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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어떻게 직접소송제를 물리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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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어떻게 직접소송제를 물리쳤나 [한미FTA 뜯어보기 119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13)] 호-미 FTA
2004년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AUSFTA)을 체결한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민들과 정부가 그 협상 및 체결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올랐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성격과 위험성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선택을 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렇게 하는 것은 'NAFTA 플러스'형 FTA를 한미 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도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왜냐하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 규정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멕시코와 캐나다에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음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제도에 대해 오스트레일리아 관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했는가를 되짚어보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 관리들이 지금 이 제도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인식과 태도를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MAI가 일깨운 경각심

오스트레일리아 자체도 오랜 보호무역의 전통을 가진 나라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한 경각심과 반대운동이 '풀뿌리'로부터 시작돼 번져나간 움직임의 직접적인 근원은 1990년대 후반에 벌어진, 다자간 투자협정(MAI)에 대한 국제적인 반대운동이었다고 한다.

당시 MAI에 맞선 반대운동 진영에는 단순히 전통적인 좌파 운동단체들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이 반대운동 진영은 각종 교회 조직, 노조, 지역개발 단체, 원주민 조직, 환경단체, 인권운동 조직, 법률자문 단체, 심지어 기업계 단체들까지 포괄하고 있었다. 이렇게 폭넓게 조직된 MAI 반대진영은 미국이 NAFTA 11장에 규정된 방식의 투자자 보호 장치를 오스트레일리아와 체결할 FTA에도 집어넣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오스트레일리아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 제도에 대한 강렬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 국내에서는 각급 지방정부에서도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주의 주지사는 이 제도가 북미지역에서 "주정부 및 지방정부의 주권과 통제력을 침식"하고 "지역 내 기업체보다 외국 투자자들에게 더 유리한 대우"를 해주는 데 이용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제도에 대한 시민사회의 여론이 좋지 않은데다 관리들까지 이런 인식을 하고 있었기에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이 제도를 미국과의 FTA에 포함시키는 데 대해 미국 관리들보다 훨씬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당시에 통과된 싱가포르-오스트레일리아 자유무역협정(SAFTA)에 투자자-국가 분쟁해결 메커니즘이 들어갔다(8장)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혹시 중앙정부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도 이 제도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경각의 여론이 끓어올랐다. 물론 SAFTA 8장은 NAFTA 11장과는 성격이 판이하다. 먼저 직접수용과 간접수용을 명확하게 구별하고 있고, 외국 투자자에 대한 내국인 대우에 대해서도 수많은 제한규정을 두고 있으며, 8장 전체가 NAFTA 11장의 복사가 아니라는 문구도 명시돼 있다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가 그 전에 다른 나라들과 맺은 여러 협정들 중에도 투자자 보호 조항이 들어간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개발도상국들과 맺은 협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선진국의 반열에 속하는 싱가포르와의 협정에도 이 조항이 포함됐다는 소식은 첨예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의회에서는 정부의 협상단에 대한 추궁이 이어졌다. 정부의 수석 협상대표인 스티븐 데디(Stephen Deady)가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이익이 반영되도록 문구를 잘 짜 넣을 수 있다"고 말하며 빠져나가려 했을 때 노동당 소속 스티븐 콘로이(Stephen Conroy) 의원은 이렇게 몰아붙였다. "그런 식으로 법적 정의를 엄격히 해봐야 그걸 뒤바꾸는 것을 업으로 삼는 변호사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변호사들은 돈만 주면 흑을 백이라고 우기면서 소송을 만들어내는 이들이며, 종종 흑이 백이라는 주장을 관철시키고 만다." 요컨대 그런 변호사들에게 이용될 빌미가 될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자체를 협정에서 근원적으로 빼라는 것이었다.

