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국제적 호구냐."
외국인에 대한 건강보험 혜택을 없애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적힌 일갈이다.
다음과 같은 논리도 흔하다.
"대한민국 국민도 보험료 내느라 허리가 휜다, 의료비 부담 때문에 병원 가기 힘들다 혹은 빈곤층으로 추락한다, 엄격한 선정기준 때문에 의료급여나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는 내국인도 허다하다."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 같은 이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자는 주장인가? 아니다. 외국인의 건강보험 이용을 어렵게 해달라는 게 청원의 요지다.
작년 말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재외국민을 포함한 외국인이 건강보험 지역가입자가 되기 위한 최소 체류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는 내용이었다. 작년 6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외국인 및 재외국민 건강보험제도 개선방안 (이하 개선방안)'의 후속조치였다. (☞관련 자료 : )
'개선방안'에는 다른 내용들도 담겨 있다. 외국인 지역 가입자의 소득과 재산 파악이 어려운 경우 전년도 건강보험 가입자의 평균보험료를 부과하고, 만일 보험료를 체납하는 경우에는 체류기간 연장이나 재입국 시에 불이익을 준다고 한다.
'개선방안'이 나오게 된 맥락과 외국인 건강보험을 둘러싼 오해는 작년 10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발표 내용으로 충분히 해명될 수 있다 (☞관련 기사 : 외국인 건강보험에 대한 혐오를 멈추자: 외국인 건강보험, 사실은 흑자였다). 또한 '개선방안'의 문제점은 이주민 인권단체들의 공동성명을 통해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관련 자료 : ).
이 글에서는 한국인의 '외국인 건강보험에 대한 혐오'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해외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러한 문제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닌 탓이다. 최근 스웨덴, 영국, 포르투갈 공동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비판공중보건 Critical Public Health>에 게재한 "보편주의, 다양성, 규범: 감사(고마움), 보건의료, 그리고 복지 쇼비니즘"이라는 논문이다. (☞논문 바로 가기 : )
'복지 쇼비니즘'은 유럽에선 이미 오래된 개념이다. 이는 "외국인들이, 그들이 이용할 자격이 없는 공적 서비스를 잘못 이용함으로써, 그리고 적절히 기여하지 않음으로써, 복지국가의 근본 원칙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믿음"을 말한다. 특히 2015-2016년 유럽의 '난민 위기' 이후 반(反) 이민과 복지 공약을 조합해 세를 얻은 극우정당들의 특성을 설명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관련 기사 : )
유럽 복지국가에서 보건의료 접근권은 정치적, 상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들은 기본적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했고 이는 국가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재건하는 작업의 일부였다. 이후 현재까지 복지국가의 이상은 신뢰와 관용에 기초한 평등주의적 사회를 유지하는 힘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인구 고령화와 질병의 만성화, 이주의 세계화, 긴축과 공적 보건의료 재원 축소 등 복지국가가 도전을 맞이하면서, 외국인을 혐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새로운 이주민들, 충분한 기여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 예컨대 장애인이나 정신질환자 등의 서비스 접근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 혜택을 누리려 이주했다는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주민들의 유입은 '유럽 복지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졌다.
동시에 이주민은 공적 서비스의 실패를 설명하는 희생양이 되었다. 자신들의 서비스가 축소되는 것을 본 납세자, 시민들은 이주민, 비(非) 납세자들의 자격을 따져 묻기 시작했다. 복지 축소 때문에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무임승차자, 지원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명명되었다. 이주민 중에서도 특히 장애나 만성질환이 있어 '지나친' 필요를 가진 이들, 통역을 필요로 하는 이들, '엄마'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기존 연구들은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보건의료가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믿음이 여전히 유럽 시민들 사이에서 견고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주로 일반 인구집단의 인식과 의견을 조사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복지 쇼비니즘이라는 위협에 직접 노출되어 있는 이주민들은 어떨까? 이주민의 자격이 문제시되고 취약해지면, 이들이 보건의료 서비스 이용 의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이것이 연구진의 문제인식이었다.
