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이 아빠'의 미국 의료 체험기
앞서 3회에 걸쳐 '준이 아빠의 미국 의료 체험기'를 연재한 강양구 기자입니다.
세 편의 글이 연재되는 동안 많은 분들이 참으로 다양한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그 중 일부는 연재가 진행되는 동안에 답변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새로운 오해-"의료 민영화를 부추기는 기사다!"-를 낳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서 간단히 제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사실 상당수의 반응은 처음부터 예상했던 것이었습니다. 연속 기사의 앞부분(2화. 미국에서 '제왕절개' 가 두려운 이유?)과 가운뎃부분(3화. 미국 병원 맨얼굴, "떼인 병원비 받아드립니다!")이 공개되자마자, 미국에서 거주하는 동포로 보이는 독자 여럿이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그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① 미국 의료비가 비싼 건 사실이지만 미국 시민 대부분 나름의 의료 보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사에서 말하는 의료비 폭탄 따위는 과장이다.
② 설사 의료 보험이 없는 이들도 정부나 자선 단체가 나서서 보조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보다 낫다.
③ 미국 병원에서는 절대로 환자를 거부하지 않는다.
④ 이른바 '오바마 케어' 이후에는 상황이 훨씬 더 나아졌다."
이해합니다. 싫든 좋든 적응을 하면서 미국에서 살아야 하는 동포 입장에서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이러쿵저러쿵 불편한 점을 들추는 게 반가울 리 없습니다. (더구나 고작 8개월짜리 이방인이 말이죠!) 거기다 자신을 포함한 여러 이웃은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자꾸 미국이 '지옥'처럼 묘사되니 가당치도 않겠지요.
하지만 사실 미국 동포 몇몇이 남겨준 의견에 지금 미국 의료 체계가 안고 있는 문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반문해 볼까요?
① 미국 의료비가 비싼 건 사실이지만 미국 시민 대부분 나름의 의료 보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사에서 말하는 의료비 폭탄 따위는 과장이다. (정말로요?)
그럼, 의료 보험 없는 미국 '시민' 16%, 약 5300만 명은 어떨까요? 올해(2014년) 오바마 정부의 의료 보험 개혁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까지,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의료 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 5300만 명이었습니다. 어떤 독자 한 분이 댓글을 달았더군요.
"미국 편의점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그 수많은 진통제는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② 병원비를 낼 형편이 없는 저소득층이나 의료 보험이 없는 이들은 정부나 자선 단체가 나서서 보조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보다 낫다. (그럴까요?)
의견을 주신 몇몇 미국 동포들은 이런 점을 미국 사회가 가진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있더군요. 글쎄요. 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자선 따위에는 의지할 필요 없이 당당히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민이 많은 사회가 훨씬 더 정상적인 사회 아닐까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우리 준이를 임신했을 때,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아기 엄마는 거의 석 달 동안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습니다. 동네 작은 산부인과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라서 서울 시내의 종합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죠. 당연히 총 진료비는 깜짝 놀랄 만큼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진료비 대부분이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항목이어서 약 700만 원 정도의 본인 부담금이 나왔습니다.
그 700만 원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항목은 병실 때문이었어요.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특수 병실에서 묵어야 해서 생긴 일이죠. 만약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병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면, 본인 부담금은 수십만 원 정도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30명 안팎의 사내 복지가 열악한 중소기업에 다니지만, 국민건강보험 때문에 아빠 역할을 할 수 있었어요.
만약 제가 같은 처지의 미국 시민으로 이런 일을 겪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미국에서도 아기는 무사히(?) 태어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제 형편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 폭탄을 맞았겠죠. 30인 안팎의 회사를 통해서 가입한 저렴한 의료 보험은 틀림없이 준이와 준이 엄마의 경우에는 별 쓸모가 없었을 거예요.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맞습니다. 얼굴이 파래져서 동분서주했겠죠. 소득이 어중간해서 정부의 저소득층을 돕는 프로그램도 해당 사항이 없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병원비를 할인해 달라고 읍소하고, 병원이나 지역 사회의 사회복지사를 통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자선의 손길을 내밀어줄 자선 단체를 찾아다녔겠죠. 그리고 어쩌면 운이 좋아서 병원비를 아주 많이 깎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운이 없어서 병원비를 못 내면 파산하거나, 병원이 의뢰한 추심 업체에 넘어갔겠죠!)
이 둘 중에 여러분은 어떤 상황을 선택하시겠어요? 저라면 전자를 선택하겠습니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료를 월 몇 천 원이라도 더 내도 좋으니, 앞으로는 6인실뿐만 아니라 3인실 또 아직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특별한 용도의) 병실까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도록 하는 걸 지지하는 데 작은 힘을 보태겠어요.
