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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못하는 사이, 사납금만 야무지게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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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못하는 사이, 사납금만 야무지게 오른다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 ①] 택시노동자의 고공농성 500일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 ‘장기 투쟁 사업장’이라 부르는 곳을 찾아 6회에 거쳐 기록한다. 오랜 시간 동안 싸우는 사람은 강한 사람, 지독한 사람, 모자란 사람, 끈질긴 사람이 아니다. 우리에게 묻는 사람이다. 삶이 이대로 괜찮은지. 물음은 답해지지 않고 싸움은 길어진다. 괜찮을 것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이들의 물음을 기록한다.


택시노동자가 전주시청 앞 조명탑 위에 올랐다. 고공농성 기간만 500일이다. 그 농성을 다룰 예정이지만, 여성 참정권 운동을 그린 영화 <서프러제트>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영화에서 일정한 권력과 직위를 가진, 나이든, 남성은 참정권 운동을 하는 여자들에게 말한다. 법을 지키라고.


"법을 준수하시오."


여자들은 말한다.


"법을 준수하라고요? 그럼 정당한 법을 만들어야지요."

법을 지키라고 하자 (투표할 권리를 박탈당한) 여자들은 법의 정당성을 묻는다. 전체 구성원의 사회적 약속인 것 마냥 꾸며진 법마저 이러하다. 무엇을 지키고 지키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 뿐 아니라, 무엇을 지키라고 요구할 것인지 또한 힘의 문제다.


그러고 보면 싸움은 무언가를 '지킨다'는 말과 함께한다. 법을 지키라 하고, 약속을 지키라 한다. 또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투쟁한다. 그 '무언가'는 생존권, 정의, 의리로 말해지기도 한다. 모든 싸움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함이다.


ⓒ연합뉴스


택시노동자가 지키고자 하는 것


전주에서 만난 택시노동자들에게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이들은 사납금 폐지를 요구한다. 택시기사가 매일 회사에 납입하는 일정 금액의 돈을 사납금이라 한다. 사납금을 제외한 수입이 임금이 된다. 사납금제가 아니라면 무엇을 원하나. 단순하다. 월급. 그저 월급 받아 생활하는 노동자이고 싶다. 농성장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이리 말했다.


"우리는 노동자인 거잖아요."

택시운전만 30년 했다고 한다.


"이건 말이 노동자지, 도급이나 다를 바 없어요."


옆에서 보기에, 사납금 제도는 도급(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하기로 약정하면서 이뤄지는 계약)은커녕 빵셔틀에 가까운 듯하다.


"사납금제 경영방식은 택시회사에겐 땅 짚고 헤엄치기에요. 봉건 노예제보다 더 좋은 거예요. 차가 한 대 나가면 무조건 13만5000원(사납금)이 들어오는 거예요. 사업자는 앉아서 한 대가리 두 대가리 계산만 하는 거죠. 차가 70대면 70 대가리. 일을 하던 안 하던 사납금은 무조건 받아요. 손님이 있든 없든 상관없어요. 모든 경영 리스크(위기)를 노동자한테 떠넘기는 거죠." (이삼형 택시지부 정책위원장)


'1000원 줄 테니 가서 1500원짜리 빵 사오고 나머지 돈은 너 가져'라는 셔틀 계약(?). 힘 있는 사람이 맺을 수 있는 계약이다. 고용줄을 쥔 택시회사는 힘이 있다. 추가 수입을 위해 택시기사들은 노동시간을 늘린다. 그래야 빵 사고 남은 돈이 생긴다.


