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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尹대통령은 왜 품위를 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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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尹대통령은 왜 품위를 버렸을까?

[이관후 칼럼] '보수결집' 전면전, 방향은 정해졌다

독립기념관이 1987년 개관 이래 최초로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했다. 3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관장이 직접 결정했다고 한다. 독립기념관장은 이전까지 총 10명이었는데, 그중 8명은 독립유공자의 후손 중에서 덕망과 역량이 있는 분들이 임명되었다. 나머지 2명은 학자 출신으로, 개인적인 이념적 지향성은 있었지만 관장으로서 업무수행과 관련해서 논란이 된 적은 없었다.

뉴라이트를 이념적 기반으로 집권한 이명박 정권, 박정희 향수를 토대로 집권해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려고 했던 박근혜 정권에서도 독립기념관장이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 정부에서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이종찬 광복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권 입문에 도움을 주고 지지 선언까지 했다. 그런데 이제는 감사받고 그 결과에 따라서 조사까지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 그만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전격적이고 극단적인 우경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논리적 설명을 필요로 하는 일에는 구조적 요인과 사건사적 요인이 결합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의 경우도 그렇게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통치철학이 없었던 정부

먼저 구조적 요인은 윤석열 정부가 이념적 정치기반 없이 탄생했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전까지 정치를 했던 사람이 아니고, 특별히 어떤 정치철학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일단 정치를 시작하게 되자 통치 이념에 해당하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것이 본인 스스로에게는 '자유'였는데, 당연히 이런 추상적인 개념 하나만으로 어떤 통치 철학이 완성될 수는 없는 법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올해 광복절 기념사까지의 내용을 보면, 자유를 중심으로 한 윤 정부의 통치철학은 오히려 질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취임사에서는 규칙의 준수, 연대와 박애의 정신, 기아, 빈곤, 공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의 보호, 공정한 교육, 문화의 접근 기회 등, 자유의 내용을 구성할 만한 몇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주 너그럽게(?) 본다면, 최소한 하이에크를 넘어서 아마티아 센이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주장한 내용들이 일부 언급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광복절 기념사에서는 그 개념도 불분명한 '공산·전체주의'와의 대결을 강조한 이승만의 1948년 연설로 후퇴하더니, 올해 기념사에서는 '사이비지식인과 선동가들, 가짜뉴스와 거짓선동'이라는 단어가 연설문을 가득 채웠다. 내용을 떠나서 사용된 단어들이 너무 천박해서 차마 대통령의 연설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품위가 없었다. 보수 유튜버들이 아무렇게나 떠드는 이야기들을 대통령이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다.

좀 무리를 해서 간단하게 말한다면, 근본이 없이 출발한 정권의 통치철학이 귀결한 지점은 뉴라이트가 20년 동안 노화를 거듭한 끝에 도달한 아스팔트 우파의 사상이었다. 대통령이 국가 기념일에 하는 말과, 주말에 극우 반공주의자들이 광화문에서 떠드는 말에 차이가 없어졌다.

자기의 주체적인 철학이 없는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되면 무엇으로든 그것을 채우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기질에 맞는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가게 된다. 통치철학이 부재하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했을 때의 문제는, 그 사람이 아마도 가장 단순하고 과격한 철학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한 총선에서 패배하다

사건사적 요인은 22대 총선이다. 이 선거에서 윤석열 정부는 치명상을 입었다. 집권 전반기에 윤 정부는 국회는 물론이고 여당조차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반드시 총선 승리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집권 후반기에도 국정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윤 정부에게 총선 승리는 그야말로 절실했다. 그래서 총력을 기울였다.

먼저 여당을 장악하기 위해서 검사들이 하는 수법을 다 동원했다. 여러 의혹을 제기해서 당 대표를 쫒아내고, 다른 당 대표 후보들에게는 겁을 줘서 출마를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러고도 결국은 당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실패했고, 마지막에는 최측근이라는 한동훈까지 동원했는데 오히려 뒤통수를 맞았다.

국회에서는 여소야대라는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 야당을 마구잡이로 탄압했다. 과거에 조국 장관에게 했듯이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야당에 대한 수사, 전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2년 내내 멈출 줄 몰랐다. 성과도 없지 않았지만 그만큼 정부에 대한 중도층의 지지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중도층은 야당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드러냈지만, 검찰정부의 속성도 적나라하게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윤 정부는 그야말로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서 총선을 치렀다. 보수언론에서는 연일 한동훈을 치켜세우고, 김건희 명품백 수수 사건을 맹비난했다. 사면초가였다. 그리고 총선에서 대패했다. '대파가 대파했다'는 말처럼, 여당보다는 정부의 무능이 누적되어 패배한 선거였다. 이제 문제는 총선 이후의 수습이었다.

