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안갯속이다."
다음 달 16일 진행되는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가 꼭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후보 캠프 관계자 및 교육 현장 취재기자들 모두 이같이 말한다. 조희연 전 교육감이 대법원 선고로 직을 상실하면서 치러지는 보선이지만, '조희연 10년'을 수성하려는 진보도 10년 만에 탈환을 노리는 보수도 준비가 안 돼있긴 마찬가지다. 현재 진보 진영에서는 강신만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부위원장,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김경범 서울대 교수, 김용서 교사노조연맹 위원장, 김재홍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안승문 전 서울시 교육위원,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 홍제남 전 오류중 교장, 그리고 최보선 전 서울시 교육위원(독자 출마) 등 9명이 출사표를 냈다. 보수 진영 후보로는 조전혁 전 한나라당 의원, 안양옥 전 한국교직원총연합회(교총) 회장, 홍후조 고려대 교수, 선종복 전 서울북부교육장, 윤호상 서울미술고 교장 등 5명이 출마했다. 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의원은 지난 9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 전 의원은 21대(2018년)와 22대(2022년) 두 차례 출마했으나 조희연 전 교육감에게 연달아 패배했다.진보 교육감 선호 34.4% vs 보수 교육감 선호 24.2%
이번 선거의 의미를 두고 '조희연 10년'이 보여준 진보 교육에 대한 평가인 동시에 윤석열 정부 교육 정책 2년에 대한 평가라는 말이 나온다. '조희연 10년'의 서울 교육은 '혁신 교육'으로 정리된다. 주요 정책으로 ''교실혁명 프로젝트'를 통한 교실 수업 혁신, 토론과 체험 중심 수업의 '서울형 혁신학교' 정착, '학생인권조례' 제정(대법 본안 판결 중), 무상급식 유·초·중·고 확대 등을 꼽을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교육개혁을 연금개혁, 노동개혁과 함께 3대 개혁으로 꼽을 만큼 중요시 했다. 윤 대통령은 교육개혁 방향에 대해 "교육도 경쟁시장 구도가 되어야 한다"며 시장주의 논리에 따른 경쟁을 강조했다. 선거를 한 달 앞둔 현재 서울시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를 '윤석열 정부 교육정책 심판'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방송(CBS)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지난 8~9일 양일간 서울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번 선거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는 윤석열 정부의 교육 정책 평가라는 응답이 40.7%로 가장 많았고, 이어 조희연 전 교육감의 교육 정책 평가라는 응답은 32.0%로 나타났다. 그외 기타 의견은 12.5%, 잘 모름은 14.9%였다. 진보 교육감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34.4%로 보수 교육감에 대한 선호도(24.2%)보다 10.2%포인트(p) 높았다. 조희연 전 교육감에 대한 긍정평가는 41.1%이며 부정평가는 43.7%이다. 잘 모름은 15.2%였다. 윤석열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부정 평가는 59.0%, 긍정 평가는 30.8%로 긍부정 차이는 두 배에 달했다. 잘 모름은 10.2%였다. (무선 ARS 자동응답 조사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진보·보수 모두 '곽노현-조전혁 리스크' 골머리
현재 여론조사상으로만 보면 진보가 우세한 것으로 보이지만, 결과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평이 나온다. 단일화 변수가 무엇보다 크기 때문이다. 현재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후보 난립으로 단일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 각 진영 여론조사 1위 후보에 대한 자질 논란이 일고 있어 각 진영 내 혼란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위 조사에서 교육감 후보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진보 진영 후보 중에는 곽노현 전 교육감이 14.4%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는 정근식 명예교수 12.2%, 홍제남 전 교장 8.4% 순이다. 보수 진영 후보 가운데에는 조전혁 전 한나라당 의원이 12.5%로 가장 높았고, 홍후조 교수 8.4%, 안양옥 전 회장 7.1% 순으로 조사됐다. 박선영 전 의원은 10.3%로 당초 2위를 기록했지만, 조사 후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박 전 의원 표의 행방에 관심이 쏠린다. 진보 진영 1위 후보인 곽노현 전 교육감의 경우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진보 진영 상대 후보에게 단일화를 조건으로 2억 원어치 금품을 건넨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교육감직 상실, 즉 당선 무효가 확정된 뒤에는 선거 보전 비용 35억 원 중 30억 원 정도를 반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곽 전 교육감의 재출마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과 김민석 최고위원은 각각 "시민의 상식선에서 볼 때 적절하지 않다", "민주당 공천이면 후보군 안 됐을 것"이라며 사실상 불출마를 권고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이같은 진보 진영 내 분란을 파고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곽 전 교육감 출마에 대해 "근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최악의 비교육적 장면"이라고 비난했으며, 나경원 의원은 보전금 반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람은 출마할 수 없도록 하는 일명 '곽노현 방지법'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곽 전 교육감은 지난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론조사 1위 후보가 사퇴하는 경우는 없다"며 출마 강행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교육감 선거는 정당이 개입할 수 없도록 지방교육자치법에 명시돼 있다"며 "정치인들의 교육감 선거 개입과 비방으로 언론이 제게 공약 정책을 질의하기보다 먼저 사퇴 여부를 묻는 촌극까지 벌어지고 있다"며 보수 진영에 역공했다. 