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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도로 지갑 탈탈 터는 월가의 도적들

[프레시안 books] 마이클 루이스 <플래시 보이스>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만남, 아카널리즘

마이클 루이스가 쓴 <플래시 보이스(Flash Boys)>(비즈니스북스, 2014년 10월 펴냄)는 아카데미즘(academism)과 저널리즘(journalism)의 경계에 서 있다. 이 책은 아카데미즘을 견지하면서 저널리즘을 활용해 오늘날 금융 세계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폭로한다.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두 단어를 영문 조합해 필자가 만든 표현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아카널리즘(acanalism)'에 충실하게 금융 세계를 파헤친다.

아카널리즘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이 융합된 경제학 서적들은 이미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어 있다. 금융 세계에 대한 책만 해도, 월스트리트의 작동 원리를 파헤친 더그 헨우드(Doug Henwood)의 <월스트리트 누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이나>(필맥, 1999), 신용카드의 문제점을 밝힌 로버트 매닝(Robert Manning)의 <신용카드 제국>(참솔, 2002), 파생 금융 상품의 발전을 추적하며 금융자본의 탐욕을 고발한 프랑크 파트노이(Frank Partnoy)의 <전염성 탐욕>(필맥, 2004), 2008년 세계 대공황을 현장 취재하며 폴 메이슨(Paul Mason)이 쓴 <탐욕의 종말>(한겨레출판, 2009) 등등.

이 책들은 아카데믹한 경제학을 기반으로 경제 현실의 이면을 저널리즘적 형식으로 파헤치거나, 저널리즘의 세계에 있으면서 아카데미즘을 활용해 경제 현실을 탐사한다. 그리고 이 책들은 경제 이론에 근거하면서도 이를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예를 동원해 설명하거나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교과서에서 알 수 없던 사실들을 파헤친다. 마지막으로 이 책들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점에서 대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아카널리즘에 충실한 책을 읽는 독자들은 경제학 이론에 대한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저널리즘의 형식이 주는 생생함과 현재성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필자가 소개하려는 <플래시 보이스>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금융 세계에 대한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밀리초의 이해

ⓒ비즈니스북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평소에 잘 감지하기 힘든 1초라는 시간 단위를 더 세분화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밀리초(millisecond)는 1000분의 1초이며, 1마이크로초(microsecond)는 100만 분의 1초다. 또한 컴퓨터의 램(RAM)의 액세스 속도를 측정하는 데 사용하는 1나노초(nanosecond)는 10억 분의 1초이고, 1피코초(picosecond)는 1조 분의 1초, 레이저 기술에 종종 사용되는 1펨토초(femtosecond)는 1000조 분의 1초, 마지막으로 광자 연구에 사용되는 1아토초(attosecond)는 100경 분의 1초다.

이 무지막지한 초의 세분화 앞에서 독자들은 혼란을 느낄 것이다. 1초라는 시간도 정확하게 어떤 느낌인지 알기 어려운데, 이를 더 나눈 1000분의 1초, 100만 분의 1초, 심지어 100경 분의 1초라니! 다행히 이 서평은 과학 서적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모두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1밀리초를 야구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될 것이다.

야구에서 시속 90마일(144킬로미터)로 투수가 던진 공은 500밀리초, 즉 0.5초 만에 18.44미터를 날아간다. 타자는 투수가 어떻게 던졌는지에 대해 눈으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걸리는 시간은 눈 한번 깜빡이는 시간, 100밀리초, 0.1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타자의 시각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에 전달되어 정보로 처리되며 타자는 공을 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 이때 걸리는 시간은 150밀리초, 0.15초다. 나머지 250밀리초, 0.25초는 타격을 결정하고 몸에 신호를 보내 방망이를 휘두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이 예를 보면 정상급 야구 선수들이 4할을 치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0.5초보다도 짧은 순간에 공의 속도, 방향, 구질을 판단하고 방망이를 휘두른다고 생각해보라. 10개의 공 가운데 4개를 친다는 일은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거나 공이 수박만 하게 보일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밀리초의 금융 세계, 초단타매매

밀리초의 세계는 이렇듯 우리 눈으로 감지하기 어려운 엄청난 시간대다. 그런데 이 무지막지한 시간대가 컴퓨터와 기계로 무장한 채 금융 세계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 전자 트레이딩의 시대, 나아가 컴퓨터가 스스로 거래를 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금융 세계의 속도는 가공할 만큼 빨라진 것이다.

밀리초의 금융 세계는 '알고리즘 트레이딩(algorithm trading)'으로 가능해졌다. 이 트레이딩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미리 설정된 주가, 주문량, 시장 상황 등을 분석하고 알아서 주식의 매매를 수행한다. 또한 컴퓨터가 내린 주식 매매 명령은 최상의 경로를 찾아 통신망의 데이터를 거래소로 전송하는 중계 장치인 주식 매매용 라우터(router)를 통해 나스닥이나 뉴욕증권거래소(NYSE) 등 거래소와 연결되고 거래소의 매칭 엔진을 통해 거래가 이루어진다.

용어가 어렵다면 책에 소개된 예를 들어 이해해보자. 투자자가 25달러 이하에 XYZ회사 주식 10만 주를 매수한다고 하자. 이미 입력된 알고리즘에 따라 컴퓨터는 물량을 찾을 것이고 어떤 가격에 사야 할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알고리즘이 25달러 이하로 가격이 유지되는 한 5분마다 5000주씩 매수한다고 지시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지시는 라우터로 보내져 이 주문을 어디로 보낼지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투자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NYSE에 주문을 보낸다면, 이 주문 정보는 그 거래소와 연결된 광케이블을 따라 이동하며 이 주문 정보를 받은 거래소의 매칭 엔진은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다.

