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공동체적 나눔이 충만하며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하나된 한반도를 열어가는 기독교 싱크탱크'를 표방하는 한반도평화연구원(KPI)의 칼럼을 전재·소개합니다. 한반도평화연구원(원장 윤영관 서울대 교수)은 '냉전시대 좌우의 이념대립을 지양하고 탈냉전 평화의 한반도를 분석한다'는 취지로 2007년 설립됐습니다. 연구원 홈페이지()에는 <프레시안>에 소개된 칼럼 외 각종 글과 자료가 게재되어 있습니다. <편집자> |
클린턴 국무장관 방한
힐러리 클린턴(Hillary R. Clinton) 국무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북핵문제와 한미FTA를 둘러싼 한미관계의 전망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고 있다. 2008년 한미 쇠고기협상이 초래한 촛불시위에서 보듯 한미관계는 즉각 국내문제로 전화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금번 방한에서는 한미정부가 크게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는 FTA 문제를 피해 북핵문제에 집중하면서 일단 양국은 동맹결속을 다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단일 품목에 불과한 쇠고기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한미FTA와 북핵문제가 걸려있어 한미관계는 어느 때보다 중대국면을 맞고 있다.
이 말은 그냥 중요한 시기라는 의미가 아니라 한미관계의 역사에 비추어보아, 동시에 한국의 선택 여하에 따라 그러하다는 것이다. 먼저, 힐러리 장관의 말과는 크게 다른 최근 워싱턴의 복합 시그널처럼, 미국이 '북핵폐기' 전략이 아니라 '북핵인정 및 비확산' 전략을 포함한 이중정책을 사용할 때 남한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오바마 정부가 '북핵폐기-북미관계정상화'와 '북핵인정-비확산-북미관계현상유지'의 이중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한 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한미, 또는 남북긴장을 야기할 것임에 틀림없다.
▲ 20일 청와대에서 만난 이명박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청와대 |
미국의 북핵 이중전략과 한미FTA 반대
2009년 초 게이츠(Robert M. Gates) 국방장관은 <포린 어페어스 Foreign Affairs>지 기고에서 북한이 이미 수 개의 핵폭탄(several bombs)을 개발했다고 언명,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였다. 미국은 국가정보위원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의 2025년 세계장기추세 전망<Global Trends 2025 - A Transformed World (Nov.2008. NIC2008-003)>에서 북핵 프로그램 종식을 위한 외교노력을 계속하겠지만, 북한 핵시설과 핵처리 능력은 그때까지도 불확실하게 남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리언 파네타(Leon Panetta) CIA 국장 지명자와 샤프(Walter Sharp)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 역시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고 있다. 군, 정보, 국방 고위 기관과 책임자들의 일련의 발언은 우리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북핵인정'으로 가고 있는 추세이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포함한 정치, 외교관련 인사들은 여전히 북핵폐기를 위한 원칙과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마치 외교-안보 분야의 역할분담, 또는 관계 관료들 간의 갈등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미국 자체가 이렇게 갈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으로서는 북핵폐기와 북핵인정, 둘 중 어떤 노선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반면 한미FTA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는 오바마 정부로부터 반대 내지는 강경한 재협상 요구에 직면해있다. 이 의제는 미국의 입장이 거의 일치될 뿐만 아니라, 정치와 의회, 외교 부문에서는 오히려 더 강경하다. 이를 고려할 때 한미FTA 비준을 둘러싼 지난 연말연시 한국 국회와 사회의 혼란은 정부의 오판으로 인한 무위의 진통이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FTA 문제에서 강경한 반대 또는 재협상을 주장하는 오바마 대통령, 클린턴 국무장관, 민주당, 의회 지도자들, 즉 대통령-외교-의회 모두를 과연 극복할 수 있는가? 그런 반미노선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대선과정부터 시작해 부분적인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보이는 오바마 정부의 한미FTA 정책에 비추어 이명박 정부는 중대 난관에 직면할 것이 분명하다.
