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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텅 빈 무덤'에 담긴 핏빛 그리스도교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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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텅 빈 무덤'에 담긴 핏빛 그리스도교의 비밀 [프레시안 books] 제임스 캐럴 <예루살렘 광기>
'처형당한 예수의 시신이 안치되었던 무덤에 예수는 없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전한 것은 <마가복음>이다. 이것은 '주의 부활'을 묘사하는 구절 속에 들어 있는데, 이 부활 설화의 가장 오래된 버전을 전하는 바울은 그이가 살아나서 누구누구에게 '나타났는지'를 묘사하고 있는 반면(<고린도전서> 15,4~6), 그로부터 거의 20년 정도 지난 문서로 보이는 <마가복음>은 부활의 첫 증언을 '텅 빈 무덤'으로 그리고 있다.

이 텍스트에 대한 <예루살렘 광기>(동녘, 2014년 7월 펴냄)의 저자 제임스 캐럴(James Carroll)의 해석은 흥미롭다. 그에 의하면 '텅 빈 무덤'은 '죽음의 종교의 종식'을 의미한다. 즉 '죽음의 의례가 이제 끝났다'는 선언이다. 이 해석은, 신학적으로 보면 꽤 재밌는 토론거리가 되겠지만, 그리스도교 전통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치명적 비판이 된다. 왜냐면 '죽음의 의례'의 차원은 거의 그리스도교 예전의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캐럴이 한때 사제였던 가톨릭에서 예전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기에 너무나 발본적인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프로테스탄트의 경우도 안심할 입장이 아니다. 예전 자체가 차지하는 신앙 제도상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천국' 이슈 같은 것이 차지하는 담론상의 지위가 너무나 막중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신앙적 장치인 '신 죽음'의 소재를 폐기하라는 제안은 종교개혁 정도가 아니라 종교 대혁신의 논점이라 할 만하다.

한데 캐럴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죽음의 종교의 종식'이라는 테제는 '예루살렘 성전 종교의 종식'의 의미로까지 확장된다는 것이다. 그에게서 그런 확대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예루살렘 성전 자체가 죽음의 제의, 곧 희생 제의를 초석으로 하여 형성된 종교 제도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예루살렘 성전의 터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삼기 위해 올라갔던 모리아 산의 제단, 바로 그곳이었다는 신화적 기억을 유대주의 전통은 확고히 믿고 있다. 실제로 고대 유다국 계보의 역사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희생 제사 터를 수백 년 후 솔로몬이 재건축하여 성전을 지었다고 주장한다(<역대기하> 3,1). 이렇게 예수의 '텅 빈 무덤' 설화의 함의를 솔로몬의 성전, 나아가 아브라함의 희생 제의의 함의와 연계시키고, 그것이 죽음의 의례를 비판하는 발본적 문제 제기라는 논점은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에 모두 해당하는 종교 대혁신의 의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세 종교의 위기를 논하기보다 그리스도교에 집중해보려 한다. 왜냐면 한국 사회에서 유대교나 이슬람교에 대한 비판은 좀 '남의 일' 같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 한국 사회의 여러 종교들 가운데 가장 폐해가 심각한 것이 그리스도교이니 캐럴의 책이 제시한 종교 혁신의 의제를 그리스도교 혁신의 의제로 읽는 것이 더 우리에게 필요한 독법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텅 빈 무덤'과 예루살렘의 장소성

ⓒ동녘
예루살렘의 장소성은 <마가복음>의 구성에서 꽤 중요하다. 캐럴은 '텅 빈 무덤' 얘기를 너무 짧게 언급하고 있고, 장소성이 복음서의 문맥적 구성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거의 얘기하지 않지만, 이 문제는 캐럴의 논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요긴하다. <마가복음>은 두 개의 대립적 장소성을 문맥 구성의 핵심으로 하고 있다. '갈릴리와 예루살렘'이 그것이다. 1,1부터 9,31까지는 갈릴리라는 장소가 핵심적 고리를 이루고 있다면, 9,32~16,8은 예루살렘이 핵심적 키워드다(마지막 부분인 16,9~20는 원래의 <마가복음>에는 없던 후대의 첨가 부분이다.) 한데 이 둘은 서로 대립적이다. 전자가 예수 운동의 상승 국면을 말하고 있다면, 후자는 하강 국면을 말한다. 또 전자는 모이고 나누고 즐기는 것에 관한 얘기가 중심 골격을 이룬다면, 후자는 증오, 배신, 파괴의 기조를 지닌다. 하여 전자가 살림의 장소라면, 후자는 죽임의 장소다.

