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항소심(형사 7부 김흥준 부장판사) 결심 공판에서 피고 유우성 씨는 최후 진술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는데 있어 내 이름이 더럽혀지고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간첩일까?
검찰은 유우성 씨 사건과 관련해 국가정보원이 조작한 출입국 관련 증거를 지난 3월 28일 공판 직전, 모두 철회했다. 간첩 혐의를 입증할만한 새로운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 사실상 의미 있는 추가 증거라고는 국정원에서 6개월간 독방 감금 과정에서 작성된 동생 가려 씨 진술서와 똑같은 내용이 담긴 영상CD 뿐이다. 그나마 재판부는 이날 이 영상CD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통상 영상 진술은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검찰은 무리수를 뒀다.
공판이 연기된 결정적 이유인 검찰의 공소장 변경 부분도 간첩 혐의와는 상관 없다. 재북 화교라는 사실을 숨기고 탈북자로 국내에 들어와 기초생활수당 등을 받은 것이 사기에 해당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게 전부다.
간첩 혐의 관련 1심 판결의 요지는 명백하다. 가려 씨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술을 해 그 임의성이 의심된다는 점, 가려 씨의 진술 자체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점, 그리고 일부 검찰의 공소 내용이 객관적 증거와 모순된다는 점 등이었다. "간첩으로 의심할 상당한 정황"이 있음에도 1심 재판부가 전체 무죄 판결을 내렸던 배경이다. 공안 사건에서 전체 무죄 판결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프레시안>은 지난 2012년 10월 30일 가려 씨가 제주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시점부터 지난 2013년 4월 26일, 합동심문센터를 벗어나기까지, 약 6개월 동안 어떤 상황에서 조사를 받았는지 추적해 봤다. 검찰이 항소심에서 주장하고 있는 핵심 증거, 가려 씨의 '누더기 진술서'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국정원 수사관의 '거짓 증언' 정황들…과연 그들은 믿을 수 있는가?
고문의 기법은 다양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인권 변호사 시절 집필한 <야만의 시대>에는 여러 고문 기법이 유형별로 분류돼 있다. 여기에는 구타 등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것 외에도 박탈, 강압 등의 방식이 포함된다.
심리적 고문 기법인 박탈 기법의 유형으로는 친지나 친구와 접촉 단절(사회적 박탈), 독방 감금(감각적 박탈) 등이 있다. 외부 세계와 의사소통을 고의적으로 축소 또는 차단하고, 시간과 날짜 감각을 유지하려는 피해자의 능력을 의도적으로 훼방하는 방식(지각 박탈)도 있다.
강압 기법은 사실상 '폭행'에 가깝다. 잠을 재우지 않기, 모욕적인 행위 강요하기, 피해자에게 직접 '고문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하기 등이 있다. 규칙에 대한 맹목적 복종 강요, 폭력적 고문 후 호의적 정보로 회유하기(역정보법) 역시 고문에 해당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이같은 잣대로 따져봤을 때, 가려 씨의 경우 충분히 고문으로 볼 수 있는 행위에 노출이 돼 있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6월 국정원에서 작성된 국가보안법 위반 관련 유 씨의 조서에는 그가 재북 화교라는 사실이 적시돼 있다. 당시 수사는 '증거 부족으로 인한 혐의 없음'으로 결론났다.
유 씨가 재북화교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국정원은 가려 씨가 화교라는 사실을 입국 단계부터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려 씨는 입국 시 화교라는 사실을 숨겼다. 국정원 측은 이 때부터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1심 재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나온 국정원 수사관들의 증언을 보자.
국정원 수사관은 화교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가려 씨의 몸에 "화교 유가리"라고 쓰인 종이를 붙여 다른 탈북자들 앞에서 망신을 줬다. 당시 상황과 관련해 국정원 A 수사관은 1심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유가려를 모욕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며 "자백하라는 취지로 붙였다"고 했다. 국정원 B 수사관은 "제가 심리적 부담감을 주기 위해 표찰을 만들어붙였다"고 인정했다.
B 수사관이 "가려 씨가 복도에 서 있게 됐고, 회령 출신 탈북자들을 찾기 위해 관리 사무실에 가서 사람을 찾으려고 하던 차에, 복도에 지나가던 (회령 출신 탈북자) 라 모 씨가 유가려를 알아봤다"고 진술한 부분도 의심스럽다. B 수사관이 언급한 라 씨는 증언대에 서서 "방송으로 저를 1층에 내려오라고 찾아서 내려갔더니 현관에 처녀 아이가 머리를 숙이고 서 있었는데 유가려라고 써 있는 종이를 몸에 붙이고 있었다"고 했다.