상원 자문위 "미국기업이 부당한 권력을 갖게 된다"

마침내 2003년 11월 오스트레일리아 상원의 외교안보통상 자문위원회는 미국과의 무역협정에 관한 포괄적인 보고서를 제출했고, 이 보고서에서 투자자 보호 조항을 협정에서 뺄 것을 강력하게 권유한다. 이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두루 듣고 오랜 기간의 숙의 끝에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이 보고서를 통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대한 오스트레일리아 상원 자문위의 평가의견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그것이 우리 정부 관리들의 인식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를 확인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먼저 이 보고서는 NAFTA 11장이 투자기업들이 투자대상국 정부를 자기 뜻대로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을 광범위하게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한다. 그런가 하면 분쟁에 대한 심판이 벌어지는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나 UNCITRAL(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은 기본적으로 상업적 분쟁조정을 모델로 한 것이어서 "절차나 공청의 투명성이라는 기본원칙을 갖추지 못한 특별한 심판소이자, 분쟁이 벌어져도 공공에 알릴 의무도 국내 행정법에서와 같은 공공이익에 대한 요건 같은 것도 없다"는 문제점도 지적한다.

또 이 보고서는 비록 오스트레일리아가 과거에도 여러 다른 국가들과 투자자 보호 조항이 포함된 협정을 맺은 적이 있지만, 싱가포르의 경우만 빼면 그것들은 법치 질서가 확립되지 못한 개발도상국들과의 관계에 국한된 협정들이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미국기업이 투자자 보호 조항을 이용해 다른 나라 정부를 압박하는 사안들을 보면, UPS 대 캐나다 사건에서와 같은 공공서비스, 메탈클래드 사건이나 에틸 사건에서와 같은 환경과 보건 등 다양한 쟁점들에 걸쳐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고 나서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한다.

"본 위원회는 NAFTA를 모방한 자유무역협정은 지방정부, 주정부, 중앙정부 등 모든 차원에서 정부의 규제에 도전할 수 있을 만한 부당한 권력을 미국기업들에게 넘겨주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렇게 오스트레일리아 국내의 여론이 풀뿌리에서 지방정부를 거쳐 상원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뭉쳐 투자자 보호 조항을 반대하는 방향으로 가니 정부 협상단도 달리 행동할 도리가 없었다. 2004년 1월 워싱턴에서 벌어진 최종 협상에서 미국이 강력하게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밀어붙였을 때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대표단은 "그러한 안은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unacceptable)"는 이유를 대면서 강경하게 맞섰다고 한다. 결국 미국 측이 후퇴했고, 그 결과 미국이 강력하게 주장했던 NAFTA 식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무역협정에서 빠지게 됐다.

최종적으로 체결된 AUSFTA(오스트레일리아-미국 FTA)는 11장에서 분명히 외국 투자자가 투자대상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심판을 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와 다르다.

AUSFTA의 규정에 따르면 투자자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먼저 투자대상국 내의 모든 가능한 수단과 조치를 다 밟아야 한다. 그러고도 만족할 수 없을 경우에도 투자대상국 정부를 직접 심판소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국 정부에 돌아가 호소해야 한다. 그래서 중재심판이 벌어지더라도 양 당사자는 오로지 두 나라의 정부로 국한된다. 이는 사실상 전통적인 '국제공법/국제사법' 체제로의 회귀이며, 1990년대 이후에 기묘한 형태로 되살아난 '상인법 전통의 국제 중재심판'과는 전혀 다른 틀이다.

게다가 투자자와 국가 사이가 아닌 양 국가 사이에도 중재심판이 벌어질 가능성이 극히 낮다. AUSFTA에 따르면 중재심판은 "분쟁의 해결에 영향을 줄만한 중대한 상황변화"가 일어난 경우에 한해 열린다고 돼 있는데, 여기서 '상황변화'란 두 나라가 역사적으로 오래 전부터 공유해 온 법전통을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상황변화'란 법전통이 근본적으로 뒤바뀌는, 사실상 혁명과 같은 극단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셈이 된다.

오스트레일리아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거부한 유일한 예는 아니다. 미국이 싱가포르 및 칠레와 맺은 무역협정과 같은 소위 'NAFTA 플러스'의 형태로 추진되던 전미자유무역협정(FTAA)도 남미를 휩쓸게 된 강력한 반미, 반신자유주의의 열풍에 밀려 현재 중단된 상태이며,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극히 불투명하다. FTAA와 관련된 남미 사람들의 분노가 향하는 가장 중요한 타깃은 바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비롯한 투자자 보호 조항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도 2004년에 새로 만든 양자 간 투자협정(BIT) 모델에서는 애매하게 함부로 이용될 위험이 있는 '간접수용'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한정하는 부속서를 첨가하게 된다.

