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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의 언어 속 인명(人命)의 한없는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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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보건복지부의 언어 속 인명(人命)의 한없는 가벼움

[보호출산제로 보호받는 고통⑧] 입법언어와 현실세계 속 보호출산제의 간극

독일의 언론인이자 튀르키예 외국인 노동자의 손녀인 퀴브라 귀뮈샤이는 저서 '언어와 존재'에서 "누가 세상을 설명하는가? 누가 서술하고, 누가 서술되는가? 언어와 세계 사이에는 틈새가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보호'라는 언어를 앞세워 우리에게 등장한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보호출산제)은 그동안 보호받지 못한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귀뮈샤이의 말처럼 보호의 실제 세계와 언어 사이에 틈새는 유난히 많고 넓다.

지난 7월 19일 발효된 보호출산제는 입법 단계부터 많은 우려가 제기됐다. 그럼에도 '보호'라는 언어의 힘은 예상보다 빠르게, 그리고 손쉽게 반대 의견을 우회하며 입법에 도달했다. 이 법과 같은 내용의 법안이 희망, 비밀, 익명 등의 이름으로 발의되었을 때는 임기만료로 폐기되거나 입법되지 못했지만, 보호라는 언어로는 입법 과정을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호출산제 시행 첫날 많은 당사자와 관계자가 국회 앞에서 보호출산제 폐기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보호출산제의 '보호'는 수십 년간 입양 및 입양인인권, 아동복지, 재생산권리, 미혼모권리 영역에서 당사자 중심의 인권증진과 제도적 개선 노력에 끼얹어진 찬물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이는 입법언어로서 보호출산제가 현실세계와 얼마나 많은 틈새를 가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워▲보호(익명) 출산제 폐지연대와 고아권익연대 관계자들이 7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호(익명) 출산제를 폐지하고 보편적 임신·출산·양육지원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기 힘든 임산부가 가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돕는 '보호출산제'가 이날부터 시행된다.ⓒ연합뉴스

보호출산제 법안 제1조 (목적)에는 출산지원 및 양육보장, 당사자 복리증진을 제공하는 것이 법이 정한 목적이자 보호의 구체적 내용임을 밝혔으며, 제2조(정의)의 규정 제4호에서는 보호출산의 의미를 "보호출산이란 위기임부가 제7조에 따른 상담을 모두 마치고 제9조에 따른 신청을 한 후 비식별화를 하고 출산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차관은 자신의 인터뷰에서 "출생통보제를 도입하면 신분이 드러나는데 노출을 꺼리는 위기임산부가 병원 밖에서 출산하거나 아이를 유기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조치"에 따른 것으로 보호출산제 법안의 필요와 목적을 설명했다.

하지만 양육보장, 복리증진, 출산지원 등이 당위적인 정책방향이 된 지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다. 그러나 보호출산제는 명시한 목적과 관련된 변화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보호출산제 법안의 내용은 위기임산부 비식별화에 관한 규정 이외에는 시행해온 내용을 옮겨온 것이란 면에서, 보호출산제의 목적은 공허하고, 비식별화(이하 익명화) 관련 내용 이외에 새롭게 확보된 보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시행을 준비하며 복지부는 보호출산제 상담을 위해 전국 17개 시도에 16개의 '위기임산부 상담기관'을 지정했다. 지정 기관은 상담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여성가족부의 지원을 받는 출산‧양육‧생활‧일시지원 시설로 이루어진 '한부모 가족복지시설' 중에서 지정된 시설들이다. 상담기관이 보호출산 상담을 진행하는 기관으로서 상담 전문성이 확보‧검증되지 않은 셈이다.

상담 과정에서 누락되지 않아야 할 항목을 명시하고 반드시 확인해야 할 내용을 정하는 표준화 절차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상담현장에서 기준이 될 위기임신 및 보호출산 관련 상담매뉴얼의 준비 과정에서 다루어야 할 여러 영역의 당사자 및 전문가의 의견 수렴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만들어진 매뉴얼은 시행을 얼마 남기지 않아 배포되었고, 상담을 진행할 지역상담기관 담당자 교육은 형식적 수준에 머물렀다.