이 복음서의 이와 같은 장소성에 관한 문맥적 구성을 염두에 둔다면 캐럴의 해석은 좀 더 설득력을 갖는다. 그에 의하면 <마가복음>은 '역사의 예수'(historical Jesus)를 묘사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 텍스트가 저작된 서기 70년 어간에 존립했던 한 예수계 공동체의 주장을 담고 있다. 이때는 팔레스티나의 이스라엘인들이 대대적인 반로마 항쟁을 벌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 사라져 버리는 등, 참혹한 패배와 파괴의 시대였다. 네로의 실각 이후 극심한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고 로마 황제로 등극한 최대 군벌인 베스파시아누스는 자신의 아들 티투스에게 이 반란 진압의 전권을 주었는데, 티투스는 이 작은 땅을 무려 14개 군단 병력으로 유린했고, 특히 예루살렘은 6개월간 철저히 파괴했다. <마가복음>이 마치 예수의 예언처럼 언급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것은 이 전쟁의 처참한 파괴의 양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 역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마가복음> 공동체 혹은 저자에게 예루살렘은 죽음의 저주가 뒤덮인 장소에 다름 아니었다. 왜 그런 저주가 이곳에 내린 것일까? 전후 유대주의 복원 과정에서 중심 세력이 된 랍비적 바리새주의자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한 불경이 그 이유라고 해석했다. 해서 거의 700년 후 <탈무드>로 완성된, 율법에 대한 주석과 해석 작업을 시작했다.

반면 <마가복음> 공동체 혹은 저자는 그 도시가 예수를 증오하고 배신하며 살해한 장소였기 때문에 저주의 장소가 되었다고 보았다. 하여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주의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첫 목격자들이 본 것은 부활한 그이가 아니라 '텅 빈 무덤'이었다는 새로운 해석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좀 더 부연하면, 예수의 시신도, 부활한 그이도 없는 그곳엔, 마치 천사를 연상시키는, '흰 옷 입은 청년' 하나가 있었다. 그이가 그 첫 목격자들에게 말했다. '그이는 이곳엔 없고, 당신들보다 먼저 갈릴리에 가 계시다.'

여기에 하나 더 부연하자면, 이들 첫 목격자들은 모두 갈릴리부터 예수와 함께했던 '여자 제자들'이었다. 남자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와 갈등을 일으켰고, 배신했거나 도망쳤다. 반면 이들 여자들은 예수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고, 살림의 장소인 갈릴리로 가서 예수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던 것이 암시되어 있다. 캐럴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아마도 <마가복음> 공동체도 이렇게 만들어졌던 듯하다.

여기서 예수 사후의 예수 운동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남자 제자들의 대표 격인 베드로를 위시한 몇몇 주요 인물들은 예루살렘에 남아서 예수 공동체를 만들었다(이를 '예루살렘계 예수 운동'이라고 하자). 하여 <누가복음>은, 비록 <마가복음>이 대본이었음에도 이 복음서와는 달리, 부활한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났다고 전한다. 곧 <누가복음>은 예루살렘계 예수 운동의 계보와 친화적인 집단에 의한 기록이다. 한데 <마가복음>은, 예루살렘 성전의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제자들도 결국 예수를 죽이는 일에 동조한 셈이라고 본다. 이는 예루살렘의 예수 공동체에 대한 명백한 반감을 전제로 한다. 요컨대 <마가복음>은 반예루살렘계 예수 운동의 계보에서 예수를 묘사한다.

