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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의 증언…북한 정권, 안에서 녹아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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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의 증언…북한 정권, 안에서 녹아내리고 있다?

[프레시안 books] 존 에버라드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

외국인 눈에 비친 북한의 민낯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책과함께, 2014년 8월 펴냄)의 저자 존 에버라드(John Everard)는 전문 외교관으로 2006년 2월부터 2008년 7월까지 평양에서 근무했다. 평양에서 대사관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유럽연합 국가(불가리아, 체코공화국, 독일, 폴란드, 루마니아, 스웨덴, 영국) 중 하나인 영국의 대사였다. 활동 범위가 평양으로 제한되기는 했지만 그에게 900일은 북한을 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가 직접 전하는 북한, 특히 평양 시민의 의식과 일상을 접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북한 주민들에 대한 선입견은 바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들 사이의 괴리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디지만 앞으로 북한이 서서히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3자적 입장(외국인 신분)에서 북한 정권과 주민들을 바라보았다. 평양의 엘리트 가운데 비핵심 계층(명망 있는 가문 출신으로, 북한 정권은 행정을 위해서 이 집단의 충성이 필요하다)에 속한 이들과 공식적·비공식적 만남을 통해 북한 사회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이해와 미래의 북한에 대한 유효한 접근법을 제시했다. 자신이 만난 평양 시민들과 정(情)도 들었지만, 저자는 온정적 입장에서만 그들을 보려 하지 않았다.

영국 대사의 눈에 비친 북한

ⓒ책과함께
소박하고 인내심 강하고 쾌활한 평양 시민들은 자신들을 통제하는 정권과는 무관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북한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실제 국가이고, 그 체제 안에서 일반인의 삶은 북한의 핵 정책이나 다른 어떤 중대한 국제적 쟁점과는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자신의 가족과 동료, 그리고 세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인 삶을 구성하는 일상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한편, 저자는 기존 연구자나 전문가들의 대북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북한의 변화가 실천으로 이어지기까지 갈 길이 멀지만, 자신이 만난 평양 시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북한 사회가 변화하기를 희망하는 저자의 간절한 마음이 곳곳에서 배어 나왔다.

외국인을 통한 이해가 북한 사회 전체를 아는 데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을 거론할 때, 민족적인 감정이 앞서고 2자적인 입장에 있는 우리보다 외국인의 서술과 평가가 좀 더 객관적이고 사실에 가까울 수 있다. 북한을 알지 못하고 들어가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북한 주민들을 왜곡하지 않기를 저자는 바란다. 이는 아마 그가 만났던 평양 시민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들의 순수함과 쾌활함이 저자에게 그들을 기억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필자도 2003년 3박 4일 일정으로 평양을 다녀온 적이 있다. 남북 교류가 활기를 띠던 시기로, 인도적 지원을 포함해 다양한 남측 단체들이 북한과 교류하고 북한을 지원하던 때였다. 이동 중인 버스 안에서, 당시 눈에 들어왔던 평양 시내를 떠올리면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당시 우리는 일반 시민을 접촉할 기회가 없어 북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알 수 없었다. 단지 남측 관계자들을 상대했던 북한 관리, 식당 직원, 안내원 등과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이다.

자신의 북한 지식이 부정확하고 무지하다고 겸손하게 인정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저자는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저자는 정책 입안자들이 북한을 다루는 방식인 '관여'와 '고립' 정책 중 과연 무엇이 북한의 행위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결론을 도출한다. 애석하게도 '관여'와 '고립'이라는 두 접근법이 효과가 없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그는 북한 주민에 대한 정권의 정치적 통제는 이미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북한 주민들은 자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약을 덜 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변화가 시작된 북한에 대한 유효한 접근법을 4장에서 제시한다.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은 다르다

책은 4부로 나뉘어 있다. 1부 '내가 본 북한, 사람, 삶'에서는 북한 주민과 그들의 삶을 통해 본 북한 사회를 서술했다. '동결된 사회, 통제된 사회'에서 북한 주민들은 가족과 노동이 전부인 단순하고 지루한 삶을 산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보기 드문 '보수적인 사회'다. 유교적인 잔재는 북한에서 부모와 자식 간, 남녀 간의 관계를 규정한다.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에너지와 식량·의약품 부족 사태는 북한 주민의 삶을 상상 이상으로 불편하고 척박하게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은 부모와 자식 간의 정(情)과 관계(關係)도 소원하게 만든다. 그나마 북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가족 관계인데도 그러하다.

