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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없었다면 오사마 빈 라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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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없었다면 오사마 빈 라덴도 없었다!" [프레시안 books] 사이드 쿠틉의 <진리를 향한 이정표>
사이드 쿠틉의 <진리를 향한 이정표>(서정민 옮김, 평사리 펴냄)라. 참 위험한 책이 번역되었다. 그러나 한 번은 읽어야 될 꼭 필요한 책이다. 한때 학계에서는 그의 책이 언급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언제나 사이드 쿠틉 뒤에 따라 다니는 "과격한 이슬람 원리주의 선동자"라는 낙인 때문이었다.

이슬람 원리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서구가 만들어 낸 왜곡이고 허구라는 정통 이슬람 학계의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은 책이다. 분명한 것은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 분노의 복수를 꿈꾸는 적지 않는 무슬림 과격 집단이 이 책을 즐겨 인용하고 자신들의 극단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사이드 쿠틉의 급진적 이슬람 과격주의는 쿠란의 원론적인 가르침에 철저히 순응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무슬림 사회였던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뒤를 이은 네 명의 정통 칼리프 시대정신으로 회귀하자는 사상 운동이다. 현실 정치에서는 샤리아(이슬람 법)의 시행과 집행을 사회적 가치의 근간으로 내세움으로써, 이슬람 초기 순수 정신이 펄펄 살아있는 메디나(이슬람 역사가 시작된 곳) 사회를 꿈꾸었다.

이런 점에서 사이드 쿠틉의 가르침은 단순한 사변적인 외침에 머문 것이 아니라 잘못을 타파하려는 열정적 행동이 더해져서 급진적 과격 운동으로 연결되었다. 사이드 쿠틉은 현실을 고려한다든지, 소위 "서구를 이기기 위해 서구의 바이러스를 경험해야 한다"는 주류적 이슬람 개혁론자와는 달리 한 치의 양보 없는 순수와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나아가 미국과 이스라엘은 물론 무슬림 정체성을 잃고 절충과 협상을 내세우는 집권 무슬림 지도자에게도 날카로운 공격의 화살을 퍼부었다. 무엇보다 그는 말, 글, 협상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지하드의 전통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무장 투쟁을 통한 적의 궤멸을 주창하였다. 그리고 그 자신이 그랬듯이 알라의 길을 위해 기꺼이 순교를 독려했다.

▲ <진리를 향한 이정표>(사이드 쿠틉 지음, 서정민 옮김, 평사리 펴냄). ⓒ평사리
물론 <진리를 향한 이정표>에서 사이드 쿠틉이 절절이 갈구하고 외쳤던 사상과 이념은 대부분 퇴색되거나 변해버린 시대적 상황에서 공허한 메아리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무슬림 국가들이 아직도 1960년대의 시대적 질곡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그의 저항의 메시지는 아직도 급진적 무슬림 계층에게 호소력 있고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체첸,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지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아 끊임없이 가족과 동료들을 잃고, 삶의 기반이 초토화되는 왜곡된 현실에서 사이드 쿠틉의 저항적 사상은 종교적 보호 울타리와 위안의 속삭임이 되기 때문이다. 사이드 쿠틉의 사상과 가르침은 파키스탄의 마울라나 마우두디에게 전수되어 "타블리 자마아트"라는 정치 정당을 통해 이슬람 이념을 현실 정치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로 나타났으며, 탈레반을 거쳐 결국 21세기 벽두에 알 카에다라는 급진적 반미 테러 조직을 배태시켰다.

이슬람 원리주의, 이슬람 부흥 운동, 이슬람 개혁 운동, 이슬람화 운동 등 다양하게 불리는 이슬람세계의 개혁 운동은 크게 두 흐름으로 파악된다. 둘 다 서구에 의해 지배당하고 왜곡된 무슬림 사회의 현상 타파를 위해 무슬림들의 이상향인 무함마드 예언자 이후 정통 칼리프 시대로 돌아가기 위한 영적인 다짐으로 쿠란과 순나에 충실한 삶의 회복을 그 중심에 두고 있지만 실행 방식에 있어서는 천차만별이다.

큰 흐름의 하나는 이슬람의 전통과 가르침을 두텁게 강화하면서도 서구와의 공존과 협력을 도모하는 사회적 지적 운동의 방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서구의 바이러스를 오늘날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단정하고 과감하게 서구를 버리고 이슬람의 원론적 가르침에 충실하자는 완고한 영적 운동이다. 후자를 대표하는 1960년대의 중심인물이 바로 사이드 쿠틉이다.

