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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FTA 협정문 공개'를 애걸할 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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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FTA 협정문 공개'를 애걸할 땐가? [한미FTA 뜯어보기 528 : 기고] 한국의 FTA 전략, 종합 재검토 필요(下)
자,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안은 체결이 된 상태다. 그리고 이 협상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정부는 다른 나라들과의 FTA를 추가로 추진하면서 "FTA가 대세"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현실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일종의 '자기실현 예언'인 셈이다. 1년 전에는 FTA가 대세가 아니었지만, 노무현 정부가 국내적으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이걸 대세로 만들었다.

정부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먼저 미국과 FTA를 체결하는 것이 망해가는 나라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보다 나라를 살리기 싶은 마음이 덜하거나, 국제통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지금도 미국과의 FTA를 주저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은 유엔개방대학과 같은 UN 산하의 실무연구 기관들을 포함한 많은 국제기구들을 직접 유치한 나라다. 일본은 결코 우리나라보다 국제통상에 대한 감각이 뒤떨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슬픈 기억이지만, 제국주의 국가로서 전 세계 국가들을 상대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기계적인 비교를 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동경대학교 경제학부는 슬플 정도로 국제적인 공인 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그런 동경대 경제학부 교수들이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나라가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는 그런 주장을 공공연히 외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

국민경제는 스포츠가 아니다

한미 FTA를 기준점으로 다른 거대 경제권과의 FTA가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는 현재 상태에서는, 외교통상부 관료들이 아무리 자화자찬의 꿈에 부풀어 치장을 하더라도, 유럽연합(EU)과 캐나다 혹은 중국과의 FTA 협상안은 최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개별적으로 떼어놓고 보면 상관이 없는 양자 협정들이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경제에 대한 기본전략 및 산업정책에 대한 기본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또 국내 경제의 공동화는 생각해보지도 않은 상태로 동시다발적으로 이런 협상들을 강행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뒤집어서 얘기하면, EU나 캐나다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은 왜 우리나라와의 FTA 협상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한국과의 FTA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려고 할까?

이들 국가들은 중국과 일본과의 경쟁에서 한국이 이긴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세계 10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이 기꺼이 시장을 내어준다는데, 이들 국가도 미국과의 경쟁에서 질 수 없다는 것이 현재의 정확한 상황일 것이다.

이런 종합적인 변화 앞에서 한국은 아무런 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다못해, 극단적인 전략으로 평가 받는 '도시국가형 경제'나 '금융 강국' 아니면 '서비스 중심 국가'와 같은 전략도 가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FTA는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 전략이나 '자신감을 가져라'는 월드컵 4강 신화 전략 외에 도대체 어떤 전략을 국민들 앞에 내놓을 수 있나?

거듭 얘기하지만, 국민경제는 스포츠가 아니다. 멕시코를 제외한 다른 국가의 정부가 한국 정부처럼 전 부문의 전면개방에 나서지 않는 것은 그들이 국제경제에 무지해서도 아니고 민주주의에 익숙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한미 FTA가 그대로 발효된다면, 거기다가 EU와 캐나다 그리고 중국과 같은 또 다른 큰 경제권과의 FTA가 발효된다면 정부는 종합적인 전략을 수립하기 힘들 것이다. 로우엔드(low-end, 중저급) 시장에서 하이엔드(high-end, 최고급) 시장에 이르기까지 전 부문의 시장을 이들 국가에 내주고 실제 무역효과는 발생하지 않는 모순된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국민 속이기로 작정한 통상관료, 국회가 당해낼 수 있으려나

어차피 정부는 시간을 끌면서 검토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 다음에야 한미 FTA 협상안과 다른 협상안들을 보여줄 것이다. 사실 정부가 국민들을 속이려고 굳게 마음 먹은 상황에서, 이면합의나 구두약속처럼 협정문 조문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효력을 발휘할 협상 내용이 있다 한들 국회가 무슨 수로 밝혀내겠는가?

의회와 밀접하게 협력하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청와대와 밀접하게 협력하는 한국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와는 애초부터 태생과 작동원리가 전혀 다른 조직인 것이다.

국회는 물론이고 각 정당들도 한미 FTA에 대해 눈뜬장님인 것은 마찬가지다. 국회 '한미FTA 특위' 위원장인 윤건영 의원(한나라당)은 며칠 전 열린 특위 회의에서 "CGE(연산가능일반균형) 경제모델은 블랙박스"라고 지적하면서 정부에 원 데이터와 자료를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바로 이런 에피소드가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윤건영 의원은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였으며, 경실련 정책협의회 의장을 지냈다.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전문가 중 한 명인 것이다.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명박과 박근혜를 보유하고 있는 국회 제1당의 핵심 인사인 윤 의원이 제발 원 자료를 보여 달라고 할 정도다. 그렇다면 다른 국회의원들이 어느 정도나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이야기가 더 슬픈 것은 작년 이맘 때 조작 스캔들 속에 사라져버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1차 보고서와는 달리 이번 보고서의 주요 부문에는 CGE 모델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보고서는 그냥 통밥으로 '이럴 것이다'라고 아무 숫자나 막 집어넣은 엉터리다. 그러니 CGE 소스가 공개된다고 해서 검증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국회에서 국정조사나 청문회 등을 통해 제대로 된 검증을 하겠다고 나서도, 그 어떤 장치를 돌려도, 이미 국민들을 속이기로 작정한 행정부의 통상 관료들을 무슨 수로 당해낼 것인가? 슬프지만 이게 2007년 대한민국 국민들이 처한 객관적 현실인 것이다.
▲ 한미 FTA의 주역들. 오른쪽부터 노무현 대통령,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 ⓒ연합뉴스

