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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멸망 피하고 싶다면? 원을 다시 닫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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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멸망 피하고 싶다면? 원을 다시 닫아라

[프레시안 books] 배리 카머너 <원은 닫혀야 한다>

'환경 재앙'이라는 유령이 온 지구를 배회하고 있다. 말뿐이지 실체가 없다는 쪽과 목전에 다가왔다는 쪽이 맞서는 와중에 일반 시민들은 걱정스럽긴 하지만 '귀차니즘'과 '설마주의'에 기댄 채 어정쩡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기든스 패러독스'라는 현학적 표현으로 이런 현실을 포착한다. 기후변화라는 환경 재앙이 목전에 닥쳤지만 우리는 실생활에서 잘 느끼기 힘들기 때문에 미래의 큰 위험보다는 당장의 작은 이익에 매몰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그렇지만 해결책으로 원자력을 확대하자는 그의 주장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여우를 피하려고 호랑이굴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기든스는 <원은 닫혀야 한다>(이음, 2014년 9월 펴냄)의 저자 배리 카머너(Barry Commoner)에게 배워야 한다. 카머너가 원자력을 반대했던 이유뿐만 아니라 '환경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책을 도출하려는 그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말이다. 카머너는 어린이의 젖니에서 방사능 물질 스트론튬-90을 검출해냄으로써 핵폭발 실험에서 발생한 방사능 낙진이 생태계를 온통 오염시키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런 그의 노력은 1963년 부분핵실험금지조약의 체결로 이어졌다. 카머너는 원자력을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한다. 원폭 실험은 물론 원자력 발전도 방사능을 자연으로 누출함으로써 생태계의 순환 고리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기든스가 기후변화의 원인이 생태계 순환 고리의 파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원자력 발전을 그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3.11대참사(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원전 사고는 물론 처치 곤란한 핵폐기물을 생각해보라.

캐나다의 사진작가 에드워드 버틴스키(Edward Burtynsky)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조된 자연의 풍경들>(manufactured landscapes)은 대량 생산, 대량 유통, 대량 소비를 축으로 삼는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자연환경을 얼마나 대규모로 무자비하게 파괴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그렇게 파괴된 풍경이 자아내는 비경은 말 그대로 아이러니다. 이 시스템은 엄청난 양의 자연 자원을 투입 받고, 엄청난 양의 폐기물과 쓰레기를 쏟아내면서 무한 증식을 시도한다. 그렇지만 이 시스템은 닫혀 있지도 않고, 시작부터 끝까지 자연에 의존하면서도 그 모태인 자연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반(反)생태적이다.

카머너는 이 다큐멘터리가 나오기 40여 년 전에 환경 위기의 이유가 현대 과학기술 문명과 자본주의 시스템이 생태계의 순환 고리를 파괴하고 왜곡한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런 진단 속에서 그는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원은 닫혀야 한다!" 진리는 자고로 단순한 법이다―마치 명품이 '심플한' 것처럼. 이 책이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침묵의 봄>(Silent Spring)과 함께 환경 고전으로 자리 잡고, 출간된 지 40년이 넘도록 여전히 강한 울림을 주는 까닭이다.

과학기술 문명과 자본주의 시스템이 망가뜨린 생태계 순환 고리

ⓒ이음
카머너는 말한다. 생태 위기란 생태계(카머너의 용어는 생태권)의 순환 고리가 왜곡되거나 파괴되어서 경고음이 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함으로써 생태계의 순환 고리를 다시 닫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생태계에 대해서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카머너는 생태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생태학의 4법칙'을 제시한다.

제1법칙 :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에 연결되어 있다.
제2법칙 : 모든 것은 어딘가로 가게 되어 있다.
제3법칙 : 자연에 맡겨두는 것이 가장 낫다.
제4법칙 : 공짜 점심 따위는 없다.