저자에 따르면, 평양 시민들은 51개로 나뉜 성분이 더 이상 그들의 삶을 규정하는 데 있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배우자 선택에서도 성분보다 배우자의 소득을 중요시한다.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비용을 들여서라도 자녀를 교육시킨다. 이에 더해 개인의 실력보다 인맥을 통해 좋은 직업을 구하는 북한 사회는 점점 부패가 만연한 불평등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보다 비공식적인 채널이 더욱 활발히 가동되는 사회가 북한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물질 만능주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길에 들어섰다.

저자는 정권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정보 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통제 사회에서 정보 흐름이 정확하고 빠르다는 사실에 특히 놀란다. 구두 전달 방식의 효율성과 이 방식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에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이는 앞으로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주요 요인 중 하나인데, 불법이지만 외국 라디오 방송, 중국으로부터 정보 유입, 남한의 드라마 DVD 등이 주민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진 상태다. 이를 통해 북한 주민들은 자신이 지독히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북한 정권은 선전·선동을 통해 지도자의 무오류성과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이것이 틀렸다는 것을 점점 알아 가고 있다는 말이다.

북한 사람들은 서구 사회의 자유보다 서구의 생활수준이 자신들보다 높다는 것을 부러워한다. 1990년대 중반의 기근과 2009년 화폐 개혁의 실패로 북한 주민의 의식과 삶이 급격히 변화했다. 앞으로 북한의 변화를 주도할 키워드는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정보와 시장(정보 교환의 중심지)의 활성화일 것이다. 북한 정권은 이 둘의 확산을 막으려 하지만, 정권이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된 것 같다. 더디지만 변화는 시작되었다.

2부 '평양의 외국인들'에서 저자는 중국인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비호감과 오늘날 북한에서 중국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불안감에 대해 전한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역할이 증대되는 것과 호감은 반비례해서 북한 주민들이 중국을 싫어하고 있다는 말이다. 북한-중국 간 관계의 역사성을 고려할 때, 다소 의외로 다가온다.

3부 '북한의 과거와 미래'에서 저자는 북한을 '정치적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체제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통치자 김일성과 김정일의 개인적 성격은 체제의 특성을 규정했다. 그리고 중국과 소련 그 어느 쪽과도 완전히 동조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나치에 가까운 민족주의 특성을 갖게 했다. 300여만 명의 아사자를 만들어 냈던 1990년대 중반의 기근으로 시작된 북한 주민들의 정권에 대한 의구심은 북한의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같은 변화로 촉발된 개인주의와 시장의 활성화를 두려워한 정권은 2009년 화폐 개혁을 시행했으나, 그마저 실패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정권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의구심을 증폭시켰고, 정권에 대한 믿음은 점점 침식되어 갔다. 저자는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으로 경제적 후진성을 꼽았다.

4부 '북한 상대하기'에서 저자는 인도적 지원의 한계와 함께,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압박이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유효한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북한에 대한 불신으로 국제 사회의 원조가 지속될지도 의문이지만, 북한에 대한 원조가 더 이상 정치적 지렛대로서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다만 6자 회담은 해볼 만하다고 본다. 6자 회담이 북한을 비핵화로 이끌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미국을 상대하는 동안 북한이 도발적 행위를 거의 시도하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판단이다.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미흡하지만, 이러한 '관여'는 그나마 효율적이었다는 평가도 덧붙인다. 반면 어떠한 형태의 북한 '고립' 정책도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북핵을 가장 큰 위협으로 생각하는데, 미국이 북한에 평화 조약과 외교적 승인을 제공하고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받아들인다면(북한이 핵안전보장회의에 참여한다는 조건으로) 난국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북한 주민과 북한 정권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혐오스런 일들을 자행하는 북한 정권과 분리해서 북한 주민을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앞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 강력한 추진력은 북한 주민으로부터 나올 것이며, 이들의 의식 변화가 그 힘의 원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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