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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정치혐오 즐기다 혐오의 당사자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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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안철수, 정치혐오 즐기다 혐오의 당사자 된다"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허경영 공약과 똑같은 안철수표 최악의 개혁안"
지난 3월부터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연재를 통해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정치개혁안, 그중에서도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함을 이야기해왔던 비례대표제 청년포럼이 대선 특집으로 각 대선 캠프의 정치혁신안에 대해서 좌담회를 진행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지난 7일 안철수 후보의 정치혁신안에 대한 좌담회에 이어 22일 발표한 문재인 후보의 정치개혁안에 대해서도 동일한 입장을 가지고 난상 토론을 벌이기 위해 23일 오전 10시에 긴급히 모였다.

문재인 후보의 정치개혁안에 보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꼭 실현되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이 정치개혁안이 다른 대선 후보들의 정치개혁안에 어떤 영향을 줄지 등을 이야기하며 앞으로의 정국을 지켜보자며 헤어졌다. 그런데 오전에 나눴던 좌담을 채 풀기도 전인 이날 오후 3시에 안철수 후보가 '국회의원 수 감축,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폐지 내지 축소, 중앙당 폐지 내지 축소'를 골자로 한 새로운 '정치쇄신'안을 발표했다.

문재인 후보의 정치개혁안에 대해 앞으로 안철수 후보가 어떻게 받을 것인가, 문재인 후보 안보다 더 발전된 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우리로서는 말 그대로 '멘 to the 붕'이었다. 그래서 이날 저녁에 안철수 후보가 새롭게 내놓은 정치혁신안에 대한 온라인으로 추가 좌담을 진행했다.

아! 여기서 지난 7일 안철수 정치개혁안에 대한 좌담과 이번 23일 좌담, 그리고 이메일 추가 좌담을 진행함에 있어서 각 후보들의 정치개혁안을 평가할 때 기준은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정치개혁안, 그 중에서도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함을 이야기해왔던 비례대표제 청년포럼의 입장에 근거하여 진행하였음을 분명히 밝혀두는 바이다.

김경미 한림대 정치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진행으로 그동안 정치제도개혁을 주장해온 비례대표제 청년포럼 멤버들(손정욱 비례대표제 청년포럼 기획위원·국회비서관,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팀장, 이안홍빈 청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조성주 경제민주화2030연대 대표, 황종섭 진보신당 서울시당 교육조직부장)이 긴급 좌담을 진행했다.<필자 주>


김경미: 정말 반전 있는 좌담회다. 오전에 문재인 후보 개혁안을 평하면서 이제 공은 안철수에게 넘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후보 안보다 훨씬 진일보한, 문재인 후보가 기성 정당의 후보였기 때문에 차마 말하지 못한 것까지 치고 나올 것을 기대하며 헤어졌다. 그런데 각자 사무실로 돌아오기도 전에 '국회의원 수 감축' 등을 언급한 안철수 후보의 말에 다들 폭탄을 맞았다. 얼얼할 것 같은데 어떤가?

조성주 : 뭐, 얼얼하기보다는 씁쓸하다. 지난 7일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안 총론이 나왔을 때 이런 수준의 총론이면 각론도 기대할 건 별로 없을 수 있다고 했는데, 총론에서 더 후퇴해서 뒤로 가버렸다. 교과서에나 나오는 삼권분립 수준에서 정치개혁을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23일 오후에 나온 개혁안-사실 개혁안이라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웃음)-을 보면 차라리 삼권분립을 말하는 게 나을 듯하다. 이건 입법부를 부수겠다는 것 아닌가? 정당정치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거다.

손정욱 :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정치에 대한 혐오'인데, 이걸 해결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등장해서 그 혐오를 더욱 증폭시켜 자신이 당선되려고 하는 것 같다. 벌써부터 관련 기사의 댓글엔 "이참에 정치인들을 싹 몰아내자"고 난리들이다. 정치를 하지 않는 대통령이라도 되겠다는 건가. 그것이 도대체 가능하겠는가. 그렇게 정치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당선이 된다면, 결국 정치 자체가 갖는 속성으로 인해 그 사람 자신이 혐오의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실 정치와 대담하고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고, 오직 선거 승리만을 위한 비겁한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무지함과 근시안적인 행보가 안타깝다.

양호경: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말 자체는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동안 국회의원들이 뭘 했느냐며 선거 때만 정책이 나오느냐는 식으로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것은 정치를 혁신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기능이 필요 없다'라는 주장에 가깝다. 대안들은 이미 짧게는 몇 달 전, 길게는 십수 년 전부터 나왔고, 법안으로 발의되기도 했던 것들이다. 정책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것을 사회적 갈등 속에서 합의를 이끌어내 정치적으로 통과시킬 의회 내의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이 안철수의 정치 혁신안이라면 이건 정치를 하지 말자는 것에 가깝다고 본다.

김경미 : 안철수가 인하대에서 발표한 정치혁신안의 어떤 면이 가장 문제였다고 보나?

이안홍빈 : 비례대표제 확대를 강조하겠다고 하면서 의원수를 줄이겠다고 한 것!

손정욱 비례대표제 청년포럼 기획위원·국회비서관 ⓒ프레시안(최형락)
손정욱
: 그동안 안철수 후보가 말해왔던 정치개혁은 우리가 생각해왔던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정치가 중요하고, 그래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주기를 기대했는데, 안 후보가 생각하는 개혁은 정치의 역할을 대폭 축소하는 것인 듯하다. 의원정수를 줄이고, 중앙당을 폐지하면 과연 그 이득이 누구한테로 돌아가겠는가? 정치를 혐오하는 시민들이야 순간적으로 통쾌함(?)같은 것을 느끼겠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재벌과 경제관료 등은 누가 견제하고, 시민들의 이익은 누가 대변해준다는 말인가? 안 후보 본인과 청와대가 다 하겠다는 건가? 그러다가 잘못하면 단임제 대통령제 하에서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나?

금융세계화 이후 주요 선진국들에서 정치의 중요성, 정치의 우선성을 얘기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야말로 정치개혁의 참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생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성주 : 누군가 23일 오후에 나온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안을 보고 이런 글을 SNS에 썼더라. "백신은 왜 만들었나? 바이러스 생기면 컴퓨터를 때려 부수면 되지"라고. 보고 한참 웃었다.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근본적으로 국민들의 '정치불신'에 기대서 정치 자체를 부정하고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라고 본다. 이러면 사실 민의를 대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구인 입법부가 무너지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니까 가장 '나쁜 정치'로 수렴하고 있는 거다. 국민들이 정치에 불신을 가지는 것은 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정치가 민생을 대표하지 못하는 문제에 불만을 가지는 것이다.

