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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쉴 수 있는' 콜센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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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쉴 수 있는' 콜센터, 있습니다 [기자의 눈] '코로나19'에서 취약 노동자의 방파제가 되는 노조

"각 사업장과 학교, 기관은 '아파도 나온다'는 문화를 '아프면 쉰다'로 바꿀 수 있도록 근무 형태와 근무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여름 전에는 코로나19가 진정되기 어렵고 겨울이 오면 다시 번질 수도 있다는 전망 속에서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새 일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건넨 말의 한 토막이다. 따뜻한 말이지만 '아프면 쉰다'는 당연해 보이는 일이 한국 사회에서는 어려운 일이라는 차가운 현실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정부는 멀고 사장은 가깝다.' 코로나19 이후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종종 들던 생각이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이 한창일 때 구로 콜센터의 한 확진자가 아픈데도 2시간을 일하고 들어가야 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아픈 노동자가 쉬지 못하는 차가운 현실과 함께 이 말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구로 콜센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얼리공장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는 사장에게 "매출이 악화돼 폐업한다. 나가달라"는 말을 들었다. 얼마 뒤 가본 공장은 더 적은 인원을 고용하기는 했지만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직장갑질119에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해달라고 해도 사장이 무급휴가를 가라고 한다'는 제보가 접수되고 있다. 보육 교사들은 국고보조어린이집에서 '어린이집 휴원 및 긴급보육 실시' 이후 정부로부터 인건비를 그대로 지원받으면서도 교사에게 이를 숨기고 무급휴가, 연차 사용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고용유지지원금, 어린이집 휴원 기간 보육교사 인건비 지원과 같은 대책은 당국자의 입에서 흘러나와 신문과 방송으로 퍼져나가지만 회사 안으로는 종종 들어가지 못한다. 정부가 사업장 하나하나를 일일이 챙기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고용노동부는 코로나19 대책이라며 3월 1일부터 근로감독과 산업안전감독을 2주간 중단했었다. 결국 회사 안에서는 노사 간 힘의 논리가 앞선다.

코로나19 때문에 도드라져 보이지만 새로운 일은 아니다. 노동계에는 오랜 격언이 있다. '노동법은 노동조합이 없으면 휴짓조각이다.' 노동청에 근기법 위반 진정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증거한다. 실제로 노동조합을 만들 때 처음으로 체크하는 것은 최저임금, 근로시간, 연차수당, 주휴수당, 가산수당과 같은 근로기준법 기본 조항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상당수가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프레시안(최형락)

취약계층 노동자의 방파제가 되고 있는 노동조합들

코로나19 이후 취약계층에게 피해가 집중된다는 이야기가 반복되듯 노동조합에 대한 오랜 이야기도 다시 반복된다. 어떤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이 노사 간 대화의 장을 열고, 정부 정책이나마 지켜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취약계층 노동자의 방파제가 된다.

또 다른 주얼리공장이다. 코로나19 이후 사측은 노동조합에 경영 악화로 인한 휴직 협의를 제안했다. 금속노조 주얼리분회는 경영 실적을 두고 논리를 세웠다. 해당 공장은 지난 3년간 흑자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2월까지는 흑자 폭이 줄었지만 적자는 아니었다. 노사는 일단 정상근무를 하고 5월까지 경기 상황을 본 뒤 다시 휴직에 대한 교섭을 갖기로 했다.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아마 협의 개시조차 없었을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소속 국고보조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자신이 일하는 어린이집이 정부로부터 교사 인건비를 그대로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급휴가, 연차 사용을 거부해도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알더라도 혼자라면 원장의 뜻을 거절하기 어렵다. 노동조합의 좋은 점은 함께한다는 것이다. 원내 보육교사 다수가 상황을 알고 뜻을 분명히 세우면 대부분의 원장은 애초 무급휴직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꺼내더라도 무급휴직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낼 수 있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콜센터 업종.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는 오랜 노동조합 역사를 갖고 있다. 조합원은 단체협약을 통해 유급 병가를 받는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차도 쓰고 싶을 때 쓴다. 코로나19 이후 노사협의를 통해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 상담사 평가와 기관 평가를 멈추기로 하기도 했다. 실적 압박 때문에 아픈데 쉬지 못하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역시 희망연대노조를 통해 2013년 노동조합을 만든 민간 콜센터 딜라이브텔레웍스도 노사 협의로 안전 대책을 마련했다.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은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으면 휴식시간을 보장 받고 바로 병원에 갈 수 있다.

"아프면 쉰다"는 당연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


노동조합이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충격까지 막아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발생한 피해를 감당할 수 있는 사업장에서 그 피해가 오롯이 노동자에게 전가되거나 필요 이상의 조치가 취해지는 일은 막을 수 있다. 정부 정책이 개별 사업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일도 할 수 있다. 유급 병가와 연차의 자유로운 사용 등을 통해 감염 확산을 막는데도 일정한 기여를 한다.

노동조합이 선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이런 일을 하려고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변호사를 떠올려도 좋다. 변호사가 선해서 혹은 악해서 피의자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듯 노동조합도 선해서 혹은 악해서 노동자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노동조합 없이 일터에 나가는 것은 변호사 없이 법정에 가는 것과 비슷하다. 일터에 노동조합이 없을 때 힘의 시소는 분명하게 한쪽으로 기운다.

그래서였다. 정 본부장이 "아프면 쉴 수 있는 근무 형태와 근무 여건의 형성"을 이야기했을 때 머릿속에는 노동조합이라는 말도 스쳐지나갔다. "아프면 쉰다"와 같은 당연한 일, 취약 계층 노동자를 향한 정부 정책의 작동과 같은 당연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동자에게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코로나19 전에도 후에도 노동자가 모여 조직을 만들고 사장과 대화에 나서는 것 외에는 딱히 그런 힘을 가질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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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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