협치를 시도하다 망신을 당하다

총선 직후 용산에서는 노선 투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대통령의 측근 참모들이 사퇴하고,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거대 야당과 협치를 하는 방안이다. 한동훈이 장악할 것이 분명한 국민의힘에 대해 신뢰가 가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 내외의 임기 후 안전까지도 고려되었음이 분명하다. 처음에는 이쪽이 키를 잡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 좌초했다. 그렇게 섣불리 화해를 시도하기에는 그동안 이재명 대표를 너무 몰아붙였던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과의 첫 면담에서 수모를 주었다. 대통령은 15분 동안 일방적인 모두 발언을 들어야 했다. 이후의 2시간 면담에서 윤 대통령이 대부분 말을 했다고 하지만, 그건 국민들이 알 수 없는 일이다. 보수 유권자들이 보기에 윤 대통령은 보기 좋게 당한 꼴이 되었다.

4월과 5월, 윤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취임 2년차 대통령 중에서 가장 낮은 국정지지율을 기록했다. 총선 때 국민의힘 득표율도 충격적이었는데, 총선 이후에도 대통령 지지율이 이 정도라면 사실상 국정 운영이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자 다른 쪽에 기세를 잡았다. 애초에 협치가 아니라 더 선명한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보수부터, 집토끼부터 재결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에게 수모를 당한 대통령의 귀가 솔깃했을 것이다. 이렇게 방향은 정해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광복절 특사의 핵심은 보수대통합

그동안 뉴라이트가 제시했지만 총선 때까지만 기다려보라고 했던 여러 인사들의 임명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독립기념관장 등 역사 문제에서 논란을 일으킬만한 인사가 대놓고 일어났고, 방통위원장에 이진숙, 노동부장관에 김문수가 임명되었다. 홍범도 장군 동상을 옮기는 정도의 얕은 수가 아니라, 아예 전면전을 하자는 것이었다.

동시에 필요한 것은 보수의 재결집이었다. 무엇보다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과의 화학적 결합이 필수적이었고, 대외적으로 그것을 과시해야 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요구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해보였다.

광복절 특사에 가장 먼저 거론된 사람은 조윤선이었고, 이어서 원세훈, 안종범 등이 언급되었다. 무려 50명 넘는 인사가 사면·복권되었다. 보수대결집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 그 결과 윤 대통령은 8.15 즈음에 이명박 대통령 내외와 식사하는 모습을 공개할 수 있었고, 광복절에 육영수 묘소에 참배할 수 있었다.

여의도에서는 김경수의 복권으로 시끄러웠지만, 용산 입장에서는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었다. 사면·복권이라는 게 원래 대통령의 권한인데 정치권과 언론은 용산을 무시하고 여의도만 앞세웠다.

특히 한동훈과 여당 일부의 반대는 오히려 용산의 화를 돋우었다. 총선 이후 보수재결집을 통해 국정후반기의 안정을 꾀하려는 큰 그림이 있고, 50명이나 사면·복권하면서 김경수를 안 풀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불가피한 작은 일을 놓고 여당이 이해를 하기는커녕, 다선중진들부터 한동훈 뒤에 붙어서 노골적으로 제 잇속만 계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수재결집을 시도하자 나라는 벌집을 쑤신 듯이 시끄러웠지만, 국정지지율은 30%대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총선 이후 침몰할지로 모른다는 불안감에서도 벗어났다. 총선 넉달 만에 윤 정부는 확실한 후반기 국정운영의 방향을 잡았다. 아마도 윤 정부의 집권 3년차 목표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지지율이었던 40%일 것이다. 그 이상의 목표를 바라지 않는 입장에서 윤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어렵다.

윤석열의 길은 정해졌다, 한동훈과 이재명의 선택은?

앞으로의 정국은 예상하기가 어렵지 않다. 민주당의 입법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계속될 것이다. 변수는 여당이 얼마나 협상력을 발휘할 것인가, 그리고 야당이 이 교착상태를 풀어낼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 있다. 그리고 아마도 여기서 한동훈과 이재명의 역량도 판가름 날 것이다.

여당이 용산의 뒤꽁무니만 좇아서 아스팔트 우파를 옹호하는데 바쁘다면 대선후보로서 한동훈의 역량에 대한 평가도 거기에 머물게 될 것이다. 야당이 지금처럼 교착상태를 즐기면서 야당탄압과 친일프레임만 지속한다면, 민주당의 지지율도 국민의힘과 큰 차이를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지금도 확인되고 있다.

그나마 지난 윤 정부 전반기와 달라진 상황은 여야에 모두 새로운 경쟁자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건 보수에서는 오세훈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야권은 그야말로 1년 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그때는 김부겸도 정계를 은퇴했고, 김경수는 복권이 안 되었고, 조국은 정치를 시작하지 않았고, 김동연은 도정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윤석열이 갈 길은 정해졌다. 한동훈과 이재명의 선택과 역량은 확실치 않다. 이제 남은 선거는 지방선거와 대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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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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