양호경 : 국회의원 수 축소, 정당보조금 축소 및 중앙당 폐지를 관통하는 관점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다. 그리고 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이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 수를 늘리고, 그를 통해서 정치라는 영역이 "어떻게 국민들을 대변할 것인가"이다. 숫자를 200명으로 줄이고, 국회의원 특권 몇 개 줄인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정치가 발전되는 것이 아니다. 분명 대의제 민주주의를 행하고 있는 국가이기에 정당과 정치인은 어떻게 국민들을 대변한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국민들은 어떤 대표자를 선출하고 감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이상적인 정치가 될 수 있다.

그 고리가 정당과 정치인들의 부패 이미지와 국민들의 불신, 언론의 선정적인 정치 이슈 다루기 등으로 끊어진 것이다. 그것을 복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정치 불신의 문제점은 정당이 아니라 밀실이었다. 국민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공천권자 등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국회의원 의석수가 줄면 그 권한은 더욱 집중되고, 부패는 더욱 심각하게 된다. 우리 국민을 대변하려는 국회의원 수는 더 줄어든다. 해결책은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다. 양당제 체제를 극복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정당들이 의회에 진출하고 권한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비례대표제 확대 등이 필요한 것이다.

김경미: 비례대표제 확대를 강조하면서 의원수를 줄이겠다고 한 것은 솔직히 한국 정치 개혁의 그림을 못 봐도 한참 못 본 것이 아닌가. 대학생 친구가 "학부생도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거 아는데 어떻게 이런 안이 나왔는지"라고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

조성주 : 우스운 게 뭔지 아나? 과거 허경영 후보의 정치개혁 공약이 '정당공천 폐지, 청와대 이전, 국회의원 100명 축소'였다고 한다. 지난번에 정치개혁을 말하면서 '선거제도 개혁'을 말하지 않는 게 말이 되냐고 지적했었는데 국회의원 정수를 축소하겠다고 나왔다. 최악이다. 안철수 후보가 미국하고 일본하고 비교했는데, 거기는 양원제 아닌가? 한국은 오히려 의원수가 부족한 게 더 문제다. 최소한 400명은 되어야 한다. 안철수 후보는 오히려 획기적으로 국회를 국민 품으로 돌려놓겠다고 했어야 하는데,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본다.

손정욱 : 제대로 된 국회의원을 충원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국회의원을 지금보다 100명이나 줄이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나마 기득권 집단 중에 시민들 목소리에 민감한 유일한 집단이 미우나 고우나, 어쨌든 정치인들인데 말이다. 국회의원이 줄어들수록 뒤에서 더 좋아할 집단은 그 포획 대상이 줄어든 재벌들, 경제관료들이라는 걸 왜 모르는지 답답하다. 결국 행정부의 권력만 더 강해져 책임정치와 멀어질 가능성만 높아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국회의원 100명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를 제시해보시라. 대통령이 의원수를 줄이고 싶다고 줄일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어떻게 여야의원들을 설득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슨 희망 사항 얘기하듯이 국민들이 좋아할 만한 말을 고민 없이 뱉은 것 아닌가 싶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김경미: 정당보조금 및 중앙당 폐지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이안홍빈 : 포퓰리즘적인 발상이긴 하지만 일면 긍정적이다. 19대 총선에서 녹색당은 정당득표율과 소액당비 납부율을 반영한 '국고보조금 매칭펀드제(가칭)'를 실시하는 것으로 정당보조금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조성주:정당보조금 관련해서 외국에서 진성당원과 매치한다는 사례를 들었는데 이건 논의해볼 가치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가 주장한 핵심포인트는 정당보조금 자체를 줄이자는 거다. 중앙당 폐지도 원내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문제를 지적한 것 같은데, 이건 그냥 정치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거의 전무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정당보조금을 줄여서 민생에 쓰자'며 '정당들이 보조금으로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묻는데, 2004년 이후 정당보조금에서 정책개발비나 이런 게 늘어났다. 진보정당이 원내 입성하면서 정책개발비를 늘리자고 요구해왔고 그 늘어난 정책개발비로 만들어진 정책들이 지금 안철수 후보가 주장하는 각종 복지정책들이다. 정당보조금이 무슨 당사를 으리으리하게 짓는 데만 쓰인다고 착각한 것 아닌가? 정당보조금 몇 백억 원을 줄여서 민생에 쓰자고 하기 전에 재벌 대기업에 들어가는 세제혜택 수조 원을 줄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나?

중앙당 폐지 역시 마찬가지다. 안철수 후보한테 중앙당이란 존재는 지역조직이나 관리하는 존재로만 보이나 보다. 사실 지금 지구당이 폐지되어 있는 상태인데, 이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정당이 지역에서 계급과 계층, 각종 공동체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측면에서는 지구당 폐지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는 중앙당도 폐지하자고 나왔다. 그럼 정당을 없애자는 이야기다. 모든 것을 원내교섭단체로 처리하면 그게 정당정치라고 할 수 있나? 정당이 뭘 하는 조직인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런데 22일 안철수 후보 캠프 일부에서 신당 창당론이 나왔는데, 그건 중앙당도 없고 지구당도 없는 그럼 무슨 가상공간의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나?

양호경 : 선거 공영제라는 것이 있다. 피선거권의 자유를 위해서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 중에서 10%, 15% 정도의 득표를 하면 선거비를 보전해주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피선거권에서 박탈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이다. 정당 보조금의 문제도 이런 접근에서 봐야 한다. 정당을 운영하고, 정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정당에 돈이 필요하다. 정당지지율과 국회의원 수 등 국민의 지지 정도에 따라서 정당보조금을 분기별로 지급하는 이유도 이 연장선에 있다. 돈으로 대변되는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돈이 없다고 정당이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국고보조금이 없다면 결국 정치라는 것이 돈이 많고, 후원이 많은 일부의 세력을 대변하는 기구가 되고 만다.

