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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쌍용차 사태의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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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쌍용차 사태의 공범이다" [쌍용차, '죽음의 행진'을 멈춰라] 금융시장 자본주의와 노동의 묵시록
비록 탄광촌은 진폐증을 유발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산업화 시대의 마지막 '공룡'의 형상이지만, 3대의 세대가 삶의 터전을 유지하며 살아온 곳이고, 월급도 제때 받지 못해 사람들은 빚을 안고 살아가지만 나름 생활공동체의 자긍심을 대변하는, 선대부터 이어져온 브라스 밴드도 있다. 그러나 수익성과 효율성을 앞세운 자본과 산업구조조정의 당위성을 내세운 정치는 여전히 수익성이 있는 탄광을 의도적으로 폐쇄시키기 위해 감정사를 파견하여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여 정당성을 확보하고 멀쩡한 광산을 폐광시킨다. 물론 민주사회에서 적절한 보상금과 함께 폐광에 합의하든지, 아니면 쥐뿔도 안 되는 퇴직금만 받고 강제로 쫓겨날지의 마지막 선택은 탄광촌의 노동자 손에 쥐어졌다. 그럼에도 쓰러져가는 탄광촌에서 브라스 밴드는 연대를 상징하는 노동자 문화의 결정체였기에 지휘자인 대니는 실직의 위험에 내몰려 갈등하고 반목하는 단원을 다독거려 로열 알버트 홀에서 열린 전국 브라스밴드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한다. 정작 점잖고 우아한 청중 앞에서 우승을 한 후 그는 수상을 거부하고 이렇게 절규한다.

"차라리 우리가 짐승이라면 좋겠다. 짐승들은 울부짖어 표현이라도 하지만 얌전하고 순박한 저 사람들은 폐광되고 실직자로 나 앉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음악, 음악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구…."

다소 장황한 이 설명은 영화 '브레스트 오프'(Brassed off: 진절머리 난다고!)의 줄거리이다. 이 영화는 1979년 신자유주의의 기치아래 집권한 마가렛 대처가 영국을 금융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목표아래 시대에 뒤떨어진 제조산업, 특히 탄광산업을 살육에 가까운 방식으로 구조조정한 현실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후 30년이나 지난 지금 한국에서 마치 데자뷰처럼 이러한 현상들이 유사하게 반복되고 있다. 1997~98년 외환위기 당시의 광풍처럼 몰아쳤던 구조조정의 기억과 아픔이 아직도 생생한데도 말이다. 쌍용차 사태는 금융시장 자본주의(즉, 주주자본주의) 아래서 '주식회사 한국'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상황은 앞서 묘사한 영화의 한 장면과 매우 흡사하게 전개되고 있다.

쌍용자동차는 직원들의 노력과 공적자금의 지원으로 2002년 3천억원, 2003년 6천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면서 정상화되었다. 주인 없는 회사의 이러한 성과는 해외자본의 표적이 되어, 쌍용차는 어이없이 자신보다 기술력이 한참 뒤떨어진 중국 상하이 자동차에 매각되었다. 공적자금의 조속한 회수와 민영화를 통해 시장개방의 국제지표를 높이고자한 정부의 의도와 쌍용차의 핵심기술 이전에 관심을 보이던 중국자본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탓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인수 당시 10억 달러의 투자를 약속하였던 상하이 자동차는 기술이전의 목적을 달성한 후 운영자금이 없다고 경영정상화를 위한 정리해고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2009년 1월에 법정관리를 신청하였다. 쌍용차를 둘러싼 주주자본주의의 위험한 게임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는 비용절감을 위해 당시 노동자의 절반(46.8%)에 해당하는 2646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회사측의 정리해고안은 컨설팅 회사 삼정KPMG가 당시 작성한 <쌍용자동차 경영 정상화 방안> 보고서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 보고서는 "2646명의 구조조정을 단행해 현재의 기형적인 다이아몬드 인력구조형태를 피라미드 인력구조 형태로 개선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삼정 KPMG의 보고서는 쌍용자동차의 자산을 낮게, 부실규모는 높게 평가한 안진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는데, 자산과 부실규모는 금융시장 자본주의에서 언제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신호탄이다.

