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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근대의 코리아 연합, 혹은 연방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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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근대의 코리아 연합, 혹은 연방 공화국 [장시기의 '영화로 읽는 세상'] 문현성 감독의 <코리아>
I. 탈근대의 시작

영화관에서 표를 사는데, 뒤에 있는 젊은 연인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코리아>, 저건 너무 인위적으로 질질 짜게 만드는 영화일 것 같아. <건축학개론>은 어때?" 옆에 있던 여자가, "그래, <건축학개론> 보자!"라고 답한다. 나는? 나는 울고 싶어서 <코리아>를 보기로 결심했다.

▲ 영화 <코리아> ⓒ(주)더타워픽쳐스
젊은 연인들의 대화처럼, 영화 <코리아>는 관객들을 질질 짜게 만드는 근대 영화의 스토리텔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코리아에 대하여 캄캄한 영화관 내부에서 실컷 울고 싶어서 혼자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21세기의 오늘날은 분명히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만들어진 '6.15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6.15 남북공동선언'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만을 인정한다고 하기 때문에 영화 <코리아>는 1991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대통령이 탈근대를 부정하니, 국민인 나도 근대로 되돌아가 실컷 울어보자는 심산으로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1990년대는 전 지구적으로 그 이전의 근대적 과거와는 달리 인종적, 종교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갈등을 넘어서서 새로운 상생을 위한 만남의 장을 열었던 시대이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만났고, 유럽에서 동유럽과 서유럽이 만났으며, 아프리카에서 흑인과 백인이 만났으며, 아메리카에서 원주민과 백인 이주민이 만났다. 그 결과로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서구 유럽에 저항하는 사회주의 헤게모니를 주장하는 근대의 제국에서 벗어나 탈근대의 지구촌을 구성하는 자율적인 하나의 국가가 되었고, 유럽은 그 구성원들이 서로 상생하고자 하는 새로운 유럽연합이 탄생했으며, 남아프리카는 흑백통합정부를 구성했고, 아메리카는 500년 동안 침묵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등장하여 백인 이주민들과 흑인 노예 출신들을 포함한 다양한 혼혈 종족들을 포용하는 새로운 아메리카를 만들고 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는 그러한 지구촌의 탈근대적 변화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하나의 탈근대적 사건이었다.

II. 남과 북의 탈근대적 만남의 사건

ⓒ(주)더타워픽쳐스

서구 유럽의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침략으로 시작된 근대화 과정의 가장 큰 문제는 서구와 비서구의 이분법을 출발점으로 끊임없이 이 세상의 존재를 정신과 몸,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이분법으로 재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지구촌 세계에서 일어난 탈근대적 깨달음은 오늘날 서구와 비서구가 모두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몸이며, 인간의 정신은 인간의 몸의 일부분이고, 개인은 결코 사회와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남과 북의 분단으로 인하여 남과 북의 개개인은 서로서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민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남한 국가대표 탁구팀과 북조선의 국가대표 탁구팀이 북경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하여 하나의 대표팀을 구성하는 것은 단지 탁구선수들 개개인의 만남이 아니라 40년 동안 서로서로 이질적으로 자라난 남한 사회와 북조선 사회가 최초로 만나는 사건이었다. 영화 <코리아>는 그러한 탈근대적 사건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서로서로 이질적으로 자라난 남자와 여자의 만남처럼, 남과 북의 만남은 설렘과 긴장, 오해와 갈등, 그리고 대립과 반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온전하게 자라난 남자와 여자가 서로가 서로에게 당당한 하나의 주체로 만나서 서로가 서로를 서로 다른 남성과 여성임을 인정하고 서로 사랑을 하여 미래를 만드는 준비를 하듯이, 서로 다른 사회와 국가의 만남은 서로가 서로에게 당당한 하나의 주체가 되어서 서로 다른 상호체제를 인정하고 함께 공통의 미래를 만드는 준비를 해야만 한다. 남한의 국가대표 현정화(하지원 분)와 북조선의 국가대표 리분희(배두나 분)는 서로가 서로에게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고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당당함 속에서 근대적인 모든 만남이 지니고 있는 설렘과 긴장, 오해와 갈등, 그리고 대립과 반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처럼 설렘과 긴장은 잠깐이고, 서로 다른 오해와 갈등이거나 대립과 반목의 근대적 일상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근대적 일상의 오해와 갈등, 그리고 대립과 반목을 넘어서서 탈근대적 평화와 생성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삶으로 표현되고 있는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당당함이다. 당당함은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또한 상대방도 나와 마찬가지로 당당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복식조 대표를 뽑는 경기에서 현정화는 당당하게 최연정(최윤영 분)과 함께 하는 자신들의 복식조가 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리분희와 유순복(한예리 분)의 복식조가 코리아팀의 대표 복식조가 되게 한다. 현정화와 리분희, 그리고 남북 탁구 대표팀 선수들의 만남처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만남은 서로가 서로에게 당당해야만 한다. 그 당당함은 근대화 기간 동안 만들어진 남한의 식민지성을 인정하고, 또한 북조선의 폐쇄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러한 당당함은 단지 현정화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선수들에게 다 적용될 수 있다.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 등등의 모든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당당함은 근대적 일상의 오해와 갈등, 그리고 대립을 넘어서는 탈근대적 평화와 생성의 세계를 만든다. 영화 <코리아>에서 현정화의 당당함은 유순복으로 하여금 자신을 대신해서 리분희와 현정화의 환상적인 복식조를 만들게 하여 남한과 북조선 모두가 그렇게 갈망했던 중국의 벽을 넘어서는 금메달을 따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는 현정화와 리분희, 그리고 유순복과 최연정 등등의 대표팀 선수들이 대한민국 국민이거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이라는 당당함을 여전히 근대적인 체제경쟁으로 치부하는 권력층들이다. 영화 속에서 그러한 위기를 다시 한 번 극복하는 사람은 현정화이다. 비를 맞으며 함께 경기장에 나가자고 무릎을 꿇은 현정화의 모습에 감복하여 북조선의 조감독(김응수 분)은 북조선 권력층의 폐쇄성을 넘어서서 북조선 선수들과 함께 주체적 자율성의 결정을 한다.