그 결과 노동시간이 많게는 하루 16시간에 이르렀다.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건 한계가 있으니, 더 빨리 달린다. 돈 되는 손님을 받으려 한다. 택시는 총알이 되고 난폭운전의 상징이 됐다. 시민의 안전을 말할 수밖에 없지만, 제일 먼저 목숨을 위협받는 이는 노동자 자신이다.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한 명이 택시운전사라고 한다.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


지금으로부터 500일 전, 택시노동자 김재주(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전 지부장)는 고공에 올랐다. 만나 물었다. 왜 올라갔느냐고. 사람들 말에 따르면 매일 저녁 고등학생 딸과 하는 통화 때문에 아래까지 소리가 쩌렁거린다고 한다. 잔소리 할 때가 많다. 마음이 안 놓인다. 보고 싶다. 그런데도 왜 올라갔나. 옆에서 동료가 농으로 말한다.


"열 받아서 올라갔지."


무엇이 그를 화나게 했을까. 2014년부터 매일 같이 시청 앞에서 진행된 700여일의 선전전, 그리고 400여일의 천막농성. 2년간의 노력 끝에 전주시청으로부터 약속받은 것이 있다. 2017년 1월부터 전액관리제(월급제)를 이행한다는 노사정 확약.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다. 김재주는 전주시가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고공에 올랐다.


"2014년부터 천막농성을 비롯해 햇수로 3년 투쟁을 하면서 노사정 합의를 했죠. 그런데 시(市)가 움직이지 않고 엄한 소리를 하니까. 안 되겠다 특단의 조치를 해야겠다. 처음에는 3개월이면 될지 알았어요."


전주시청은 택시업체들의 반발 뒤에 숨어 이행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택시회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앉아서 받던 돈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3개월이 지나고 또다시 9개월이 흘렀다. 500일 동안 농성장은 보완을 거듭해 작은 망루집이 됐다.


▲ 고공농성장. ⓒ연합뉴스


법을 지키라는 요구


택시노동자가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2년 전 전주시의 약속만이 아니다. ‘법’을 지키라 말하고 있다. 사납금제 폐지를 이야기하는 2018년. 그러나 재미있게도, 사납금제는 1997년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을 통해 이미 폐지됐다. 현재 법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운송사업자는 운수종사자가 이용자에게서 받은 운임이나 요금의 전액을 그 운수종사자에게서 받아야 한다.(21조 1항)>


그러니까 사납금이 아닌 요금 전액을 받아 회사가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지금 택시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전액관리제다.

폐지된 제도를 폐지하라 요구한다. 법이 존재하나 집행되지 않아 생기는 일이다. 20년 전 법에서 사라진 사납금은 '기준금'이라 이름만 바꿔 여전히 건재하다. 까닭은 정부의 법 집행 의지 부족에 있다. 불이행에 따른 처벌 권한이 있는 지자체장이 움직이지 않는다.

전액관리제 확약을 맺은 전주시를 보자. 사납금제를 유지하는 택시업체 행태에 눈감다 고공농성이 300일을 넘기고서야 전액관리제를 불이행하는 사업장에 1차 행정처분을 했다. 처벌은 500만원짜리 과태료.


"500만원이면, 사납금을 하루 1000원만 올려도 2달이면 해결될 금액이에요. 택시가 100대다 하면 하루에 10만 원이 추가로 들어오고, 한 달이면 250만 원. 2달이면 되는 거죠." (이삼형)


올해 12월에 내려진 2차 행정처분마저 택시노동자들이 시청 점거에 들어가 49일을 버텨 얻어낸 결과다. 과태료 1000만 원. 넉 달이면 해결될 금액이다. 그래도 2차 처벌을 하니 관내 20개 택시업체 중 13곳이 협약이행을 약속했다. 나머지 업체들에 의미 있는 제재를 가하려면 3,4차 행정처분(감차, 사업면허 정지)이 필요하다.


이번엔 또 무엇을 해야 하나. 자본력 있는 사업주들은 빵셔틀도 계약이라며 당당한데, 노동자들은 존재하는 법 하나 지키게 하는데도 자꾸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지키는’ 일은 노동자에게 투쟁이 된다.


