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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옥시, 한국 소비자를 분노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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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옥시, 한국 소비자를 분노케 하다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14> 승승장구하는 옥시
30대 주부 김화나(가명) 씨는 '옥시'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녀의 한 살배기 아들은 지난 2011년 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호흡곤란 증상이 생기는, 원인 모를 폐렴으로 고통을 겪다 숨졌다. 그리고 몇 달 지나 그해 9월 초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괴질의 원인이 자신이 구입해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이며 옥시레킷벤키저라는 회사가 제조·판매한 제품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의 옥시 울렁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옥시란 말을 신문·방송에서 보고 듣거나 마트에서 이 회사의 상품을 볼 때마다 죽은 아이가 생각나 애써 외면하거나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요즘에는 이 회사가 자신들이 아성을 구축한 표백제나 세제뿐만 아니라 '스트렙실', '개비스콘'과 같은 기관지·소화기계 질환 치료제 시장까지 진출했다. 그러면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텔레비전 광고로 대대적인 상품선전을 해대자 더욱 자주 화가 치민다. 우리 아이를 죽게 만든 회사가 망하거나 추락하지 않고 오히려 더 승승장구하는 것으로 보여서다.

이러한 사정은 김 씨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거나 사정에 처한 사람은 너무나 많다. 가습기 살균제 시장에서 옥시 제품이 오래전부터 인기를 끌었고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옥시 제품인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을 사서 가습기 물통의 물에 넣었다. 피해자의 다수도 주로 옥시 제품을 사용했다.

가습기살균제 재앙이 곰팡이와 세균 탓이라는 옥시

하지만 옥시레킷벤키저(지난 1월 'RB코리아'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는 자사의 제품이 어린이와 임신부 등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살인 제품이라는 대한민국 정부의 발표를 부정하고 있다. 피해자와의 재판에서 사측 변호인은, 살균제 성분 때문이 아니라 곰팡이나 레지오넬라균 등 다른 원인에 의한 사망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계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는 샤시 쉐커라 파카라는 이름의 영국인이다. 그는 그동안 사건의 진상을 캐기 위해 국회가 출석 요구를 몇 차례 했으나 모두 묵살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론이 너무 좋지 않자 지난해 국정감사 마지막 날인 11월 1일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해 "지원을 필요로 하는 개인 및 가족들을 위해 50억 원 규모의 지원 기금을 인도적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분개했다. 그가 끝내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은 회사의 이미지 훼손을 뒤늦게나마 취소화하기 위한 자구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피해자들은 여기고 있다.

이 회사가 내놓겠다고 밝힌 50억 원은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시장에 내놓은 뒤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이라고 한다. 옥시 쪽은 최근 50억 원 규모의 지원 기금을 내놓을 경우 사용처를 자신들이 정하고 기금 운용 조직도 자신들이 지명하는 사람들로 구성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피해자들을 다시 한 번 분노케 하고 있다.

▲ '옥시레킷벤키저'의 샤시 쉐커라파카 대표가 지난해 11월 1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왼쪽은 가습기 살균제 판매업체 중 한 곳인 홈플러스의 도성환 사장. ⓒ연합뉴스

옥시가 순수 국내기업?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환경 조사를 벌이면서 안 사실은, 소비자 가운데 상당수가 옥시레킷벤키저라는 이름을 잘 모르고 '옥시'가 순수 우리나라 기업인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옥시 제품을 애경그룹에서 만들어 파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었다. 이는 옥시란 상표를 달고 오래전부터 국내에서 세제 등이 많이 팔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옥시'는 원래 동양화학그룹의 계열사로 잘 나가던 기업이었다. 옥시의 생활 용품 사업부는 세탁 표백제 '옥시크린'과 습기 제거제인 '물 먹는 하마' 브랜드로 우리 소비자들에게 매우 친숙했다. 특히 '옥시크린'은 대한민국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이며 세탁 표백제의 대명사로 통했다. '물먹는 하마'도 제습제 시장에서 1위를 계속 지켰다.

그러나 아이엠에프 사태가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옥시는 세계적인 생활 용품 기업인 영국의 레킷벤키저에 팔렸다. 회사 이름을 옥시레킷벤키저로 바꿔 새로 탄생한 이 기업은 옥시의 상표 힘에다 막강한 자금력과 세계 시장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모기업의 브랜드 제품들도 한국에 도입했다. 그 후 살균제, 세제, 탈취제 등 국내 각종 생활화학용품 시장에서 10년 넘게 승승장구하며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옥시크린'은 10년 넘게 한국 표백제 시장에서 90%를 넘는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생활용품 10년 최강자 자리 지키는 옥시

현재 옥시가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은 9개 부문에서 모두 30종이 넘는다. 파워크린이나 옥시크린과 같은 세제 제품과 청소용품인 옥시싹싹, 물먹는 하마 등 하마란 이름이 들어간 제품, 손 세정제인 데톨 제품 등은 대한민국 주부나 성인이라면 한번쯤은 사용했음 직하다. 최근에는 위 역류성 식도염치료제인 개비스콘과 기관지약인 스트렙실과 같은 의약품도 시장에 선보여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국내 시장을 빠른 속도로 개척해가고 있다.