미국은 왜 뒤로 물러난 걸까?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조야(朝野)가 똘똘 뭉쳐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반대했고, 마침내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 제도를 것을 철회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이해가 간다. 그런데 애초에는 이 제도를 AUSFTA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던 미국 쪽은 왜 뒤로 물러난 것일까?

우리나라 정부의 관리들은 미국 정부도 다른 나라 투자자에 의해 소송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이 제도의 정당성을 설파한다. 그렇지만 이 제도가 미국 정부만 빠져나갈 수 있는 제도라는 이유로 이 제도를 비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로 미국도 NAFTA 11장이 보장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넓어진 오지랖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었다.

캐나다의 장례(葬禮)업체인 뢰벤(Loewen), 화공업체인 메타넥스(Methanex), 부동산업체인 몬데브(Mondev International)가 차례로 미국 국내 사법부의 판결에 불복하고 NAFTA 11장을 이용해 국제 중재심판소로 달려가 미국 사법부의 판결을 분쟁대상으로 삼아버렸다. 미국인들은 졸지에 자기 나라 법정이 외국 어딘가에서 비밀리에 만나는 세 사람이 마음대로 판단하는 대상으로 전락한 꼴을 보게 된 것이다. 특히 이 일을 당하면서 미국의 법조인들이 겪은 당혹감은 상당한 것이어서, 결국 이들을 중심으로 국가의 주권을 침해하는 NAFTA 11장을 어떻게든 바꾸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진다.

미국 공영방송(PBS)의 라디오 쇼 '전국(The Nation)'에서 어떤 논자는 이러한 미국 여론의 배후에 깔린 감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만약 미국인들이 메타넥스 때문이건 뢰벤 때문이건 누구 때문이건 미국에 해가 가해지는 판결이 한 건이라도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면 대단한 충격을 받을 겁니다. 우선 이렇게 말하겠죠. '응? 뭐야 이거? 뭐 이런 게 다 있어?' 어떻게 된 건지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면 이렇게 말할 걸요. '우리가 언제 이런 걸 하자고 했어? 누가 이런 걸 국제 무역협정이라고 하는 거야? 그 다음에는 아주 빠르게 분노의 단계로 넘어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2002년이 되면 미국 전역의 각급 자치단체와 임의단체들이 NAFTA 11장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를 표현하는 흐름이 거세게 나타났고, 여기에는 캘리포니아, 미네소타, 오클라호마, 오리건 등의 주의회들도 참여한다.

대선주자 존 케리의 견제

그리하여 2002년 미국 대통령에게 무역촉진권한(trade promotion authority, 소위 'fast track')을 부여하는 문제를 놓고 의회에서 심의가 벌어졌을 때 민주당 상원의원 존 케리(John Kerry, 2004년 대통령 후보)는 앞으로 있을 미국의 자유무역협정에는 NAFTA 11장과 같은 조항을 넣지 못하게 하는 수정조항을 무역촉진권한법에 삽입하자고 주장한다. 또 이 수정조항에는 '수용'의 개념과 관련해 그동안 넓게 해석된 '간접수용'의 의미를 배제하고 물리적인 사적 소유 침해로 국한시킴으로써 미국 국내 헌법 전통에 맞도록 좁은 의미로 규정하도록 하자는 내용도 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록 다수표를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존 케리 의원의 이 발의는 당시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오스트레일리아와 협상을 한 2003년경이 되면 심지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서도 NAFTA 11장이 현실적으로 운영되는 방향은 NAFTA 체결 이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미국은 2005년 7월에 비준한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에서는 NAFTA 11장에 들어있는 '수용에 맞먹는 조치'라는 조항을 아예 삭제하고 보건, 안전, 환경 등의 규제조치는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배상도 할 필요가 없는 대상이라는 명시적인 해석규정을 두기에 이른다(송기호, '미 대법관들이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맞선 이유', <프레시안>, 2006년 7월 26일).

지난 십몇 년 간 지구경제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국제법 사상 초유의 실험을 할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이 제도의 힘(투자자들에게는 위력, 그 일방적인 소송대상으로 전락한 정부와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파괴력)은 유감없이 입증됐고, 양에서나 질에서나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그래서 이 제도를 둘러싼 논쟁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 제도를 선호하거나 이용하려는 경향만큼이나 이 제도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는 경향이 존재하면서 이 제도에 올가미를 씌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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