줄어든 월급을 지키는 사람들


▲ 고공농성장. ⓒ희정
그리고 특이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을 보았다. ‘줄어든’ 임금을 지키는 이들이다. 농성장을 방문한 날, 한 무리의 택시기사들과 마주했다. 노조 간부가 저 사람들을 인터뷰해야 한다고 귀띔한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완전월급제를 하고 있거든요."


대림교통에서 일하는 택시기사들이다. 확약을 맺은 후 지난해 11월부터 일부 사업장이 전액관리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완전 월급제라고 이름붙일 사업장은 대림교통 뿐이라 했다. 전액관리제를 시행한다지만 다양한 편법이 존재한다. 대림교통이 완전월급제를 할 수 있던 건 노동조합이 건재한 덕분이다. 노동조합이 생긴 후 큰 투쟁만 3차례 치렀다. 옥쇄 파업 경험도 있다. 편법 섞인 제도에 노사합의를 하지 않을 힘이 있다는 말이다.


월급제가 된 후 어떤 변화가 있냐고 물으니, 다들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짓는다.


"택시 하루차(전일제 차량) 같은 경우는 14시간, 15시간 일하니까. 먹고 자고 일하고 먹고 자고 일하고. 이건 노예인 거죠. 밥 먹는 순간에도 아, 일 나가야 하는데. 차를 더 많이 굴려야 나한테 돌아오는 돈이 생기니까. 그분들이 이제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일했냐 그럽니다." (고영기 대림교통분회 분회장)


택시를 모는 내내 머리는 사납금 계산에 분주했다. 시간은 이들의 것이 아니었다. 택시 안에 머문 시간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노동자가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회사는 그동안 우리 시간 착취를 해온 거잖아요."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임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주6일 하루 6시간 40분 일해 최저임금을 번다. 월 최저임금 157만 원(2018년 기준). 교섭 당시 회사는 근무시간을 6.4시간으로 정했다. 정확히는 월급을 최저임금으로 고정한 것. 살기 팍팍하지 않냐고 물으니 이 말을 한다.


"손님들이 얼마 버냐고, 이 직업 할 만하냐고 묻는데. 그러면 제가, 얼마를 버냐고 물어보지 말고 몇 시간 일해서 얼마를 버냐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고영기)


사납금이 있을 때는 주6일 10시간 넘게 근무해 200여만 원을 벌었다고 한다. 지금보다 2배나 가까운 시간을 일하는데 벌이는 30~40만 원 차이가 난다. 이마저 택시기사 치고 적은 벌이가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이 맞다. 물가 높은 서울마저 택시노동자 평균임금이 200만 원을 넘지 못한다.(서울시 택시기사의 노동실태와 지원방안 연구보고서, 2016) 그래도 일당으로 치면 하루 7~8만 원. 하루 사납금이 12만7000원이었다.


젊은 사람은 이 돈 받고 일 못한다. 그러면 누가 일하나. 택시 업계엔 나이든 사람이 대부분이다. 회사에 국민연금 내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엄살이다. 그만큼 평균 연령이 높다.


"이 나이에 담뱃값이나 벌면 괜찮다 하는 사람들. 또는 벌어야 하는 사정이 있는 사람들만 남게 돼요. 그러니 회사가 농간을 부려도 저항을 못하죠." (김재주)


남은 노동자들이 할 말 못하는 사이, 사납금만 야무지게 오른다.


노동자라는 이름을 지키는 사람들


빠트린 이야기가 있다. 대림교통 노동자 중 완전월급제를 하고 있는 사람은 13명뿐이다. 50여명이 다니는 회사에 13명만이 월급제로 임금을 받는다. 다른 이들은 여전히 사납금을 내고 있다. 노동조합 소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완전월급제를 요구하는 공공운수노조 대림교통분회, 그리고 사납제를 유지하는 기업노조로 나뉘어 있다.


