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대비와 더불어 우리의 임무는 다시 그 근본 원인, 기후변화를 상기하는 것이다. 여름 폭염은 한국에서 기후변화를 말할 거의 유일한 기회지만, 좀처럼 본격적인 논의로 발전하지 못한다. '서리풀 논평'에서도 여러 차례 기후변화를 말했지만, 관심은 그때뿐이다.
당장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데다 원인과 피해며 대책은 모두 우리 손을 떠나 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막연한 탓도 크다. 문제는 그사이에도 국제 환경이 달라지고 더 급박해지고 있다는 점. 우리는 여름마다 폭염 대책을 넘지 못하니 마음이 더 급하다.
먼저 정치. 지금 세계는 바야흐로 ‘기후변화의 정치’가 주류에 진입했다. 얼마 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기후변화 의제를 앞세운 녹색당이 약진했고, 선거가 끝난 후에 이에 자극을 받은 극우 정당들이 기후변화 의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지난달 있었던 호주 선거는 아예 '기후변화 총선'이라 불릴 정도였다.(☞ 관련 기사 : )
미국도 변화하는 중이다.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트럼프에 맞서 이른바 '그린 뉴딜' 논쟁이 달아올랐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을 중심으로 민주당이 이 의제를 선점하면서 2020년 대선에서 피할 수 없는 논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영국 노동당도 그린 뉴딜에 합세한 모양새다(☞ 관련 기사 : )
기후변화의 경제는 더 급하게 돌아간다(정치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 전체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다들 그토록 주장하는 '먹고 사는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국제적 규범이 되었고, 이제 상황은 이렇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기업이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고 기업 신용등급을 결정한다. S&P는 지난 2년간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점수로 신용등급을 바꾼 사례가 700건이 넘는다고 밝혔다. 이중 56%는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관련 기사 : <뉴스1> 5월 19일 자)
"향후 일정 연도부터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만 쓰겠다고 선언해 RE100이라 불리는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현재까지 158개나 된다. (중략) 이들은 협력업체들에도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으로 부품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나섰다. 우리나라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2017년 2.8%만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이었기에, 이대로 가다간 수출의존도 높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경고음이 울릴 수 있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2018년 12월 20일 자 )
안을 돌아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일부러 눈을 감은 것인지 보고도 모르는 것인지, 한국 언론과 정치는 기후변화의 국제 정치경제를 역주행하는 중이다. 기후변화에 유리하다면서 핵발전소를 확대해야 한다는 왜곡도 서슴지 않으니(재생가능에너지가 핵심!),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할 수밖에. 아무리 이해관계가 달려도, 일부러 그러는 것이면 죄를 짓는 것이다.
문화와 사회 변화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기후변화는 급기야 새로운 생활양식과 사회적 조직 방식을 만들고 확산하기에 이르렀다. '환경 지킴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촉발한 청소년 파업은 단순한 해외토픽이나 에피소드에 그치지 않는다.(☞ 관련 기사 : ) 새로운 생활양식과 그런 세대가 나타났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라 해야 한다.
새로운 생활로 여행과 교통이 달라진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 스웨덴에서는 탄소배출의 주범 항공편 이용을 줄이자면서 '비행기 여행은 수치(flight shame)'라는 운동이 벌어졌다. 비행기 탑승객은 7개월 이상 감소하고, 그 대신 기차 이용객이 크게 늘었다(☞ 관련 기사 : )
누구도 피해갈 수 없으니, 과학자와 교수, 학생들에게 익숙한 '국제학술대회'도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다. 종이 자료집이 없는 정도는 이미 옛이야기. 학회 개최지를 선정할 때 탄소 발생량이 가장 적은 곳이 유리한 것도 오래되었고, 이제는 아예 사이버 학회로 이동 문제를 해결하자는 운동이 벌어질 정도다.(☞ 바로 보기 : ) '탄소 발생 제로' 학회를 조직하는 지침도 나와 있다.(☞ 바로 보기 : )
"뭐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둔감하고 느린 것이 분명하다. 세계적인 노력에 동참하느니, 국제사회에 대한 도덕적 의무니, 꼭 그 정도가 아니어도 괜찮다. 당장 부품 수출이 막히고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받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이만해도 국제 사회의 흐름을 놓치고 10년, 20년을 허송세월했는지도 모른다.
경제, 그것도 국내 경제의 관점에서만 기후변화를 생각하는 것은 한참 모자란다. 이기와 자폐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로서의 기후변화'에서 딱 한 걸음만 더 나가도, 기후변화는 인류 모두에 도전하는 보편 철학이자 윤리로 급변한다.
인류가 생긴 이후 처음 맞는 종류의 위기. 고통과 대응 방법도 유례가 없었지만, 그 대응이야말로 개인과 지역, 국민국가의 가장 중요한 도덕적 의무라는 데에 더는 이론이 없다. 형편이 이렇다는 데야 돈벌이 대상이나 수출에 급급할 여유가 있을까.
"연구팀은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가뭄, 해수면 상승, 환경 파괴로 수십억명의 인구가 이주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뜨거운 지구(Hothouse Earth) 효과로 지구 면적의 35%, 전 세계 인구 55%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생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뉴스1> 6월 5일 자 )
"현재 추세로 저감 없이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경우(RCP 8.5 기준·이산화탄소 농도 940ppm) 2050년까지 폭염 등 기후변화로 인한 누적건강비용은 101조4000억원으로 추산됐다. 2020년까지 16조2000억원, 2030년까지 38조3000억원 수준이다."(☞ 관련 기사 : <머니투데이> 5월 29일 자 )
이젠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다. 경제학자 스티글리츠가 예상한 대로 제3차 세계대전의 진원이 될지도 모르는데,(☞ 관련 기사 : ) 그 옛적 언제처럼 또 이대로 뭉갤 것이지 답답하다.
객관적 조건과 환경보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않으려는 한국 사회의 하루살이 리더십이 더 절망적이다. 그토록 몰두하는 '경제'조차 한 세대 이상 지난 구닥다리 모델을 벗어나지 못하니, 인류와 국제와 미래의 일에서야 무엇을 더 기대하랴.
그런데도 기후변화의 정치를 더는 피할 수 없을 때,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정치·사회적으로 '전통적 리더(십)'가 그럴 능력과 의지가 없다면, 아니 감각과 인식조차 없으면, 곧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래로부터의 기후변화 정치는 무슨 방법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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