곽 전 교육감의 재출마를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시민단체 '곽노현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지난 14일 보도자료를 내고 "무도한 정치 검찰로부터 서울 교육을 지켜야 한다. 친일 뉴라이트의 음모로부터 역사와 독도를 지켜야 한다"며 "이런 중차대한 역사적 소임을 완수해 낼 적임자로 곽노현 서울교육감 예비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진보도 보수도 후보 단일화가 최대 변수
결국 진보도 보수도 후보 단일화 여부가 이번 승패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진보 진영은 단일화 논의 기구인 '2024 서울민주진보교육감추진위원회(추진위)'를 중심으로 일찌감치 단일화 논의에 들어갔지만, 경선 규칙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다. 진보 진영의 강신만 전 전교조 부위원장, 김경범 교수, 김재홍 전 총장, 안승문 전 교육위원, 홍제남 전 교장은 지난 13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인 경선 후보는 추진위 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우리는 새로운 후보 단일화를 추진할 방안을 모색하려 한다"고 말했다. 추진위는 제한 없이 선거인단 모집과 1인 2표제를 제안했지만, 경선 후보 5인은 제한 없는 선거인단 모집은 조직이 있는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에 더해 추진위 내부에서조차 곽노현 전 교육감 재출마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추진위는 경선을 통해 오는 24일까지 후보를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한 교육전문지 기자는 진보 진영의 단일화 과정이 순탄치 않은 데 대해 "조희연 전 교육감의 경우 시민사회의 뒷받침이 있었지만, 이번 선거에는 시민사회나 교사 단체 등의 움직임이 없다"며 "그렇다 보니 신뢰나 권위가 없어 난립상이 된 것 같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보수 진영은 이번 보궐선거를 '조희연 10년'을 갈아엎을 기회로 여기고 통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희연 전 교육감에게 20대, 21대, 22대까지 세 번의 선거에서 내리 패한 데 대한 반성 차원에서 단일화에 사활을 거는 상황이다. '서울교육감 보수 후보 단일화 선정심사 관리위원회'는 △후보 캠프 의견 청취, △후보군 선정, △단일화 방식 발표, △보수 후보 선정 심사 등을 통해 후보를 2명으로 압축한 뒤 심층 토론을 거쳐 오는 24일 단일 후보를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단일화 기구는 두 곳이었으나 지난 13일 자로 하나의 기구로 뭉쳤다.정책 이슈 안 보이는 선거, 서울시 교육은 어디로?
현재는 단일화가 모든 이슈를 흡수하는 바람에 정책 이슈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다. 다만 후보 단일화 이후 본선에 접어들면 정책 대결로 갈 공산이 크다. 우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온 '서이초 교사 순직 사건'과 정권의 역사 왜곡 논란에 이은 '역사 교과서 문제'가 이번 선거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회에서 폐지안을 통과시켜 현재 대법원에서 본안 심리가 진행 중인 '서울 학생인권조례' 역시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계와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교권 보호'를 외쳤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보장될 수 있도록, 악성 민원이나 수업 방해와 같은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교권 보호 5법(교원지위법,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됐다. 교육부는 지난 7월 서이초 교사 순직 1주기에 "교권보호 5법 시행 10개월을 맞아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가 강화됐다"며 교원의 정당한 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고, 교원이 아동학대 조사·수사를 받게 될 경우 교육감 의견서를 제출하게 하는 등 교직사회 요구가 상당수 받아들여졌다고 했다. 반면 교육 현장에서는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서울교사노조가 지난 6월 7~9일 한길리서치를 통해 서울 교사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84.1%는 서이초 사건 후 교권 보호 법안이 개정됐지만 현장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교사 56.2%는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당할까 봐 두렵다고 했으며, 70.1%는 교직 생활 중 학부모와의 관계가 가장 어렵다고 답했다. 관련해 아동학대처벌법상의 정서적 학대 조항이 교권 침해 근거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권 보호에 대해 진보 진영(전교조)은 교사의 자율성과 권한 보장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지만, 보수 진영(교총)은 교사가 아닌 교장·교감과 같은 관리자의 권한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선거 과정에서 정책적 대비감이 분명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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