정당 보조금은 그 최소한이라 생각한다. 물론 정당보조금의 운용과 각종 조직개편 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각 정당들이 정당보조금을 통해서 정책연구원 등을 통해서 정책을 개발하고 한 것들은 무엇인가. 중앙당의 권력과 그 폐지에 대한 우려 지점은 있다고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정당과 정치의 기능을 원내에 넘기겠다고 하는 것은 정당의 역학을 강하게 부정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손정욱 :그렇게 정당의 힘을 약화시키면 안철수 후보는 도대체 누구와 함께 정치를 하겠다는 건지 되묻고 싶다. 시민들과 바로 손잡고 하겠다는 건가?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시민들을 광장에 불러 모으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여론조사 회사와 정치를 하겠다는 건가? 사회의 수많은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고 그 속에서 타협을 이끌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몇 단계만 고민을 거치면 이런 아이디어를 개혁안으로 내놓지는 않을 텐데 참 안타깝다.

김경미:안철수 캠프에 정치구조, 개혁을 아는 정치인, 전문가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걸로 안는데 어떻게 이런 안이 나올 수 있었을까 이해가 안 된다.

손정욱:그간 정치제도 개혁을 외쳐왔던 입장에서 부디 이것이 해프닝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정치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얼마나 높은가. 이에 대해 문재인 후보 측에서 나름대로 받아들일 만한 선거제도 개혁안을 제시한 상황이다. 안철수 후보는 부디 신중하게 이런 제안들을 잘 검토해서 보다 구체적인 제도개혁 로드맵을 빠른 시일 내에 제시해야 할 것이다.

조성주 : 미스터리다. 사실 캠프의 정책담당자들과 논의하고 나온 이야기인지도 의심스럽다. 후보가 즉석에서 그냥 말한 것이기를 바라야 하나? 만약 그렇다면 더 큰 문제이고.

김경미: 결국 조성주 대표가 이야기한 '안철수의 저주'가 말 그대로 저주가 된 것인가?

손정욱 : 이번 개혁안과 관련해서는 안철수 캠프 내부에서도 반발이 있다고 하니 일단은 조금만 더 지켜보고 싶은 게 솔직한 생각이다.

조성주 : 조금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본다. '안철수의 저주'라고 표현했던 것은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높은데 이것을 안철수 후보가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지 않으면 다른 후보들도 심심한 개혁안 수준에 그칠 것이다. 문재인 후보의 개혁안이 밋밋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는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가 제시한 안이 정치불신이 높은 일부 국민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다고 본다. 국민들의 정치개혁 열망을 좋은 방향이 아니라 나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재앙'이다.

▲ 김경미 한림대 정치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 ⓒ프레시안(최형락)
김경미
: 그럼 우리는 오전에 어떤 이야기들을 했기에 안철수의 정치개혁안에 이처럼 절망을 느끼는 것일까. 문재인 후보의 정치개혁안에서 어떤 희망을 보았고, 어떤 한계를 보았으며, 그래서 안철수 후보와 새누리당과 시민사회에 어떤 기대를 했기에, 안철수 후보의 정치혁신안이 '저주가 아닌 재앙이다'라고까지 생각하는 걸까.

그럼 잠시 시공간을 이동해서 23일 오전 문재인 정치개혁안을 논의했던 좌담회로 함께 돌아가 보자. 단, 주의할 점은 읽다 보면 가끔 허탈하고, 슬프고, 안타까운 지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럴지라도 희망을 꺾지 말아야 한다고~~ 어쩌면 이제 진짜 키는 당신에게 달려 있을지 모른다고 (개그콘서트 서태훈 음성지원 요망)라고 간절히 이야기하고 싶다.


22일 문재인 후보가 정치개혁안을 발표했다. 지난 9일 안철수 후보 좌담 기사가 나간 이후로 '문재인 후보 알바 아니냐'라는 댓글에 일일이 답할 수도 없고.(웃음) 그래서 문재인 후보가 정치개혁안을 발표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웃음) 각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문재인 후보 정치개혁안 전체적으로 어땠나?

조성주 : 저는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안보다 아쉬움이 더 들었다. 두 가지 생각인데, 일단 문재인 쪽도 안철수 쪽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각론보다는 총론 형태다. 이런 형태를 보면서 아직 탐색전인가? '안철수의 저주'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인지…. 먼저 낸 사람이 약하게 내니까 문재인 쪽도 약하게 낸 것 같은데, 지난번 안철수 쪽에서 좀 더 세게 냈으면 이쪽도 본격적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대선이 6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정치개혁안에 대해 탐색전 하고 있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문재인 후보 쪽이 안철수 후보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안을 내긴 했지만 수위 조절을 한 것 같다.

양호경 : 일단 안으로 나온 것이 아닌 추상적인 워딩(wording, 말)로 나왔기 때문에 후보가 추진 과정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주 중요한 부분도 바뀔 수 있는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정치, 정당개혁안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안철수의 정치개혁안보다는 확실히 명확하게 짚어 준 측면이 있지 않나 싶다.

손정욱 : 안철수의 안보다 조금 더 구체화된 건 분명히 있다. 특히 핵심적으로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까지 늘이겠다는 것은 기존 지역구 정치인들의 의석수를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한 기득권 포기이고 내부 힘겨루기가 예상된다는 면에서 평가할만한 부분이다. 다만 구체적으로 권력구조 개혁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간다는 것인지, 이 부분들을 국회 내에서 어떻게 설득해나갈 것인지, 요컨대 소위 말하는 '진정성' 부분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황종섭 : 긍정적인 부분은 안철수의 안을 받아 거기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주고받는 게 보여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정당이나 정치 관련해 거부감을 보이는 듯한 안철수 쪽에 비해 구체적으로 짚은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더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이안홍빈 : 저도 마찬가지로 안철수 안보다 구체적이고 비례대표제 얘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다만 세부적이라고 볼 수는 없는 만큼 안철수 쪽에서 더 세부적인 안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좋아 보였다.

조성주 :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킬러아이템(killer item, 핵심)은 아닌 것 같다. 안철수 후보도 청와대 이전이 킬러아이템은 아니지 않겠는가(웃음). 만약 양쪽 후보 모두 킬러아이템을 다 내놓았다고 한다면 굉장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모양새를 보면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주고받고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훨씬 더 충격적인 아이템을 내보일 경우 양쪽 다 망하는 것 아닌가. 솔직히 상황을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불안감과 우려가 들었다.

