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아이티 경제의 유일한 동력 우리가 만든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아이티 경제의 유일한 동력 우리가 만든다" [신음하는 아이티]<6> 포르토프랭스의 한인들 - 양희철 법인장
서반구의 최빈국인 아이티는 거의 모든 국민이 실업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 창출은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다.

아이티 경제에 유일한 젖줄인 섬유·의류 산업에는 한국 기업들이 여럿 진출해 있다. 포르토프랭스의 유일한 자유무역공단인 소나피 공단에는 윌비스 등 7~8개 한국 봉제업체들이 입주해 있다. 이 회사들은 현재 70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공단 전체 종업원의 70%를 차지한다.

소나피 공단은 21일(현지시간)부터 정상 가동하기 시작했다. 만성적인 경제난에 지진까지 겹친 아이티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이 공단부터 문을 열어야 한다는 아이티 정부와 입주 기업들의 뜻이 모아진 결과다.

아이티에서 한국 기업들의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양희철 윌비스(Willbes) 법인장을 만났다. 그는 "우리 섬유 업체들과 아이티의 궁합이 맞아 가는 시점에 이런 재난이 일어나게 되어 안타깝다"며 공장의 빠른 정상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6년 동안 이곳에 살고 있는 양희철 법인장은 한국 대사관이 없는 아이티에서 '영사협력관'이라는 한인 대표 역할도 맡고 있다. 양 법인장은 이번 지진 직후에도 비상연락망을 가동, 교민들에게 신속하게 상황을 전파하고 안전 여부를 확인하는데 앞장섰다. 그에 대해 한 교민은 "처음으로 아이티에 진출하는 한국인들에게 최고의 가이드"라고 말했다.

▲ 양희철 윌비스 아이티 법인장이 한국 119 구조대의 활동을 도우려고 수건을 질끈 동여 매고 구조대 캠프로 왔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어떻게 아이티에 공장을 차리게 됐나?

양희철 : 옆 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공장을 하다가 6년 전부터 아이티로 왔다. 수도 포르토프랭스 최대의 공단인 소나피 공단에서 섬유제조업을 하고 있다. 공단에 있는 모든 공장이 섬유업을 하고 있는데 종업원 전체 수는 1만 여명이다.

우리 회사에서는 3000명이 일한다. 그러나 지진 직후 문을 닫았었다. 공장에 지진 피해는 거의 없었지만, 직원들 각자의 집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고, 또 일부는 지진을 피해 시골의 고향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의 도미니카 법인에는 종업원이 1000여 명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도미니카 공장이 더 컸는데 지금은 아이티가 더 크다.

가족들은 지진이 나기 전부터도 도미니카에 살고 있다. 아이티는 가족들이 들어와 살기에 어려운 점이 많다. 선교사 한 분이 아이 둘을 데리고 사는 경우를 빼고는 가족들과 같이 나와 있는 분들은 없다. 아이티 주재 한인들은 60~70명 정도인데 지진 직후 10명 미만만 남고 도미니카로 건너갔다. 이제는 다시 돌아오고 있다. 그래도 목사님은 넘어가지 않고 의리 있게 자리를 지켰다.

프레시안 : 옷을 만들어 어디에 파나?

양희철 : 전량 미국에 수출한다. 아이티는 미국에 의류를 수출할 때 '호프법'이라는 것에 따라 무관세 혜택을 받는다. 그걸 이용해서 아이티 의류 산업이 한창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작년에 최저 임금 인상 문제로 큰 소요사태가 있었다. 그렇지만 10월 미국의 빌 클린턴 재단이 미주개발은행과 같이 대형 비즈니스 콘퍼런스를 열었다. 그 회의를 기점으로 아이티에 관한 홍보가 많이 됐고, 10월 말 경에는 아이티 섬유업체 대표로 구성된 투자유치단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어서 한국의 5개 큰 섬유업체 회장단들이 아이티에 오기도 했다. 관심 있는 업체들은 세계은행에 지원 요청을 하는 등 활발하게 움직였다. 한국의 섬유 업체들과 아이티가 궁합이 맞아 가는 시기였다.

그런데 이번 지진 때문에 그런 프로젝트들이 일단 보류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취소까지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USAID(미국 국제개발처)가 공단 안에 봉제기술학교까지 만드는 등 전반적으로 상승 분위기였는데, 이번 일 때문에 타격을 받게 될까 걱정된다.

프레시안 : 아이티에서 섬유 산업은 어떤 의미인가?

양희철 : 아이티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 창출이다. 그러니 일단은 소나피 공단부터 정상화시켜야 한다. 공단에 전력이 정상 공급되려면 앞으로 몇 개월 걸릴 텐데, 소형 이동용 발전기를 돌려서라도 공장을 빨리 가동해야 한다. 소나피마저 무너지면 아아티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여건 자체가 없어진다. 아이티의 마지막 성장동력이다.

지진 때문에 공단의 외벽이 무너지자마자 유엔군이 투입돼서 소나피의 안전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소나피가 아이티의 유일한 젖줄이기 때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나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작년에 아이티를 들렀을 때 소나피를 방문했다.

공장을 너무 오래 방치하면 안 된다. 바이어들도 매장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티 정부와 세계은행 같은 데에 메시지를 보내 놨다. 최대한 빨리 공장을 가동하고 현재 창고에 있는 제품을 도미니카를 거쳐서라도 보내겠으니, 도미니카를 통과하는 물건도 비관세 혜택을 주고, 또 아이티 부족분을 도미니카에서 생산된 물품으로 메우는 경우 한시적으로라도 무관세로 해 달라고 어필 중이다.

