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시작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는 스포츠 산업과 역사에 매우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경기다. 미국에서 생겨난 스포츠 리그는 이 월드시리즈를 모델로 정규 시즌 성적이 아니라 포스트 시즌 성적을 통해 우승 팀을 정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프로야구와 프로농구도 이 같은 미국의 포스트 시즌 제도를 따라했다.
MLB 가을 야구의 결승전인 이 경기에 '월드'라는 단어가 붙은 것도 의미 심장하다. 여기에는 1903년 이벤트 형식으로 처음 열리게 된 월드시리즈 후원사 <뉴욕 월드>와 관련이 깊다.
조셉 퓰리처가 운영했던 <뉴욕 월드>는 신문사 이름 중 한 단어인 '월드'를 대회 명칭으로 사용해 이 이벤트가 전 세계 최고의 야구 팀이 맞붙는 경기로 널리 홍보될 수 있도록 전략을 짰다. 그래서 MLB의 가을 야구 결승전은 한국시리즈나 일본시리즈와는 달리 '월드'라는 단어가 들어가게 됐다.
이후 월드시리즈에는 유럽 이민 세대의 후손과 중남미 선수들은 물론 아시아 출신 선수들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문자 그대로 월드시리즈가 된 셈이다.
월드시리즈 우승에 인생을 건 오타니
2024년은 누가 뭐래도 오타니 쇼헤이를 위한 시즌이었다. 그는 올 시즌 홈런 54개, 도루 59개를 기록하며 MLB 역사상 최초의 50-50을 달성한 선수가 됐다. 팔꿈치 수술을 받은 그가 올 시즌에는 투수로 뛰지 못해 투타 겸업의 '이도류'로 활약하지 못했지만, '뛰는 야구'와 '홈런 야구'라는 또다른 측면에서 '이도류'를 완성시켰다.
오타니가 올 시즌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된 배경은 그의 고교시절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그는 이미 고교시절 "2020년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해 놓았다.
하지만 오타니는 전 소속 팀 LA 에인절스에서 6년 간 뛰면서 단 한 차례도 가을 야구에 나서지 못했다. 그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의 단골 우승팀 LA 다저스로 이적한 것도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해야 하고, 이를 위해 마치 야구라는 종교에 귀의한 수도승처럼 경기장과 숙소를 오가며 야구에만 집중하는 그의 생활신조는 올 시즌에도 계속됐다. 오타니는 원정경기를 할 때도 밖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고 매번 다음 날 경기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숙소에서 일찍 잠에 든다. 야구 팀으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취인 월드시리즈 우승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월드시리즈 우승이 오타니에게 얼마나 간절한 소망일까? 오타니는 지난 12일(한국시간)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서 평소에는 하지 않는 욕설까지 했다. 안타가 될법한 타구가 심판에 맞아 홈으로 돌진하던 그가 태그 아웃 됐기 때문이다. 고교시절 예의도 바르고 졸업 성적이 85점이었을 정도로 학생과 야구선수로서 모두 모범생이었던 그가 했던 욕설은 미국과 일본에서 크게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만큼 월드시리즈 우승에 대한 그의 염원이 대단하다는 방증이었다.
이도류를 넘어서는 멀티 플레이어 토미 현수 에드먼
LA 다저스는 오타니 이상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이 간절하다. 다저스는 최근 10년 간 MLB 30개 구단 가운데 팀 연봉 총액에서 늘 최상위권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LA 다저스는 투자한 만큼 우승을 많이 하지 못했다.
LA 다저스는 2013년부터 2024년까지 무려 11번이나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서 우승을 했지만 정작 이 기간 동안 내셔널리그 챔피언이 된 건 4번뿐이었다. 같은 기간 4번의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2020년에 단 한 차례만 우승을 차지했다.
그래서 LA 다저스는 올 시즌을 앞두고 1조 3000억 원이 넘는 거액을 들여 오타니와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로 불리는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영입했다.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다저스는 지난 7월 오랫동안 영입하려고 했던 MLB 최고 수준의 멀티 플레이어도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왔다. 그의 이름은 토미 에드먼이다. 에드먼은 내야와 외야에서 무려 6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만능 선수로 타격에도 재능이 뛰어나다. 더욱이 번트 등 작전 수행 능력에 있어서 팀이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스타일의 선수였다.
그는 실제로 샌디에이고와의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다저스의 주전 유격수가 부상당했을 때 그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웠다. 이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무려 11타점을 기록하며 시리즈 MVP가 됐다. 오타니가 에드먼에 대해 "(그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MVP다. 그는 숫자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포함해 대단한 활약을 했다"고 칭찬했을 정도였다.
사실 토미 에드먼은 한국 팬들에게도 익숙한 선수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지난 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한국 대표팀 선수로 뛰었다.
곽현수라는 한국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토미 에드먼은 고교시절부터 야구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이도류'였다. 그의 고교시절 학점은 4.48(4.5 만점)일 정도로 최고 우등생이었다.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대학 수리컴퓨터과학부에 진학해서도 그는 3.82(4.0 만점)라는 학점을 기록했지만 야구 선수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MLB행을 선택했다.
'아시안 파워'로 진짜 월드시리즈를 만든 LA 다저스
오는 26일(한국시간)부터 시작되는 뉴욕 양키스와 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에는 선수와 감독을 포함해 모두 5명의 아시안들이 참가한다. 역대 월드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은 아시안들이 경기에 나서는 셈이다.
앞서 소개한 오타니, 야마모토, 토미 에드먼은 물론이고 지난 해 신인으로 아메리칸리그 유격수 부문 골드 글러브상을 수상한 뉴욕 양키스의 안소니 볼피도 어머니가 필리핀계다.
LA 다저스의 덕 아웃을 지키는 사령탑도 아시안이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그의 고향은 오키나와의 나하 시(市)로 특히 일본 야구에 대해 관심이 높다. 그는 다저스가 오타니와 야마모토 선수를 영입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프로야구의 광속구 투수 사사키 로키의 다저스 영입설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LA 다저스는 아시아 선수 영입에 가장 적극적인 MLB 구단이었다. 일본의 노모 히데오와구로다 히로키, 한국의 박찬호와 류현진 등은 모두 다저스에서 미국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타이완 출신으로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된 거포 천진펑도 지난 2002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었다.
월드시리즈에 나서는 LA 다저스는 뉴욕 양키스에 비해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다. 특히 다저스는 선발 투수진이 부상으로 무너진 상황이라 거의 매 경기마다 불펜 투수를 일찍 마운드에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여부는 불펜 투수들의 체력과 컨디션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선발투수로 나서게 될 야마모토의 호투와 투수 운용에 있어 로버츠 감독의 역할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여기에 다저스가 우승을 하려면 핵심 선수인 오타니와 트레이드를 통해 굴러 들어온 보물 토미 에드먼의 대활약이 절실하다. 4명의 아시안들이 만들어 갈 다저스의 월드시리즈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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