황종섭 : 선거구 획정, 국회 윤리특위 등 상대방 쪽에서 하나라도 물게끔 서로 여러 가지를 던지고 있다. 안철수 후보가 던진 기초의원 정당 공천 폐지에 대해 이번에 문 후보가 받았는데 서로 딴 얘기만 하는 것보다는 어쨌든 상대방이 말한 것에 직접적으로 대응해서 받고 나서 다른 얘기들을 진행시켜 나가는 방식이 긍정적으로 보였다.

김경미: 긍정적으로 보면 문과 안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정책이 맞물려 돌아간다는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권이 적당한 선에서 담합하는 것으로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국민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 같다.

이제 각론으로 들어가서 먼저 "적어도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의석배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라며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으로 늘리자고 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일동 박수, 환호)


조성주 : 유력 대선 후보 중 문재인 후보가 가장 먼저 비례대표제를 언급했다.

양호경 : 가장 불신도가 높은 국가기관 중 국회가 68% 불신도를 보였다는 <시사인>기사를 보고 '아, 정말 국회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과 불신이 높구나, 그래서 국회의원 늘리자는 얘기를 못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타협점이 300석 내에서 비례를 100석으로 늘리고 나머지 지역구를 200석으로 줄이는 안이 나온 것 같은데, 저는 그래도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논쟁을 좀 던져봤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조성주 : 안철수 후보가 얘기했으면 기득권이 없으니까 국회의원 정족수를 늘리자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을지 몰라도 민주당 소속의 문재인 후보가 언급하기는 부담됐을 것이다. 대신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구체적으로 100석이라는 숫자까지 언급한 비례대표제 확대는 어제 나온 정치개혁안의 가장 큰 성과이다.

이안홍빈 : 유력후보가 최초로 비례대표제 확대를 공언했다는 것은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다. 헷갈렸던 것은 소선거구제 하의 지금의 전국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서 후퇴하여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100석까지 늘린다는 것이 기존 비례대표제 의석마저 거대 정당들이 나눠 먹겠다는 식인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과연 무엇을 지칭하는지 분명하게 얘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히려 어제 나온 안이 숫자만 늘렸을 뿐 기존보다 후퇴한 것이 아닌지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자세한 안이 더 나와봐야 알 것 같다.

김경미: 현재 비례대표의석 54석을 100석으로 늘리자고 한 것에 대해선 다들 대환영인 것 같다. 하지만 의원정수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비례대표의석수를 늘리자는 말은 결국 그만큼 지역구 의석을 줄이겠다는 말인데 과연 현실 가능성이 있겠는가 하는 부분에서 의구심이 든다. 아무리 대통령의 의지가 높다고 해도 선거제도개혁안을 입안하는 것은 국회의 몫인데 자기 지역구가 없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기존 지역구 의원들이 과연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양호경 팀장이 이야기한 것처럼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해서 비례대표의석을 늘리는 것이 현실 가능성은 더 높지 않을까? 지역구 의원수는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의석을 늘리는 방안으로 말이다.

손정욱 : 그렇다. 스캔들을 무릅쓰고 정치권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청년들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얘기해보면, 사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선진국들 의원 수에 비해 절대 많은 수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기득권자들인 재벌, 관료, 정치인과 같은 집단들 중 일반 시민들이 그나마 통제할 수 있고 자신들의 목소리에 민감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집단은 정치인 그룹이다. 정치인들은 선거를 통해 견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일반 시민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일 유인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대 비례대표로 들어오신 환경노동위원회의 은수미 민주당 의원 같은 경우 재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의원으로 언론에 많이 나오고 있다. 비례대표 확대를 통해 이런 의원들을 국회 안으로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결국 공익을 증진시키는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뽑느냐의 문제는 또 논의하겠지만 공익을 중시하는 국회의원들이 많이 등원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정치불신이 특히 심한 우리나라에서 이런 목소리는 정치인들의 몫이라기보다는 시민들로부터 나름대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청년들이나 시민단체들이 목소리를 더 세게 내줘야 한다고 본다. 시민단체들이 자기들이 정당 역할을 하려고 하지 말고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을 국회 내로 많이 들여보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대개 인구수의 세제곱루트를 하면 적정 의원 정족수가 나오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364명이고, 선진국들을 보통 그것보다 많게 한다. 이런 여건들을 고려해 350명 정도로 국회의원을 늘리고 200석은 지역구로, 150석은 비례대표로 적극 검토하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조성주 : 사실 맞는 말이다. 1948년 제헌의회 시절보다 국민 한 명당 대표 의원수가 줄어들었다. 국민들의 이미지상 불신이 있다 하더라도 의원 정족수를 늘리는 것이 맞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의 개혁안이 지역주의 문제를 핵심으로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쉽다는 생각이다. 지역주의 타파가 한국 정치개혁의 중요한 문제이고 호남 기득권을 갖고 있는 민주당 입장에서 이를 제안할 명분은 있다. 다만 문제는 시민사회와 진보정당이 약화되면서 이러한 의제가 지역주의라는 기존 정당의 전형적인 논법대로 언급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본래 비례대표제 확대는 다양한 계급, 계층의 이익들을 대표할 수 있는 제도로 강력히 주장돼 왔다. 만약 원내 진보정당의 목소리가 있고 진보정당이 명분이 있었다면 의원 정족수 확대부터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까지 훨씬 더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회한도 든다.

황종섭 : 같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더라도 정당 불신이나 지역주의를 깨기 위한 수세적 입장에서 주장하고 있다. 실제 좋은 정치를 만들기 위한 적극적 차원이 아니라, 기존의 잘못된 정치를 교정하기 위한 방식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목소리를 담겠다는 의지와 목표를 가지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얘기한다면 350석이 되는 의원수 확대도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김경미 : 비례대표 의석 확대의 현실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이야기를 대차게 할 수 있는 진보정당이 없어 아쉽다는 말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 같다. 바로 이 지점을 안철수 후보가 공략할 수 혹은 공략해주면 우리로서는 정말 땡큐가 아닌가?