'통상독재의 덫'에 빠진 대한민국

국회에 CGE 모델을 검증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있는 변변한 연구소 하나가 있는가. 그렇다고 유럽이나 중국의 실물경제와 국제통상에 대해 감을 잡고 있는 국회의원 보좌진이 있겠는가?

국회와 정당이 기술적 검토를 할 수 있는 인력과 조직을 갖추고 있다 해도, 'FTA는 다다익선'의 단순 전략으로 몰아붙이는 통상독재의 정국에서 '도대체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이 나올 형편도 아니다.

심지어 정부조차 통상 관료의 독재에 빠져서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제 정신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있는 집단은 없는 것이다.

말로는 '수출로 먹고 사는 국가'라고 떠들어대지만, 지역학 전문가도 제대로 양성하지 않고 수십 년을 감과 느낌으로 버텼던 대한민국이 드디어 제대로 통상독재의 함정에 빠진 셈이다.

현대차와 삼성은?

한나라당 한미FTA 특위 위원장도 제발 모델 데이터라도 좀 보자고 정부에 통사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삼성그룹과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 산하의 경제연구소라고 해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현대차는 한미 FTA 최대의 수혜자로 지목받는 회사다. 그런데 한미 FTA만 놓고 평가한 것과 한-EU FTA와 한중 FTA 등 다른 FTA들을 종합적으로 놓고 평가한 것은 전혀 다를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FTA들이 발효될 경우에 대해, 현대차는 내부적으로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불안하긴 하지만,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언의 내용이다.

삼성그룹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개별 FTA는 몰라도 여러 개의 FTA을 모아놓고 종합적으로 평가할 경우, 정부가 FTA의 최대 수혜자로 내세우는 대기업의 앞날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사정이 이럴진대, 농업이나 중소기업 그리고 개인자영업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최종 책임은 국민들이 져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통령이 추진하는 현재의 개별 FTA 협상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대통령과 통상교섭본부장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한다. 국회는 물론이고 당사자인 기업이나 국민들은 알 길이 없다.

물론 이래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통상절차에 대한 법률 하나 없이 대통령령으로 이 중요한 일들을 추진하는 나라에서, 협상과 협상 사이의 연관 관계와 종합적인 산업정책에 대한 밑그림이 없다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책임은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져야 한다. 국민들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로 국민경제에 참여하는 주체다. 그래서 현 상황에서는 국회가 어떻게든 법적으로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야만 한다.

지금 국회가 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이 "제발 협정문 원문이라도 보게 해 달라"거나 "CGE 소스라도 보게 해 달라"는 굴욕적인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게다가 국회나 각 정당은 이런 것들이 공개돼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에 '한국경제 청사진'을 요구해야

국회가 정부에 요구해야 하는 것은 미국과의 FTA를 비롯한 일련의 FTA 추진을 통해 우리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지, 정부가 어떤 산업을 지원하고 어떤 산업을 버릴 것인지 등에 대한 종합적인 전략 보고서를 요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종합 보고서는 대한민국이 추구할 종합적 전략과 국민경제의 운용 방안을 담고 있어야 한다. 경제 전문가뿐 아니라 정치인이나 일반 국민들이 봐도 그 기본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기술돼야 한다.

FTA와 같은 양자협정이든 WTO와 같은 다자협정이든 통상협정은 '수단'이다. 국민경제를 어떤 방향으로든 이끌어가겠다는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정부가 일련의 FTA라는 수단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국민경제의 청사진이 공개되면, 국회와 국민들은 간접적으로나마 지금의 'FTA 다다익선' 전략이 옳은 것인지, 어떤 조항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한미 FTA 협상 내용은 비밀이라지만, 국민경제에 대한 정부의 종합전략은 비밀이 아니고 비밀일 수도 없지 않는가?

뒤늦은 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한민국이 어떤 국민경제를 지향할 것인지 청사진을 그려내는 일이다. 또한 일련의 FTA 협상들이 종료되고 난 다음에 대한민국 경제가 어떤 모습을 하게 될지 청사진을 그려내는 일이다.

늦었지만 너무 늦은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제·통상 정책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에 걸맞게 상식적으로 움직였으면 하는 희망을 버릴 때는 아직 아니다.

국회에서 한미 FTA가 비준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지금이 국회와 국민들이 현 상황을 돌아보며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다. 지금이라도 국회는 정부에 국민경제에 대한 종합적인 청사진을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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