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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국가인가"…경찰, '촛불 행진' 100명 무자비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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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국가인가"…경찰, '촛불 행진' 100명 무자비 연행 [현장] "5.18에 이럴 수 있나"… 평화 행진 막아선 공권력
"이것이 국가입니까"

청와대로 향하던 '세월호' 촛불 행진이 연이틀 공권력에 의해 막혔다. 17일 촛불집회에서 115명이 연행된 데 이어 18일에도 청와대로 향하던 침묵 행진단 100명이 무더기 연행됐다. (☞ 관련 기사 : ""눈물의 3만 촛불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시위 참가자 100명 전원 연행")

5.18 민중항쟁 34주기를 맞은 이 날, 세월호 참사 규탄 집회는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됐다. 세월호 참사 추모 침묵 행진 모임인 '가만히 있으라'는 오후 3시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에서 시청·광화문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18일 광화문 앞에서 기자 회견 중인 '세월호 참사 박근혜 퇴진 만민공동회' 참가자들. ⓒ프레시안(최형락)

같은 시각, 청계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박근혜 퇴진 청와대 만민공동회'가 열렸다. 400여 명의 참가자들은 발언 시간을 마친 후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이동했다. 경찰과 몇 번의 대치 끝에 광화문에 도착한 40여 명은 400여 명의 경찰에 둘러싸였다. '박근혜 퇴진',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한 뒤, '5.24 박근혜 퇴진 공동행동의 날'을 제안하며 오후 7시 30분경 자진 해산했다. (☞ 관련 기사 : "朴 정권, 세월호 추모 촛불에 '토끼몰이' 폭력으로 응답")

'평화 행진' 막아선 경찰, 시위대 '토끼몰이' 연행

만민공동회 참가자들이 해산할 무렵, '가만히 있으라' 행진 팀은 광화문 인근 동화면세점 앞에서 발이 묶였다. 청와대로 행진하던 시위대를 경찰이 막아선 것. 경찰이 행진 참가자 100여 명을 둥글게 둘러쌌고, 사람들은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주저앉았다.

경찰 대치 상황 속에서, 침묵 행진을 처음 제안한 대학생 용혜인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세월호는 해프닝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이야기할 때까지 행진을 멈추지 않겠다"며 "저는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용 씨는 "우리는 구호를 크게 외치지도 않았고, 촛불을 들고 행진을 했을 뿐이었다"며, "시민들의 통행에 심각한 불편을 주고 있다"는 경찰을 향해 "그들 앞에 우리는 시민도 국민도 아닌가 보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으라' 행진 참가자들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외국 유학 생활을 하던 중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잠시 귀국했다는 21살 이지민 씨의 발언도 주목받았다. "안산 출신 유학생"이라고 운을 뗀 이 씨는 "사실 지금 상황이 두렵다. 경찰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이들 개인은 아마 가슴 아플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9시 8분경, 시위대를 에워싸고 있던 경찰들이 갑자기 뒤로 물러서면서 해산 조짐을 보였다. 이에 시위대는 청와대를 향해 다시 행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해산이 아닌 '작전 변경'이었다. 종전의 경찰 병력은 광화문 네거리 골목 등으로 흩어져 인근 도로를 완전히 포위했다.

9시 10분경 시위 참가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뛰어가자, 경찰들은 흩어져 참가자 일부를 '토끼몰이식'으로 길 구석에 몰고 체포하기 시작했다. 경찰에 붙잡힌 이들이 보도로 뛰어 올라왔으나 경찰은 완력으로 제압, 연행했다. 십수 명이 붙잡혔으나, 이후 시민들의 도움으로 일부는 풀려나왔다.

▲9시 10분 경 광화문 4거리 인근 보도에서 연행되는 '가만히 있으라' 행진 참가자.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100명에서 20명, 그리고 0명…단 30분 만에 '전원 연행'

'경찰벽'에 가로막힌 시위대는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집결해 다시 규탄 발언을 이어갔다. 9시 35분께 다시 해산 명령이 떨어졌고, 9시 55분경 "모든 (해산 안내) 절차가 끝났다. 검거하라"는 지시와 함께 본격적인 연행이 시작됐다. 바닥에 앉아있던 80여 명의 시위대는 서로 팔짱을 끼고 드러눕다시피 했다.

경찰들은 "천천히, 한 명씩 끌어내"라고 했다. 3~4명으로 짜인 체포조는 간부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한 명 한 명 끌고 갔다. 대오에서 연행 대상자를 떼어내는 과정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여성 참가자 연행 과정에서도 예외 없이 과격한 장면이 펼쳐졌다. 여성 경찰들은 여성 참가자들의 사지를 들고 나갔다. 남성 경찰들이 무리하게 체포를 시도하자 여성 참가자들이 "몸에 손대지 말라" "성추행이다"라며 흥분하기도 했다.

경찰들은 기자들의 취재도 방해했다. 도로 옆 화단 위에서 취재 중인 기자들을 "위험하다"는 이유로 과격하게 끌어내려 항의를 받기도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무더기 연행으로, 10시 10분쯤 되자 참가자 가운데 절반이 사라졌다. 이후 잠시 소강 상태를 맞이하자, 참가자들은 다시 발언하며 구호를 외쳤다. 용 씨의 주도로 "민주주의 국가다. 할 말도 못하나", "당신들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면 이럴 수 없다", "여기 50명도 안 남았는데 경찰이 대체 몇 명이냐, 이것이 국가냐"고 외쳤다.

바리케이드 밖에 선 시민들이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경찰 뒤에 서 있던 한 남성이 큰 소리로 "시민들도 여러분을 지지한다. 함부로 기소하지 못 할 거다. 당당히 맞서라"고 말했고, 시위대는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10시 17분경, 줄곧 행진을 주도했던 용 씨가 연행됐다. 용 씨는 끝까지 "이것이 국가입니까", "세월호를 기억하라"고 외쳤다. 이후 10여 분간 30여 명이 추가로 연행됐다. 남은 참가자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여경들은 "나가실게요"라며 여성 참가자들의 손을 사정 없이 잡아끌었다.

10시 30분경 마지막 연행이 시작됐다. 20명에서 9명, 9명에서 3명, 결국 단 한 명의 참가자도 남기지 않은 채 경찰은 시위대를 전원 연행해갔다.

시위 참가자들이 모두 사라진 자리엔 찢어진 구호 종이만이 나뒹굴었다. 시위대가 전원 연행됐음에도 수백 명의 경찰 병력이 자리를 지키자, 시민 일부가 연행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다. 이러한 상태는 자정이 넘도록 이어졌으나 연행, 부상 사태 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가만히 있으라' 행진단에 대해 도로 점거를 이유로 총 100명을 연행됐다. 종로경찰서 한상훈 수사과장은 이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총 100명이 연행됐으며, 남성 63, 여성 37명이라고 밝혔다. 경찰 측은 종로, 혜화, 서부 경찰서 등 9개 경찰서에 나눠 연행자들을 조사하고 있다.

전날 연행자들에 대해선 115명 가운데 113명을 석방 조치했다. 나머지 2명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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