이번 카풀시위로 인해 이름이 많이 거론된,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이하 전택)과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이하 민택), 그리고 고공에 올라간 김재주가 속한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까지. 택시 사업장 내 노동조합은 여러 갈래다. 기업노조는 물론이고, 민택마저 카풀시위 중재안으로 제시되는 월급제에 뚜렷한 입장을 내고 있지 않다. 그러니 이들 노조에 속한 노동자들이 회사에 완전월급제를 요구하긴 힘든 일.


그로 인해 156만 원 월급 받는 노동자와 매일 사납금 12만7000원을 내는 노동자가 한 직장에 다닌다. 그리고 여기 월급 0원을 받는 노동자도 있다. 앞서 언급한, 노동자가 되고 싶다던 경력 30년 택시기사 전복철 씨다.


김재주 지부장과 전복철 씨는 같은 회사(기원상운)를 다녔다. 민주노조를 만들 당시 해고된 김재주를 제외하고 조합원은 2명이라 했다. 다 생계 때문에 그만두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만하다. 한 명은 월급으로 40만 원 받고, 다른 한 명은 오히려 마이너스라 한다. 전액관리제를 실시하는데 그렇다. 대림분회와 사정이 다르다.


기준금액(택시기사가 정해진 시간에 벌어야 하는 금액)을 높게 책정하고, 그것에 도달하지 못하면 월급에서 삭감한다. 사납급제와 다를 바 없는 편법이다. 이런 전액관리제가 만연하고, 노동자들은 이를 가짜 월급제, 가짜 전액관리제라 부른다.


사납금 있을 때보다 더 못한 임금이 나온다. 기준금액을 낮추면 되는 문제이지만, 이것은 단체협약 장에서나 가능한 일. 그러나 소수 노조의 경우 복수노조법에 따라 회사와 단체협약을 맺을 권리가 없다. "민주노조가 다수인 건 택시에서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 다수 노조 자리는 회사의 든든한 지원을 받는 어용노조가 차지하기 마련이다.


어용노조가 단체협상 대표로 들어가 사납금액은 물론 타노조 조합원의 월급제 기준금액마저 높이는 데 동의해준다. 그 덕에 0원을 버는 전복철 씨는 밤마다 대리운전을 한다. 나이든 노동자의 몸이 피로하다. 그럼에도 사납금제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왜 굳이 ‘적은 월급’을 지키나.


"전액관리제의 맥을 이어 가야지. 우리가 포기하면 그게 사라져버리잖아요."


전액관리제와 월급제. 지금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지켜야 한다. 그게 뭐라고. “우리는 노동자인 거잖아요.” 그에게 전액관리제는 노동자라는 증표다.


▲ 고공농성 중인 김재주 지부장. ⓒ희정

잊어서는 안 되는


글 앞머리에 소개한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힘과 직위가 있는, 나이든, 남성은 참정권 운동을 하는 노동계급 여자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힘없고 가능성 없으나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사람." 그 대사를 떠올린다.


이들도 상황이 바뀌길 바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라 하고 법을 집행하라 요구한다. 이를 위해 때로 법을 어기고, 줄어든 임금을 고수한다. 권력은 없지만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는 안다. 나이든 노동자에게 그 무엇은 ‘노동자’라는 이름이다. 제 손으로 일해 임금을 버는 이들이 불려야 할 이름과 권리.


카풀 논란을 기점으로 건설교통부와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월급제 관련 법안 발의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김재주 전 지부장을 비롯해 택시노동자들이 반복해 말하는 것이 있다.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지켰으면 좋겠다."


법을 지켜야 하는 자가 누구인가는 현실 권력의 문제이다. 법안 발의는 불평등을 사라지게 할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존재하나 지켜지지 않는 법을 둘러싼 불평등에 맞서 싸워온 노동자의 500일. 아니 택시노동자들의 수년간의 목소리가 잊혀서는 안 된다. 이들이 지키고자 한 것을 잊을 때 노동자로 살고 싶던 이의 목소리, 그러니까 노동의 권리도 함께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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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기록노동자다. 저서로는 르포집 <노동자 쓰러지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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