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병원의 폐업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경상남도 동부권에서만 종합병원 2개 기관이 문을 닫았다. 김해 중앙병원은 지역응급의료센터 운영 등 지역의 필수의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나 부실운영과 무리한 신축병원 건립 실패로 2023년 10월 운영을 중단하였다. 웅상중앙병원은 동부 양산 유일의 응급의료기관이었지만 병원장 별세 후 인수자를 찾지 못해 2024년 3월부터 폐업 상태다. 경남 서부권 농촌 지역에서도 군 내 유일한 응급실이 있었던 새하동병원이 경영난으로 휴업을 반복하다가 2022년 3월 결국 폐업하기도 했다(☞관련기사: "하동 유일 응급의료시설 새하동병원 휴업").
병원이 폐업한 후 지역 경제나 의료 접근성, 건강 결과 등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연구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폐업 후 대체로 응급 이송 시간이 길어지고 병원서비스 접근성은 감소했지만, 의료의 질이나 건강 결과 측면에서는 뚜렷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질문해보자. 지역 병원이 폐업하고 사망률이 증가하지 않았거나, 심지어 건강 결과는 오히려 좋아졌다고 한다면 병원 폐업은 문제가 아닌 걸까?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병원이란, 의료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만약 병원의 존재 의의가 숫자로 요약되는 건강 결과에만 있다고 하면 지역의 병원 하나쯤 없어져도 괜찮다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병원과 주민이 맺는 사회적 관계 자체를 의미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병원 폐업 후 주민의 인식과 경험을 세심히 살펴야 비로소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된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은 미국에서 농촌 병원이 폐업하고 1년 뒤에 주민의 인식을 조사한 연구다. 연구의 배경이 된 미국 테네시주는 2010년 이후 14개의 농촌 병원이 폐업했다. 그중에서도 애팔래치아는 산간 지역으로서 경제적으로 낙후되었을 뿐 아니라 의료 접근성도 다른 지역보다 떨어진다. 의사를 비롯한 의료 제공자가 부족하고, 의료기관까지 거리도 멀며, 교통 상황도 열악하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의 비중이 높고, 건강 정보를 습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 병원의 폐업은 기존 건강 불평등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더 문제적이다. 연구진은 조사를 위해 54병상 규모의 작은 병원이 폐업한 지역을 찾았다. 빈곤율과 실업률이 높고 의료서비스 공급도 부족한 농촌 마을이었다. SNS와 지역 언론의 온라인 광고를 통해 병원에 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을 모집했고, 연구참여자가 소개해준 다른 주민을 만나는 방식으로 총 24명을 인터뷰했다. 인터뷰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의료 접근성을 가용성(availability), 접근성(accessibility), 편의성(accommodation), 지불능력(affordability), 수용가능성(acceptability) 등 5가지 차원으로 구성한 이론적 틀을 활용하였다. 연구 결과, 접근성 면에서는 모든 연구참여자가 병원 폐업 후 진료를 위한 이동시간이 길어졌다는 데 동의했다. 설상가상으로 외지 병원으로 이동하려면 더 열악한 도로를 거쳐야 했다. 대중교통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했고 특히 노년층과 거동불편자가 교통수단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주민들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졌다는 인식도 공유하고 있었다. 응급의료와 전문의 서비스는 더 이상 지역 내에서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주민들은 근처에서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몹시 애석해했다. 과거와 달리 기본적인 CT 검사를 위해서도 외지로 나가야만 했다. 지역 병원이 폐업하면서 의료 이용의 경제적 부담도 가중되었다. 외지 응급실에 가기 위해 구급차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은 가장 일반적인 걱정거리였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들은 의료비 문제로 병원 방문을 미뤄야 하거나 이용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고 염려하고 있었다. 일부 주민은 이전보다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진료받기가 불편해졌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연방공인보건센터에서 의료진을 만나려면 몇 달이 소요되는 일도 있었다. 병원 폐업 전에는 지역에서 365일 24시간 응급 진료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일과시간에 맞춰 진료를 받으려면 휴가를 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주민들은 병원과 맺고 있던 관계를 잃게 되었다. 기존 병원의 의료진과 직원은 몇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이였고, 이는 '저 사람은 나를 진심으로 돌봐줄 것'이라는 신뢰로 이어졌다. 드나들던 병원시설의 익숙함도 주민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병원 폐업과 함께 친숙한 관계도 사라지고 말았다. 논문은 결과를 갈무리하며 농촌 응급의료기관 지정 및 재정 지원, 일차의료 강화, 메디케이드 확대, 대체 의료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법 개정 등 다양한 층위에서 의료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 실질적인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우리 지역의 의료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동력이 없이는 아무리 좋은 정책도 제대로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와 저성장, 수도권 집중화가 심화하는 시대에 숫자 싸움만으로 비수도권 비도시 지역에 힘을 싣기는 쉽지 않다. 숫자를 통해 불평등을 드러내려는 노력의 가치를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차원에서는 의료란 문서상의 건강지표가 아니라 사람들의 실제 삶과 생활을 낫게 만들려는 도구라는 점을 주장하고, 주민의 고유한 인식과 경험을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게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연구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인터뷰를 통해 정책의 내용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를 포착한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고작 54병상짜리 병원이 없어진 지역을 주목하고, 소중한 병원을 잃은 사람들의 경험세계를 탐구해 공적 의미를 부여한 것 자체에 있지 않은가 한다.*서지 정보
Letheren, A., Brown, K. C., Barroso, C. S., Myers, C. R., & Nobles, R. (2024). Perceptions of access to care after a rural hospital closure in an economically distressed county of Appalachian Tennessee. The Journal of Rural Health, 40(2), 219-226.
*참고 문헌
Mills, C. A., Yeager, V. A., Unroe, K. T., Holmes, A., & Blackburn, J. (2024). The impact of rural general hospital closures on communities—A systematic review of the literature. The Journal of Rural Health, 40(2), 238-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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