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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재난에 무기력한 '검사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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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재난에 무기력한 '검사의 나라'

[이관후 칼럼] '2026 기후 지방선거', 유능한 정치란?

폭염은 폭염일 뿐인가

추석이 사라지고 '하석'이 왔다. 추석 연휴 내내 폭염이 이어졌다. 잠자리가 날고 코스모스가 피어있어야 할 추석이 올해는 에어컨 없이 지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봄이 사라지고 여름이 길어졌다고 느꼈는데, 이번 추석을 통해서 사람들은 가을도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우리의 문제는 그 깨달음이 정확히 '거기'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날씨가 덥거나 춥다는 것, 그래서 세상이 이상해졌다고 말하고 마음속으로 어서 이 폭염이 물러가기만을 바라는 것, 그러다 좀 시원해지면 역시 가을이 왔구나 하고 잊어버리는 것, 그것이다.

날씨는 날씨, 폭염은 폭염일 뿐이다. 뉴스들도 모두 그렇다. 폭염에 이어지는 뉴스들은 '이 더위는 언제 가실까, 비가 오면 평년 기온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에 멈춘다. 한 발 더 나아간 뉴스들은 '열돔 현상'에 대해 소개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 더위의 원인에 대해 조금 이해한다. 우리가 이상한 온실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열돔 현상은 올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때그때 뉴스를 듣고, 또 잊어버리고, 몇 년 지나면 또 그것인가 한다. 그러나 사회가 어떤 일에 대해 대처하는 방식은 다양할 것이다. 깨달음의 깊이에 따라서 대처 방식도 달라진다.

인간은 힘이 세다

기후란 너무 엄청난 일이라서, 인간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예전 우리는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고 했다. 풍년과 흉년을 결정하는 것은 날씨와 농부의 노력인데, 그것만은 나라님도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면 타당한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는 흉년에 구제할 방도를 찾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칠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은 누구도 가난을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후도 마찬가지다. 기후를 인간이 어쩔 수 있겠냐고 하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기후 위기를 만든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생물종이 지구의 기후를 바꾸겠냐 싶지만, 결국 인간은 해냈다. 자연적으로는 1천년 동안 바뀌지 않을 온도를 100년 만에 올린 것이다. 이 어려운 걸 해낸 인간이 또 뭘 못하겠는가.

더 희망적인 가까운 사례도 있다. 한때 우리는 프레온가스로 오존층이 파괴되어 남극의 빙하가 녹고 있는 것을 걱정했다. 인간은 1989년 '오존층 파괴물질에 관한 몬트리올 의정서'를 채택하고, 프레온가스 사용량을 99% 줄였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오존층이 회복되고 있고 2060년대가 되면 예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추석에 날씨가 뜨거운 걸 인간이 어쩌란 말이냐고 주저앉아서, 그저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비가 오고 나면 잊어버리는 사회는, 사실 기후가 아니라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수준의 대처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다른 사회는 어떤가?

기후가 바꾼 선거들

기후 변화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일이다. 폭염과 홍수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종종 경험하는 기후 재앙이다. 가뭄과 산불은 지중해의 여러 나라들과 호주를 덮치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나라에서는 탄소세를 도입하고,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고, 내연기관차의 생산과 유통을 중지시키기도 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선거의 판도가 바뀌기도 한다. 지난 2021년에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는 사민당과 기민당이 각각 206석, 196석을 차지한 가운데, 녹색당이 무려 118석을 차지했다. 녹색당은 그전에도 50여 석을 차지했지만, 지역구 당선자는 한명 뿐이었다. 연동형 선거제도에 따라서 비례대표에서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는 16개 지역구에서 당선자가 나왔다. '주류' 정당이 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기후가 정치의 주류 의제로 선택받았다고 할 수 있다.

2022년 호주 총선은 말 그대로 '기후 총선'이었다. 2019년 가을에 시작한 산불이 이듬해 봄까지 이어졌고, 불에 탄 지역은 우리나라 전체 면적에 해당했다. 수십 명의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야생동물 5억 마리가 숨졌다. 대형 산불은 환경 재앙에 머물지 않고, 경제와 민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택보험료와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기후 재난이 잦은 곳의 관광수입도 크게 줄었다. 많은 연구 결과들은 호주 산불의 원인이 기후 변화에 있다고 밝혔다.

그렇게 치러진 총선 결과는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노동당의 승리였다.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을 요구한 여성들이 총선 판도를 바꿨다는 분석이 나왔다.

수사와 기소로는 해결할 수 없는 기후재난

윤석열 정부 들어 우리도 많은 기후 재난을 겪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침수가 일어났고, 반지하에 살던 이웃들이 빠져나오지 못했고, 지하차도에 갇혀 사람이 죽었다. 우리의 대응은 어땠나? 방수벽을 높였고, 사고에 대해서는 수사를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법에 나와 있는 대로 잘못을 따지고 나쁜 놈을 찾아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이다. 과연 그렇게 해서 기후 재난에 대비할 수 있을까?

검사들은 나라가 망할 때도 대책이 있다고 한다. 망하게 한 놈을 잡아내면 된다는 식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방법이 없지는 않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기후악당'이다. 우리가 추석이 아닌 하석을 보내게 된 여러 원인 제공자 중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인데, 그렇다면 그 기후악당의 우두머리를 수사하고 기소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는가?

