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가지 사나운 힘의 해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폭력개념연구>(서보혁 외, 2024)는 기분이 설레는 날 펼쳐보기 쉬운 책은 아니다. '해부'라니, 몇 년 전부터 개구리 해부도 금지됐는데.
하지만 차례에서 마주한 '공동체 폭력', '인도주의 폭력', '긍정성의 폭력'등 다소 낯선 개념의 폭력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열 명의 저자는 '평화를 그리기 위해, 폭력을 완화하기 위해(6쪽)' 폭력을 이해하는 새로운 접근법 하나와 9개의 폭력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평화의 이상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평화와 공존하는 폭력을 마주하는 시간 동안 폭력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세 가지 측면의 즐거움으로 채워진다.
첫째, 각각의 폭력에 대한 정의를 찾고 정리하는 즐거움. 둘째, 전 세계의 평화학자와 다양한 사례를 마주하는 즐거움. 셋째, 한반도와 조우하는 지점에서 평화를 상상하는 즐거움이다.
첫째, 각각의 폭력은 기존의 정의를 단순히 취합하거나 나열하지 않고, 기원과 양상, 특징을 소개하여 적확한 이해를 돕는다. 무엇보다 익숙한 폭력으로부터 경각심을 일깨우며, 자신에게 스며든 폭력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1장에서 강혁민은 '국가폭력'에 대해 "국가 폭력은 그 주체와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광범위한 개념이며 국가가 폭력의 주체가 되어 촉발되는 모든 형태의 폭력을 지칭한다"고 정의하면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폭력을 낯설게 마주해야 하며, 그 본질적 주체에 대한 비판을 게을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일침을 통해 국가폭력에 무뎌진 우리를 뒤흔든다. 4장에서 이성용은 '분쟁의 당사자가 '비 국가'인 경우를 특정하는 용어로 공동체 분쟁이 사용되기 시작'된 것으로 '공동체 폭력'의 특징 세 가지를 설명한다.
"첫째, 공동체 폭력은 정체성 집단을 기본 단위로 하여 일어난다. 둘째, 공동체 폭력은 정체성을 매개로 한 폭력 중에서, 국가 조직이 분쟁의 당사자로 참여하는 경우를 제외한다. 셋째, 폭력 발생의 원인 측면에서 볼 때, 공동체 폭력은 각 정체성 집단의 정치적·물질적 이해관계에 대한 우려와 기대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가 행위자로 직접 참가하지 않은 분쟁의 여러 형태에 대해 추상화 할 수 있는 용어를 만나게 된다. 8장에서 이찬수는 '긍정성의 폭력'에 대해 '어떤 일을 긍정적으로 해 가는 과정에 비의도적으로 발생하는 폭력 전반을 일컫는 말'로 정의하고, '자유롭게 경쟁하며 성과를 쌓아 가도록 추동하는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저마다의 긍정적 활동들이 중첩되고 과잉되며 형성된 새로운 폭력의 양상'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항상 최선을 다하도록 격려받고 있는 나와 타인이 폭력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는지 자문하게 만든다.
둘째, <폭력개념연구>에서 우리는 다소 익숙한 요한 갈퉁(Johan Galtung),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칼 슈미트(Carl Schmitt),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부터 한병철, 센(Amartya Kumar Sen) 외에 다양한 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국내외 사례를 접할 수 있다. 한 번쯤은 마주한 적 있는, 르완다 대학살(1994년)(1장과 4장), 캄보디아 킬링필드(1장), 9.11 테러사건(2001년)(2장), 2016년과 2018년 사이에 발생한 예멘 난민 사건(4장),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6장), 주당 40시간 근무 문제(8장). N번방 사건(2018-2010)(9장),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10장)과 더불어 조금은 생소한 사건도 발견할 수 있다.
2023년 발생한 진주시 편의점에서 남성 손님의 여성 종업원을 구타한 사건(3장), 자원활용에 대한 공동체 폭력 사례로 수단 와디 엘쿠 지역에서 수자원 이용권을 둘러싸고 일어난 부족 간 갈등(2003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의 니켈 광산 개발을 둘러싸고 일어난 공동체 폭력(2010년, 4장) 등이 소개되어 있다. 각각 개념은 익숙한 사례와 생소한 사례 모두에 대해 폭력의 민낯을 선명히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셋째,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해 협소했던 폭력(평화)연구가 분단 너머로 확장되고, 동시에 분단을 균열시킬 새로운 평화적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5장 '생태폭력'에서 이나미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생태폭력 개념의 의의를 세 가지로 제시하고 발상의 전환을 제안한다.
"첫째, 그 개념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남북의 어느 특정 행위자를 비난하거나 특정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남북 갈등을 통합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 줄 것이다. 둘째, 생태폭력 개념이 지닌 비가시적이고 미세하고 잠재적인 폭력에 대한 관심은, 한반도 갈등 상황을 한층 정교하고 심층적으로 바라보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연이 지닌 권리를 인정하고 이것을 침해하는 것을 폭력으로 보는 생태폭력 개념은 한반도 분단 자체를 한반도 생태계에 대한 폭력으로 간주하여 분단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한층 제고할 것이다."
이는 분단으로 인해 남측, 또는 북측이 받은 '피해'가 아닌 한반도가 자연에게 끼친 '가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6장 '인도주의 폭력'에서 황수환은 향후 한반도 평화 구축 과정에서 남한이 승자의 평화를 누린다면, 북한은 패자의 평화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남한이 상대적으로 빈곤한 북한에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지원, 개입하는 행위가 북한 입장에서는 폭력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요구하지 않는데 남한이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폭력적일 수 있다. 남한의 지원 의사를 북한이 거부한다고 북한의 정치적 목적과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 역시 폭력적일 수 있다."고 했는데 어쩌면 이 지적은 당연한 것이지만, 상대가 '북한'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간과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10장 '폭력 연속체'에서 서보혁은 "폭력 연속체 개념은 하나의 방안으로 폭력을 종식시키고 곧바로 평화를 수립할 수 있다는 성급한 평화로의 전환을 부인하고, 대신 점진적이고 반(半) 영구적인 평화의 길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한반도 차원의 긴장완화에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즉, "국지적 충돌 예방과 상호 비방 중단 같은 정치 군사적 접근과 함께 대화와 교류, 지원 등 사회 경제적 접근은 평화를 조성하는 데 다 같이 유용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가 경험한, 개구리 해부는 누군가에게는 점수를 위한 실험으로, 누군가에게는 장난으로,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았을 수 있다. 현재 공존하는 유무명의 폭력도 그렇다. 개구리의 내장기관은 이제 모두 명명되고 모형으로도 제작되었다. 더 이상 직접 해부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폭력은 발견되지 않은 유형과 함께 새로 생겨나는 유형도 있다. 따라서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봉합은 아직 요원하다. 메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