연구진은 영국 버밍햄, 스웨덴 웁살라, 포르투갈 리스본, 독일 브레멘에서 각각 두 곳씩, 오래된 이주민과 새로운 이주민이 고루 포함될 수 있는 지역을 선정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특정한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물었다. 총 160명을 면담했고, 다양한 연령, 성별, 출신 국가, 거주기간, 시민권 상태, 이주민 지위, 사용언어, 직업, 건강상태들 가진 주민들이 포함되었다. 전체의 20%가 출생시민, 12%가 귀화인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해외 출생이었다. 이들 중 3%는 미등록 이주민, 4%는 난민 혹은 망명 신청자, 24%는 영주권자였다. (23%는 알 수 없음)
면담내용을 분석하면서 연구진은 8명의 특이한 사례를 발견했다. 공적 보건의료 체계로부터 필요한 도움을 얻는데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체계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는 이들이었다. 모두 비(非) 유럽 출신 여성이었다. 감사 표현을 유도하는 질문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놀라운 현상이었고, 연구진은 이를 심층 분석했다. 연구진은 이들의 감사 표현을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첫째, '상황에 따른 감사'다. 특정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나쁜 경험이 있었지만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고, 전반적인 보건 서비스에 대해 고마워하는 경우였다. 예컨대 브라질 출신으로 포르투갈에 11년째 살고 있는 노르마는 언어적 문제가 전혀 없었고, 국립보건서비스 체계에도 익숙했다. 항상 건강하던 그녀의 딸이 아팠을 때, 처음에는 핫라인 '건강 24시'를 통해 조언을 구했고, 증상이 심해지자 국립보건서비스 어린이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호흡 보조 처치를 받고 퇴원했지만 증상은 더 나빠졌고, 결국 다른 국립보건서비스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딸은 기관지염 진단을 받고 4일간 입원했다. 첫 번째 병원은 딸의 상태를 진단하는 데 실패했고, 엄마인 그녀의 의견에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그 결과 치료가 지연돼 딸은 호흡 곤란과 중이염까지 겪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다음번에 아이가 아프면, 그 곳으로 갈 거예요"라며 두 번째 병원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둘째, '일반화된 감사'다. 자신의 필요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 무심한 서비스를 경험했지만, 그러한 열악한 서비스를 긴축, 인력과 시간 부족 등 일반적인 복지 문제로 합리화하면서 여전히 보편적 체계에 고마워하는 경우였다. 예컨대 르완다 출생으로 파트타임 간병인으로 일하는 아가테(43세)는 "나는 내 주치의를 신뢰해요"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녀의 당뇨를 진단해줬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그 주치의는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그녀를 상담가에게 의뢰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세 달을 기다려서야 그 상담가를 만날 수 있었고, 결국 들은 것이라고는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불평하는 대신에 "모든 이용자들이 겪고 있는 자원 부족"으로 설명하며 정당화했다.
셋째, '위치적 감사'다. 상당히 부정적인 경험을 했지만, 이주민으로서 자신의 주변화된 지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마워하는 경우였다. 예컨대 스웨덴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케냐 출신 완구이(52세)는 "사람들은 서비스에 대해 불평하기 보다는 고마워해야 한다"며, "특히 이주민들은 언제나 고국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이는 스웨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꽃가루 알레르기로 방문한 일차의료센터와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의 부작용 때문에 스테로이드 처치를 받은 경험이 있었고, 다시는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감사 표현을 일반화하려는 것도, 보건의료체계의 총체적 실패를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보편성을 표방하는 보건의료 체계가 다양한 인구집단에 대한 서비스 제공에 실패하고 그 자체로 해를 끼치는 방식, 불충분한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보건의료의 규범이 재생산되는 방식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미충족 의료 경험은 필요가 잘 드러나지 않는 다른 취약집단들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규범의 기저에 복지 쇼비니즘의 정치가 중요한 맥락으로 작동한다고 해석한다. 즉, 반복된 감사 표현은 보편적 서비스를 보건의료 배분을 위한 정당한 체계로 인정하는 동시에, 스스로 '과도한' 필요를 가진, 자격 없는 이주민으로 여겨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복지국가라 하더라도, 국립보건서비스 체계를 가진 영국, 스웨덴, 포르투갈에서는 이러한 '감사' 현상이 확인되었으나, 사회보험 체계인 독일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즉, 조세를 기반으로 조건 없는 보편적 보건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에서 이러한 복지 서비스의 규범적 측면이 재생산되는 경향이 더 높다는 것이다.
환자가 직접 서비스 제공자를 선택하고 보험자가 그 비용을 보상해주는 사회보험 체계에서는 보건의료가 하나로 통일된 보편적 체계가 아니고, 환자들은 적절한 서비스를 찾기 위해 여러 제공자들 사이에서 '쇼핑'을 해야 한다. 서비스 제공은 '조건없는 보편적 서비스'라는 논리를 재생산하지 않고, 규범 역시 다르게 구성된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따라 점점 더 많은 공적 서비스가 민간 영리 조직에 의해 제공되면서, 효과 성과 질 모니터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 만족도 같은 상업적 모델을 통해서는 이 논문에서 확인한 것과 같은 고통, 서비스 실패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는 게 저자들의 지적이다. 형편없는 서비스 경험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높은 만족도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주가 초래한 다양성에 직면한 보편적 보건의료체계가 그 이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필요의 주관적 측면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단순히 접근 가능한 것을 넘어, 다가가기 쉽고 공평하며 적절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한국인의 '외국인 건강보험에 대한 혐오'를 복지 쇼비니즘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결핵 치료를 받은 외국인에게 '건강보험 로또'를 맞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관련 기사 : 외국인 건강보험가입자 '로또' 대책 시급) 오히려 '억울함'에 가까워 보인다. 유럽 복지국가의 경험을 그대로 적용하기엔, 같은 색 피부를 가진 이들에게도 여전히 가혹한 정서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 정부가 포용국가 건설이라는 목표 하에 문재인 케어 등 복지 확대를 추진하면서, 이를 위한 재원조달 방안, 공정한 조세/보험료 부담 방안을 논의하지 않은 결과는 아닐까? 사회보험에 기초한 체계에서 복지는 '무조건적 권리'이기보다는 '낸 만큼 돌려받는', '가성비'를 따져야 할 대상이다. '이렇게 힘든 나도 어렵게 내고 있는데'라는 억울함의 정서가 쉽게 '우리'가 아닌 이들을 향한 분노와 혐오로 바뀌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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