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이 때문이었다. 페미니즘은 여성으로서의 나를 돌아보고, 또 앞으로의 관계 맺음에서도 서로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나를 가르쳐왔다. 내가 나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할 때, 그건 다른 이의 주의나 경각심을 요구하려 함이 아니라, 나 스스로 관계성을 다시 상기하기 위함이었다. 선후배라는 편한 관계로 내가 섣부르게 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건 아닌가. 혹은 나이의 수 차이로 많고 작음을 계산해 너무 쉽게 마음을 닫아버리지는 않았는가와 같은 물음과 반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게 페미니즘은 정치적 입장이라기보다 기본적인 인간적 예의의 차원인 셈이다. 당신과 나의 만남에 있어 개재된 이물질들을 퍼내고 서로의 목소리를 보다 투명하게 닿게 하는 하나의 '듣는 귀'로서 말이다.
'정치'를 협소한 의미로 해석하자면, 나는 페미니즘이 정치적 입장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개인마다 전유하는 페미니즘의 의미가 다르므로 섣부르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페미니즘은 정치적 좌파·우파의 구도를 넘어 어느 부류에서건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룰'이기 때문이다.
최근 매스컴에서는 성폭력 사건들이 연일 보도된다. 성폭력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개인적인 병리학으로 범죄자를 해석하려는 움직임보다도 이 사태의 원인이 사회에게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듯하다. 이 발언이 일견 맞으면서도, 정부조차 이 목소리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몰라 포르노 사이트를 단속하는 등 문책의 대상을 전환하는 것으로 임시변통을 세운다. 분노는 크지만 곧 이동할 것이고, 매스컴은 시기에 맞춰 다른 이슈거리를 찾아낼 것이다.
우리가 주지해야 할 것은 이전에도 성폭력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했었다는 사실이다. 매스컴은 때에 따라 사건을 부각시키기도 하고, 보도하지 않기도 한다. 근래에는 성폭력 사건을 둘러싸고 매스컴이 사건의 서사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과연 옳은지, 가해자를 화학적 거세로 처벌해야 하는지, 성폭력 범죄자들의 신상은 어떻게 공유되어야 하는지 등 갖가지 논의거리들이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하고, 또 많은 검증과 사회적 동의 절차를 통해 반드시 확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매스컴은 빠르게 변하고, 모든 사안들이 결정되기 전에 분노는 다른 장작으로 불꽃을 옮길 것이다. 성폭력 사건이 지금까지처럼 매스컴의 보도 여부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이상, 이 패턴은 변하지 않는다.
▲ 서울시 '여행(여성행복) 프로젝트' 포스터 ⓒ서울시 |
누구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나아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하나하나의 사안들을 단기적 이슈로 그치게 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공론화하는 방법이다. 이 고민은 비단 성폭력 사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여성을 위한다며 있었던 숱한 정책들도 하나하나 아쉬운 점이 많았다. 2010년 서울시 '여행(여성행복) 프로젝트'를 떠올려보자. '여행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여행길 조성'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정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나는 여성의 도보문화(하이힐)을 위한 보도블럭 재설치, 둘째는 가로등 추가 설치다. 사실상 이 정책들은 '여성'이라는 단어를 단지 차용했을 뿐이지, 실제로는 서울시의 정기적인 보수 작업으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해 보인다. 성폭력 사건과 여성 행복 프로젝트는 각각 다른 위치에서 여성 정책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알려준다. 여성 정책은 떠들썩한 보도에 의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지거나, 실질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그럴듯한 포장지로 화려하게 눈가림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과제는 여성과 관련된 '진짜' 이슈들을 현재 대한민국 정치 안에 제대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수많은 목소리들이 허공에 던져졌다가 가야 할 곳을 찾지 못한 채 사그라진다. 여성 정책이 시류 몰이에 휩쓸리거나 단지 허울뿐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여성 이슈를 전문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정치 주체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여성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장이 형성되어야만 한다.
장을 형성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여기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비례대표제다. 비례대표제는 특수한 계층, 특정 분야의 목소리에도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다수결의 원칙 안에 사장되었던 소수의견들을, 비례대표제는 반드시 끌어안는다. 적은 표여도 그에 비례하여 공론장의 자리를 내어주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를 통해 지금과는 다른 장의 형성을 기대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비례대표제의 핵심은 '포괄의 정치'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여성 문제에 대해 점차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는 하나, 그 중심에 서서 여성 정책들을 날카롭게 분석했을 때에는 사실상 그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비례대표제가 말하는 '다양성'은 바로 이렇게, 여태 정식화되지 못했던 문제들을 공적인 영역 안으로 포괄하는 데에 있다.
여성정책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내가 바라는 페미니즘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페미니즘은 불공정한 소외들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를 증폭시키는 이론이다. 비례대표제가 지향하는 바도 이와 같다. 페미니즘와 비례대표제는 '룰'의 재구성을 시도한다. 양자 모두 지금껏 우리가 불공정하게 대했던 사회의 기본 바탕, 기본 규칙들에 대해 과감히 옐로카드를 선언하고 소외를 지양하는 새로운 형태로 판을 다시 짜자고 제안한다.
어떤 정치를 바라는가. 아무리 뛰어난 인물을 선출한다 해도 사회는 단숨에 변화하지 않는다. 정치는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와 많은 분야의 이슈들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각각의 분야에 걸맞은 그라운드를 만들어주고 꾸준히 양성해야 한다. 정치의 깊이는 바로 여기에서 발현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것이다. 말만 무성하거나 바람 불면 왔다가 바람 불면 사라지는 '깜짝쇼'가 아닌, 그리고 단 한 명의 영웅도 아닌, '깊이 있는 정치' 그 자체 말이다.
[취지문] 비례대표제 청년포럼은 비례대표제 포럼의 청년그룹으로서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라는데 동의하는 개인, 청년단체, 시민사회단체, 언론사, 정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례대표제 포럼에서는 청년들이 다양성이 인정되는 속에 합의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례성, 다양성, 공정함이 보장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이를 위해 비례대표제 확대를 얼마나 고대하는지, 조금은 거칠지만 생생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열망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정치의 해인 2012년에 비례대표제 확대가 우리 사회 주요한 사회적 아젠다로 자리매김하는데 청년들의 이 작은 몸짓들이 마중물이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하며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연재를 시작해봅니다. 비례대표제 청년포럼 홈페이지 바로가기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슈퍼스타K가 아니다 -구럼비 파괴되던 날, 나는 비례대표제를 고민했다 -이게 선거인가! 이게 사는 건가! -그래서 결국 경제 민주화는 누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야권연대 '협박의 정치'를 끝내라 -국회의원 복지부터 스웨덴식으로 바꾸는 건 어떨까? -통진당 사태는 선거제도의 슬픈 자화상 -국회의원 특권만 줄이면 좋은 정치 되나? -"투표 2030" 목소리는 왜 실종됐나? -이재오 "국회의원을 200명으로 줄이겠다"고? -기초의회, '풀뿌리 정당제'가 답이다 -통진당 사태가 한국 정치에 남긴 긍정적인 효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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