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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일 기다림, 20초 선고, 쏟아진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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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002일 기다림, 20초 선고, 쏟아진 눈물 [현장] 눈물로 얼룩진 대법원 판결…쌍용차 해고자들 "끝나지 않았다"
"2014다20875호, 2014다20882호. 해고무효 확인 사건. 원고 노OO 외 152명, 피고 쌍용자동차.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2002일의 기다림은 20초 남짓의 짧은 선고로 끝났다. 선고 전까지 초조한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던 해고자의 아내는 고개를 떨궜다. 내내 침착한 표정이었던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법정을 나서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심장이 콩알만해져서" 도저히 선고를 보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렸다는 한 해고자는 법정 안에서 들려온 소식에 말없이 담배를 꺼내물었다.

6년 전,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며 옥쇄파업을 벌였고, 이후 2000일 동안 스물다섯 명의 동료를 잃었고, "이제는 고통과 죽음의 시간을 끝내 달라"고 법원에 호소했다. 그 호소가 대법원엔 닿지 않았다. 올해 겨울엔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꿈은 다시 좌절됐다.

▲2002일을 '복직'만 기다리며 싸웠지만, 대법원은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프레시안(최형락)

2009년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3일 쌍용차의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유효하다며 해고를 무효라고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관련 기사 : 대법원 "쌍용차 정리해고 적법"…원심 파기환송)

쌍용차 사측이 정리해고를 위해 회계조작까지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지난 2월 서울고법은 해고의 근거가 된 회계 보고서에 오류가 있다며 '정리해고 무효' 판결을 내렸지만, 대법은 해고가 불가피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정리해고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에 대해 "계속적·구조적 경영 위기가 아니었고, 인원 감축 규모도 비합리적이었다"고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일시적·부분적 경영 위기가 아니었고, 인력 규모는 경영진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전체 생산직의 절반인 2646명을 한순간에 잘라내는 판단조차도, 일단 '경영진'이 했으므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억울해서 버틴' 2002일…"이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이젠, 어떤 말로 동료들을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한 얘기로 6년 동안 별의별 것들을 다 하면서 싸워봤는데, 이젠 정말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2009년 파업 당시부터 줄곧 노조에서 언론을 담당하며 각종 기자회견 등을 이끌었던 이창근 기획실장은 선고 후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없는 곳에선, 혼자 울었다. 그리고 다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는 이날 재판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질긴 이 시간의 문을 통과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썼다. "공장 옥상에 걸터앉아 올려다본 구름의 포근함을 이제는 손에 쥘 수 있기를"이라고 썼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승소할 수 있냐고…우리가 내용으로만 다투면, 이건 이미 승소한 싸움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사측이 고법에서 패소하고 나서 대법관 출신을 포함해 19명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는데, 대법관 출신에 대한 (사법부의) 고려만 아니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거라고 믿었습니다.

지난 7일 동안 이곳에서 매일 2000배를 했습니다. 일하고 싶다고, 우리는 살고 싶다고 법원에 절을 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며 가장 두려웠던 것은…혹여나 이 사법부가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하게 되면, 정말로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겠구나. 그러면 또 누군가가, 또 혹시 누군가가…곁을 떠날 수도 있겠구나…이런 두려움 때문에 잠을 못 이뤘습니다."

전날도 대법원 앞 농성장에서 밤을 지샌 김 지부장은 선고 이후 끊임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는 이번 선고 전부터 "이번 판결로 또 동료들을 잃을까 두렵다"고 말해왔다.

2009년 정리해고 이후, 25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14명은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가 아파트에서 투신한 후, 남편도 통장 잔고 4만 원과 카드빚 150만 원, 두 아이를 남긴 채 뒤를 따랐다. 그 죽음들을 견디며, 그야말로 "억울해서" 버텨온 2000일이었다.

▲ 김득중 지부장(가운데)과 노조 지도부들이 법원의 선고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창근 노조 기획실장이 대법원 선고 뒤 가족과 포옹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해고 노동자들은 피눈물을 흘렸지만, 자본은 환영했다. 쌍용차 사측은 이날 대법원 선고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2009년에 단행한 인력 구조조정은 파산 위기에 직면한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인력 구조조정 문제가 대법원에서 정당성을 인정받고 이제 인수합병 이전에 발생한 소모적인 사회·정치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게 된 것을 크게 환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측은 "현재처럼 의혹과 논란 제기가 지속된다면 쌍용차의 기업 이미지 훼손 및 국제 신인도 하락에 따른 판매부진으로 경영 정상화를 통한 8.6 노사합의 이행에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해고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정리해고 이후 6년이 흐르는 동안, 회사는 노사합의를 이행할 생각이 없었다는 점을 말이다. 수백 명이 잘려나가고 그들 중 스물다섯 명이 목숨을 잃는 동안에도, 회사는 이를 '소모적인 사회·정치적 갈등' 쯤으로 치부했다는 점을 말이다.

"세 가지 경우의 수만 남았다…포기하거나, 죽거나, 공장으로 돌아가거나"

그럼에도, 해고자들은 "반드시 공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오늘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분노의 눈물이기도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행동해온 것처럼 또 다른 행동을 결단하는 눈물로 봐 달라"고 했다. 이창근 실장도 "노동자를 이렇게 마음대로 잘라서는 자본이 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싸움을 하겠다"며 "이제까지 우리가 끌려가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끌고가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쌍용차지부는 조만간 향후 투쟁 계획 등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노조는 이날 판결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이 질긴 싸움이 끝나는 건 이제 세 가지 경우의 수 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가 포기하는 경우와 우리 모두가 죽는 경우, 그리고 회사가 잘못을 뉘우치고 공장 문을 여는 것. 우리에게 남은 경우의 수는 이 세 가지가 전부다"라고 했다.

▲정리해고자 김수경 씨는 "반드시 이길 줄 알았다"며 승소할 경우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준비해 온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가슴에 댔다. ⓒ프레시안(최형락)

누군가가 하늘을 향해 A4 용지에 쓰인 해고자들의 명단을 뿌렸다. 해고자 김수경(53) 씨가 바닥에 떨어진 수많은 이름들 중 자신의 이름을 쓴 종이를 찾아 가슴에 댔다.

"이 종이 보이시죠? 오늘 이기면 우리 동료들, 복직하는 동료들 이름 하나하나 기념하려고 가져온 거에요. 저는 정말 오늘 이길 줄 알았어요."

정말로 "이길 줄 알았"던, 그래서 떨리는 마음에 전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김 씨는 법정 밖에서 선고 소식을 듣고 동료들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법원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대법원 건물에 쓰여진 '자유 평등 정의' 문구를 가리켰다. "저대로만 했으면 좋겠어요."

정리해고자 김수경, 징계해고자 윤충렬, 징계해고자 한상균, 징계해고자 김정우…. 전태일 열사 44주기를 맞은 13일 오후, 초겨울 바람에 153개의 이름들이 낙엽과 함께 바닥에 뒹굴었다.

▲바닥에 흩어진 해고자들의 이름. 이들은 언제쯤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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