다음에 저와 똑같은 경우를 겪는 다른 이웃이 있다면 (통장에 700만 원이 없더라도) 아무런 걱정 없이 아기를 무사히 낳고, 또 누구의 ‘자선’ 없이도 아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말이죠.
③ 미국 병원에서는 절대로 환자를 거부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사람들은 항상 현재의 모습을 과거로 또 미래로 그대로 투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답변을 하시는 분들이 그렇죠. 기사(3화. 미국 병원 맨얼굴 "떼인 병원비 받아드립니다")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미국 병원도 원래는 숨이 곧 넘어가는 환자도 거부하는 악명 높은 곳이었습니다.
이런 비정한 사례가 얼마나 많았는지, 미국은 1986년부터 연방 법으로 최소한 응급실 환자의 진료 거부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 시장 친화적으로 유명한 레이건 행정부가 주도하고 공화당, 민주당 양당이 함께 이 법을 제정했다니, 병원의 진료 거부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죠. 안 믿겨진다고요? 끔찍한 사례가 수없이 많지만 하나만 얘기 하죠.
1985년 12월,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샤론 포드는 지역 병원 두 곳의 진료 거부 때문에 배속의 태아를 잃었죠. 심지어 한 곳의 응급실 의사는 태아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그녀를 내쳤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녀는 정부의 저소득층 의료 보험(medicaid)도 가지고 있었어요. 병원은 보험 확인이 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죠.
더구나 1986년 이후부터 응급실을 환자에게 개방한 병원이 그 손해를 고스란히 감수하는 것도 아닙니다. 병원은 지불 능력이 없는 응급 환자를 치료하고서, 정부로부터 그 치료비의 일부를 보조 받습니다. 그러니까 병원이 지불 능력 없는 환자를 진료하고, 심지어 병원비를 깎아주는 자선을 베푸는 것도 어느 정도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한 가지만 더 언급하죠. 몇몇 동포 또 (사려 깊지 못한) 미국 의사가 응급실 진료를 "미국 사회의 미덕"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말할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기사(3화. 미국 병원 맨얼굴, "떼인 병원비 받아드립니다!")에서도 썼지만, 이런 식의 조치는 오히려 악순환만 낳습니다. 오히려 상황만 더 악화시키는 전형적인 ‘땜질’ 처방입니다.
분명히 아픈 데가 있는 데도 지불 능력이 없는(의료 보험이 없는) 환자는 ‘병을 더 키워서’ 응급실을 찾습니다("애야, 참아봐! 좀 더 아프면 우리 응급실 갈 수 있어!"). 사회 전체적으로는 의료 자원의 낭비죠(병이 더 심해진 환자를 치료하느라 들어가는 것들을 따져보세요.). 이런 응급실 진료가 많을수록, 정부의 부담(정확히 말하면 시민의 부담)도 늘어나죠.
④ 이른바 '오바마 케어' 이후에는 상황이 훨씬 더 나아졌다. (그래서요?)
오바마 정부가 의료 보험 개혁에 나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미국 의료가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의 정치인, 공무원 또 지식인 중 상당수는 이렇게 오바마 정부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칼을 댈 수밖에 없었던 ‘오바마 케어’ 이전의 미국 의료, 즉 시장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모델로 의료 산업 육성 정책을 추진합니다.
그러니 '한국' 기자인 제가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오바마 케어' 이후보다 그 이전의 미국 의료 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하죠. 물론 저 역시 ‘오바마 케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호기심은 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 케어' 이후의 미국 의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는 저 말고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국' 기자, 학자가 부지기수입니다.
(더구나 과연 ‘오바마 케어’가 얼마나 시장 중심의 미국 의료 현실을 교정할지를 놓고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습니다. 가장 비관적인 이들은, 오바마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의료 보험 시장의 규모만 키울 것이라고 걱정하죠. 이에 대한 평가 역시 ‘미국’ 기자나 학자의 몫으로 남겨놓겠습니다.)
그러니 자꾸 저한테 '오바마 케어' 이후의 미국 의료에 대해서는 왜 취재를 하지 않느냐고 따지시는 분들은 번지수를 잘못 짚으셨습니다. 다만, 저는 글의 마지막 부분(4. '오바마의 꿈'은 왜 미국인을 사로잡지 못했나?)에서 '오바마 케어'의 한 가지 측면을 놓고서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이 대목은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니까요.
갈가리 찢긴 미국, 그럼 한국은?
왜 정작 과반수의 미국 시민은 오바마 정부의 의료 보험 개혁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기는커녕 반대할까요? 이 질문의 대답은 앞에서 의견을 단 한국 동포의 반응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밖에서 보기엔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미국 의료를 정작 그 당사자인 미국 시민은 "어쩔 수 없어" 하고 체념하거나, 심지어 "좋은 점도 있어!" 하면서 옹호까지 하니까요.