그렇다면 캐럴은 반예루살렘파의 관점에서 죽임의 종교의 종식, 곧 예루살렘적 장소성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된다. 여기서 해체되어야 할 장소성에 얽힌 종교 세력은 성전 권력만이 아니라, 성전 체제에 대해 철저한 비판을 유보한 채 존속하고 있던 예루살렘계 예수 운동도 포함된다. 이는 매우 시사적인데, 오늘날 주류 교회들은 서로 이 예루살렘 예수 공동체, 특히 그 주요 지도자였던 베드로의 법통을 잇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한데 <마가복음>은 민중의 복음서다. 아주 일찍부터 형성된 예수 운동의 주류에서 비껴가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초기부터 주류 예수 운동 계열에서 기억이 제거된 여성 제자들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첫 증인으로 처음 주장했던 텍스트다. 게다가 민중신학의 발견에 의하면 이 복음서 공동체의 중심 집단은 유민 혹은 난민 같은 천민화된 떠돌이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캐럴은, 필경 알지 못한 채 이야기했겠지만, 초기 예수 운동사의 민중적 계보의 시각을 자신의 생각과 겹쳐 놓은 셈이다. 하여, 흥미롭게도 예루살렘 성전 체제 같은 죽임의 체제에 대항하는 살림의 종교에 대한 캐럴의 종교 대혁신 주장은 이미 민중신학의 종교 비판 서사의 골간이었다.

죽임의 종교, 살림의 종교

아무튼 그러한 해석에 기초하여 형성된 그리스도교는 얼마 안 가 '죽음의 의례와 상징'으로 가득한 종교가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의례와 상징 곳곳에 스며 있는 희생양 제의의 기억은 실제로 역사 속의 잔인한 폭력으로 구체화되었다는 점이다. 제국 종교의 위상을 갖게 된 지 얼마 안 된 4세기 말(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등)에 벌써 그리스도교는 '적'에 대한 가차 없는 살육을 소리 높여 신학화하고 실행에 옮기는 종교가 되었던 것이다. 이때 '적'은 유대인이었다. 이렇게 의례와 상징은 단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폭력으로 구현되었다.

한데 이에 대한 캐럴의 문제 제기는 혹독하다. 그리스도교의 잔혹한 폭력성은 '희생 제의의 해체'를 강변한 복음서를 잘못 이해했거나 오용한 '잘못된' 그리스도교의 산물이 아니다. 여기서 '잘못된' 그리스도교란 콘스탄티누스적 그리스도교를 의미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4세기 초 로마의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가 교회를 공인하고 나아가 제국 종교로 이용하면서 새롭게 제도화된 그리스도교가 '잘못된' 그리스도교의 원류다. 그 이후 교회들이 그 잘못된 제도의 계보를 따름으로써 오늘에 이른 것이라는 얘기다. 캐럴은 어느 정도 이 견해에 공감하는 것 같지만, 또 다른 점에서는 더 근원적이고 철저한 비판을 가한다. 즉 그리스도교의 잔혹성은 4세기의 콘스탄티누스적 전환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 아주 초기에 벌써 그 맹아가 자리 잡은 결과다. 예컨대 <마가복음>이 저술된 지 불과 20~30년 이후인 서기 1세기 말의 문서 <요한복음>에 이르면 악의 표상인 '사탄'은 다름 아닌 '유대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훗날 유대인에 대한 범주적 증오와 적대의 성서적 근거가 되었고, 결국 '텅 빈 무덤'의 신앙은 다시 예루살렘 성전 종교, 곧 죽음의 종교로 회귀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캐럴의 이러한 종교 비판의 근저에는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서구 사회가 저지른 무수한 잔혹사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들어 있다. 이것들은 한결같이 '악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하는 사건들이고, 그 명분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리스도교적 도그마였으며, 예루살렘이라는 장소성이 이 도그마의 중심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대두하기도 전인 예루살렘의 예수 운동 계보에서 이미 나타났고, 처음 하나의 독자적 종교로서 등장하기 시작한 1세기 말에 벌써 제도화의 방향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데 그는 여기서 그리스도교만을 비판하고 있지는 않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도 이러한 잔혹사의 대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세 종교는 지난 백 년간 예루살렘 종교의 희생 제의를 끊임없이 현재화하며, 적을 증오하고 그 증오를 한꺼번에 집중해 표출할 대상을 지목하여 그 대상을 희생양 삼아 잔인한 학살을 저질러 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해자들은 그 잔인한 폭력이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근본적인 '적', 곧 사탄이 현재화한 것이 바로 희생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폭력은 정당화된다.

