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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인지 '8.15'인지 모르겠는 윤석열 경축사, 그렇게 일본이 좋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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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6.25'인지 '8.15'인지 모르겠는 윤석열 경축사, 그렇게 일본이 좋나

[기자의 눈] 비논리와 모순·허점 투성이인 경축사…한 끼 수백만원 쓴 통일부는 뭐했나

윤석열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흡수통일 의지를 공식적으로 드러냈다. 그런데 정말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을 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 방안이 허술하기 짝이 없다. 8.15 광복절에 일본의 식민 지배 책임을 묻기는 싫으니, '북한' 이슈로 그 자리를 메운 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15일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되어야 한다.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이라며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이 통일의 지향점이 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자유 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가치관과 역량을 더욱 확고히 가져야 하고 △북한 주민들이 자유 통일을 간절히 원하도록 변화를 만들어 내야하며 △국제사회와 연대해야 한다는 것 등의 세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자유 통일을 강력히 열망하도록, 배려하고 변화시키는 과제"를 강조하며 "북한 주민들이 자유의 가치에 눈을 뜨도록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북한 주민들이 다양한 경로로 다양한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정보접근권'을 확대하겠다"라고 말해 북한 당국과 주민들을 분리시키는 심리전을 예고했다. 여기에는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및 당국 차원의 확성기 방송 등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즉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주민들에게 외부 정보를 유입시켜 이들이 북한 체제를 뒤엎는 '혁명 전사'가 되길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 모순이 드러난다. 정부가 이렇게 말하면 할수록 북한은 외부 정보 유입 차단에 더욱 열을 올릴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정부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도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북한은 통일부가 스스로 밝힌 대로 한국의 드라마를 유포한 이유로 죄를 묻는 곳이다. 16일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북한이 2020년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 2023년에는 평양문화어보호업이라는 걸 통과시켰다"며 북한이 외부 정보 유입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북한을 상대로 정보 유입을 강화하겠다고 하면 북한은 이를 막기 위해 또 다른 법을 제정하고 기존의 법 적용을 더 엄격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원하는 김정은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전사' 양성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모순은 윤 대통령이 "동맹 및 우방국들과 자유의 연대를 공고히 하면서, 우리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부분이다. 동맹 및 우방국들과 연대를 강조하면 국제사회에서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동맹 및 우방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지지를 얻어내기가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북한과 통일 문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국가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도 있다. 미국은 틈만 나면 중국에 북한이 비핵화할 수 있도록 압박을 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를 소위 '중국 역할론'이라고 한다. 중국은 이에 대해 북한의 핵은 미국과 갈등에서 나온 결과니,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마저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는 상황에, 윤 대통령은 다른 대외 이슈와 마찬가지로 북한 및 통일 문제에서도 미국과 일본 만을 바라보는 대외 인식을 보여줬다. 이렇게 미일과 '자유의 연대'를 공고히 할수록 중국, 러시아와는 멀어지게 된다. 통일에 대한 공감대는커녕 북핵 문제 해결도 어려워질 수 있다.

경축사 모순의 정점은 남북 당국 간 실무차원의 <대화협의체> 설치 제안이다. 우선 윤 대통령의 대화 제의 자체가 대화를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들게 한다. 그는 경축사에서 "긴장 완화를 포함해 경제 협력, 인적 왕래, 문화 교류, 재난과 기후변화 대응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문제라도 다룰 것"이라며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억류자 문제와 같은 인도적 현안도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마치 이산가족과 국군포로, 납북자 사안을 북한과 협의해주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 사안들은 북한이 대화하길 꺼려하는 주제들이다. 이 문제들은 대화 테이블에 올라가도록 남한이 노력해야 하는 사안들이다. 윤 대통령이 남북 간 이러한 기본적 입장 차이를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필요하기 때문에 대화 제의 자체가 잘못됐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낼지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북한이 정부의 제안을 신중하게 고려할 것이라면서도 그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실무차원의 <대화협의체> 제안'은 남북 대화를 역사적으로 봤을 때 그 연원을 찾기도 어려운 형태다.