▲ 조성주 경제민주화2030연대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조성주
: 냉정히 얘기하면 안철수 후보는 제3정치세력으로서 기존 진보정치가 약화되고 기존의 진보정치가 주장하는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포지션에 서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예전 진보정치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었던 것처럼 안철수 후보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있다. 일례로 19대 총선 직전 선거구 획정 할 때에도 299석에서 한 석 늘리는데 민주통합당, 새누리당 의원들이 자기들이 얘기하면 욕먹으니까 진보정당에 찾아와서 당신들은 명분이 있으니까 얘기해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지금 안철수의 포지션이 그렇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다음의 구체적인 안을 낼 때 훨씬 구체적으로 나갈 수 있다.

김경미 :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워낙 강하다 보니 의원 정수를 확대하겠다는 말 자체를 할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우리가 지난 1회, 2회 비례대표제포럼 때 참석했던 시민사회단체들의 의견에서도 확인했듯이 비례대표의석을 늘린다는 전제하에서라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이다.

손정욱 : 현실 가능성이 중요하다. 선거 공약에는 없었지만 DJ, 노무현 정부 때에도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은 나왔으나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당선된 제도를 바꾸는 데 동의하기 어려워 번번이 좌절됐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제도 개혁이 대선과정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은 굉장히 반길만하지만, 진정성의 문제는 들여다봐야 한다. 대선이 끝나면 선거제도같이 전문적 이슈가 계속 핵심쟁점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따라서 최근 시민들이 선거제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상황을 얼마나 잘 활용하여 개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지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향후 대선과정에서 집중해야 할 부분이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은 국회 내에서 이런 개혁안이 통과를 위해서는 문재인, 안철수 양 진영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내 개혁 성향의 정치인들까지 연합전선을 펼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내 이러한 개혁 성향의 의원들이 누구인지, 현재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이들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도 고민하는 부분이 정치개혁의 현실 가능성을 부여하는 핵심 연결고리다.

김경미 : 잠깐 여기서 예전의 양정례 의원(전 친박연대 비례대표) 사례도 있고, 선거철만 끝나고 나면 나오는 비례후보 돈 공천 파문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례대표제가 정당 지도부에 의한 나눠먹기 식 혹은 부패의 온실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 부분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례대표제 확대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국민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을 것도 같다. 지난번 좌담에서는 이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이 부분을 좀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황종섭 : 방어적으로 얘기하면, 비례대표제에 부정부패가 있다고 하는데 지역구는 다른가, 사회 다른 영역은 다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즉 부정부패나 우리가 말하는 문제들은 비례대표제 제도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안홍빈 : 유권자가 후보선택권이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권역별로 당이 후보 명부를 제출할 때 비리문제 등은 내부적으로 걸러 해결할 수 있고 지역 유권자가 지지 정당과 후보를 표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인데 후보 선택권 박탈 문제로 호도하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비례대표제가 뭔가라고 사람들이 물었을 때 딱 명확한 설명이 안 나오니까 지금 이미지로는 비례대표제가 기존 정당들이 나눠먹기 식으로 비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어제 문재인 후보가 비례대표제에 대한 개념과 투명한 공천 과정에 대한 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러질 못해서 아쉽다.

양호경 : 비례대표제 자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있다 치더라도 비례대표제 명부 리스트로 대변되는 각 정당의 캐릭터, 특성, 계급 계층에 의해 정당이 평가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돈 공천 같은 선거 관행의 문제와 별개로 비례대표제 주장 자체에 대해서는 공격적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경미: 설명 고맙다. 이제 좀 더 세부적인 논의로 들어가 보자. 문재인 후보가 권역별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이야기했는데, 여기서 권역별이란 점이 걸린다. 사실상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외견상 호남에서 새누리당이,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이 배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지역주의가 일면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나눠먹기로 그칠 공산이 크다. 양당의 지역 프리미엄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국민들에게 지역주의가 해소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거다. 그 점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손정욱 : '권역별'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지점은 비례대표의 표 배분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눠서 하느냐이다. 권역이 많아질수록, 즉 선거구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비례성은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도 지난 1994년 선거제도 개혁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총 500석의 의석 중 300석은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로, 200석(향후 180석은 감소)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뽑는 것이었다. 이때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경우 전국을 무려 11개의 권역으로 나눠서 비례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미완의 개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수정당의 과소대표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독일의 경우, 정당 명부 작성은 권역별로 하지만 전체 의석수를 결정하는 것은 전국 차원에서 얻은 비례대표 득표에 따른다.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하여 비례대표 의석수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만큼 비례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핵심은 명부 작성을 권역별로 하느냐의 여부보다는 비례대표 전체 의석수의 결정 기준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눌 것인가에 있는 것이다.

현재 문 후보가 제시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전체 의석을 결정하는 권역을 가급적이면 전국 수준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안홍빈 : 지역주의와 비례대표제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비례대표제의 핵심은 지역주의 해소라고 볼 수는 없다.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긍정적 의미는 그것의 본래의 의미인 대표성을 실현하는 데 있으며 개혁적인 정당의 출현과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현재의 지역구 의석을 200석으로 두고,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으로 약간 늘린다고 해서 이것이 지역주의 구조를 해결하지는 않는다고 보인다. 게다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지칭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면이 보인다. (1)명부작성 및 의석배분 단위 모두 권역별로 하는 방식인지, (2)명부작성은 권역별로 하되, 의석배분은 전국단위로 하는 방식인지, (3)명부작성 및 의석배분 모두 전국단위로 하는 방식인지, 문 캠프에서 확실히 밝혀주었으면 한다.

김경미 : 그런데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정치 문제의 핵심을 지역주의라고 본 것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사실 지역주의 문제는 이미 어느 정도 완화되고 있지 않은가. 지역주의 자체가 아니라 지역주의를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정치권이 문제가 아닌가. 오히려 지금은 정당이 지역이 아닌 정책과 이념, 계층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한데, 권력별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여전히 거대 정당들의 과대대표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책과 이념 중심의 정당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진 않을까? 지금은 출발선에 서 있으니까 권역별 정당명부제 비례대표제이냐, 전국 단위에서 정당명부제 비례대표제이냐가 서로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막상 달리기 시작하면 서로 각이 크게 벌어질 텐데. 이런 점에서 문재인 후보가 기존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그대로 답습해, 권역별 혹은 전국단위별 비례대표제 차이에 대한 고민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 황종섭 진보신당 서울시당 교육조직부장 ⓒ프레시안(최형락)
황종섭
: 지역주의는 사회과학을 통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식인 것 같다. 지역주의 극복을 자신들의 과제로 설정하는 데 있어 '맞다, 아니다'의 문제는 아닌듯하다.