현재, 이 4법칙은 생태계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초석으로 여겨진다. 사실, 인류는 오랫동안 체험적으로 이런 생태학 법칙을 지켜왔고, 그렇기 때문에 몇 차례의 소규모 문명 파괴에도 불구하고 문명을 지속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산업화와 함께 법칙은 무시당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우리는 환경 위기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현재 우리가 처한 환경 위기는 일부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서 발생하는 항시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어떤 경우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생태학의 4법칙을 부연하면, 만물은 생명그물에 매여 있다는 시애틀 추장의 지혜를 좇아 우리의 행동은 생태계를 통해 다시 우리에게 돌려지고(제1법칙), 오염 물질이나 쓰레기는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곳에 버린다고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제2법칙),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자연환경은 자신의 균형을 스스로 유지하고 있는 반면 우리의 과학기술은 좁은 시야 속에서 칼을 휘두르는 선무당과 다를 바 없고(제3법칙),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의 이기는 환경 파괴라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제4법칙).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런 생태학의 법칙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화석연료를 통한 이윤 추구에만 눈이 벌게 온실 기체의 위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소각장을 빠져나간 다이옥신은 농축을 통해 우리의 생명을 노리며,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면 환경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고, 생산과 개발의 이익만 챙길 뿐 환경오염이나 파괴에 대한 비용은 최대한 회피하려 한다. 이런 반생태적 시스템 속에 길들여진 우리는 생태계의 일원으로 생태계에 속해 있으며, 생태계를 벗어나선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은 채 자연의 지배자로 행세하면서 생태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1968년 크리스마스이브, 달 비행에 나선 아폴로 8호는 달의 건너편에서 지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그 사진 속에서 지구는 막 어둠을 뚫고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지구돋이'(earth-rising)! 그 한 장의 사진은 인류에게 일종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무한한 줄로만 알았던 지구가 사실은 우주의 조그만 외로운 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환경 위기라는 유령의 출현은 이 사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1970년 4월 22일에 열렸던 '지구의 날'(Earth's Day) 행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구는 우리의 탐욕과 악행까지도 모두 품어줄 수 있는 너른 품이 아니라 지키고 보호하지 않으면 결국에 파괴되고 말 '숲'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리가 나서서 국립공원을 지키듯, 지구를 지켜야 한다!

물과 전기를 아껴 쓰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실천이 제 몫을 다하려면 환경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할 필요가 있다. 환경 위기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자의적 해석만큼이나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구 증가가 환경 위기를 초래했다는 주장은 현재에도 유효한 것으로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카머너는 인구 증가가 환경 문제의 주요인이라는, 폴 에를리히(Paul Ehrlich)와 개릿 하딘(Garrett Hardin)으로 대표되는 신맬서스주의적 입장을 비판한다. 특히, 하딘은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논증을 통해 현재와 같은 조건이라면 환경 파괴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합의에 의한 상호 강제'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이들은 인구 증가에 따른 해결책으로 인구 조절을 제시했는데, 그 핵심은 출산율 억제 정책이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결과적으로 '정책적 억압'을 초래할 수 있고, 국제적으로는 저출산율의 미국보다는 고출산율의 제3세계를 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카머너는 객관적 자료를 통해 인구 증가가 환경 파괴에 끼치는 영향이 그들의 주장과 달리 그리 크지 않음을 밝히는 동시에 그들의 주장이 '환경의 국제정치화'를 획책하는 일종의 인종차별주의적이고 신식민주의적 시각에 기초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환경 위기와 사회 문제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카머너의 문제의식은 대기, 토양, 호수와 바다를 둘러싼 생태계의 파괴 현상에 머물지 않고, 생태계 속에서 인간의 지위를 묻고 나서 과학기술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는 현대 문명이 과학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도 있다는 기대에 비춰볼 때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카머너가 생물학 교수로서 현역 과학자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비판적 과학자로서 과학의 장점은 물론 단점과 한계도 체득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에 대해 비판을 꺼리는 사회과학자들과는 달리 '직설적으로' 과학기술의 문제를 꺼낼 수 있었던 것이다.

카머너는 현대 과학의 한계를 직시한다. 생태계는 너무 복잡한데 반해, 과학은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나머지 복잡한 생태계의 원리를 알아내는 데 취약하다. 과학은 그 편협한 시야로 위험하기조차 하다. 가령, 플라스틱과 살충제 등 현대의 많은 문명의 이기는 유기화학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는데, 많은 유기화학 물질은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한 적이 없는 것들이다. 이런 물질들이 생태계에 나왔을 때 생태계의 순환 고리를 왜곡할 가능성은 매우 크지만 과학자들은 신중을 기하지 않은 채 새로운 화학합성 물질을 만들어냄으로써 환경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기술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사회는 모든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한때, 핵폐기물을 우주선에 실어서 우주 밖으로 날려 보내는 수단이 강구되었을 정도다. 이런 경향성은 기술적 의존도만 높일 뿐 생태 문제의 해결책으로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기술적 해결책은 특정한 문제의 해결에 집중될 뿐 생태계 전체의 그물망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가령, 하수 처리 기술의 경우 유기물질로 인한 하수의 산소요구량을 감소시키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하수 처리된 무기물질의 비료 효과를 놓치고, 이는 결국 하수 처리 기술을 무효화하고 만다.