눈 깜짝할 만한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벌어지는 초단타매매라고 불리는 이 거래는 이미 주식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Financial Times)>에 따르면 미국 증시에서 초단타매매 비중(거래량 기준)은 2001년 21퍼센트에서 2011년에는 56퍼센트를 기록했다. 유럽에서는 2005년 1퍼센트에 불과하던 비중이 2011년 38퍼센트로 높아졌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초단타매매가 약탈적 금융 행태를 띠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은 여러 거래소에 100주 정도의 작은 주문을 걸어둔다. 그리고 한 거래소에서 주문이 체결되면 체결된 주식 가격을 보고 다른 거래소들이 미처 그 결과를 반영하기 전에 그 거래소들로 가서 주문을 선점해서 이득을 얻는다. 다른 알고리즘 프로그램이 다른 거래소에서 매매를 하는 시간보다 더 빨리 거래소로 달려가 선행 매매를 하는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약탈적 전략의 성패는 속도에 달려 있었다. 어느 정도 빨라야 하는지를 이 책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이론적으로 브래드의 책상에서 위호켄에 위한 BATS 거래소까지 약 2밀리초(0.002초)인 반면, 가장 오래 걸리는 시간은 브래드의 책상에서 카터릿까지 약 4밀리초(0.004초)였다." 눈 깜박이는 데 걸리는 100밀리초, 0.1초와도 비교가 될 수 없는 더 빠른 시간 안에 모든 거래가 완성되기 때문에 남보다 더 빨라야만 승자가 될 수 있다.

이 세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숫자가 비가시성의 영역으로 빨려 들어간다.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주가는 거짓이며, 심지어 트레이딩 룸의 컴퓨터에서 보이는 주가도 허상이다. 밀리초 단위에서만 가시성이 나타나는 세계에서 주식 투자는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의 먹잇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책에서 적절하게 비유하는 것처럼, "미국 주식시장은 속도에 근거해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는 계급 사회가 되었다. 가진 자들은 나노세컨드를 위해 돈을 지불했지만, 못 가진 자들은 나노세컨드의 가치를 알지 못했다. 가진 자들은 시장을 꿰뚫고 있었지만, 못 가진 자들은 시장 앞에서 장님이 되었다"(98쪽). 0.001초의 약탈자들이 월스트리트를 지배하면서, 금융시장은 완전히 변모하고 만 것이다.


문제는 속도도 신뢰도 아니다…바로 금융자본 자체다!

그런데 이 책은 속도의 경제에 저항하려는 사람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았으면서 희망의 이야기를 전한다. 브래드 카츄야마(Brad Katsuyama)를 중심으로 구성된 로빈 후드들은 약탈자들에 맞선 전쟁을 선포하며 '투자자들을 위한 거래소(Investors Exchange: 이하 IEX)'를 만들어 월스트리트와 대결하고 작은 승리를 쟁취한다.

IEX는 속도를 350마이크로초 지연시켜 IEX에서 거래하는 사람들의 속도는 늦추고 동시에 IEX 자체의 속도는 올려 전체 초단타매매를 조망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시스템을 통해 그들은 가장 빠른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보다 시장을 확실히 더 빠르게 보고 반응할 수 있었으며, 투자자들의 주문이 다른 거래소에서 이뤄지는 가격 변동에 의해 악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물론 월스트리트 거대 금융회사들은 IEX에 반격을 가했다. "이미 13개의 일반 거래소와 44개의 비공개 거래소가 존재하는데, IEX가 들어서면 시장 분할에 일조할 뿐이다." "IEX로 주문을 보내라는 고객들의 지시를 은행들이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벌써부터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거대 금융자본은 헛소문 퍼뜨리기나 협박, 태업과 교란 행위와 같은 교묘하고 치밀한 선전·선동을 하며 IEX의 시도를 방해했다.

그럼에도 IEX의 로빈 후드들은 시장에 신뢰를 가져오는 변화를 이끌어낸다(비록 골드만삭스의 방향 전환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 지점에서 이 책은 초단타매매의 위험성을 고발하면서도 금융시장의 신뢰를 찾기 위해 진실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낙관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새로운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시장에서 신뢰만 획득한다면, 금융시장은 더 좋은 세계로 변모할 수 있을까? 초단타매매의 불공정 거래를 폭로해서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진다면, 금융시장의 공정성은 확보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새로운 규제를 이용하는 또 다른 금융 기법을 가진 세력들이 출현한다면, 월스트리트에 도전하는 새로운 로빈 후드가 또 나타날 수 있을까? 아니면 금융자본들은 광자 연구에나 사용된다는 100경 분의 1초인 1아토초를 단축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지 않을까?

이미 이 책을 계기로 초단타매매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트레이더들은 외환시장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일국적 규제를 회피하는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후 초단타매매를 금지하는 규제가 마련되더라도, 금융자본은 규제를 교묘하게 회피할 수 있는 새로운 기법을 활용해 수익을 추구하려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는 어쩌면 문제는 속도도, 신뢰도 아니라는 생각에 자꾸 사로잡히게 된다. 설령 속도를 줄이고 신뢰를 되찾는다 해도, 금융자본은 더 큰 이득을 노리고 또다시 우리를 습격해 올지 모른다는 강박관념마저 생긴다. 우리는 왜 세계를 위태롭게 만드는 금융자본의 불안정 속에 살아야만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우리는 금융자본의 본성 그 자체를 억제하고 금융다운 금융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더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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