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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에 성공과 이익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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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에 성공과 이익이 필요한 이유 [시민정치시평] 진보에게 만연한 빈곤과 패배를 극복하려면
철학의 한 사조이지만 경제학에서도 공리주의(utilitarianism)는 매우 중요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제레미 벤덤 등에 의해 시작된 공리주의는 '쾌락주의적 인간관'과 '쾌락주의적 윤리관' 위에 서 있다. 곧, 인간은 본질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존재다. 게다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경우 고통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으로 이해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때 쾌락은 성공과 이익, 곧 '공리'의 양으로 측정될 수 있으니, 공리의 양이 많을수록 바람직할 뿐 아니라 도덕적이게 된다. 공리라는 목적 자체가 도덕적일 뿐 아니라 다다익선이 최종목표로 되니 공리주의적 윤리관은 수단과 과정의 문제를 소홀히 취급하게 된다. 목적과 결과만 중요할 뿐이다. 그런 결과주의는 결국 '정의'를 소홀히 취급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것을 조롱하게 된다.

모든 인문사회과학이 그렇듯 경제학의 접근방법도 다양하다.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그것은 보수경제학과 진보경제학으로 구분되며, 사회에 대한 영향력에 따라 대략 주류경제학과 비주류경제학으로 구분된다.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현재 진보경제학은 비주류에 속하는 반면 보수경제학은 주류에 속한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는 진보적 독자들에게 마르크스경제학, 케인스경제학 등은 진보경제학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주류로 지칭되는 보수경제학의 이름은 좀 생소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신고전학파'(neo-classical economics)로 불리는 경제학이 그것이다. 이 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공리주의철학을 인문학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신고전학파경제학에서 효용(utility)이라고 해석되고 있는 것은 공리주의 철학의 공리(utility)와 다르지 않다. 때문에 여기선 효용, 곧 공리를 극대화하면 합리적일 뿐 아니라 도덕적이며, 비효용(disutility)을 취하면 비합리적인 동시에 비도덕적이게 된다('공리'가 신고전학파경제학에서 왜 '효용'으로 해석되었는지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이러한 철학 위에 서 있으니 신고전학파경제학은 전형적으로 정의와 같은 '가치'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곧, '가치중립성'을 연구방법으로 채택하는 것이다. 거기서 가치의 문제는 경제학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뿐 아니라 조롱받는다. 대신 쾌락, 곧 효용이란 이름으로 중성화된 공리를 추구하기만 하면 된다. 효용이란 결과는 그 자체로 도덕적이므로 결과와 과정, 그리고 목적과 수단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로운 수단을 가리거나 그러한 과정을 따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경제학자들이 정의와 같은 '가치'의 문제를 입에 올리면 신고전학파경제학자들은 그게 무슨 경제학이냐고 비웃는다.

나아가 이 경제학은 '방법론적 개인주의' 위에 서 있다. 곧, 구조와 거시적 경제현상을 개인으로부터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니 신고전학파경제학에서 공리주의 철학은 개인의 행동규범으로 활용된다. 신고전학파경제학에 따르면 고통이나 비효용을 선택한 안중근의사, 김구선생 그리고 김근태 전의원은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매우 비도덕적이다. 대신 이완용, 이승만,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매우 합리적이며 도덕적이다.

▲신고전학파경제학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매우 합리적이며 도덕적 인간이다. ⓒ연합뉴스

진보라고 해서 성공과 이익을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리주의의 비도덕성 때문에 진보주의자들은 패배와 손실에 공감하며, 그 결과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자 한다. 실로 반칙과 배반을 일삼으며 이룩한 성공보다 정의와 신뢰로 살았지만 패배한 자들이 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래야 인간사회는 짐승들의 정글로 표변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진보 쪽에서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성공과 이익을 위해 사회의 성공과 이익을 배반했을 뿐 아니라 정의를 조롱했기 때문이다.

이런 비도덕적인 공리주의자들이 성공하는 사례가 누적되자 진보주의자들에게 공리주의적 태도, 더 나아가 성공과 이익은 그 자체로 눈엣가시처럼 돼버렸다. 한국 근현대사를 돌이켜볼 때 나 역시 한국사회의 성공과 이익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로부터 철저하게 학습한 청소년들의 공리주의적 기상은 하늘을 찌른다. 자신의 공리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다. 요즘 경제교육이 강화되면서 이런 흐름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 땅에서 교육되는 경제학은 주류인 신고전학파경제학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에게 염치도 성찰도 없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정의는 조롱거리일 뿐이다. 이런 꼴을 보고 있으면 '이놈의 나라'를 떠나고 싶다. 이 때문에 나도 공리주의를 극도로 경계한다. 내가 신고전학파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밥벌이 수단으로 삼는 이유는 비단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다. 이 경제학이 바로 이런 부도덕하고 몰염치한 짐승의 세계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리주의에 대한 내 생각이 요즘 약간씩 변하고 있다. 이리저리 글을 쓰다 보니 도와달라는 데가 많다. 다 응하지는 못하지만 외면하기 힘들어 회원으로 가입하곤 한다. 굳이 누군가의 권유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판단해 볼 때도, 도와야 할 곳도 많다. 불법해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안타깝다.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좋은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지만 제작비가 모자란다. 진보정론지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월간지를 몇 년간 구독하고 있다. 좋은 일을 하는 시민단체나 정치단체에도 기부해야 한다. 실천하는 사람들인데,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광고 쓰레기로부터 독립하자면 돈이 필요할 것이다. 조합원으로 가입해 후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실을 입어 패배할 수밖에 없다. 진보가 있는 곳엔 빈곤만 즐비하고 패배의 기운마저 엄습한다.

나도 크게 성공하거나 이익도 취하지 못해서, 이곳저곳 후원하자니 힘이 모자란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래가지곤 진보는 결코 더 이상 진보할 수 없다. 진보가 퇴보하거나 소멸되면 이 세상은 진짜 짐승의 집단으로 회귀하고 말 것이다. 진보에게도 성공과 이익이 필요한 이유다.

"본래 의병을 일으킨 것은 국가를 위하여 민생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천운이 일정하지 못하고 적의 세력이 이와 같으니 적은 숫자로 많은 수를 당해낼 수 없는 것은 또 이치로서도 그러하다. 밖으로는 개미만큼의 후원도 없고, 안으로는 범이 작아먹으려는 위급한 지경에 있다. … 여러분들은 각자 잘 계획하여 후일의 거사를 도모하라."

머슴의 병장 안규홍 선생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힘이 부족해 1909년 내린 해산명령이다. 그는 체포 후 1911년 처형됐다.

공리주의를 마냥 외면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진보주의자들도 수단과 과정이 정의로운 공리주의를 권장하고 하고 그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좋은 공리주의'로 부르고 싶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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