캐럴은 세 종교의 이러한 폭력의 정당화 시스템이 수렴하는 장소인 예루살렘을 그 종교 제도가 형성되기 시작한 때부터 현재까지 일괄하여 잔혹사를 들여다보고, 그 배후에 도사린 희생 제의의 장소적 논리 혹은 신학을 비판적으로 점검하였다. 세 종교는 서로 경쟁하듯 '적'을 증오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왔다. 심지어 세 종교로 분화되기 이전에 벌써 죽음의 종교로 나아가는 경로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그 중심적 장소가 바로 예루살렘이었다. <예루살렘 광기>는 바로 이런 얘기를 담고 있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

캐럴이 이 책에서 진정 묻고 싶었던 것은, '왜 대중은 폭력을 지지하는가?', '심지어 폭력의 집단적 가해자로 돌변하는 원리는 무엇인가?'에 있는 것 같다. 이 책보다 몇 년 전 그가 쓴 다른 저작인 <전쟁의 집>(2009)은 폭력성의 기원을 현대적 제국의 정치 질서에서 묻고 있다면, 여기서 그는 대중의 욕망에 초점을 두고 있고, 그것을 담아내는 가장 적절한 그릇을 종교라고 보았으며, 폭력성의 종교에 대한 가장 적절한 논리적 배후를 희생 제의로 보았던 것이다.

희생 제의와 폭력성에 관한 해석의 원조는 알다시피 프랑스의 문예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Rene Girard)다. 한데 그에게서 희생 제의는 인간 속에 내재한 폭력성을 안전한 폭력, 즉 보복당하지 않는 폭력으로 돌림으로써 무한 반복되는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일종의 평화의 제의로 해석된다.

처음에는 죄수 혹은 혐오스러운 자 등이 희생 제의의 대상이었다가 점차 동물로 바뀌었다. 그런데 희생 제의의 본산인 예루살렘이 붕괴함에 따라 희생 제물이 상징화되고 추상화된다. 여기서 캐럴은 지라르와는 다른 해석에 도달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징화와 추상화는 구체적 역사에서 그 밖으로 나온 의미의 세계에 관한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역사 속으로 다시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악'과의 전쟁을 의미하는 종교적 암시로 해석된다. 이로써 희생 제의는 폭력의 종교를 낳는다는 주장이다.

바로 이 점이 캐럴이 문제시하는 희생 제의의 디스토피아적 측면이다. 종교는 끊임없이 삶에 끼어들고, 여기서 싸워야 할 '악'은 몸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즉 '실재하는 적'과 '신앙적 악'이 서로 뒤얽히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종교는 이 둘을 동일시하도록 착시를 일으키고, 나아가 실재하는 적에 대한 증오를 더욱 극대화하도록 자극하곤 한다. 이제 적은 근원적으로 멸절해야 할 대상이 되고, '우리'는 그 적에 대한 섬멸을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죽임의 사도'가 되는 것이다. 하여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선교가 동시에 제국 침략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희생 제의의 논리가 대중으로 하여금 폭력의 지지자가 되게 하고 스스로 집단적 가해자가 되게 한다는 것이 캐럴의 주장이다.

해서 그는 이러한 종교를 '나쁜 종교'라고 명명한다.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보게 하고, 그 이분법을 더욱 극화된 것으로 생각하게 하며, 그런 이분법적 도그마에 집착하여 폭력의 실행자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 제도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되는 것이다.