▲ 구호 물자를 얻으려고 소나피 공단 정문에 모여든 아이티 이재민들. 공단은 22일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아이티 사람들은 어떤가?

양희철 : 군중심리는 강한 편이지만, 300만 포르토프랭스 사람들은 대개 순박한 편이다. 외신을 보면 피해가 극심한 지역에서 약탈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럴까 싶다. 약탈이란 건 깨부수고 들어가서 물건을 가져가는 건데, 지금은 모든 게 무너진 상황이기 때문에 아마 그냥 널려 있는 걸 집어가는 수준일 것이다.

정부 관계자나 기득권을 형성하는 아랍계 상공업자들만 매우 높은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빈민이라고 보면 된다. 잘 사는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우리 공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작업의 연속성만 보장해 준다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바이어들도 '중남미의 유일하고, 마지막 남은 생산 기지'라는 말을 많이 한다.

종업원들은 하루 평균 3달러 정도를 받는데, 생산 목표를 달성하면 인센티브를 준다. 중남미에서 인건비가 이렇게 싼 곳이 없다. 과테말라 같은 곳에 비해 생산성은 약간 떨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극복할 수 있다. 미국은 아이티 의류에 무관세 혜택을 주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도 아이티 때문에 싼 값에 물건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구호 활동 상황은 어떠한가?

양희철 : 소나피 공단에는 도미니카의 구호단이 들어와 있고, 지원 물품을 쌓아 두는 기지가 되기도 했다. 그 소문을 들은 이재민들이 공단 정문 앞에 많이 모여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들어가기 힘들 때가 있었다. 공단 내 경비는 페루군이 하고 있다.

특히 도미니카가 이번 사건에 대해 눈물이 날 정도로 열심히 도와준다는 게 감동적이다. 지진 둘째 날부터 도미니카 지원군들이 넘어 왔다. 둘째 날 오후가 되어 식수가 없어지니까 도미니카가 탱크로리를 보내 주기도 했다. 엄청난 물량을 주고 있다. 소나피 공단에 가 보면 도미니카에서 온 밥차가 줄을 서 있다.

이번 지진이 전례 없는 일이다 보니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가슴 뭉클할 정도였다. 그간 양국은 한일관계 같이 앙금도 있었고 감정도 안 좋았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신경을 크게 써준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우리 같이 양국에서 기업을 하는 사람들한테도 도움이 크게 될 것이다.

프레시안 : 아이티는 어떤 나라인가?

양희철 : 정치나 치안 상황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이 두 차례나 군부 쿠데타를 당해 축출당하는 등 너무나 많은 격변의 세월을 겪었다. 현 프레발 대통령 당선 후 잘 해 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작년 4월 '푸드 폭동'이 나면서 정부가 흔들렸고 총리가 계속 교체됐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안정이 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해외 언론들이 너무 부정적인 부분만 부각시키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가능성을 봐야 한다.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큰 가능성이다. 앞으로 미국이나 국제사회에서 지원을 할 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또한 아이티의 기득권들도 조금은 양보해야 한다. 아이티가 발전하면 기득권을 잃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발전이 안 되는 것이다.

▲ 유엔 아이티안정화지원단(MINUSTAH) 기지 정문 ⓒ프레시안

프레시안 : 미국과 국제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양희철 : 2004년 쿠데타 때 미 해병대와 프랑스 병력이 왔었다.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이 쿠데타 진압 과정에서 군부에 압력을 넣기 위해 엠바고(무역제한)를 가해서 아이티의 중소기업들이 대부분 파산한 적도 있다. 아이티 이렇게 열악해 지고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은 바로 그 엠바고 이후부터라고 한다.

그 때부터 아이티 사람들은 미국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이 한 방만 때리면 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내가 봐도 아이티 사람들이 미국을 상당히 두려워하는 것 같다.

이번에도 미군이 많이 왔는데, 유엔 병력만으로는 힘들었을 것이다. 유엔군이 2004년 처음 들어와서 실질적인 액션을 취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깊게 관여하기 싫다기보다는, 사상자가 나면 책임 소재 문제가 생길까 봐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아이티 사람들이 '유엔은 뭣 때문에 와 있나. 오히려 우리한테 도움이 안 된다. 일자리도 특정 사람들에게만 간다'라는 생각으로 유엔군을 배척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유엔 평화유지군이 그 악명 높았던 시티 솔레이(포르토프랭스의 한 지역)의 갱단을 처리한 후에 아이티 치안은 몰라보게 좋아 졌다. 도미니카에서 오는 바이어들이 '도미니카보다 치안이 더 좋다'고 할 정도였다.

그걸 보면서 아이티 사람들이 유엔을 서서히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외국 투자 업체 입장에서는 유엔군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아이티 기업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이티에는 군대가 없고, 경찰의 숫자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작년 3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방문했을 때 한인 대표와 간담회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반 총장은 '유엔이 신경 쓰는 10개 분쟁 지역 중 하나가 아이티인데, 유엔의 정책이 제대로 먹혀 들어가는 나라다. 아이티를 빨리 졸업시켜서 하나의 모델로 만들고 싶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좋은 말씀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냥 유엔이 계속 남아서 자리를 잡아 줬으면 좋겠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