이안홍빈 : 지역주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문제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문재인 캠프에서 나와 줘야 할 것 같다.

손정욱 :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게 지역주의는 이미 상당히 완화되고 있고 어떤 면에서 허구일 수 있다. 보통 지역주의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로 선거 때 영남당, 호남당 싹쓸이를 얘기하는데, 실제 득표율을 보면 영호남 구분이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다. 예컨대, 19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개표 결과를 보면, 부산의 51%만이 새누리당을 찍었고, 울산에서도 새누리당은 49.5%에 불과하다. 단지 선거제도에 의해 이 지역의 새누리당이 과다대표되고 있을 뿐이다. 반대로 호남에선 민주당이 그렇다. 이처럼 지역주의는 만들어진 개념일 수 있고 실제로 점점 약화되는 현상이다. 사실 한국정치의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지역주의 타파라기보다는 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정치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질적인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문제 해결이 정치적인 쟁점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민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하면 정당정치와 연결되고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하고 이러한 문제 해결의 키는 바로 비례대표제라는 것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맞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후보가 지역주의 타파로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연결시킨 것은 제고할 필요가 있다.

조성주 :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 지점에서 후퇴라고 생각한다.

황종섭 : 이러한 명료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쪽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쪽은 지역주의를 일종의 신앙처럼, 지역주의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우려스러운 점은 지역주의 해결에 방점을 찍을 경우 비례대표제로 지역주의 해결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비례대표제가 부정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김경미: "정치가 기득권과 특권을 내려놓는 것이 새로운 정치의 시작일 수밖에 없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이외의 권한을 갖지도, 행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헌법에 따라 책임총리와 권한을 나누겠다"에서 기득권과 특권을 내려놓는 첫 시작으로 책임총리와 권한을 나누겠다고 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 불리던 한국형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어떤 면에선 분권형 대통령제의 특징을 현 대통령제하에서 실현해보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지속가능할 수 있겠느냐에 있다. 특정 정치인의 품성이나 소신 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지도자가 나왔을지라도 이것이 가능할 수밖엔 없도록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러려면 결국 분권형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로의 전환까지도 염두에 둔 제안인지가 궁금하다.

손정욱 : 기본적으로 선거제도 개혁은 권력구조, 정당체제와 맞물려 돌아가므로 권력구조를 안 다룰 수 없을 것이다. 내각제는 다소 이상적이라고 한다면, 책임총리제를 발전시켜 분권형 대통령제로 간다고 했을 때, 어떤 것을 먼저 할 것인지 개혁의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문 후보의 제안이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는지 여부가 진정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사회경제적인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못하는 현재의 선거제도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분권형 대통령제 등 권력구조만 바꾼다면 개혁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 경우 지역구 유력 정치인들은 특정 지역 내에서 일정 지분만 확보하게 되면 연립정부에 가담할 수 있게 되므로 결국 인물 중심의 과두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여전히 시민들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욕구가 제도적으로 반영되기 어렵기 때문에 먼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이 선행되고 이에 가장 잘 맞는 권력구조를 고민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조성주 : 공감되는 측면이 있다. 아쉬운 점은 지난 노무현 정부 말기에도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처럼 권력구조 개편이 차기 대선경쟁에서 유력후보가 있을 때 일종의 권력 분점의 형태로 고민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순서는 책임총리제든, 분권형 대통령제든 책임정치와 시민들의 욕구를 어떻게 정치에 반영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사실상 대선 일정과 후보를 염두에 둔 측면이 있어 많이 아쉽다

이안홍빈 : 그럼 어느 정치인이 기득권과 특권 그대로 가져가겠다고 말하겠는가. 교과서적인 답변으로, 지난번과 같다. 이제까지 많은 정치인들이 책임총리제를 이야기했지만 선심성 공약에 불과했다. 2004~2006년을 책임총리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총리 조직권이 전적으로 대통령에게 속해 있은 데다 장관에 대해 제청·해임권을 행사했다기보다 그저 상당한 재량권을 누린 정도여서 책임총리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결국 책임총리제가 성립하려면 대통령의 선한 의도에 기대선 안 되고 총리의 권한과 책임을 보장하는 법·제도적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헌법상 총리에게 보장된 고유한 권한을 법률로 구체화 하겠다는 공약이 나오기 전까지는 안철수 후보와의 협정을 염두에 둔 발언 정도가 아닐까 싶다.

김경미 : 정리해보자면 개혁의 순서와 방향을 설명할 수 있는 로드맵의 제시 없이는 책임총리제든, 분권형 대통령제든 유력후보들 사이에서 나눠먹기를 위한 사전 포섭으로 보일 수 있다는 말인 것 같다. 실제로 지금까지 경우를 살펴보면 선거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급하게 개헌 논의를 전개했을 경우 선거제도개혁은 항상 개헌 논의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이안홍빈 : 헌법 개정 없이 선거법 개정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먼저 바꿔야 한다. 사람들이 먼저 많이 요구해왔던 것들을 건너뛰고 대통령 중심제를 바꾸자는 개헌논의는 선언적인 말이 돼버리지 않을까.

양호경 : 그래서 나온 것이 책임형 총리제가 아닌가 싶다. 찾아보니까 7월에 문재인 후보가 예비후보였을 당시 사견임을 전제로 내각제로 하는 게 맞다고 한 것을 봤다. 헌법 개정을 오픈해버리면 수많은 논쟁이 시작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여론의 거부감을 반영해 이해찬, 김종필이 했던 그 정도의 책임총리제를 정치적 워딩으로 제시한 것 같다. 한계는 있지만 스텝을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조성주 : 문재인 캠프에서 나오셨나요?(일동 웃음)

황종섭 : 문 후보 쪽에서 실제 개혁의 순서나 로드맵을 고민한 것 같지는 않다. 글의 구조를 보면 세 파트가 그냥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양호경 : 아! 제가 너무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 같네요.(일동 웃음)

김경미 : "선거 때 급하게 꾸려지는 공천 심사위원회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민주통합당은 공직후보 공천권을 국민에게 완전히 돌려 드리겠다. 비례대표 공천도 마찬가지이다"라고 한 부분에서 선거 때 급하게 꾸려지는 공천 심사위원회 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면은 매우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공직후보와 비례대표 공천권을 국민에게 완전히 준다는 것이 정당민주주의 측면에서 마냥 긍정적이기만 할까. 국민완전경선제 말고 다른 방안은 과연 없는 것일까?