상담절차와 내용을 표준화하는 매뉴얼 제작에서 실제 위기임신 상담에서 먼저 고려되어야 할 임신중지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었다. 특히 임신중지가 최우선으로 고려되고 허용되도록 정한,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제1항 내 제3호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제4호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제5호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처럼 관련법이 허용하는 최소한의 조건조차 포함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의 언어 속 인명(人命)의 한없는 가벼움

▲보호출산제 시행으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보호출산을 신청했다는 내용을 담은 보건복지부 보도자료ⓒ보건복지부

복지부는 지난 7월 정부24 홈페이지에 "출생통보‧보호출산제 시행 열흘 만에 위기임산부 124명 지원"이란 제목으로 "소중한 생명 살려", "현재까지 5명의 위기임산부가 아동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보호출산을 신청"했다며 "제도 시행 전이었다면 놓쳤을 수 있는 소중한 생명들을 살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정부는 현장과 당사자의 목소리를 자신들의 편의대로 해석해 '익명성 미확보=죽임, 죽음', '익명성 확보=생명보호'라는 섬뜩한 단순 논리 위에 보호출산제의 모든 논의와 논리를 구축했다. 논리의 순서를 바꾸어서 생명보호가 필요한 아이들, 그 처절한 고민 속에 있는 진정으로 보호가 필요한 그들에게 '익명성 보장'이란 법익과 가치 면에서 비교할 수조차 없는 적은 노력과 제안만으로 아이가 죽고 사는 것을 바꾸어낼 수 있을까?

누구나 그런 요행과 같은 바람이 사실일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목숨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벼랑 끝에서 목숨을 걸고 고통 속에 고민하는 이들에게 정부가 그 마음을 돌리기를 바라며 내민 익명성 보장이란 손이 민망할 정도로 너무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복지부의 언어가 현실세계에서도 성립하려면 보호출산을 신청한 어머니들이 손바닥 뒤집듯 아이의 생명을 지키고 또는 포기하는 존재여야만 한다. 위기에 처한 어머니들이 익명성 보장이 안 되어서 아이의 생명을 앗아가려 하는 것이고, 익명성이 보장되자 그 마음을 바꾸었다는 설명은 틈새와 허점이 가득하다.

만약 한 임신한, 또는 출산 후 30일 이내의 어머니인 A씨가 임신중지를 고민하다 아이를 낳은 후 맡기기(비양육·입양동의)로 하고, 다시 보호출산을 신청하기로 한 경우, 그 아이가 보호출산이 신청되지 않았다면 유기되어 죽었을 아이라고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어머니 A씨가 임신중지 의사를 바꾸어 '태어난' 아이, 맡겨지기로 했던 아이이지 죽었을 아이였다고 추정 또는 단정할 수 없다.

보호출산제 이전에도 이후에도 하늘의 무게를 홀로 감당하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어머니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늘의 무게를 감당하는 어머니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고통에서 내려진 결정을 존중하고 이를 수용하고 지원할 정책적 노력 없는 복지부를 돌아봐야 한다.

보호출산제가 아이들에게 빼앗아 가는 것

보호출산제는 보호와 생명의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뿌리뽑힘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 보호출산제의 입법언어의 연결망을 통과한 아이는 생명을 구조받지만, 자신의 뿌리를 연결망 그물 안에 남겨둔 채 뿌리뽑힌 채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을 강제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는 물론 국제조약 비준국으로서나 국내의 법률로도 불법이다. 그러나 보호출산제는 법적 근거 없이도 생명보호를 위한 익명성 부여라는 입법논리를 완고하게 주장하며 아동의 뿌리를 지켜주지 않는 것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가장 많은 해외입양을 보낸 나라이기에 알아야 할 그 고통의 무게를 여전히 그리고 오히려 가장 가볍게 여기고 있는 나라가 한국임을 깨닫게 한다. 과거의 잘못이나 오류를 부끄럼 없이 반복할 수 있기에 뿌리없음에 대한 깊은 고민과 반성, 대안 모색 없이 생명의 대가로 교환을 요구하는 것이 한국 복지부의 최선임을 아프게 알게 된다.