황당한 점은 이러한 보고서가 겨우 두 달 전에 작성된 법무법인 세종의 평가와는 완전히 상반된 결론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법무법인 세종이 법원에 낸 '쌍용자동차 회생절차 개시명령 신청서'는 회사 근로자의 대부분이 전문인력이므로 신규고용보다는 기존 인원을 활용하여 경비를 절감할 것을 권고하고, 쌍용자동차의 위기는 투자와 기술개발이 없었다는 데 있다고 진단하였다(<시사IN> 제275호 참고). 결국 쌍용자동차는 회생의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적 수익에 눈이 먼 상하이 자동차, 회계법인, 컨설팅 회사의 합작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합법을 가장한 왜곡된 평가'를 내림으로써 공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 자본주의 아래서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적으로 쓰나미처럼 밀려왔던 일련의 M&A열풍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어렵지 않게 비슷한 상황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진행되었던 다국적 기업의 인수합병의 과정을 보면, 대부분 장기적 경영성과보다는 주식시장에서 단기적으로 주가를 올려 주주의 이익에 봉사하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인센티브를 획득하는데 일차적 관심을 갖는 인수합병의 당사자들(특히 주요 CEO), 이들의 행동에 타당성 근거를 제공하는 회계법인, 그리고 인수합병이후 다시 주가를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과감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필요하다고 주주를 설득시키는 논리를 설파하는 컨설팅 회사들과 증권시장의 애널리스트들이 있다.

월가와 런던의 증권시장, <월스트리트 저널> 및 <파이낸셜 타임스>와 같은 이들의 다양한 이데올로기 기관지, 국제적 지명도가 있는 경영컨설턴트들은 세계화와 시장개방, 국경 없는 자본의 이동을 자본주의의 미래로 포장하고, 주주자본주의의 삼두마차들(다국적 기업의 CEO, 회계법인, 컨설팅회사와 애널리스트들)의 활동을 마치 십자군 전쟁에 비유하여 칭송하기에 급급하였다. 국내에서도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대부분은 바로 그런 경영 구루들의 책들이다. 이제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주주자본주의에서 기업은 단순히 상품을 만들어 파는 곳이 아니라, 기업 그 자체가 상품이 되어버렸다. 금융시장에서 단기적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이러한 발전은 결국 실물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를 초래하였고, 그 결과는 2002년 이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고정수입과 연금이 노후를 보장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고, 잦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인해 고용이 불안정해짐에 따라 일반 노동자들도 연기금과 주식투자, 심지어는 파생상품 투자 등의 형태로 금융시장의 위험한 게임에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상시적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위기는 어느덧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노동자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금융시장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현재 국내에서만 하루에 온라인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15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알려진 바대로 주식투자는 국내의 대공장 노동자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자산축적의 수단이 되어 버렸다. 다소 과장해서 유추하면 이러한 현실은 내 사업장의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이 아닌 다른 사업장의 정리해고는 주식시장에서 주가상승을 의미하고, 이는 곧 나의 수익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연대를 구축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일찍이 그람시는 포디즘적 자본주의를 평가하면서 '헤게모니는 공장에서 출발한다'라는 유명한 테제를 제시하였다. 즉,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갈등의 핵심은 공장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장악하려는 자본의 통제와 이에 대항하는 노조의 투쟁에 집중되어 있으며, 조직화된 노동자가 법과 국가권력의 비호를 받는 자본의 통제를 이겨낼 경우, 사회적 권력, 즉 헤게모니를 획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20세기 서구 복지국가의 건설과정에서 입증된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 금융시장 자본주의에서 헤게모니는 공장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노동 및 시민운동의 목소리보다는 수익성에 목마른 원자화된 주주들의 목소리가 사회적, 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하기 시작한다. 1980/90년대에 강성노조, 파업, 시민운동, 불법시위는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기표의 상징이었고, 공안정국이 그 해결책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똑같은 용어는 이제 국제신용등급 하락, 경제위기의 주범, 주식시장 불안정 요인의 기표로 둔갑되었고, 주주로서 시민이 이를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삼성공화국,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정경유착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욕망이 거칠게 표현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금융위기 당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경험하고, 고용불안정이 상시화된 탓인지 다수의 노동하는 시민은 '오늘도 무사히'만 되새기며, 냉소와 무관심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22명의 해고노동자와 가족의 목숨을 앗아간 후에야 비로소 이 사회는 노동계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뒤늦게 '사회적 타살'의 공동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2009년 파업을 풀면서 노사간에 합의되었던 사항을 조속히 준수하게 하고, 쌍용자동차 사태와 관련된 책임소재를 밝히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반드시 필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사유도 필요하다.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쌍용차 파업은 노자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노노간의 갈등도 유발하였고, 이는 당위적으로 이해되어온 연대적 노동문화에 다시 한 번 생채기를 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양치기 소년의 외침처럼 어느 순간부터 사회에서 메아리가 없다. 물론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내다보면 쌍용자동차 사태와 관련된 진정한 책임자는 금융시장 자본주의에서 자본과 단기적 수익의 욕망에 포박된 우리사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명품소비를 비난하면서도 불경기에조차 명품소비가 줄지 않는 사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그러나 언제까지 성찰과 자조를 되새기면서 이 문제를 바라볼 수는 없다. 단기간에 금융시장 자본주의의 원칙을 바꾸어 낼 수 없다면 최소한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부터 강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언제까지 각종 진보 매체에서 녹음기처럼 반복되는 상투적 멘트, '노동이 배제된 정치와 정책'만을 탓할 것인가?

