변명과 미사여구일 뿐이다.

학력을 강조하는 정책과 인권친화적 학교가 함께 갈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학력 신장을 위한 교육이 1순위가 아닌 학교는 어떨까? 모두가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공동체이자, 학생을 포함한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며 자연스레 배움을 얻는 학교를 상상해 본다. 그런 학교 안에서 현재의 공교육이 목매는 '학력'은 더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1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동탄국제고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이 1차 지필평가를 감독교사 없이 치르고 있다. 동탄국제고는 개교 이래 감독교사 없는 '양심 시험'을 운영 중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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