이안홍빈 : 기본적으로 의회의 비생산성에 대한 반감에서 오는 포퓰리즘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판단되는 대목이다. 책임정치를 위하여 정당이 해야 할 일이고 바른 대의정치를 위한 견인의 역할을 시민에게 떠넘기지는 마라. 다만, 국민완전경선을 할 경우 그 후속에 대한 심사위 등의 기구에도 국민이 참여할 수 있다면 하시라.

황종섭 : 지금의 민주통합당이나 새누리당 모두 국민을 상대로 모든 계급과 계층을 포괄하려는 관점에서 국민경선과 국민공천을 내세우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국민을 우리 당의 잠재적 당원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고 본다. 대신 계급,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려는 정당은 그에 맞는 방법과 후보를 찾으면 되는 거고 그런 경우에 완전국민경선제 등을 통해 인기영합적인 후보를 세우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진보정당은 전통적으로 당원들의 투표로 공직후보자를 선출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이 추구하는 모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양호경 : 정당이 국민정당화 돼버리면 정당이 불분명해지는 것 같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민경선,모바일 투표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 불신의 연장 선 상에서 기존 공심위 자체가 너무 폐쇄적이고 쪽지 리스트 추천 등 정당정치가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해되는 측면은 있다. 민주통합당 당헌, 당규를 보면 청년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선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정당은 국민들 중 누구를 대변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누구를 대변할지에 대한 대표성이 비례대표 명부로 나오는 것이고, 노동, 여성, 장애, 청년 등 다양한 직능, 세대, 계층, 지역 대표를 비례 명부로 넣어서 국민으로부터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비례대표 리스트를 작성해서 이를 당원투표에 부치는 방식을 고민해야지 정당이 너무 국민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아니지 않나 생각한다.

황종섭 : 책임 정치 측면에서 국민경선에서 뽑힌 경우 정당 내부에서 책임정치가 실종될 우려가 있다.

이안홍빈 : 저는 참여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정당에 대한 무관심이 많은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을 참여케 하는 것이 깊은 고민 없이 나왔다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다만 이런 식으로 열어놓은 경우 후속 조치로 공직자 후보 심의나 인사청문회 등에는 참여할 수 없게 하면서 뽑을 때만 시민들이 참여하게 하는 것은 문제지 않을까 한다.

황종섭 : 저는 반대로 국민 경선의 경우 당의 콘트롤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노무현 정부 시절 당·청분리 등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번에 문재인 캠프에서 오히려 당 중심으로 책임정치를 해야겠다는 내용들이 보여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음 정권의 책임은 문재인 후보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에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고 책임정치를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들을 찾는 것이 지금 같은 무책임의 시대에는 더욱 중요하다.

▲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팀장 ⓒ프레시안(최형락)
양호경
: 대한민국이 여전히 인물 정치를 강조하고 대통령을 뽑을 때도 과도하게 인물중심 선거로 가는 것은 매우 우려된다. 그런 차원에서 정당이 중심이 되는 책임정치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

김경미 : 지금껏 살펴본 바에 따르면 문재인의 정치개혁안은 미흡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기존의 정치개혁안에 비해 매우 진일보한 안인 것 같다. 사실 민주당이 이 정도의 개혁안이 나오게 된 것엔 자기들이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결국 선택받지 못하겠구나라는 압박이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점에서 안철수 후보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당보다 더 진일보하고 구체적인 정치개혁안이 나오지 않으면 정치개혁을 요구해왔던 안철수 후보의 진심이 의심받게 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제 공이 문재인 후보에게서 안철수 후보에게로 넘어간 것 같다.

조성주 : 공이 안철수 쪽으로 넘어갔다기보다는 시민사회로 넘어간 게 아닌가 싶다. 정치개혁 문제가 이렇게까지 논의된 적이 없었는데 한국 정치발전의 중요한 기회가 되는 이때 적극적인 시민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현재 문과 안 양쪽으로 시민사회세력이 빨려 들어가 버려 장외의 여력이 달리는 문제가 있다. 양쪽을 견인하고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이 부족한 것이 매우 아쉽다. 장내에서는 안철수 후보 외에도 심상정 후보의 역할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 진보정치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정치개혁이슈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상정 후보 쪽이 어떤 방향으로 뛰어들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다.

김경미 : 어떤 측면에서는 심상정 대선후보나 기존의 진보진영에게 이번이 기회라는 이야기인가?

조성주 : 정치 개혁의 가장 큰 동력은 진보정치의 성장을 토대로 진행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상황은 많이 아쉬운데, 대선 후보로 나왔다면 정치개혁 논쟁에 있어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경미: 녹색당, 진보정당 사람들이 조직적 운동은 차치하더라도 유력 대선 후보들 트위터에 멘션을 보내거나, 페이스북 담벼락에 글이라도 남기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이안홍빈 : 아직 미약하나마 녹색당도 10만 명 이상의 지지를 받았던 진보정당으로서 견인의 역할을 함께해야 할 것 같다. 시민사회가 문 캠프, 안 캠프로 많이 흡수되어 대선 캠프에 함께하지 않는 비판적 지지나 압력을 줄 수 있는 시민사회세력이 약해진 것 같아서 걱정이다.

황종섭 : 이거다 싶은 이슈가 있다면 던지고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당내 복잡한 상황이 있어 죄송하다.

김경미: 정당의 존립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현 상황에서 이 문제까지 들여다보기가 너무 어렵다는 말 정말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례대표제 확대의 경우에는 진보정당의 존립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기의 밥그릇을 챙기겠다고 주장하는 것 같아 민망하다는 이들도 있는데, 그럼 어떤가. 정책과 이념 중심의 정당이 나와야 하는 게 사실 아닌가. 그런 면에서 진보진영이 이야기해줘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진보진영의 야성이 너무 그리운 시점이다.