이명박-오바마 조합과 김영삼-클린턴 조합
현재의 추세를 볼 때 오바마 정부는, 북핵문제는 폐기 일변도가 아니라 폐기와 인정의 이중 전략을, 한미FTA는 반대 또는 재협상으로 방향 잡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둘 모두 이명박 정부와 반대 방향으로 가려할 때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념적 성격과 대미, 대북 정책방향이 유사했던 김영삼 정부는 안보영역의 북핵문제에서는 북미제네바합의에서 보듯 논의배제와 대북경제지원 부담을, 그리고 경제영역의 세계화에서는 외환위기로 귀결된 바 있었다. 지난 사례에 비추어 우리는 이명박 정부가 처한 한미관계의 위험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볼 수 있다.
만약 오바마 정부가 '한미FTA 재협상'과 '북핵인정' 카드를 끝까지 관철하려 할 때에도 '비핵개방3000'과 '한미FTA 재협상 불가 및 조기체결'을 계속 추구한다면 이명박 정부로서는 경제와 안보의 최대현안에서 오바마 정부와 정면 대립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는 모든 종류의 미국정책에 대한 반대를 반미와 동일시하고 반미는 금기시하여 미국과는 충돌하지 않았다. 만약 정부 차원의 한미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이명박 정부는 시민사회의 저항을 활용하여 국가이익을 확보할 전략과 역량이 있는가? 장면, 전두환, 김영삼의 사례에 비추어 그럴 가능성 역시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표면적으로 이명박-오바마 조합은 김영삼-클린턴 조합의 속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남북관계의 악화로 인해 북핵문제가 북미주도에 의해 해결될 경우, 남한은 결코 그렇게 타결된 북핵해결에 반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핵문제가 타결되더라도 김영삼-클린턴 시기처럼 북핵해결과 남북관계의 그 어느 것에서도 주도하지 못한 가운데 경제적 부담만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정치사가 보여주듯, 제압이 아니라면 관여(engagement)를 통한 관계개선 없이 상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한미정부 조합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금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한 반미전술이나 벼랑끝 전술을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한미동맹의 정초를 놓았던 이승만의 사례와 비교해 보자. 친미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이명박 정부가, 이승만이 정부수립, 미군참전, 종전, 한미동맹체결의 결정적 국면에 그러했던 것처럼, 그토록 중시하는 북핵저지와 한미FTA 체결이라는 국익을 위해 이승만과 같은 반미전술을 사용할 의지와 능력과 카드를 갖고 있을까?
반미-친미 이념 대립을 넘어
클린턴, 부시와 대면하였던 김대중, 노무현과의 비교는 말할 것도 없고, 이승만과 이명박의 비교는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이승만-아이젠하워의 갈등과 김대중-클린턴의 조화의 관계에서 이승만이 보였던 반미와 김대중이 보였던 친미적 모습은, 한국의 국익을 확보하는 문제는 결코 친미-반미의 이념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보수는 친미, 진보는 반미라는 규정은 보수주의자가 만들어낸 허구이지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처럼 기존의 정책을 고수할 때 이명박 정부는 한미관계에 관한한 최악의 두 사례였던 전두환과 김영삼의 결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두환은 정부 차원에서 친미, 한미동맹을 강조하였지만 국내 반미주의를 양산하여 심각한 저항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부가 미국에 대해 적절하고 균형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땐 시민사회가 더 급진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점을 전두환 사례 및 이명박 정부 쇠고기파동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처럼 북핵 및 FTA 정책기조를 고수하면, 국익을 위해서 반미적인 정책이나 언사를 조금도 하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과는 북핵, FTA 모두 갈등을 빚거나(=반미관계) 아니면 수용할 수밖에 없지만(=친미관계), 양자 모두 국내의 반미주의를 확산시키는 조합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필자 자신이 아무런 이념적 입장을 갖지 않은 가운데 이명박 정부가 설정한 틀을 놓고 예상한 객관적인 결과일 뿐이다.
친미, 반미의 문제는 독립적인 국제외교 문제가 아니다. 구한말에 친청, 친일, 친러, 친미 세력의 분화가 국내정치지형의 연장이었으며, 전후 한국에서도 외교문제는 국내정치지형이나 세력관계의 연장이었다. 즉 친미 반미의 문제는 곧 국내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친미 반미를 넘는 초당적 대안 모색이 절실한 연유는 이로부터 주어진다. 이명박 정부가 국가이익을 위해, 서독의 콜(Helmut Kohl)과 중국의 마오쩌둥이 그렇게 했듯, 자기 지지기반을 배반하면서까지 국가전략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즉 미국에 대해 그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북한에 대해 화해협력노선을 선택할 가능성이 존재하는가?
