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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 협상, 한국은 패배를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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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적재산권 협상, 한국은 패배를 자초했다" [한미FTA 뜯어보기 490 : FTA 현미경&망원경(4)] 미국 요구 99% 관철, 왜?
최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만 놓고 봐도 몇 가지 심각하게 우려되는 사항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의약품 분야의 특허 청구 및 심사와 관련된 내용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난 저작권의 시효 △특허권의 보호를 위한 친고죄 폐지 및 일방적 구제 제도의 도입 등이다.

특허심사 지연에 따른 특허기간의 연장, 그나마 덜 우려돼

그 중에서 의약품 분야의 특허와 관련하여 특허심사 지연에 따른 특허기간의 연장, 의약품 품목 허가와 특허의 연계, 자료 독점권의 인정 등은 우리나라의 취약한 의약산업 기술혁신 역량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제약기업들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국내 제약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피해액의 규모는 보건복지부의 추정에 따르면 연간 400억~8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바이오산업을 전략육성 산업으로 선정하고 10여 년이 넘게 집중투자를 해 오고 있는 상황에서 의약품 분야의 특허 제도를 합리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내부적인 당위성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국내 제약기업들 가운데 바이오 신약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상위 기업들은 이번 협상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특허심사가 지연된 기간만큼 특허기간을 연장해 주는 것은, 지난해 특허청의 내부혁신을 통해 특허심사에 소요되는 기간이 대폭 단축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허청의 지속적인 역량 강화와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된다면 그리 우려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

문제는 미국식 지적재산권 보호조치가 강화된 것

오히려 한미 FTA 지적재산권 분야의 협상 결과에서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지적재산권의 실시 및 보호와 관련된 조항들을 수정·변경한 것이다.

미국은 모든 분야에서 지적재산권의 확대·강화를 주장했던 반면 우리나라는 단 3가지 요구만을 했다. 그것은 특허출원정보의 공개, 특허심사청구 제도의 도입, 저작인격권의 인정 등이었다.

이 가운데 특허출원정보의 공개는 미국이 수용하는 것을 거부했고, 오히려 미국이 요구한대로 자료독점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또한 특허심사에 필요한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한국이 제시한 특허심사청구 제도에 대해서는 특허심사 지연에 따른 특허기간 연장을 수용함으로써 제도적 보완이 아닌 국내법 수정으로 귀결됐다.

이는 우리나라 협상단의 협상 능력과 의지가 매우 취약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뿐만 아니라 △일시적 저장에 대한 복제권 인정 △접근통제적 기술적 보호조치 우회 금지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 면책규정 강화 △법정손해배상제도 △저작권 침해에 대한 친고규정 삭제 △저작권 침해에 대한 의심만으로도 반출정지 및 권리자 통보가 가능한 신고제도 등은 미국 측이 끈질기게 요구해 온 것이다. 저작권 시효 70년 연장에서 볼 수 있듯이 지적재산권 소유자의 권리를 대폭 강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밝혀진 협상결과는 몇 개 되지도 않는 우리 측 요구는 거부당하고 미국 측의 요구는 99% 수용된 것이다.
▲ 한미 FTA에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하자는 내용, 이른바 '미키마우스법'이 들어갔다.미키마우스의 원작자인 월트 디즈니는 1966년에 숨졌기 때문에 미키마우스에 대한 저작권 보호기간이 2016년까지에서 2036년까지로 늘어난다. ⓒ연합뉴스

'제대로 된 요구도 못 한' 한국 정부

사실 우리나라가 한미 FTA 지적재산권 분야 협상에서 요구했던 사항들 역시 특허등록 절차와 관련된 내용들이었을 뿐 우리나라 지식산업, 과학기술 혁신역량 강화의 커다란 밑그림 속에서 제기된 것들이라고 볼 수 없는 조항들뿐이었다.

우리나라 지식산업 육성을 위한 기반이 될 '지적재산 관리 및 활용방안'과 관련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의장으로 있는 과학기술자문회의가 2006년 6월 발표한 '선진경제 도약을 위한 지식재산 전략체계 구축방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우리나라의 준비가 얼마나 부실한 상태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된 이 보고서는 △정부 부처들 간 아무런 연계 없이 따로 관리되던 지적재산을 통합·운영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적재산 통합관리기관으로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특허정보를 활용한 국가 연구개발사업의 효율화를 이뤄야 한다는 원론적인 주장과 제안만이 들어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지적재산이 국가와 기업 간의 경쟁지형을 완전히 새롭게 재편하고 있는 지식기반경제 시대를 어떻게 돌파해 나갈지에 대한 전략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적재산을 둘러싼 세계적 경쟁은 급격하고도 치열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 '우수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정부 정책이 '산업정책과 상법'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지식기반 경제의 정부 정책은 '과학기술정책과 지적재산권법'을 중심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지적재산권 분야는 그 어떤 분야보다 우리나라의 국제 경쟁력과 국민 전체의 이익을 중심으로 설계돼야 하는 영역이다.