김영호 장관은 북한을 어떻게 대화 테이블로 유도할 것이냐는 질문에 "북한의 대응을 기다리는 것이 순서"라며 "이번 정부의 제안을 두고 일부에서는 '북한이 반발하지 않겠느냐'는 표현을 쓰고 있다.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도 우리 정부의 제안에 대해서 신중하게 검토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북한이 신중하게 검토할 것으로 보는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했다.

김 장관은 또 이번 경축사에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첫 단계인 남북 상호 체제 인정 및 존중도 포함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상대를 인정하지도 않고 준비도 안된 대화 제안을 '진정성'있는 제안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 제안에 북한이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대화 제안이 오히려 상대를 대화에서 더 멀어지게 한 셈이다.

이같은 경축사의 문제점을 윤석열 정부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북한 당국과 대화하며 통일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지지를 이끌어내겠다는 이 세 가지 제안이 모두 현실화되는 것은 모순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러한 광복절 경축사를 발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혹여 일본에 대해 책임을 묻기는 싫으니 그 빈틈을 북한으로 메웠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일본에 단 한 번도 식민 지배 책임을 물은 적이 없다. 3.1절이나 광복절에서 나왔던 기념사와 경축사 어디에도 일본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았다. 독립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일본을 비판하지 않으려면 다른 이야기로 시간을 메워야 하는데, 그 '다른 이야기'에 북한만큼 딱 어울리는 주제도 없다.

광복절을 앞둔 상황에서 커져 가는 윤석열 정부의 '친일 논란'이 북한에 대한 강한 어조가 필요한 이유였을 수도 있다. 독립기념관장 인사, 일본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의 소극적 협상 자세, 독도 방어훈련 실종, 지하철 역사 내 독도 조형물 철거 등 광복절을 앞두고 일본과 관련한 윤석열 정부의 행태가 슬슬 선을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문제를 꺼내 들며 여론의 방향을 일본이 아닌 북한으로 돌리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그런데 이 의도가 실제 효과를 보려면 경축사의 내용이라도 탄탄해야 하는데, 북한 주민은 고사하고 대국민 설득도 어려울 정도의 논리적 모순이 가득한 연설을 내놨다.

윤 대통령 경축사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6.25 기념사인지 8.15 경축사인지 모르겠다"로 요약된다. 친일 논란을 덮기 위해 북한 문제를 끌어들인 효과는 북한과 통일이 아닌, 광복절과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한 각성으로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계속 북한을 자극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국정 철학을 바꾸지 않는 한, 북한을 자극해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뒤 북한과 적대적 공존을 하는 것 외에는 정권을 유지할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대적 공존 역시 '북풍'처럼 한철 지나간 정치 수법에 불과하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20~30%대를 전전하고 부정평가가 60% 안팎을 보이고 있음에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30%대를 넘기기 어려운 것처럼, 아무리 김정은이 싫어도 그 반감 때문에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이미 지난 4월 국회의원총선거에서 증명됐다.

반감에 기대어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순간은 가능할 수 있으나 지속가능할 수는 없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에도, 일본에도 기대지 말고 '정치'를 통해 국민들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지지를 회복하길 기원한다. 지금은, 미중 전략 경쟁에 두 개의 전쟁이 이뤄지고 있는 국제정치적 환경 속에 한국이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하기도 모자란 시간이다.

▲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덧붙여, 윤 대통령이야 어차피 임기가 있는 대통령이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이러한 모순적이고 비논리적인 경축사가 나오게 함으로써 앞으로 남북관계를 더 힘들게 만든 통일부 장관 및 통일부는 응당 이에 대한 무거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이후 새로운 통일 담론을 위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호텔과 고급 식당을 찾아다니며 수 천만 원의 돈을 쓴 결과가 고작 이 정도의 경축사라니, 이만한 세금 낭비가 또 어디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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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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