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에너지 전환 정책의 약한 고리도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원전 축소와 원전 수출의 병행이라는 딜레마는 해소되지 않았다. 또한 전기요금 인상 없는 에너지 전환 방침도 변하지 않았다. 성윤모 장관 후보자는 원전 설비가 늘어나는 만큼 '2022년'까지 탈원전으로 인한 에너지 전환 비용의 증가는 없다고 강조했다. 2022년까지 원전 설비가 늘기 때문에 탈핵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는 것이 방어논리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이로 인해 정반대의 의도로 제기되었지만, "2022년까지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올라도 상관없는 건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소 궁색해졌다. 또한 산업용 경부하 요금제 문제와 전반적으로 낮은 전기요금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을 서둘러 차단한 꼴이 되었다. 결국 에너지 전환 비용을 누가, 언제부터, 어떻게, 얼마나 낼 것인지, 어쩌면 탈핵-에너지 전환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올려놓는 것은 다시 유예되었다.
값싼 에너지 소비에 기반을 둔 산업구조와 소비문화를 생각했을 때, 에너지 전환 비용 부담이 껄끄러운 문제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전환 비용은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쟁점이다. 에너지 전환이 산업정책 이상의 정책이 되기 위해 풀어야할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달리 말하자면, 에너지 전환이 특정 사안으로 국한되는 것을 막고 사회적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해선 산업정책을 넘어선 장기적인 사회 전환의 비전이 필요하다.
머지않아 맑은 가을 하늘을 뒤덮을 미세먼지를 떠올려보자.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조치 중 하나는 경유차 운행 축소이다. 그간 수송부문 대책은 노후 경유 화물차에 집중되었는데, 경유 RV와 경유 승용차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대기오염으로 인한 환경·보건 비용을 고려할 때, 그리고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은 경유의 상대 가격을 감안할 때, 경유 가격 인상은 시급히 논의해야할 주제이다. 미세먼지 배출량 자체를 줄이지 않고 각자 공기청정기를 사는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선 경유차의 운행을 줄일 방안을 마련해야하고, 경유 가격 인상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경유 가격 인상을 비용 문제로만 접근하면 전환 비용 부담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기 어렵다. 단적으로 경유 가격 인상을 통해 추가로 확보되는 세수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없다면 누가 전환 비용을 부담하려 하겠는가. 비사업용 경유 화물차를 운전하는 이들이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노동·임금·복지정책에 대한 기대가 있을 때 경유 가격 인상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또 LPG·LNG·CNG 화물차가 개발되고 이용이 불편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될 때, 경유 화물차의 대체도 본격화될 수 있다.
사업용 경유 화물차에 지급되는 유가보조금도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다. 사업용 경유 화물차의 경우 주행세의 70% 이상이 투입되고 있는 유가보조금 제도로 인해 경유 가격 인상을 통해 효율적인 연료 사용을 유도하고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유가보조금이 화물노동자의 수입을 보전하고 있는 사실을 고려할 때, 미세먼지 저감을 이유로 유가보조금을 축소하거나 없애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유가보조금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물류 비용의 현실화, 화물노동자의 임금 및 권리 보장, 화물운송산업의 문제점 해결 등을 함께 논의할 수밖에 없다. 즉 경유 가격을 인상하고 유가보조금을 경유 화물차의 교체, 친환경 교통·물류 체계로의 전환 비용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조세정책과 노동정책, 교통·환경정책, R&D 정책을 아우르는 접근이 필요하다. 포괄적인 전환의 비전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값싼 에너지 사용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뿐더러 부분적으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특정 집단에게 비용이 전가되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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