그리고 이런 미국 시민의 반응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줍니다. 이건 기사에서 하지 못한 얘기니 자세히 얘기해 보겠습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볼까요? 오바마 정부의 의료 보험 개혁 이전에 미국에 있었던 중요한 의료 복지 제도는 기사에서도 언급했던 '메디케어(Medicare)'와 '메디케이드(Medicaid)'입니다. 전자는 65세 이상 노인, 후자는 저소득층, 장애인이 대상이죠.
그런데 이 두 제도가 도입된 시점이 언제인 줄 아세요? 바로 1965년입니다. 연도를 보니 뭔가 감이 오지 않으세요? 맞아요. 당시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뒤를 이은 린든 존슨 행정부의 주도로 "빈곤과 인종적 불의를 끝내고" "위대한 사회를 만들자"고 외치던 때였죠. (물론 대외적으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풍덩 빠지고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으로 상징되는 인종 차별 반대 운동, 로스앤젤레스-뉴욕 등의 빈민 지역 폭동, 반전 운동으로 상징되는 학생 운동 등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린든 존슨 행정부의 이런 개혁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흑백 차별을 종식시킨 '민권법'(1964년)과 '메디케어/메디케이드'(1965년)야말로 바로 이런 개혁의 상징이었죠.
이처럼 메디케어/메디케이드는 미국 사회에서 변화에 대한 욕구가 가장 꿈틀거릴 때, 또 미국 시민 간의 연대감이 가장 고양되었을 때,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제가 기사(4. 오바마케어, 미국인은 "I don't care")에서 '오바마 케어'의 미래를 걱정(!)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은 1960년대와는 정반대로 시민 간의 연대 의식이 가장 고갈되어 있는 때니까요.
지난 4월 10일 '퓨 리서치(Pew Research)'가 발표한 보고서 <미국의 미래(the Next America)>를 볼까요. 지금 미국은 정치(공화당-민주당), 경제(부자-빈자), 인종(흑백), 세대(신구) 등 온갖 갈등으로 갈가리 찢겨져 있습니다. 더구나 대다수 미국인은 이런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중산층 백인 혹은 전문직 한국/중국계가 저소득층 흑인/라틴계를 과연 함께 연대할 ‘같은’ 미국 시민으로 여길까요?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갈가리 찢겨진 사회에서 메디케어/메디케이드에 버금가는 오바마 정부의 의료 보험 개혁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봅시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도 점점 더 갈가리 찢겨진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당장 제 기사에 대한 반응이 그렇죠. 먼저 내 편, 네 편 이렇게 편부터 가른 다음에, 조금이라도 귀에 거슬리는 얘기가 나오면 맥락 없이 욕부터 튀어나옵니다. ("이거 교묘하게 의료 민영화 찬성하는 기사 아냐? 그렇게 미국이 좋으면 거기서 살다 죽어라!")
그나마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모든 시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몇 안 되는 제도 중 하나가 바로 국민건강보험 제도로 상징되는 보건의료 체계입니다. 그 덕분에 30인 안팎의 중소기업 말단 직원이나 대기업 회장님이나 특실과 6인실에서 묵는 차이는 있지만 (그리고 병원과 의사의 때로는 노골적인 차별도 있지만) 최소한 제공받는 의료 서비스의 질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준이 엄마의 종합병원 산부인과 주치의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톱스타의 아기를 여럿 받은 의사로 유명한 이였습니다. 하지만 준이 엄마가 진료 받고 무사히 준이를 낳는 동안 이 의사는 최선을 다했죠. 한 번도 다른 환자에 비해서 특별히 홀대 받고 있다고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균열이 생길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박근혜 정부의 의료 산업 육성 정책 그리고 그 역할 모델인 미국 의료 현실을 비판적으로 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죠. 어떤 독자가 이런 댓글을 남겨 놓았죠.
"이미 충분히 격차가 벌어진 한국 사회, 제발 더 심하게 하지는 맙시다."
바로 제 심정이 이렇습니다.
(여기서 못다 한 얘기들, 예를 들어 "미국 병원처럼 비싸게 의료비를 받으면 한국 의사는 더 행복해질까요"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 기회에 하겠습니다. 그 대답의 실마리는 김윤나영 기자의 다음 기사에서 찾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죠?)
- 의료 민영화, 재앙인가? 축복인가? <1> 50대 男, 대장 내시경 비용 미국 570만 vs. 한국 20만? <3> 미국 병원 맨얼굴, "떼인 병원비 받아드립니다!" |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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