검사들은 구조와 시스템을 볼 수 없거나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의 업무 범위를 넘어선다. 특별히 누가 고의적으로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다면, 그들은 누구든 찾아내려고 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불기소로 사건을 종결하면 그만이다. 그런 경우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검사는 많지 않다. 그런 검사는 칼질을 잘 해야 하는 검찰에서 유능한 검사가 아니다. 결국 검사들은 법에 나와 있는 잘잘못이 아니면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집중호우 피해를 입은 충남 공주 탄천면을 방문해 피해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정부의 이런 태도를 비판하는 쪽의 입장도 상황이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정부의 무능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무능'의 범주가 너무 좁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일회성 정치적 공세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침수되는 주택들을 보고도 퇴근하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정 책임자로서의 태도에 대한 책임을 엄하게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날씨가 덥다고 대통령을 탓하면 되겠나?'는 소리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게 이슈가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탓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기후위기가 심한데도 정부가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정치적 쟁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인들이란 원래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키케로가 말한 것처럼 공화정이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의 행위가 공적 이익에 부합하게 되는 체계'다. 폭염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세상이다. 소위 진보적 정치인들이라면, 한편으로는 노동의 권리와 인권을, 다른 한편으로는 기후위기 대응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지금이다.

전기요금 차등제에 대처하는 방법

그럼 이 '하석'을 맞아 무엇에 대해 말할 것인가? 사람들이 평소에 잘 생각하지 않고 있는 전기요금에 대해 말할 때다.

에어컨 없이는 추석도 지내기 어려운 때다. 그런데 이제 곧 전기요금 차등제가 실시된다. 분산에너지법이 지방선거가 실시되는 2026년에 본격 시행되면서, 사는 지역에 따라, 또 그 지역의 에너지 자립도에 따라 전기요금이 달라진다. 에너지를 많이 생산하는 지역은 적게 내고, 적게 생산하는 곳은 많이 내야 한다.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자립율이 100% 이상인 지역은 부산과 인천, 울산, 세종, 강원, 충남, 전남, 경북, 경남 등 9곳이다. 경기도는 61%, 전북은 68.7%, 제주는 79.7%로 양호한 편이다. 반면 서울은 8.9%, 대전 2.9%, 광주 8.4%, 충북 9.4%, 대구 15.4%다. 그동안 에너지는 지방에서 열심히 생산해서 대도시로 날랐다. 그러면서도 같은 요금을 냈다. 어디는 열심히 생산해서 싼값에 보내주기만 했는데, 이제 그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이유는 국토불균형을 해소하고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지자체들이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거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환의 문제는 사실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쪽에서 집중적으로 고민을 해야 할 텐데, 대도시는 쓰기만 하고 고민을 안 한다. 지금 보듯이 대도시들은 쓰레기 문제조차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들지 않을 정도니, 에너지는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이렇게 에너지 생산과 전환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모두 지방에 전가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만든 제도이기도 하다.

2026 기후지방선거는 벌써 시작

희망적인 것은,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되는 시점이 지방선거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전기요금 문제는 나라님도 구제 못하는 가난 같은 문제가 아니다. 지자체장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제대로 된 계획을 세워서 전력 자립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인지, 또 민간사업자나 다른 지자체들과의 협력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가 되었다.

어떤 사람을 뽑느냐에 따라서 이제 전기 요금도 지역별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시대가 온다. 기후 대응에 유능한 지자체장을 뽑은 지역은 청정에너지로 무더위를 식힐 수 있을 것이고, 기후에 관심도 없고 무능한 단체장이 있는 지역에서는 전기요금이 무서워 폭염 때마다 대책을 세우느라 부산을 떨 것이다. 그때 그 주민들은 이렇게 대응을 잘하니 훌륭하다고 박수를 칠까, 아니면 왜 우리만 이렇게 어려움을 겪느냐고 가슴을 칠까?

2026년 기후 지방선거는 이미 시작되었다. 산업부는 지자체들이 내년부터 이런 대책을 미리 세울 수 있도록 '분산에너지 특구'를 공모해서 선정한다. 여기서는 민간 발전 사업자가 전기공급 독점 사업자인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저렴하게 전력을 팔 수 있다. 특구로 선정된 지역에 대해서는 예산과 금융지원도 이뤄진다. 전기요금이 싸지면 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에도 당연히 유리하다.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

맹자가 말했다. 좋은 정치란 사람을 업어서 개울을 건너 주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추석에 폭염을 맞으면, 위정자는 하늘을 바라보며 비가 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다. 하다못해 예전에는 기우제라도 지냈다. 사람이 뭐라도 하려고 한 것이다. 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은 어쩌고 있을까?

야당은 정부의 무능을 탓할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단순하고 일회적인 정치공세다. 다수당인 야당이 국회에서 기후대응 입법과 정책을 선도하고, 야당의 지자체장들이 분산에너지법 대응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진정성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여름과 겨울만 존재하는 한국, 어쩌면 이것은 날씨에 국한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너무 뜨겁고 너무 차갑기만 하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다. 세상의 삶은 지구의 생태계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데, 우리는 이편이 아니면 저편이다. 기후 위기란 있거나 없거나 하고, 대비를 하거나 안 하거나 선택하면 되는 그런 일이 아니다. 이쪽 편을 찍으면 다 해결되고, 저쪽 편을 찍으면 그저 다 포기하고 손 놓고 있으면 되는 그런 일도 아니다.

올해 겨울은 매우 추워서 국민들은 또 난방비 고지서 받아보기를 두려워 할 것이고, 봄에는 여기저기 산불이 창궐할 것이고, 내년 여름이면 또 홍수와 폭염이 한반도를 덮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작년 추석도 더웠었나?' 할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런 정도의 방식으로는 우리는 다른 문제에도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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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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