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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만 의지하는 '성형 한류', 거품 빠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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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중국에만 의지하는 '성형 한류', 거품 빠지면?" [의료 민영화, 재앙인가? 축복인가?] '성형대국'의 그림자<2>
-'성형대국'의 그림자

보건의료 분야 규제를 풀면서 정부가 내세운 명분이 '의료 산업 육성', '의료 한류' 등입니다. 해외 환자를 유치해서 외화를 벌어들이자는 거죠. 그렇게 해서 얼마나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2013년에 21만 명의 해외 환자 유치 실적을 올렸는데요. 정부는 2017년까지 해외 환자 진료 수입을 1조5000억 원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아웃도어 업체 한 곳 매출 벌자고, 의료 규제 풀어야 하나요"

박형근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조5000억 원이 큰돈 같지만, 국내 유명 아웃도어 업체 한 곳이 올리는 연 매출액이 1조5000억 원"이라며 "겨우 그 정도 수익 때문에 정부가 온갖 반대를 받아가며 의료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의료 관광 수요가 지속적으로 성장할지도 의문입니다. 특정 진료 과목, 특정 국가 의존도가 너무 높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새정치민주연합 남윤인순 의원에게 제출한 '외국인 환자 유치 사업 현황' 자료를 보면, 진료 실적이 가장 높은 진료 과목은 2011년부터 3년 연속 성형외과가 차지했습니다. 또, 지난해 성형외과를 방문한 외국인 환자의 67.6%는 중국인이었습니다.

차상면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회장에게 중국인 말고도 강남 성형외과 개원가에 자주 오는 외국인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중국이 제일 많고요. 몽골 쪽도 오고요. 말레이시아, 동남아 쪽에서 오고 베트남 쪽에서 와요. 일본은 거의 없어요. 러시아 사람도 가끔 있고요. (이른바 선진국은 별로 없네요?) 없죠."

"5년 뒤 중국이 한국 성형기술 따라잡을 듯"

자국 의료에 아마도 만족하는 선진국 환자들이 한국에 굳이 '의료 관광'을 오지 않는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차 회장은 머지않아 중국 의료기술이 한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중국 성형외과와 국내 성형외과 간에 실력 차이가 크지 않아요. 5년 이내에 비슷해질 것 같아요. 국내 시장이 이렇게 혼탁해지면, 5년 후에는 중국인들이 여기 올 이유가 없어요.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안 돼요. '한국이 믿을 만한 나라'라는 신뢰를 심어줘야 살아남을 수 있죠."

차 회장은 실제로 이미 중국 환자들이 '환자 불법 알선'이 없는 일본으로 많이 넘어간다고 덧붙였습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일단 정부가 '불법 브로커'라도 제대로 단속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제6차 투자 활성화 대책’에 나온 대로, 국내 대형 보험사가 병원과 손을 잡고 외국인 환자를 유치한다면, '불법 브로커' 문제가 일단락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내 대형 보험사가 받을 수 있는, 합법적인 수수료는 30%대입니다. 단, 차 회장은 "수수료 30%만 가지고는 알선 업체도 남는 게 없다더라"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 성형수술을 다룬 린 아이훠 감독의 영화 <성형일기>. 중국어 제목은 <정용일기(整容日记)>다. 성형수술 이후 취업에 성공한 주인공이 성형수술에 집착하게 되는 내용인데, 주인공은 한국인 의사에게 성형수술을 받는다. ⓒ성형일기

국내 보험사가 해외 환자 유치하려는 이유

알선 수수료로 남는 게 많지 않다면, 국내 보험사는 왜 해외 환자 유치에 한해서라도 병원과 직접 계약하기를 원할까요?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는 "민간 보험회사가 외국인에 대해서는 완전히 의료 민영화 체제를 도입하는 실험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현행법상 국내 보험사는 제약이 많습니다. 보험사는 병원과 제휴하거나, 환자를 특정 병원에 알선할 수 없습니다. 환자가 직접 병원을 선택하고, 보험사는 환자에게 병원비만 내주는 구조입니다. 국내 보험사는 병원비가 적절한지도 심사할 수 없습니다.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 심사 권한은 국가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갖고 있는데, 보험사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에 대해서도 심사 권한이 없습니다. 국내 보험사는 이런 제약에 대해 불만이 많죠.

미국은 다릅니다. 보험사는 환자에게 자사와 제휴한 병원을 알선합니다. 치료비도 보험사가 병원에 직접 냅니다. 보험사가 청구된 병원비가 적절한지 심사하고, 병원과 가격을 흥정할 수도 있습니다. 병원에 대한 보험사의 권한이 한국보다 큰 편입니다.

보험사의 해외 환자 유치가 허용되면, 국내 보험사는 외국인 환자와 국내 병원을 상대로 미국식 계약 방식을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국내 보험사가 한국계 미국인에게 국내 병원 이용할 수 있는 보험 상품 판다면…

국내 보험사가 택할 모형은, 영세한 ‘환자 유치업체’와는 다르리라는 게 이 교수의 예측입니다. 지금 환자 유치업체는 환자를 모아서 병원으로부터 건당 ‘알선 수수료’를 받는 형식인데, 보험사는 외국인에게 아예 보험 상품을 만들어 팔리라는 것입니다.

"보험사는 외국에서 국내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는 민간보험 상품을 파는 거죠. 특히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그분들 중에 의료보험이 없거나 '무늬만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절반이 넘어요. 생명이 위협받는, 최악의 상황에서나 써먹을 수 있는 보험이죠.

삼성생명이 그런 분들에게 보험 상품을 파는 거죠. 그러면 유치, 알선비가 환자가 매달 내는 보험료에 다 포함되는 거예요. 환자들은 보험사가 알선한 국내 의료기관을 이용할 뿐이고, 삼성생명이 병원에 직접 진료비를 지불하는 형태죠."

이런 형태의 보험 상품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지금은 재미 교포들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국민건강보험을 몰래 빌려서 국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새 보험 상품이 개발되면 그렇게 '부당 사용'된 건강보험 재정 누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큰 둑에 작은 구멍 하나

물론 우려도 있습니다. 한국에 미국식 의료보험 체계와 국민건강보험 체계가 공존하는 ‘이중 상태’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보험사는 국내 병원과 제휴해 외국인에게는 환자 알선료가 포함된 보험 상품을 팔고, 내국인에게는 알선이 안 되는 보험 상품을 팝니다. 병원 안에도 민간 보험사가 알선한 외국인 환자와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한국인 환자가 공존할 것입니다.

"(외국인에게 적용하는 미국식 의료보험 제도와 내국인에게 적용하는 국민건강보험 체계가 공존하는) 이중 상태는 불안정합니다. 그러니 의료 민영화에 대한 요구가 세지거나, 의료 체계 불안정성이 지속된다는 우려가 생길 수 있죠."

다만, 이 교수는 "보험사 병원 간 직불 계약, 해외 환자 유치 등을 허용한다고 해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대한 국민 지지가 크기에, 정부가 이를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정부와 보험업계도 제6차 투자 활성화 대책에 대해 "외국인 환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국내 의료 제도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보험사의 해외 환자 유치 허용을 의료 민영화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큰 둑(의료 공공성)에 구멍 하나를 내는 효과는 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국민과 크게 상관없는 구멍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이 교수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그 큰 둑에 난 작은 구멍이 커지지 않도록 막는 게 정치이고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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