책의 결론부에서 캐럴은 '좋은 종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딱딱하고 개념적인 얘기를 제쳐두고 말하면, 앞에서 이야기한 <마가복음>의 '텅 빈 무덤' 신앙과 같은 것이겠다. 곧 죽임의 종교를 넘어, 살림의 종교로 전환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가복음>에서 갈릴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평등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아픈 이들과 건강한 이들이 함께 얽혀 지내며, 그런 공동체 가운데서 특히 아픈 이들에게 신의 축복이 내리는 장소였다. 그것은 증오와 추방의 장소가 아니라 공존의 장소이고, 적대의 장소가 아니라 나눔의 장소이다. 이런 장소성으로 혁신되는 것이 바로 '좋은 종교'가 되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 예수의 일생을 다룬 영화 <선 오브 갓(Son of God)>의 한 장면. ⓒ20세기 폭스


나쁜 종교라는 말보다는 '종교와 정치의 나쁜 결합'에 주목해야

캐럴의 저작에서 현대의 정치학을 다루는 부분을 제외하면, 고대와 중세에 관한 그의 서술은 다분히 도식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해석들이 난무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하나의 역사적 정보를 주는 책으로 훌륭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 해석이 재밌지만, 다른 관점의 책들을 같이 보아야 균형 잡힌 역사적 정보와 그 해석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 비판서의 관점에서 본다면 꽤나 훌륭한 저작임에 틀림없다. 특히 세 종교의 공통된 장소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들 종교가 오늘날 보이는 과한 폭력성에 대해 <예루살렘 광기>처럼 장구한 역사를 돌아보면서 다분히 편향적이지만 꽤 흥미롭고 창의적이며 설득력 있게 논리를 펴고 있는 책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역사적 정보의 부실한 취급은, 이 책이 역사적 정보를 주려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닌 한, 중요하지 않지만, 그 논지를 이끌고 있는 해석에 대해서는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가령 그의 주장을 아주 간단히 도식화하면 '희생 제의→증오의 정당화→폭력의 정당화'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인데, 이러한 해석의 코드는 자칫 그의 문제의식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한 독서 모임에서 제기된 지적이 그렇다. 그의 문제의식, 곧 '대중은 왜, 어떻게 기꺼이 폭력을 지지 혹은 자행하는 자가 되는가?'에 대해 캐럴은 이렇게 단언한다. 그것은 '나쁜 종교'의 소산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나쁜 종교'에 대한 그의 묘사가 명료하지 않아 단언하기 어렵지만, 자칫 예루살렘에 대한 열정에 빠져 있는 대중은 모두 폭력을 지지 혹은 자행하는 자라는 편견이 담겨 있는 것처럼 해독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왜냐면 그에 의하면 이러한 이분법적 신앙은 '나쁜 종교'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분법적 신앙의 가장 극명한 사례인 근본주의적 개신교 신자라고 하여 모두 공격적 반공주의자인 것은 아니고, 공격적 반공주의자라고 하여 모두 공산주의자를 파멸시키는 폭력적 행동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주위에서 근본주의적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지만 매우 이타적이고 배려심 많은 삶을 사는, 쉽게 볼 수 없는 훌륭한 이들을 종종 만난다. 이분법적 신앙심을 가졌지만 폭력성을 지니기보다는 이타적이고 때로는 희생적이기까지 한 행동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신앙이 더 철저히 '적'에 대한 포용의 윤리를 자극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쁜 종교라는 말보다는 '종교와 정치의 나쁜 결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면 '나쁜 종교'라는 표현이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극을 잘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1945년 해방 직후 월남한 개신교도들은 절대다수가 근본주의적이고 반공주의자였다. 그리고 그들은 1920년대 중반경 당시 조선의 주요 외래 사상들인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간의 갈등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였던 이들이다. 1920년대의 갈등을 직접 체험하기에는 월남자들 대다수는 너무 젊었기 때문이다. 해서 이들의 반공주의 속에는 '선험적 요소'가 들어 있다. 또 이들은 해방 직후 북한 지역에서 치열한 헤게모니 투쟁에서 패배하고 혹독한 정치 보복을 체험함으로 인해, '체험된 반공주의'가 강하게 그들의 신앙적 성향에 영향을 끼치고 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1945년 이후 월남한 평안도와 황해도의 개신교 신자들, 특히 그들의 대다수이기도 하고 가장 강성의 반공주의자들인 장로교 신자들이 모두 남한에서 증오 범죄의 가해자가 된 것은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뼛속까지 반공주의자였지만, 그것을 폭력적 행동으로 실행에 옮긴 이들은 그들의 일부였다. 한데 캐럴이 '나쁜 종교'라고 명명한 요소를 다 갖춘 월남한 개신교 신자들이 남한 사회에서 과격한 행동주의자가 되는 데는 그러한 종교심만 작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당시 훗날 매카시주의자들에 의해 미국 대선 후보로 추대되기까지 했던 강성 반공주의자이자 근본주의적 개신교 신자였던 맥아더는 남한 사회를 반공주의적 그리스도교 국가로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남한의 이념 성향을 조사한 결과 충격적이게도 무려 77퍼센트가 좌익 성향이었다. 하여 주로 맥아더의 장교들로 구성된 미군정은 강력한 반공주의적 통제를 실시했고, 나아가 반공주의적 백색테러를 은밀히 사주하기까지 했다. 일본의 맥아더 사령부와 남한의 미군정 장교들 간의 긴밀한 보고와 지시들은 그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미군정에 의해 고용된 남한의 경찰 세력이 관여되어 있었다. 이들의 상당수는 친일 경력이 있었고, 또 강성 개신교 신자이기도 했으며, 강성 반공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남한의 소수 반공주의자들을 부추겼고, 부랑자 청년들과 월남한 개신교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반공주의적 행동을 감행함으로써 그 사주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요컨대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반공주의적 개신교 청년들 다수를 과격한 행동주의자로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중요한 요인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요소였다.