▲ 옥시레킷벤키저가 생산·판매하는 제품의 종류와 제품명.

옥시레킷밴키저의 모기업인 레킷벤키저는 영국의 종합 생활 용품 업체로 <위키백과>에서도 자세하게 소개할 정도로 세계적인 회사다. 1999년 영국의 레킷앤드콜먼과 독일 벤키저가 합병해 탄생했다. 두 회사는 19세기 전반부터 이어져 온 200년 전통의 회사였다. 현재 세제·방향제·위생 용품 분야의 세계적인 업체 중 하나이며, 의약품과 식품 브랜드도 보유하고 있다. 항균제 데톨, 제모제 비트는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대 생산·판매량을 보인다. 2010년에는 유명 콘돔 제조업체 듀렉스를 인수했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어린이를 구하자(Save the children)'란 기업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눈에 띄게 선전하고 있다. 2006년부터 시작한 이 캠페인은 2012년에만 전 세계 가난한 어린이 32만5000명과 그 가정에 도움을 주었으며 지금까지 90만 명의 소외계층 어린이를 도왔다고 밝히고 있다.

또 한국의 옥시레킷벤키저 홈페이지를 클릭해보면 환경보호 활동도 강조하면서 첫 화면에 배치해놓았다. "'우리 집 우리 지구(Our Home Our Planet)'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간단하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키기 위해 레킷벤키저가 진행하는 전 세계 환경 캠페인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만약 소비자들이 이 회사의 홍보 선전과 홈페이지만 보면 어린이와 지구 환경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는 기업으로 알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회사가 보인 행태를 보면 이를 진심으로 보긴 어렵다. 국내 한 언론사가 한국에서 벌어진 가습기 살균제 대재앙과 관련해 본사에 질의한 적이 있다. 그러자 영국 본사는 "우리는 잘 모르니 레킷벤키저코리아에 연락하라. 앞으로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본사로 오는 문의는 모두 한국의 자회사로 넘기겠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기업의 두 얼굴을 한국 언론과 소비자들에게 드러낸 것이다.
한편 한국의 옥시는 지난해 8월 불량 주방 세제를 팔다 적발돼 문제가 되기도 했다. 옥시가 내놓은 '데톨 3 in 1 키친시스템' 제품 3종이 한국소비자원의 산성도 측정 결과, 평균 4.0으로, 보건복지부의 1종 세척제의 위생 용품 규격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옥시 쪽은 이 주방 세제가 손에 닿아도 문제가 없다고 제품에 표시했지만 실제로는 강한 산성을 띠고 있어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는 물량을 전량 회수하고 환불 조치키로 했지만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과 크고 작은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옥시 제품 불매운동 서명 고작 1000명

옥시레킷벤키저(RB 코리아)는 대한민국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가정을 파탄 내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기업이란 비난을 지금도 사고 있다. 이런 기업이 어린이를 구하고 지구 환경을 지키자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두 얼굴의 기업이란 비판을 살만하다.

이러한 옥시의 행태와 이중성을 참다못한 한 누리꾼은 인터넷포털 다음의 아고라 청원 광장에 '살인기업(가습기 살균제) 옥시레킷벤키저 불매운동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지난해 10월 15일 올렸다.

"전 예전부터 의아했습니다. 어째서 남양보다 살인을 저지른 가습기 살균제 회사에 우리 국민은 더 관대한 것일까? (중략) 그 첫 번째 대상이 바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낸 옥시레킷벤키저입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기업 이미지와 신뢰도를 이용해 가장 많은 제품을 팔았지만, 피해 보상은 잡아떼고 있습니다. 피해자분들은 옥시라는 기업의 이미지를 믿고 내 아이를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샀을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가장 보호받아야 할 임산부와 아이들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남양 사태처럼 방송뉴스에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청원 광장에서는 오는 4월 14일까지 온라인 서명을 받고 있다. 500만 명을 목표로 한 이 청원에는 2월 10일 현재 1000여 명만이 서명에 동참했다. 여기에 서명하고 동참 글을 남긴 '해와정'이란 닉네임의 누리꾼은 "남양유업은 사람 죽이지도 않았는데… 벌떼처럼 모여들어 불매운동하더니… 여긴 왜 파리만 날리는지… 대한민국 국민 알다가도 모르겠다."며 비판 섞인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자신과 가족들은 가습기 살균제 아무런 피해가 없어서일까?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언제 어떻게 다시 터져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더더군다나 이처럼 가해 기업에 대해서 흐리멍덩하게 대처하면 또 다른 유해 화학 물질의 역습이 분명 나올 것이다.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


"쌍둥이 생명을 앗아간 '악마의 물질', 분탕질은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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