손정욱 : 문재인 후보의 정치개혁안이 나온 시점에서 이제 어느 정도 안철수 후보에게 공이 넘어왔다고 본다. 어쨌든 비례대표제라는 전문적인 이슈를 대선 국면에서 유력 대선후보가 내세우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반길만한 일이다. 포문을 안철수 후보가 열었고 문재인 후보가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한 상황에서, 이제 11월 초 즈음으로 예정되어 있는 안철수 후보의 세부 정치개혁안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안철수 캠프가 좀 더 구체적이고 개혁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이것이 단일화의 조건이 된다면, 선거제도 개혁 이슈가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반길만한 상황이 아닌가 한다.

황종섭 : 정치 개혁 관련 기사를 보면 의제를 뽑는 것이 천차만별이다. 여기서 경중을 가려 계속 짚어줘야 이슈파이팅이 될만한 이슈 위주로 싸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조성주 : 그래서 장외에서 그런 역할을 계속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오는 29일 있을 비례대표제 포럼이 중요하다.

김경미: 사실 문재인 후보가 "정치개혁 과제에 대해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께서 동의한다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함께 입법할 것을 제안한다"라고 이야기 한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개혁은 야권의 힘으로는 안 된다. 새누리당의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그룹들도 함께 해야 한다. 박근혜 후보도 정말 정치개혁을 원한다면 이 안을 못 받을 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 원희룡 전 의원님의 경우도 비례대표제포럼이 만들어질 때부터 함께 하셨고, 남경필 의원이나 '민본 21' 같은 개혁그룹도 있는데, 새누리당에서 이 안을 받을만한 그룹이 있는지 궁금하다.

손정욱 : 지금 정치쇄신특위가 구성되고 있는데 문재인, 안철수 쪽처럼 다양한 개혁안들은 나오지 않고 있다. 18대 국회에서 '민본 21'과 같은 당내 개혁그룹이 19대 국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나마 그런 역할을 할 것 같았던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은 최근 동력이 상실된 느낌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개혁적 중도 보수 그룹의 필요성이 높은 시점에서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원희룡, 남경필 의원 등 원내외에서 합리적인 중도보수 그룹 중심으로 이슈파이팅을 해야 하는데 좀처럼 그 공간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그룹 내부 문제일 수도 있고, 중도 진보나 진보 그룹과 유기적인 연결이 되지 않는 외부 문제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경미: 선거제도개혁이 야권의 이슈라고 생각해서 그럴까? 정말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손정욱 : 보수 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 기득권 그룹 대 개혁 그룹의 대결 구도가 맞는 표현인 것 같다. 80년대 말 보수-수구 그룹들 간 3당 합당이 있었다고 한다면, 현재는 진보-중도진보-중도보수 이 세 그룹들이 기득권 그룹의 카르텔을 깰 수 있는 새로운 개혁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 차원에서 어쩌면 합리적 중도보수 그룹의 등장이 정치개혁의 키를 갖고 있는 걸 수도 있다.

조성주 : 안의 중점은 삼권분립인 것 같은데 문의 주제는 기득권 타파나 지역주의 극복인 건지 포인트가 헷갈린다.

▲ 비례대표제 청년포럼 멤버들 ⓒ프레시안(최형락)

김경미 : 좌담을 마무리하면서 결국 문제는 실현 가능성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후보의 모두 발언 후 '새로운정치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정해구 교수의 "실현 과정에서 여야가 협의해야 하는 것도 있고, 대통령 당선자가 집행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또한, 여러 국민들이 정치개혁을 하도록 촉구하는 문제도 있다"라는 발언이 매우 주의 깊게 들렸다. 이 말은 결국 우리 혼자서는 못한다. 그러니 정치개혁라는 대의에 동의한다면 여, 야, 국민 모두 화답해 달라며 안철수 캠프를 포함한 야권과 여당,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공을 던진 게 아닌가 싶은데, 이참에 시민사회가 비례대표 의석 확대를 전제로 한 의원정수 확대 등 정치개혁 논의를 적극적으로 이끌었으면 좋겠다.

조성주 : 결론적으로 말하면 문재인도 약하게 나온 것이다. '안철수의 저주'다. 서로 탐색전만 계속하고 있다. 정치개혁의 열망이 식어가는 쪽으로 가는 우려 지울 수 없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가장 큰 포인트고 나머지는 이 정도 수준으로는 많이 아쉽다고 볼 수 있다.

황종섭 : 헌정회 연금 등 이런 걸로 싸우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저는 안철수가 비례대표제를 받을건지 매우 회의적이다. 안철수의 1차 정치혁신안을 보면 이 문제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조성주 : 정치개혁다운 정치개혁안으로 나온 것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정도다.

황종섭 : 그 외 나머지는 차별화할만한 쟁점이 보이지 않는다.

손정욱 : 총평으로 비례대표제 100석 확대 방향은 비교적 적절하다고 본다. 안 후보 측에서 이 방향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얼마나 이것을 발전적으로 받아 새로운 안을 내놓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문 후보는 그동안 번번이 좌절됐던 이 안을 이번엔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로드맵을 향후에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그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이 지켜보자.

(정리 : 정치경영연구소 김경미, 윤예지)

[취지문]

비례대표제 청년포럼은 비례대표제 포럼의 청년그룹으로서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라는데 동의하는 개인, 청년단체, 시민사회단체, 언론사, 정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례대표제 포럼에서는 청년들이 다양성이 인정되는 속에 합의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례성, 다양성, 공정함이 보장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이를 위해 비례대표제 확대를 얼마나 고대하는지, 조금은 거칠지만 생생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열망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정치의 해인 2012년에 비례대표제 확대가 우리 사회 주요한 사회적 아젠다로 자리매김하는데 청년들의 이 작은 몸짓들이 마중물이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하며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연재를 시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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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슈퍼스타K가 아니다
-구럼비 파괴되던 날, 나는 비례대표제를 고민했다
-이게 선거인가! 이게 사는 건가!
-그래서 결국 경제 민주화는 누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야권연대 '협박의 정치'를 끝내라
-국회의원 복지부터 스웨덴식으로 바꾸는 건 어떨까?
-통진당 사태는 선거제도의 슬픈 자화상
-국회의원 특권만 줄이면 좋은 정치 되나?
-"투표 2030" 목소리는 왜 실종됐나?
-이재오 "국회의원을 200명으로 줄이겠다"고?
-기초의회, '풀뿌리 정당제'가 답이다
-통진당 사태가 한국 정치에 남긴 긍정적인 효과?
- "안철수, 이 정도밖에 안되나? 기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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