대미자존과 대북화해 노선을 추구할 경우 이명박 정부는 국내 지지세력의 저항을 감수하고 설득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할 의지와 역량이 없어 보인다. 만약 그렇게 할 경우 그것은, 독일과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 상당한 성과를 낼 것임에 틀림없다. 보수정부로서 국내에서는 보수 진보의 통합에 성공할 것이고, 북한은 그 온건정책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 역시 기본적으로 오바마 정부가 온건정책을 추구하는 정부라는 점에서 지지할 것이다. 세 방향에서 지지를 받으며 정책을 추진하게 되는 것이다.
국제인식과 전략은 궁극적으로 내부 정치지형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칸트의 혜안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왜 공화적, 민주적 정부가 더 평화지향적인가, 국익지향적인가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독일통일·미중수교의 교훈, 일관성
분명한 점은 냉전해체, 한국성장, 북한추락 세 요인으로 인해 한미관계는 더 이상 과거의 특수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배려 받을 특수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냉전시대 지정학적 이유로 한국전쟁과 남북대결에서 누렸던 영국, 일본, 이스라엘에 버금가는 지위는 현재 지속되고 있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대미정책 근간과 충돌하는 워싱턴의 북핵인정 가능성의 시사와 한미FTA 재협상요구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과거와 같은 특수지위를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과연 이명박 정부는 어떤 국가전략을 통해 북핵폐기 및 한반도평화, 한미FTA 해법을 통한 국익확보의 비전과 능력을 보여줄 것인가?
이는 '한미동맹 복원'과 같은 이데올로기성 언어의 공허한 반복을 통해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 오바마는 이미 대선과정에서부터 "외교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고 강조해왔다. '반북친미', '비핵개방3000'은 '현실'이 아니라 남북화해협력 정책을 반대하고 비판하기 위한 '선거구호'요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는 수년전 독일에서 통일을 주도한 겐셔 외무장관과 만나 얘기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독일이 국제사회, 특히 미국과 소련, 유럽, 동독을 모두 만족시키며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차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빌리 브란트 이래로 이어진 정책의 일관성이었다고 말했다. 이념적 성향에 따른 좌우 널뛰기를 하지 않은 일관성으로 인한 국제사회와 상대방, 국민의 신뢰가 결정적이었다는 것이다. 독일 통일의 요체를 듣는 느낌이었다.
미중관계를 개선한 덩샤오핑과 카터의 업적 역시 마오쩌둥과 닉슨의 정책을 지속한 일관성이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클린턴을 전면 부정한 부시, 김대중-노무현을 전면 부정한 이명박 정부의 결과는 어떤가?
회의에서 희망으로
어떤 정책도 완벽할 수는 없다. 따라서 수정과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앞선 정책에 문제가 있으면 일관성을 잃지 않는 가운데 신중한 사려에 바탕 해서 소리 나지 않게 수정과 교정을 통해 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이, 콜과 덩샤오핑의 예에서 보듯, 국익과 공존을 가져다주는 '외교'이다. 특정한 이념구호와 이데올로기를 좇아 앞의 것을 소리 높여 전면 부정한 뒤 "나는 이런 노선을 갈 테니 따라올 테면 따라오고, 아니면 관계단절을 감수하겠다."고 하는 것은 바보스런 외교 책략이자, 문제를 풀 수 있는 선택도 전혀 아니다.
단일 품목 쇠고기 하나를 놓고도 한미관계 및 국내정치가 이중의 수렁상태에 빠져들었던 경우에 비추어,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하고 큰 문제인 북핵폐기 및 한미FTA를 둘러싼 전망은 더욱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서 이명박 정부의 능력과 전망에 대한 필자의 이 회의가 오류로 판명되어 희망으로 바뀔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현재의 회의를 미래의 희망으로 바꿀 현정부의 정책변화를 갈망하는 이유는, 그것 없이는 국가이익도, 한반도 평화도, 한미동맹강화라는 복합 목표를 성취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곧 출간될 <<역사비평>>86호(2009년 봄) 필자의 논문 결론 부분을 축약하고 수정 가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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