카머너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학기술이 크게 기여할 수 있음에도 주목한다. 이와 관련하여 데이빗 헤스(David Hess)의 '실행되지 않은 과학'(undone science)이라는 개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체계적으로 무시되고 연구되지 않은 과학 주제, 영역 또는 분야가 존재한다는 헤스의 주장은 카머너의 문제의식에 가닿는다. 생태계의 4법칙을 충분히 고려한 과학기술 활동은 생태계에 대한 건전한 과학 지식은 물론 생태계와 지속 가능하게 공존하는 것을 보장하는 해결책을 제시해줄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양심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카머너는 부분핵실험금지조약에 앞장섰던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과 공공 정보를 위한 과학자 위원회 소속 과학자들, 신경가스 폐기에 앞장섰던 세인트루이스 환경정보위원회 소속 과학자들, 생화학무기 폐기에 앞장섰던 과학자들, DDT 위험을 경고한 레이첼 카슨 등을 대표적 예로 꼽으며, 더 많은 과학자들이 환경 문제 해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으로 기대한다.

카머너는 문제의식의 지평을 넓혀서 환경 문제란 환경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와 맺은 관련성을 파악할 때 비로소 그 본질이 분명해진다고 봤다. 따라서 해결책도 단순한 모성애의 회복과 같은 추상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정의의 추구라는 근본적 차원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국에서 환경 정의 운동은 1980년대에 시작되어 1990년대에 본격화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카머너의 문제의식은 아직 초보적 수준이기는 하지만 미국 환경 정의 운동의 맥에 가 닿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인종과 환경의 문제, 빈곤과 환경의 문제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의로운 해결책을 고민할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카머너는 각성한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함께 환경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빈곤, 인종차별, 전쟁과 같은 사회적 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도 동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1950년부터 2013년까지 지구의 기온 변화를 1년 단위로 보여주는 나사(NASA) 자료 중 1950년(위)과 2013년(아래) 부분. 1950년 이미지의 대부분을 차지한 옅은 파란색이 2013년 이미지에서는 대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다. 그만큼 지구가 뜨거워졌다는 뜻이다. ⓒ위키미디어커먼스


원을 다시 닫으려면? 생태계와 조화로운 관계 맺고 사회 혁신에 앞장서야

카머너는 카슨과 함께 근대 생태학의 창시자로 손꼽힌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유대인 부모의 자식으로,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서 뉴욕 맨해튼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생물학자로서 과학-환경운동은 물론 시민-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고,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그 결과, 1970년 지구의 날 행사를 앞두고 환경운동의 대표적 인물로 <타임> 2월호의 표지에 실리기도 했다. 한편, 그는 1950년대에 핵폭발 실험 반대에 앞장섰고, 1958년에는 세인트루이스 핵정보위원회의 창설을 도왔다. 그리고 관련 위원회의 소식지 <핵 정보>(Nuclear Information)의 발간을 주도했는데, 이 소식지는 현재 환경에 관한 권위 있는 학술지인 <환경>(Environment)으로 발전했다.

카머너의 이 책은 <침묵의 봄>과 함께 환경 또는 생태학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침묵의 봄>이 살충제와 DDT의 위험을 구체적인 과학적 증거를 들어 다룸으로써 생태계 파괴와 복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다면, 이 책은 생태계의 작동 원리를 기초로 환경 위기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기초하여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침묵의 봄>이 출간된 지 9년 후에 이 책이 나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침묵의 봄>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이 책이 더욱 심화·확대했을 것이라는 기대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생태학의 4법칙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카머너는 지속 가능성의 개념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인류가 생태계와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혁신에 앞장설 때 비로소 원을 다시 닫을 수 있다는 그의 해결책으로 구체화되었다.

사실, 이 책은 1980년에 국내에 이미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다. 그러니까 국내에선 34년 만에 재번역되어 출간된 셈이다. 이 책의 비중을 고려했을 때, 새롭게 번역되어 나온 것은 충분히 환영받을 만한 일이다. 책을 번역해본 사람으로서, 이 책의 번역도 매우 잘되어 있다고 본다. 쉬운 말로 내용을 매우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되어 있으며, 문장도 훌륭해서 읽기에도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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