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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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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 [학부모님께 보내는 편지] <20> 2. 의문 품어야 알 수 있다
70년대 중·고등학생 시절, 애국조회라는 이름으로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에 모였는데, 그때
애국가 제창이 있었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도 있었다.
고백하건데 대학생이 되어서까지도
제창(齊唱)이 '가지런할 제(齊)' '노래할 창(唱)'인 줄 몰랐고
묵념(黙念)이 '말 없을 묵(默)' '생각 념(念)'인 줄 몰랐다.
'제창'에서 '창'이 '노래하다'는 의미인 줄은 알았지만
'묵념'의 의미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더 부끄러운 것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
고개 숙이라는 지적 몇 번 받은 것을 통해 어렴풋하게
말하지 않고 고개 숙이는 일이라 짐작하였을 뿐.

학창시절에 우리는 왜 의문을 품지 못하였을까?
왜 누군가 가르쳐주기만을 기다렸고 암기하려고만 했을까?
왜 의문 품지 않았고
왜 스스로 알아내려는 노력, 조금도 하지 못하였을까?

"처음 공부할 때에 의문을 품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의 공통된 병통이다"라고 말한
조선후기 실학자 홍대용이 '여매헌서'에서 답을 찾았다.
맞다. 보통의 인간, 특히 어린 아이들은 스스로 의문을 품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의 역할을
지식 전달보다
의문 품도록 도와주는 일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호기심과 의문 품기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
호기심 가지고 의문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만 한다면
엄청난 발전이 가능하다는 사실 알지 못한다.
호기심 가지도록, 그리고 의문 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열심히, 친절하게 지식을 던져주는 일만 중요한 것 아니라
호기심 불러일으키고 의문 품도록 도와주는 일이 중요하다.
인간은 의문을 품고 스스로 일을 해결해내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해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지 살펴보았더니
호기심 가진 아이, 의문을 품을 줄 아는 아이였다.
의문을 품고 그 의문을 해결하려고 씨름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부쩍부쩍 성장하였다.

공부(工夫)의 또 다른 말은 '학문(學問)'이고
이때의 '문'은 '질문할 문(問)'이다.
질문하는 일이 공부라는 말이고
질문을 할 수 있어야 공부 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의문을 품는다는 것은 흥미를 가졌다는 의미이고
알아내려는 의지를 가졌다는 의미이다.
의문을 품어야만 집중력 높일 수 있고
높아진 집중력으로 공부를 잘할 수 있게 된다.

베란다에 물이 흥건히 고였다.
진원지는 보일러실이었고 보일러와 연결된 온수파이프가
피리소리를 내면서 물총놀이를 하고 있었다.
수도 계량기 옆에 있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구멍 난 주위를 테이프로 칭칭 감은 다음에 꼭지를 열었는데
수압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TV에서 강력본드로 벽돌을 붙였던 장면을 생각해내고
강력 접착제를 사가지고 와서 붙였으나
이것 역시 수압을 이겨내는 데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한 시간 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니
구멍 난 부분을 절단한 다음
이음 파이프로 연결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이었다.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 구경하지도 않았다.
나 자신을 믿었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면 스스로 답 찾아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기쁨 만날 수 있다.
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는 어리석음 버려야 하고
생각하기 귀찮아하는 병 이겨내야 하며
배워야만 알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생각 던져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의문 품는 연습 열심히 하여야 하고
생각하는 훈련 반복해서 하고 또 해야 한다.
스스로 의문 품고 스스로 생각하여 스스로 해결해내야 한다.
배고파야 밥이 맛있고 배고파야 많이 먹을 수 있다.
사교육이 공부에 도움 되지 않고 오히려 공부에 방해되는 이유는
의문 품을 시간, 생각할 기회 빼앗아버리는 데에 있다.
의문 품지 않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알고 싶은 욕망이 없는데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배우려고만 한다.
많이 배우면 좋은 열매를 딸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한다.
이것이 문제다.
배움 자체가 나쁜 것 아니라
배우는데 시간을 몽땅 빼앗겨버려서
의문 품을 시간,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공부의 또 다른 말은 학문(學問)인데
'배울 학(學)'에 '물을 문(問)'으로
배우고 질문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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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호
자기 주도 학습과 한자 공부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은 현직 고등학교 교사. <프레시안>에 '학원 절대로 가지 마라'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했다. <공부가 뭐라고>, <자기 주도 학습이 1등급을 만든다> 등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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