나는 이것을 '수행적 반공주의'라고 명명한 바 있는데, 이 세 종류의 반공주의, 곧 선험적, 체험적, 수행적 반공주의가 만남으로써 해방 정국 당시 남한의 반공주의적 증오 범죄가 자행될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종교와 정치의 나쁜 만남의 사례다. 비슷한 사례를 세르비아의 그리스도교 청년들이 무슬림인 보스니아인들에게 가한 집단 학살에서도 볼 수 있다. 여기서도 천년 전의 증오를 간직한 교회(종교)와 그것을 증오 범죄가 되도록 자극한 정치 간의 나쁜 결합이 있었다.

또한 종교적 근본주의에는 자신의 위기를 합리적 언어로 표출하지 못한 민중의 상실감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근본주의 신앙 혹은 신념은 그러한 사회적 요소를 포함한다. 그런데 근본주의는 이분법적이고, 특히 현실 너머에 대한 상상으로 현실의 갈망을 표현하곤 한다. 그렇지만 근본주의자들이 모두 '나쁜 종교'의 혐의를 받을 만큼 잘못된 폭력의 가해자가 아닌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다.

그런데 이런 종교 현상이 나타난 것은 현실에 대해 더 합리적으로 사유할 수 있고 대응할 수 있는 이들이 만들어낸 세계의 위기가 전제되어 있다. 물론 이 문제는 이 책의 과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자칫 독서자는 이 책에서 위기의 세계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보다는 종교적 근본주의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킬 수 있다. 내가 보기엔, 그의 주장 자체가 그런 해독의 가능성을 다분히 내포한다. 캐럴이 <마가복음>의 '텅 빈 무덤' 신앙을 오인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한 것처럼, 희생 제의 담론을 근본주의자처럼 믿는 이들 전체를 폄하하고 그런 신앙의 사회적 배후를 망각하는 데 이 책이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누구인들 이런 해석의 위기에서 자유롭겠는가. 아마도 서평이 있는 것은, 적어도 그 필요성의 하나는 바로 이런 문제를 미리 짚어두기 위함이겠다. 너무 두꺼워서 선뜻 손에 쥐기 어려운 책이지만, 적어도 우리 시대의 종교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하나의 훌륭한 종교 비판서를 통해 성찰의 기회를 누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각자 나름의 언어로, 글이든 말이든, 서평의 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다른 독자에게 소중한 안내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행복한 독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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