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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공포 조장하는 보수 언론, 문제 핵심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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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탈원전 공포 조장하는 보수 언론, 문제 핵심은 따로 있다 [초록發光] 폭염 대비는 원전이 아닌 에너지 전환으로

"착한 태풍"을 기다린다는 말까지 나돈다. 땡볕에서 일하는 사람, 냉방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건강한 성인마저 견디기 힘든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폐사한 닭과 돼지, 물고기의 수는 헤아리기도 어렵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이제는 폭염도 재난으로 취급해서 재난안전법상의 자연재난에 포함시켜서 관리"할 것을 주문했다. 2018년 여름, 폭염은 재난 경험으로 우리의 몸속에 각인되고 있다.

치솟는 최대 전력수요로 탈핵 에너지 전환 흔들기

말 그대로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되면서 최대 전력수요도 치솟고 있다. 더불어 최대 전력수요 증가를 근거로 탈핵 에너지 전환 정책을 흔드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폭염으로 최대 전력수요가 예상을 웃돌면서 요 근래 전력예비율이 몇 차례 10%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원자력계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전력수급이 불안정해졌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탈원전을 강행하기 위해 원전 가동률을 낮췄고, 그 결과 전력수급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게 요지다. 한술 더 떠 앞으로 원전을 건설하지 않으면 대규모 정전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도 한다. 이른바 전기요금 폭탄에 대한 공포감을 조장하는 것도 단골메뉴다.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는 비단 악의적인 정치 기사에 한정되지 않는 듯하다. 정부가 굳이 나서지 않았더라도, 원전의 재가동이 당초 계획을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말해 원전의 "계획예방정비" 일정이 이번 폭염과 무관하다는 것을 원자력계 전문가들이 모를 리 없다. 원전 가동률을 인위적으로 낮췄다고 아우성이지만 "원전 안전 신화"를 신봉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원전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곧바로 탈핵 정책과 연결 짓는 것도 지나치다.


차분히 따져보면, 전력 예비율 또한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탈핵을 선언했지만 재임 기간 중 원전 설비 용량은 더 늘어난다. 원전뿐만이 아니다. 설비 과잉이 논란이 될 만큼 당분간 발전 설비는 계속 늘어난다. 당장 수요관리를 통해 대응할 수 있는 여지도 남아있다. 사전 계약을 통해 최대 전력수요 시간대에 기업의 전기 사용을 줄이는 조치는 아직 꺼내 들지도 않았다.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폭염으로 인한 최대 전력수요 증가를 이유로 탈핵 에너지 전환 정책을 흔드는 것은 합리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기존 에너지체제를 옹호하기 위한 정치 공세에 가깝다.

수요 관리, 더 강하고 한층 세밀하게

물론 최대 전력수요 증가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폭염 앞에서 개개인의 무조건적인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최대 전력수요의 증가를 방치하는 것도 무책임하다. 그만큼 전력 수요 관리는 시급히 머리를 맞대야할 문제다. 그리고 출발점은, 원자력계의 기대와 어긋나겠지만, 최대 전력수요를 기준으로 대규모 발전소를 늘려온 관행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듯이, 최대 전력수요에 맞춰서 대규모 발전소를 짓는 것은 그리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당장 최대 전력수요 기록을 갱신한 날도 수요가 정점에 도달한 몇 시간을 제외하면 전력 예비율은 20~30%를 훌쩍 넘긴다. 그동안 우리는 이와 같은 낭비적 상황을 전력수요를 새롭게 창출하는 방식으로 풀어왔다. 일단 짓고, 낭비적 소비를 조장하고, 이를 근거로 더 짓는, 공급 위주의 전력정책이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해왔음은 물론이다. 이제는 일단 아끼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그래도 문제가 되면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설비를 확충하는 순서로 가야한다.


누군가는 기저부하의 지속적인 증가를 전제로, 원전과 대규모 화력발전이 경제적이라 항변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핵폐기물 처리비용,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피해 등 숨은 비용에 대한 지난한 논쟁을 반복할 생각은 없다. 숨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일어나고 있는 에너지산업의 지각변동만 제대로 봐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간한 <세계 에너지 투자 2018>에 따르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분야의 투자가 원전 산업에 대한 투자를 압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력발전 분야의 투자도 크게 앞지르고 있다. 원전 분야 170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3000억 달러에 달하는 재생에너지 분야 투자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국제에너지기구 이외에 다른 기관에서 펴낸 보고서를 봐도 추세는 비슷하다. 이윤을 기준으로 한 시장의 선택조차 이제 분명하다.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고 강변하거나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이유로 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때는 이미 지났다.

다시 강조하는 바,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하고 한층 세밀한 수요관리다. 패러다임을 바꾸면 지금처럼 새로운 시도를 하기 좋은 때도 없다. 탈핵 에너지 전환 정책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2022년까지 매년 원전 2기 가량 발전 설비가 늘어난다. 그만큼 전력 설비 부족의 압박 없이 현실적인 수요관리 방안을 실험하고 정착시키는 데 집중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닥치고 건설"에서 벗어나, 전력 수요 관리를 체계화하고 최대 전력수요의 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폭염 다음 미세먼지, 그리고 다시 혹한에서 벗어나려면


한발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최대) 전력수요 자체를 줄여갈 방안도 모색해야한다. 안타깝게도 폭염이 지나가면 머지않아 다시 미세먼지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기후변화의 추세를 볼 때, "유례없는 혹한"은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정해진 미래다. 지금도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이 폭염으로 들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트기류 약화, 대서양 진동 등 여러 이유가 언급되고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가 놓여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올 여름 폭염은 지나가겠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더 자주, 더 길게, 그리고 더 많은 곳에서 지금보다 더한 더위와 추위, 폭우, 가뭄을 맞이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더 이상 남 탓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최근 BP가 발표한 <세계 에너지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OECD 국가 중 미국, 일본, 독일 다음으로 많았다. 배출량도 문제지만, 2007년 이후 OECD 회원국 전체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8% 넘게 감소한 데 반해 한국은 25% 가까이 증가했다는 불편한 진실도 직시해야 한다.

봄에는 미세먼지, 여름에는 폭염, 그리고 일 년 내내 원전 걱정. 탈핵 에너지 전환을 흔드는 이들이 꿈꾸는 "마음껏 에너지 소비"로는 일상이 재난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에너지를 값싸게 이용하며 위험과 잠재적 비용을 후손에게 떠넘기는 방식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탈핵 에너지 전환 정책이 폭염 공세에 흔들려서는 안 되고, 오히려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과 연결되어야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세부적인 대응 방안이 문제라면 머리를 맞대고 갑론을박을 벌여 풀어야 한다. 그러나 갖은 이유를 들어 탈핵 에너지 전환을 흔드는 것에는 단호하게 맞설 필요가 있다. 지금 탈핵 에너지 전환 정책이 문제라면, 추진 속도가 너무 빨라서가 아니라 기존 정책과 이해관계로부터 단호하게 단절하지 못해서다. 탈핵과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전환을 종합적으로 힘 있게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 여기서 물러선다면, 장기 재난의 시대를 벗어날 길은, 감히 말하건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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