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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권리마저 앗아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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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권리마저 앗아가려나" [왜 나는 자율형 사립고를 반대하는가 ②]
나는 30여 년간을 교직에 몸 담았던 퇴직 교사다. 학교 평가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교련 평가 점수였던 군부 독재의 초임 교사 시절부터 학교 현장의 온갖 부조리와 모순을 극복하고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고자 했었던 전교조 합법화 투쟁의 과정,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교육이 판을 치는 오늘까지 주로 현장에서 한국 교육의 변화를 경험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박정희 군부 정권 시절이었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하면 나는 대학시절 공부를 별로 하지 못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3선 개헌을 강행했고 학교에는 연일 휴교령이 선포되었다. 수업은 고사하고 시험을 보러 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허용이 되지 않았다. 1년 내내 시험을 보지 못한 학생들은 재시험의 연속이었다. 독재 정권 치하에서 공부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고 없고, 그래서 공부를 하고 안하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학교 교문을 통과해서 강의실로 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때였다. 시험 점수를 작성한 답안의 길이를 자로 재서 채점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배운 것이 있어야 답안을 작성할 것이 아닌가?

박정희 정권은 교육의 기회 균등을 이야기하면서 현실에서는 교육 받을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했다. 슬프게도 나는 이런 모순을 현 정부에서도 본다.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이름만 바꾼 채, 아니 더 많은 예산을 들이는 '4대강 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입으로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이야기 하면서 현실에서는 이 나라 국민을 사교육의 지옥으로 몰아넣을 자율형 사립고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이름만 바꾼 채, 아니 더 많은 예산을 들이는 '4대강 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입으로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이야기 하면서 현실에서는 이 나라 국민을 사교육의 지옥으로 몰아넣을 자율형 사립고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고교 입시를 치르는 중학생들. ⓒ뉴시스

내가 정의하는 자사고 설립 추진의 의미는 '공교육의 사교육화'이다.

벌써부터 학교 현장에서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구체적인 실행으로 보충수업 시간에 사교육계의 인기 강사를 초빙하려고 하거나 인터넷 강의를 신청하고 있다. 서울 지역의 일부 구청에서는 이러한 사업을 하면 예산 지원까지 해 준다고 한다. 학교에서 이제는 대놓고 학생들에게 학원 강사의 강의를 들려주고 선전하고 있고 지자체는 이렇게 해야 지원해 준다고 하니 정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자사고 설립까지 추진한다고 하니 중학교 때부터 사교육 광풍이 몰아칠 것은 뻔한다. 게다가 현재의 대입제도 하에서 학교별 자율이라는 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 주요대학에 한 명이라도 많은 학생들을 입학시킬 수 있는 자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자율형 사립고의 등록금 상한조차 유명무실해져 기숙사비와 기타 비용을 등록금에 더하면 일년에 학교에 납부하는 금액만 1000만 원이 넘으리라는 관측은 무리한 것이 아니다. 비평준화로의 회귀하는 수준을 넘어 돈이 없으면 교육 받을 권리조차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모든 국민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교육이 공교육과 사교육으로 나뉘어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이다. 현실적으로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 되어야만 하고, 대학 진학률이 고교졸업생의 80%가 넘는 상황에서 오히려 자율형 사립고 설립 추진은 교육의 공공적 성격을 확대해야만 하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현 정부는 자율이라는 미명 아래 국민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요즘 나는 학원 주위에는 가 본적도 없는 조손가정, 결손가정의 아이들과 한글을 몰라 부끄러움과 피가 마르는 답답함 속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 할머니와 함께 작은 희망을 가꾸어 나가는 공부방에 교사로 나가고 있다. 이 공동체 안에서의 희망은 교육과 동의어이다. 일하시느라 늦도록 집에 들어오시지 않는 할머니, 어머니를 대신해 학교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과 같이 밥도 해 먹고 책도 읽을 때 아이들의 입가에 떠오르는 웃음, 삐뚤한 글씨로 자기 이름을 태어나서 60년여 만에 처음 쓸 때 빛나는 눈빛에서 희망을 읽는다. 나는 오늘 이들의 희망을 지키기 위해 피켓을 들고 땡볕 아래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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