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가 과거 헌법재판관 취임 4개월 만에 검찰총장이 되기 위해 후보자 인사 검증에 동의했던 사실이 알려졌다. 독립적인 헌법기관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부적절한 처신으로 비판을 받았던 인물이 다시 공직을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안 후보자는 과거 헌법재판관에 임명돼 임기를 시작한 지 4개월여 만인 지난 2013년 1월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 검증에 필요한 신상 조회에 동의했다. 이 사실은 당시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져 크게 논란이 됐다. <동아>는 "안 재판관은 검찰총장 후보자로 천거된 검찰 외부 인사 6, 7명 가운데 유일하게 재산과 병역 등에 대한 신상 조회에 동의했다"며 "헌재 재판관이 임기 중 다른 공직으로 옮기기 위해 인사 검증 절차에 동의한 것은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안 후보자의 검찰총장 인사 검증 동의 소식에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 언론도 부적절한 처신이었다고 비판 입장을 나타냈다. 당시 이언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직을 유지한 채 행정부에 속하며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 검찰총장에 지원한 것은 삼권 분립의 정신에 반하며 엄밀히 말해 정치적 중립성 위반의 소지까지 있다"며 "안 재판관의 검찰총장 후보 인선은 헌법기관의 권위에 크나큰 흠집을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 공직자 재산 축소 신고, 장남 군복무 특혜, 불성실한 답변 태도, 재산 형성 과정의 과오를 인정치 않는 무책임한 태도 등으로 부적격 결론을 내렸으나 어렵게 본회의에서 인준됐던 과거가 있다"며 "검찰총장 제의를 받았을 때 자신을 돌아보고, 헌재의 위상과 헌재 재판관, 직원들의 사기를 위해 당연히 사양했어야 맞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김진욱 부대변인도 "최고 헌법 해석기관인 헌법재판소의 현직 재판관이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 검찰총장에 임명돼도 된다는 안 재판관의 인식이 놀랍기만 하다", "헌법을 수호할 막중한 책무를 가진 재판관이 다른 공직을 위해 자리를 사퇴한다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위상과 헌재 재판관직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경향신문>은 2013년 2월 3일 "안창호 재판관은 총장 후보 자진 철회해야" 제하의 사설을 통해 "임기를 시작한 지 4개월 남짓 된 안 재판관이 사표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총장 후보로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 "안 재판관에게 헌법 가치와 국민 기본권 수호라는 재판관의 기본적인 소임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진행된 헌법재판소 업무보고 자리에서도 안 후보자의 검찰총장 인사 검증 동의 건은 도마 위에 올랐다. 판사 출신인 서기호 진보정의당 의원은 "헌재 내에서 '자질 없고 출세에 눈먼 인사들 때문에 얼굴을 못 들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신뢰가 떨어졌다"라며 "앞으로 이런 일이 안 벌어진다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 헌법재판관 임기 6년 동안엔 인사 검증 동의서를 못 쓰게 한다든가, 다른 기관으로 못 옮기게 하는 안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택수 당시 헌재 사무처장은 "헌법재판관의 임기는 보장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안 후보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법무부는 당시 안 후보자 등 공안 검사 출신들을 검찰총장 후보자 가운데 우선 순위로 고려했으나,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심사 과정에서 공안 검사들을 탈락시키는 바람에 안 후보자의 검찰총장 임명은 불발됐다. 이에 안 후보자는 헌법재판관으로서 6년 임기를 다하고 2018년 퇴임했다. 안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으로 재임하던 시절 헌법재판소에서 근무했던 A씨는 19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헌법재판관이 다른 공직 후보자 인사청문 인사 검증에 동의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라며, "황당했다. 다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고 했다"며 당시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A씨는 "안 후보자는 뼛속까지 공안 검사이고 보수주의자라 애초부터 검찰총장을 하고 싶어했다. 헌법재판관을 할 생각이 없던 분"이라며 "역대 헌재 재판관 중 가장 보수적이고 가장 반인권·비인권적인 쪽에 서 있었던 분이다. 헌법재판관에 어울리지 않았듯 인권위원장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승진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검사 출신이기 때문에도 이번에도 공직을 마다하지 않은 것 같은데, 공직자 마인드가 없는 분"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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