이슬람 사회의 현실이 처한 왜곡을 직시하고 이를 바로 잡고자 하는 움직임은 사실상 이슬람 역사초기부터 한 번도 잠잠한 적이 없었다. 최초의 이슬람 개혁 운동을 주도한 무리들은 하와리즈파였다. 그들은 7세기 중엽 이미 이슬람의 순수 정신이 변질된 체제를 받아들이지 못해 저항하다 대부분 순교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완전하고 능력 있는 칼리프 선출을 옹호하면서 민족과 혈통 요소를 배제하였다. 더욱이 행동이 따르지 않는 신앙은 무의미하며, 중죄를 범한 사람은 배신자로서 살해되어야 한다는 등 도덕적 엄격성을 극단적으로 주장하여 이 파에 소속되지 않은 무슬림들을 불신자로 몰아갔을 정도였다.

그러한 순수와 완고의 흐름은 이븐 한발로 이어져 18세기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념적 근간이 된 와하비즘으로 이어였다. 특히 19세기말 대부분의 이슬람 세계가 서구 침략과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커다란 성찰의 시기를 맞게 되는데 이 시기에 무슬림들을 영적으로 지도한 인물은 자말루딘 아프가니였다. 그는 범이슬람주의라는 정치적 이슬람 이념 운동으로 이슬람 세계의 통합을 꿈꾸었으며 서구와 이슬람 세계의 대결보다는 합리적인 윈윈 전략을 시도했다.

그 후 아프가니의 노선은 수많은 개혁 운동의 실용적 근간이 되었다. 이러한 이슬람 사회 각성 운동은 무함마드 압두와 라시드 리다에 의해 더욱 체계화되고 공고해 졌으며, 튀니지와 북아프리카의 살라피아(al-Salafiyya) 운동의 정신적 모태가 되었다. 결정적으로 1922년 하산 알 반나에 의해 이집트에서 무슬림 형제단이 창설되었다. 무함마드 압두, 라시드 리다, 하산 알 반나 등의 정신을 계승한 1960년대의 실천적 인물이 바로 사이드 쿠틉이다.

그러나 사이드 쿠틉은 이전 선배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독자적인 이론 창출과 시대적 상황의 독자적 해석을 통해 강력한 이슬람화 운동을 주창했다. 서구와 타협하지 않는 탁월한 이슬람 투쟁 이론을 정비하고 원래의 순수한 총체적 이슬람 정신의 부활을 선동했다. 행동하는 운동의 효율적인 수단으로 과격한 투쟁과 무장을 통한 폭력적 지하드를 앞세웠다.

무슬림 형제단의 뿌리에서 나왔지만 사이드 쿠틉은 서구의 타도를 목표로 삼지 않은 무함마드 압부나 마울라나 마우두디와는 달리 이슬람 우위론자였다. 이미 이슬람 정신과 체제 모두에 완벽한 해결책이 제시되어 있는데, 한계가 명확한 서구의 과학기술 문명의 외피에만 매달려 서구화를 주창하는 자들의 패배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오늘날 알 카에다가 주장하는 논리와 그렇게 닮아있을 수 없다.

사이드 쿠틉은 아랍 민족주의의 영웅이라는 이집트의 대통령 나세르조차도 이슬람의 적으로 간주했다. 그에게 나세르는 이슬람의 범지구적 형제애 대신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이슬람 법 질서를 존중하지 않았던 타락한 지도자에 불과했다. 결국 여러 차례 투옥되고 암살 음모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하는 비극적인 운명이 순교로 승화되면서 사이드 쿠틉은 확고한 급진주의자의 멘토가 되었다. 그의 사상의 마지막 집대성인 이 책이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에게 주는 의미가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사이드 쿠틉의 시대적 절규는 더 이상 이슬람 주류 공동체에서 유효하지 않다. 서구의 사악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신음하는 이슬람 사회를 더 이상 방치해서 안 된다는 공감대는 갈수록 확산 되지만 이슬람 역사상 한 번도 실현되지 않았던 이상적 쿠란 사회로 되돌아가자는 그의 이상은 너무 현실과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이드 쿠틉의 주창은 그의 사망 직후 이미 많은 다른 사상가와 무슬림 정치가에 의해 노선 수정이나 방향 선회를 한 셈이다. 그래서 주류적 이슬람 운동의 중심 담론은 이슬람의 가치와 가르침을 단단한 뿌리에 두면서도 서구의 앞선 과학, 기술 심지어는 제도까지도 과감하게 수용하여 서로가 화합하고 공존하는 방향을 수없이 제시했다.

이제 한국 사회도 한 시대 이단아의 주장과 처절한 원칙주의를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극단주의의 뿌리와 그들의 정신적 저변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딱딱하고 지루하고 동어 반복이어서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 이 책을 전문가의 깔끔한 번역과 세심한 주석을 곁들여 독자들이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학계와 우리 모두의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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