금융시장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이동은 자유로울 수 있지만, 이는 반드시 생산적 투자이고, 고용과 고용조건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금융위기 이후 국내에 진출한 외투기업의 경우 노사관계를 존중한다는 유럽의 다국적 기업조차 국내에서는 국내자본과 똑같이 거칠고 일방적인 관계를 강요하는 행태가 비근하다. 결국 시장개방에만 초점을 맞춘 경제부처와 그에 눈치만 보는 고용부의 관료적 행태가 빚어낸 참사다. 이러한 저열한 관행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나아가서 생산에 유리한 조건만을 찾아나서는 다국적 기업의 레짐쇼핑(regime shopping)에 제동을 거는 국제노동운동의 흐름이 있다. 유럽금속노조를 비롯한 산별노조들은 개별 직장평의회(Work Council)를 중심으로 다국적 기업과 차별금지, 고용보호, 아동노동금지, 결사권과 단체협약의 준수, 적정임금 보장, 적정한 노동시간과 노동조건의 제공 등 기본적인 협약(Framework Agreement)을 체결하고, 이의 준수를 강제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폭스바겐, 다농, 네슬레, BASF, 에릭슨 등의 다국적 기업의 국제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사업장 내에 관철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다국적 기업의 사업장 내 직장평의회는 이러한 협약을 통해 기업이 임금과 노동조건을 지역별/사업장별로 차별하고 있는지,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하는지를 감시하고, 이를 통해 노동의 권리를 방어해낸다. 향후 국내에 진출하는 다국적 기업은 반드시 기본협약을 맺고 이를 준수하게 하는 것도 노동운동의 중요한 과제이다.

제아무리 탈산업사회를 떠들고, 지식기반경제를 강조해도, 자본주의는 노동을 떠나서 생존할 수 없다. 특히나 생계노동 이외의 별다른 복지대안이 없는 우리사회에서는 노동이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그것이 사람으로서의 보편적 자긍심을 보장한다. 따라서 노동과 관련된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문제의 출발점과 종착점이다. 쌍용차 문제는 그러한 점에서 에피소드가 아니라 사회문제의 총체성을 대변한다.

▲ ⓒ프레시안(김윤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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