'특허 사냥 전문기업'의 등장과 특허 소송의 증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적재산권 관련 세계적인 흐름이 또 있다. 특허를 포함한 지식재산이 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됨에 따라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활동 중 많은 부분이 특허를 진입장벽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특허를 둘러싼 기업 간 소송도 급증하고 있다. 2006년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인터디지털이라는 특허 사냥 전문기업에 의해 소송을 당해 각각 1억3000만 달러와 2억80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는데,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세계 최고의 바이오 관련 기술력을 자랑하는 미국에서조차 유전자나 생물자원과 관련된 물질 특허로 인해 후발주자들의 신규진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영리적 목적의 연구개발조차 힘들어지고 있다는 아우성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게다가 등록된 특허 중 극히 일부분만이 실제로 사업화에 활용될 뿐 대부분이 휴면특허로 잠자게 되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등장한 '개방형 혁신체제(open innovation)'는 특허기술의 사업화를 촉진할 뿐더러, 특허기술의 전략적 디자인을 통해 특허장벽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경쟁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의 양면성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과 영국 등 기술선진국에서 기술디자인 전문기업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지식재산 보유역량의 격차가 지식재산 관리와 경영역량의 더욱 심각한 격차로 확대·재생산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혁신과 기술적 진보를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적재산권이 소유자의 독점적 권리만 보장하고, 그 본질적인 목적인 '혁신을 통한 경쟁 촉진'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지적재산권의 이같은 양면성으로 인해 세계 각국은 자국의 경제발전 단계와 구조에 따라 특허등록, 특허실시, 권리보장의 측면에서 다양하고 차별적인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의 지적재산은 근본적으로 인류 공동의 자산인 사회적 성과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 그 어떤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어떤 천재적 개인 한 명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적재산권 제도의 또 다른 목적은 '사회복지와 경제복지를 통한 사회적 이익의 균등 극대화'여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 지적재산권 분야 협상에서 지적재산권 소유자의 권리를 대폭적으로 강화해 미국의 압도적 우위를 확대·강화하려는 미국 측 요구사항들을 '선진제도의 도입'이라는 명분으로 무조건 수용했다.

지적재산권 정책은 '나라별 맞춤형'이 원칙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지적재산권 소유자의 권리 보장 범위와 정도는 '혁신을 통한 경쟁의 활성화'와 '사회적 이익의 균등 극대화'라는 보다 상위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이런 원칙은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의 전문에서도 명확히 나와 있다.

TRIPs 제7조는 "[지적지산권은] 기술 지식의 생산자와 사용자에게 상호 이익이 되고, 사회 복지와 경제 복지를 이끄는 방법으로, 그리고 권리와 의무가 균형을 잡도록 기여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또 TRIPs 제8조는 "회원국은 자국의 법률 및 규칙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면서 공중보건 및 영양을 보호하고, 자국의 사회경제적 발전과 기술적 발전에 매우 중요한 부문에 대한 공공이익을 증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채택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원칙이 지켜져야 할 필요는 명백하다. 지적재산권의 관련한 각 나라들의 역량 차이를 감안하지 않고 모든 나라에 무조건 동일한 규칙을 적용할 경우, 권리와 의무 사이의 불균형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로 다른 사회·경제적 발전 단계에 있는 나라들 간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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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은 없고 '변명'만 많은 노무현 정부

노무현 정부는 아무런 원칙도 없이, 보다 나은 대안도 고민하지 않은 채 미국 측의 요구를 조건 없이 수용하는 데 급급했다. 우리의 협상상대는 세계 최고의 지식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었는데도 말이다.

2005년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대외수출총액 중 80%가 서비스산업 부문에서 창출된다. 이 중 60%가 지식서비스 산업, 즉 지적재산권 분야와 비즈니스 컨설팅 분야에서 창출되고 있다. 특히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미국의 가장 큰 시장은 일본(45%)과 한국(17%)이다.

이들 통계치에서 볼 수 있듯, 미국은 지식기반 경제로의 이행에 있어서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세계은행(World Bank)은 한미 FTA 지적재산권 분야의 협상 결과가 우리나라의 기술무역수지를 심각하게 악화시킬 것이라고 비관적인 예측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우리나라의 기술무역수지가 적자 상태인 것은 분명하나, 기술수출 증가율이 수입률보다 빨리 성장한다는 통계자료로 반박했다. 정부는 이런 주장의 궁색한 논리를 보충하고자 인터넷 보급률 등을 기술력의 주요 지표로 사용하는 IMD(국제경영개발원)의 국가별 기술혁신역량 평가결과를 인용하며 "우리나라 기술력이 세계 6위 수준"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즉, 정부는 우리의 기술경쟁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한미 FTA 지적재산권 분야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 즉 미국식 법과 제도를 수용한다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낙관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부의 논리는 교묘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기술무역 적자는 1996년 20억 달러에서 2006년 30억 달러로 증가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인 전기전자, 정보통신, 부품소재 분야에서 이런 적자상태의 심화는 심각하다.

기술특허의 질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특허인용도와 집중도를 보면 상황이 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우리나라의 원천특허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삼성조차도 차세대 나노-바이오 융합기술 분야에서는 고작 다섯 건의 미국 특허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지식 기반 경제 시대' 한국은 어디로 가나?

한미 FTA로 인해 한국과 미국은 어른과 어린아이가 동일한 게임의 룰을 가지고 하나의 링 안에서 싸우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정부가 발표한 '한미 FTA 협상결과에 대한 대응방안과 후속조치'는 너무나 부실하기만 하다. 지식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총론적인 원칙을 표명한 것 외에는 아무런 구체적인 대안이 없고, 협상 결과에 대한 궁색한 변명과 자화자찬만 나열돼 있을 뿐이다.

핵심 지식서비스 산업과 지적재산권이야말로 지식기반 경제시대 경제성장의 핵심동력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한미 FTA를 통해 '지식기반 시대'에 대비하겠다는 노무현 정부는 여전히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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