뿌리를 가지고, 뿌리를 알고 자라야 한다는 것은 생명이 부여된 존재에겐 절대적 존엄의 영역이므로, 부모는 물론 누구도 침해해선 안 된다. 보호출산의 입법논리는 아이에게 보호와 생명의 이름으로 침해되어선 안 될 영역을 선택적으로 보호될 수 있는 영역으로 치환시키고 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보호출산제의 실제 보호대상

보호출산제는 보호출산의 대상이 위기임산부이며, 이때 위기임산부는 임신 중이거나 분만 후 6개월 미만의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사유 등으로 출산과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과연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사유 '등'으로 출산‧양육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한국의 여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사실상 한국에서 출산과 양육을 하는 모든 여성이 보호출산제가 말하는 위기임산부이며, 보호대상이 된다.

사실상 보호출산제는 '보호할' 사람을 규정하고 이들에게 보호받을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라기보다 '보호받고자 신청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에 가깝다. 보호받고자 신청한 사람을 곧 보호할 사람이었다는 손쉬운 순환적 동일시로 대상자를 특정하지 못한 상황을 벗어난다. 그럴 경우 누구를 보호해야 할지, 보호를 제공하지 않아도 될 대상은 누군지, 누가 원하지만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는지, 보호가 필요하지만 보호되지 못한 사람은 누구이고 얼마나 되는지를 분별할 수 없어 법적 유효성과 법익은 심각하게 손상될 수밖에 없다.

시행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복지부는 대상자 기준 불명확에 따른 문제에 대해 원론적 수준에서 상담 과정을 통해 그러한 보호대상을 적절성을 판단하고 가려낼 수 있다고 답할 뿐, 어떤 법률 및 표준화된 매뉴얼상의 대상자 기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보호출산제의 대상이 불명확하다는 차원 이상으로 현재까지 복지부가 위기에 처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임신‧출산‧양육 중인 여성을 판단하고 도우려는 노력과 의지의 부재를 방증하는 것으로 더욱 우려스럽고 안타깝다.

▲보호출산제 시행 이후 버스에 부착된 상담번호 포스터ⓒ인트리

보호출산제는 외면하고 있는 아동권리, 모성‧부성 권리 열악한 현실이 지속되도록 보호한다. 안심하고 외면할 수 있게 할 뿐이다. 오랫동안 변화의 요구에 귀를 닫고 제자리걸음을 해온 아동권리, 다양성과 포용에 바탕을 둔 새로운 가족정책‧여성정책 현실을 은폐한다.

보호는 입법‧시행언어 속에서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 속에서 증명되어야만 한다. 보호라는 이름을 앞세우면서 바로 뒤에 숨어 보호에 실패했고, 보호를 외면했고, 보호하지 않을 것임을 외치고 있는 정부. 그 외침을 들으며 보호라는 이름의 방패로 내어 몰리면서 뿌리뽑힘과 단절의 고통을 보호로 여기며 감내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라고 강요하고 있는 2024년의 한국 사회와 정부를 보호출산제는 거울처럼 비춰 보여주고 있다. 그 거울의 이름은 보호의 이름으로 보호에 실패하고 보호를 외면하는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을 은폐해주는 보호출산제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언어를

아주 대범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보수주의자도 아니고 전통을 아는 것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이들은 정치적 올바름이 아니라

정의에 저항하는 것이다.

말이 부서진 곳에서는 어떤 사물도,

어떤 인간도 존재할 수 없다.

- 퀴브라 귀뮈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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