국정원 수사관들은 라 씨가 가려 씨를 우연히 마주한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라 씨에 따르면 그들은 라 씨가 가려 씨를 안다는 것을 미리 파악하고 '작전'을 짠 셈이 된다. 이는 '모욕주기'에 해당할 수 있다.
광범위한 '심리적 고문'의 흔적…그것을 토대로 작성된 진술서는 진실일까?
검찰에 수사 기록이 넘겨지기 전, 국정원의 조사는 줄곧 강압적 분위기로 진행됐다. A 수사관은 "(가려 씨에게) 처음부터 반말로 했다", "(가려 씨에게) 언성을 높이고 눈을 부릅뜬 적은 있다"고 증언했다. 변호인도 없는 상태에서 한국에 처음 들어온 가려 씨에게 이같은 분위기는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다.
또 B 수사관은 "진술 번복을 하게 되면 한국 법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반성문을 쓰게 했다"고 시인했다. '진술번복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협박을 한 것이다.
A 수사관은 또 "(가려 씨에게) 달력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외부잠금 장치가 있는, CCTV가 설치된 방"에서 가려 씨가 지냈다는 증언도 했다. 날짜 감각을 무디게 했다는 말이 된다. '지각 박탈'의 심리적 고문 유형에 해당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가려 씨의 증언에 따르면 합신센터 안에서는 다양한 '고문 기법'이 사용됐다. 국정원은 한국에 있는 유일한 혈육인 유우성 씨와 만나는 것 자체를 차단했다. 가려 씨는 심지어 자신이 조사받고 있던 시간에 유 씨가 이미 체포됐고 구치소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사회적 박탈)
또한 가려 씨는 수사관들이 "전기고문실에 데려가겠다"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고, 폭행(머리를 찧는 행위 등)과 체벌이 만연해 있었다고도 증언했다. "오빠의 간첩 행위를 진술하면 오빠랑 같이 살게 해 주겠다"는 식의 회유도 있었다고 했다. 이른바 '역정보법'이 동원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정원은 '폭행' 부분을 완강히 부인했다. A 수사관과 B 수사관은 "폭행한 사실이 없는데 멍이나 출혈 같은 게 있을 수 있겠느냐. 상처를 본 사실이 없다"고 마치 말을 맞춘 듯 증언했다. 재판부는 "폭행이 있었다"는 가려 씨의 증언을 배척하고 "폭행은 없었다"는 국정원 수사관들의 일방적 증언만 인정했다. 불법 감금 역시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심리적 고문'이 자행된 정황은 곳곳에 있다.
형사소송법 제 309조 제 1항에는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 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피고인 또는 피고인 아닌 자의 진술이 임의로 된 것이 아닌 것은 증거로 할 수 없으며, 작성, 또는 내용인 진술이 임의로 되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 아니면 증거로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국정원이 가려 씨에 대해 사실상 수사를 진행해놓고 변호인 접견권을 막은 것도 진술의 임의성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국정원 수사관은 법정에서 "당시 조사는 진성탈북자 여부가 아니었고, 대공혐의에 대한 조사였다"는 취지로 증언을 했다. 가려 씨를 피고인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강압에 의해 임의성 없는 진술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1심 재판부도 분명히 인정했다.
심지어 가려 씨의 중요 진술 일부는 객관적 증거와도 모순됐다. 가려 씨는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2012년 유 씨가 밀입북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가려 씨가 지목한 시점에 유 씨는 중국에 있었다. 가려 씨와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이는 애초 국정원 수사 과정에서 가려 씨가 한 진술의 신빙성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독방 상태에서 심리적 고문에 시달리며 진행됐던 "오빠가 간첩"이라는 가려 씨의 진술이 진실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다.
1심 재판 과정에서 유 씨에게 유리한 증거를 은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검찰이다. 2심 재판부에 '조작 증거' 세 건을 제출했던 검찰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야만시대의 기록>에는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양 모 씨가 한 증언이 나온다.
"고문에 의해 허위 자백한 것을 수백장의 자술서로 작성케 해 세뇌시켰다. 쉴새없이 자술서 작성을 강요하며 자신들의 요구대로 쓰지 않으면 구타가 다시 시작됐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자 그들이 강요했던 허위사실이 마치 내가 한 것처럼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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