1991년의 남북탁구 단일팀 구성을 계기로 남과 북은 끊임없이 근대적 일상의 오해와 갈등, 그리고 대립과 반목을 넘어서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가 2000년에 만들어진 '6.15 남북공동선언'이다.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가 1990년대의 지구적인 탈근대적 분위기에 휩쓸려서 만든 것이라면, '6.15 남북공동선언'은 남과 북의 두 지도자가 마침내 도달한 탈근대적 깨달음에 의한 결단이었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마치 영화 <코리아>에서 현정화와 리분희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당당함 속에서 환상적인 복식조를 구성하듯이 남과 북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당당함 속에서 "코리아 남북연합(혹은 연방)공화국"을 구성하자는 합의이다. 근대적인 측면에서 남한은 일본과 미국의 제국주의에 종속된 식민지성의 국가이고, 북조선은 서구적인 근대화와 단절되어 있는 폐쇄적인 국가이다. 탈근대적 깨달음은 남한의 근대적 식민지성을 탈근대적 세계성으로 전환시킬 수 있고, 북조선의 근대적 폐쇄성을 탈근대적 주체성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III. 탈근대적 선물

ⓒ(주)더타워픽쳐스
현정화는 경기가 끝나고 북조선으로 떠나가는 리분희에게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반지를 선물한다. 리분희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라고 말끝을 흐린다.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가장 근원적인 관계는 근대적인 오해와는 달리 자본주의적 시장의 교환관계가 아니라 관계적 삶의 문화를 구성하는 선물관계이다. 현정화는 하나의 반지를 선물했지만, 리분희는 아마도 그녀의 마음을 현정화에게 선물했을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 세계를 놀라게 만들고 있는 한류 문화처럼 남한의 근대적 식민지성을 탈근대적 세계성으로 만들고 북조선의 근대적 폐쇄성을 탈근대적 주체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6.15 남북공동선언'이 강조하는 "코리아 남북연합(혹은 연방) 공화국"은 남과 북의 선물관계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누가 누구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은 마치 영화 <코리아> 속에서 현정화의 모습이 보여주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당당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북조선과 지구촌 여러 나라들에게 현정화처럼 당당한가?

영화 속에서 현정화가 리분희에게 반지를 선물하는 것은 함께 훈련하고 경기를 치르는 시간의 변화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현정화와 리분희만이 아니다. 남과 북의 모든 선수들과 코치 그리고 감독이 근대적 일상의 오해와 갈등 그리고 대립과 반목을 넘어서서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근대적인 시장의 교환관계가 아닌 탈근대적 삶의 선물관계가 되었다. 영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 이러한 시간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직 이명박 정부뿐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차치하고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마저도 인정하지 않고 저 옛날 박정희 시대의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이다. 영화를 필두로 하는 한류 문화가 만드는 대한민국의 탈근대적 세계성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대적 식민지성을 탈근대적 폐쇄성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세계관이다. 그래서 문현성 감독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의하여 만들어진 남북 탁구 단일팀 구성이라는 최초의 탈근대적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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