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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상시 재난 지역' 포르토프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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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상시 재난 지역' 포르토프랭스 [신음하는 아이티]<3> 흑백의 도시, 지진은 무엇을 바꿔 놓았나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한 이튿날 오전, 최대 피해 지역을 찾아 나섰다. 지진이 발생한 지 만 엿새째가 되는 날이었다.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렸지만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생존자가 발견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큰 재난이 할퀴고 간 지역은 대개 특정 지대에만 피해가 집중된다. 언론들은 대개 그런 곳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기 때문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기 일쑤다. 포르토프랭스의 지진 역시 그럴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렇게 넘겨짚는 것이 오히려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숙소를 나오는 순간부터였다. 포르토프랭스는 '집중 피해 지역'이 없고,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재난 지역이었다. 외신에서 접한 그 모든 장면들이 단 1분도 끊이지 않고 눈앞에 그대로 펼쳐졌다.

▲ 아이티 최대 공단인 소나피 공단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아침부터 모여 있다. 이곳에서 구호 식량을 나눠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황준호 기자

병원과 시내 곳곳에 방치된 시신들

주민들은 아침 일찍부터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포르토프랭스 300만 시민들이 거의 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듯했다. 직장으로 향하는 사람, 하루 벌어먹는 일자리라도 있을까 해서 가보는 사람, 구호 식량을 준다는 소문이 있는 곳으로 가는 사람, 그냥 나와 있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분주히 걸어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픽업트럭을 개량해 만든 '탑탑'이란 차에 더덕더덕 붙어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국 정부 구조단이 머물고 있는 시티 솔레일 지역의 발전소 부지 앞에도 200명 가량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발전소에서 인력을 필요로 하거나, 먹을 것을 줄지 모른다는 기대로 마냥 서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발전소 건설 사업은 지진 이후 잠정 중단된 상태다.

▲ 대통령궁 주변의 이재민 캠프. 이런 장면은 도시 전체에 널려 있다. ⓒ프레시안 황준호 기자

중앙 119구조대와 적십자 의료진이 구호 활동을 떠나는 걸 본 뒤 곧장 대통령궁으로 향했다. 아이티인들이 자랑으로 여긴다는 대통령궁은 사진에서 본 것처럼 처참히 무너져 있었다. 부근에 몰려 있는 중앙 정부 기관 건물들도 거의 다 가라 앉아 있었다. 행정타운 같은 이 곳은 하나의 널따란 공원이었다. 그러다보니 수천 명의 이재민들이 이곳에서 가족 당 천막 한 두개에 의지한 채 생활하고 있었다.

대통령궁 앞에서는 중국 구조대가 베이스캠프로 삼을 천막을 치고 있었다. 그러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을 지나던 기자에게도 몇 사람들이 따라 붙었다. 지진으로 여동생 두 명과 조카 하나를 잃었다는 루이스(48)는 "먹을 것이 부족하다. 물을 달라"는 말을 연신 외쳤다.

구정물 같은 물로 목욕이나 빨래를 하거나 음식 재료를 씻는 사람들, 숯불에 죽을 끓이는 여인들, 무언가 조악한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 누렇게 변한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부상자들, 카드놀이를 하는 어린 형제들, 일회용 쟁반으로 연을 만들어 날리는 아이들,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얘기하는 사람들… 이재민촌은 아수라장이었다. 위생이나 질서란 말은 성립되지 않는 곳이었다. 현지 가이드인 제롬(30)은 그 일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은 동산으로 기자를 안내한 후 짤막하게 읊조렸다. "아이티는 죽었다."

▲ 국립 아이티 병원의 야외 병상. 1500명의 환자들이 야외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수십여 미터 주변에 방치된 시체에서 나는 냄새가 진동한다. ⓒ프레시안 황준호 기자

대통령궁 부근에 있는 국립아이티병원은 지상에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었다. 2만 5000구의 시신을 묻었다고 들었지만, 이 병원의 곳곳에는 시신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눈에 보이는 곳만 5군데였는데, 각각 20여 구의 시체들이 뒤엉켜 있었다.

덮개 같은 건 없었다. 사망 당시의 처참한 모습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최대 6일 가량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김새는 알아보기 힘들었고, 시체 썩는 냄새는 병원 전체에 진동했다. 끈끈한 액체로 뒤덮여 있는 곳을 걸어간 뒤 생각해 보니 거기도 시체가 널려 있던 곳이었다. 웬만한 냄새나 참사 현장은 그냥 지나쳐버리는 아이티 사람들이었지만 그곳에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을 하다 갔다.

아이티 최대의 병원이지만 병실이 이미 꽉 찼기 때문에 야외에 천막을 치고 누워 있는 환자들만 1500명이었다. 주차장을 알리는 절제 표지판에까지 링거액을 거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진료가 이뤄질 리 없었다. 약 창고는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어 있었다.

▲ '포르토프랭스의 종로'라고 불리는 델마 거리. 건물 잔해 속에서 물건을 줍는 사람과 지나가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다. ⓒ프레시안 황준호 기자

배회하는 주민들에게 미래는 있을까

대통령궁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카르푸 지구. 진원지로 알려진 곳이지만, 그런 구분은 무의미해 보였다. 수많은 사람과 붕괴된 건물들이 뒤엉킨 거리, 공설운동장에 만들어진 이재민 캠프, 그 안에서 선교를 하는 한 여인의 모습들은 다른 곳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건물이 무너져 내려 600명이 한 번에 숨진 학교가 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포르토프랭스의 종로'라는 델마 거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벽돌로만 올린 회색의 건물들이 무너져 내려 잔해로만 남아 있고, 수도인데도 불구하고 중앙선이나 신호등이 없는 도로에서 차가 일으키는 흰 먼지가 검은 피부의 행인들을 뒤덮는 이 흑백의 도시. 여기는 한 곳의 풍경을 자세히 묘사한 다음 '나머지도 다 마찬가지'라고 정리하면 되는 그런 곳이었다. 수학 선생을 하는 크리스토퍼도, 무직자인 알렉스도 가족 한두 명을 잃었고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최대 20만 명의 사망자와 3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초대형 지진이 강타했다고 해서 달라진 건 과연 무엇일까. 현지에 오래 살았던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아이티 사람들은 원래가 이렇게 살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잘 사는 극소수의 부자들과 나머지 대다수의 빈민들이 사는 포르토프랭스는 그 자체가 상시 재난 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현지 가이드 제롬의 아이들. 제롬은 이번 지진으로 누이 동생과 조카를 잃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나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집은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다. ⓒ프레시안 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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