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의 주 무대는 부잣집과 반지하방이다. 반지하방 사람들의 옷에서는 아무리 빨래를 해도 알 수 없는 냄새가 났다. 현실감 있는 연기를 위해, 영화를 촬영한 세트장도 실제 반지하방의 냄새까지 재현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촬영을 위한 인공의 장소였지만, 한국의 많은 주거 취약계층에게는 현실 속 삶의 공간이다.
6년 전 쪽방주민단체 활동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가난은 분명 냄새가 있다. 50년 넘은 건물에서 50만 원의 소득에 기대 사는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 이런 형편의 쪽방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서 전혀 냄새가 안 난다면 이상한 일"이라고 말이다.(☞ 관련 기사 : <한겨레21> 2013년 8월 13일 '') 쪽방 주민들에게 익숙한 냄새의 원인 중 하나인 곰팡이는 지금 이 순간, 6년 전 이 기사가 쓰였을 당시, 그리고 기사가 쓰이기 훨씬 전에도 그들의 삶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7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2020 총선주거권연대'(이하 주거권연대)가 지난 13일 출범했다.(☞ 관련 기사 : <뉴스핌> 2월 13일 자 '') 주거권연대는 지금까지 정부와 국회가 주택 공급에만 초점을 두었다면서, 주거불평등 문제 해소를 위한 정책과 법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주거권연대는 더 많은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세입자 보호 강화 등을 각 정당에 제안했다.
'홈리스'는 거리 노숙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최저주거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포함한다.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는 이들 말이다. 이들에게는 최저주거기준에 부합하는 공간에서 살 권리, 주거의 권리가 있다. 주거권 보장은 건강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안전하고 쾌적하지 못한 주거환경은 신체적 질병을 초래할 수 있고, 정신건강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또한 흡연이나 음주 같은 불건강 행위와도 관련이 깊다. 주거권은 그 자체로 인권이면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다.
캐나다에서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정신질환이 있는 홈리스를 대상으로 '주거 먼저 (Housing First)'라는 무작위 할당 연구를 수행했다.(☞ ) '주거 먼저'는 정신질환이 있는 홈리스에게 '치료 먼저(Treatment First)'가 아니라 주거부터 우선 제공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근거에 토대를 둔 대표적 홈리스 정책 중 하나이다. 언뜻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집이 없는데 치료를 어떻게 지속할 것이고, 응급치료를 해 보아야 무슨 효과가 있을까. 하지만 고비용 비효율 투자라는 비판도 있다. 주거를 지원해 봐야 어차피 계속 아플 사람들이고, 그래서 의료비용만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연구는 논란의 중심에서 출발했다. 연구는 캐나다 주요 도시에서 정신질환이 있는 홈리스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무작위 할당을 통해 선정된 '시험군'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임대주택을 제공했다. 더불어 돌봄서비스도 제공했다. 대조군 집단에게는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연구에서 도움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연구와 관계없는 정부나 민간단체의 지원까지 못 받게 한 것은 아니었다.
2014년에 발표된 연구의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치료보다 주거를 우선적으로 지원한 정책은 많은 홈리스들이 안정적인 공간에 거주하도록 도왔고, 주거뿐 아니라 보건서비스 접근권도 향상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비용 측면에서도 효율적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주거권 보장의 건강 영향에 대한 연구들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바로 지난달 캐나다 오타와대학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정신건강과 정신건강서비스에서 행정과 정책 연구>에 발표한 논문은 '주거 먼저' 정책이 응급실 방문이 잦은 홈리스들의 응급실 이용 횟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분석했다.(☞ ) 주거지원을 받은 '시험군'과 별도의 지원이 없는 '대조군' 각각에서 연구 시작 시점 최근 6개월 동안 5회 이상 응급실 방문한 사람들을 '응급실 단골 홈리스군'으로 정의했다. 시험군과 대조군 모두 주거 안정성(안정적 주거에 머문 날짜), 정신질환 증상과 중증도를 포함한 건강 행동과 기능 상태를 평가하고, 이후 24개월 동안 응급실 이용 현황을 추적 관찰했다.
분석 결과, 우선 주거지원을 받은 시험군은 대조군에 비해 주거안정성이 급격히 높아졌다. 응급실 단골 홈리스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주거지원을 받은 시험군 중 응급실 단골 홈리스들은 초기 1년 동안 응급실 단골이 아닌 홈리스들과 주거안정성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면서 응급실 단골 홈리스들의 주거안정성이 단골이 아닌 이들에 비해 소폭 감소하고,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주거안정성의 감소 폭은 주거지원을 받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서는 적었다.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주거지원은 홈리스들의 주거안정성에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다. 응급실 이용력과 무관하게 주거지원 시험군에서 주거안정성이 높다. 하지만 1년 후 응급실 단골 이용군의 주거안정성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 점은 해당 집단에게 부가적인 의료 필요가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주거지원은 좋은 정책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결론을 도출한 연구가 또 있다. 캐나다 퀸즈 대학 연구팀이 2019년 국제학술지 <건강과 장소>에 발표한 논문은 주거지원을 받은 홈리스들의 단골 음식(점) 이용형태(foodscape) 변화를 살펴보았다.(☞ ) 이 논문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킹스톤 시의 주거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홈리스들에 대한 인터뷰 분석 결과를 담고 있다. 앞선 응급실 이용 연구와 비슷한 함의를 보여준다. 주거지원 정책은 홈리스들이 집에서 음식을 보관하고 준비하고 소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또한 역량이 강화되면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먹든지 건강한 삶에 대한 긍정적 사고가 늘어났다. 그러나 중요한 두 가지 문제점을 확인했다. 하나는 주거지원을 하더라도, 스스로 요리를 하기보다는 무료급식소 같이 외부 공간에서 식사하는 습관이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지원하는 주거의 위치와 관련 있었다. 대부분의 지원 주택은 도시의 외곽이고, 각 주택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지원을 받은 홈리스들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 길을 가야한다. 자주 찾던 식료품점도 멀고, 무료급식소도 멀다. 주거지원 정책은 홈리스들의 단골음식(점) 이용 형태에 영향을 주었고, 외로움과 고립감을 호소하게 만들었다. 논문에 인용된 홈리스 당사자는 "우리는 이제 머리 위에 지붕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먹기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0 총선주거권연대'의 외침에 울림이 있으면 좋겠다. 더 많은 공공임대주택이 보급되면, 한국에서도 '주거 우선' 지원 정책의 긍정적 건강 효과를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소개한 논문들이 보여준 것처럼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지붕, 그 너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도심 외곽의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사 간 쪽방 주민들이 얼마나 외로운지, 남아 있는 쪽방마을 사람들이 보고 싶지는 않은지, 평생 요리하지 않고 살아온 습관을 뒤늦게 후회하며 하루하루 식사시간이 두렵지는 않는지. 그리고 이 모든 무관심이 불건강의 또다른 원인이 되지는 않는지.
* 서지정보
- Kerman N, Aubry T, Adair CE, Distasio J, Latimer E, Somers J, et al. Effectiveness of Housing First for Homeless Adults with Mental Illness Who Frequently Use Emergency Departments in a Multisite Randomized Controlled Trial. Administration and Policy in Mental Health and Mental Health Services Research. 2020:1-11
- Hainstock M, Masuda JR. "We have a roof over our head, but we have to eat too:" Exploring shifting foodscapes from homelessness into Housing First in Kingston, Ontario. Health & place. 2019;59:102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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