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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그가 미치도록 그리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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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그가 미치도록 그리운 날 [프레시안 books] 구자형 <김광석 포에버>
아버지는 술, 도박, 여자를 좋아했다. 그 탓에 외롭고, 쓸쓸하고, 가난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게 둘 있다. 그중 하나가 노래다.

아버지는 지인들과 술을 마시면 자주 노래를 불렀다. 잘 불러서가 아니다. 거절을 못했을 뿐이다. 아버지는 꼭 소주병에 숟가락을 꽂고 두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불렀다. 아버지의 '18번'은 <호반의 벤치>였다. 다른 노래를 부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기억에 없다.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묘하다. 두 눈을 감은 채 노래하는 아버지에게 열등감을 느끼다니.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노래 한 곡을 끝까지 불러본 적이 없다. 몇 번 시도해 봤으나 쉽지 않았다. 목이 메거나 울컥해서 도중에 그만뒀다.

노래는 시린 가슴으로 불러야 멀리 퍼진다고 했던가. 나는 아직 그런 가슴으로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능력이 안 되는 게 아니다. 용기가 없는 거다. 언제쯤 가능할까.

김광석을 생각하면 짠하고, 슬프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서가 아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자작곡이든 다시 부르기든, 모두 그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가슴으로 노래 부르는 사람이 심어준 진정성. 그렇게 노래하면서 그는 얼마나 아프고, 시리고, 힘들었을까 싶다. 그의 하회탈 같은 웃음을 좋아하지만, 왠지 그 웃음이 내겐 한참을 운 사람이 비로소 지어 보이는 수줍은 미소처럼 보인다.

구자형이 쓴 <김광석 포에버>(박하, 2015년 1월 펴냄)를 읽으면서 김광석의 노래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그의 목소리에 기대어 건넌 한 시절이 새삼 떠올랐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로 벌써 19년 세월이 흘렀다는 게 놀랍다. 그 없이 우리가 20년 가까이 살았다니, 놀랍지 않은가.

책은 라디오 작가를 하던 저자 구자형과 김광석의 인연, 김광석과 깊은 인연을 나눈 사람들 인터뷰, '김광석 Best' 앨범에 수록된 곡 리뷰로 구성돼 있다.

특히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인터뷰'라는 제목이 붙은 2장이 흥미롭다. 동료 가수, 김광석 앨범 디자이너, 작곡가 등이 김광석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김광석 팬은 물론이고 많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담겼다.

개인적으로는 싱어송라이터 백창우가 들려준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백창우는 김광석이 사망한 1996년 1월 6일, 당일 새벽 1시까지 그와 함께 있었다.

"그날 광석이와 둘이 의논한 건, 다름 아닌 한국 현대시를 노래로 만드는 작업이었어요. 그걸 아주 본격적으로 시도해보자고 만난 자리였어요. 한국 현대시 대중화의 전도사가 되자는 계획이었죠. 그 대표 가수로 광석이를 내세울 생각이었고요.

아깝고 아쉽죠. 김광석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많은 진전이 있었을 거예요. 도종환, 정호승, 김용택, 안도현 시인의 작품에 곡을 붙여 10여 편씩 발표할 예정이었어요. 시인 한 명당 앨범 하나에 해당하는 곡을 새로 만들자는 기획이었어요."


아쉽구나 한국 현대시, 김광석 목소리 놓쳤네

ⓒ박하
백창우의 탄식처럼 정말 아깝고 아쉽다. 술집에서 김광석 노래가 나올 때면 지금도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김광석이 살아 있었다면, 그는 지금쯤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김광석의 목소리를 빌려 다시 태어나는 한국 현대시라니. 이미 김광석이 재해석한 정호승 시인의 시 <부치지 않은 편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무릎을 칠 만한 일이다. 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봤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라고 쓴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를 김광석은 어떻게 불렀을까.

또 <이등병의 편지>를 작사·작곡한 김현성의 이야기도 재밌다. 이 노래는 김현성이 처음 불렀다. 그다음엔 가수 전인권이 불렀다. 하지만 세상이 기억하는 <이등병의 편지> 진짜 주인(?)은 김광석이다. 김현성의 말은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노래란 참 묘해요. 임자가 따로 있어요. 먼저 녹음했건 나중에 녹음했건 결국 여럿이 노랠 불렀는데, 대중이 찾는 그 곡의 임자는 따로 있었던 거죠."

김광석과 가까웠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자살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불과 몇 시간 전에, 혹은 며칠 전에 김광석이 했던 약속들을 거론하기도 한다. 김광석의 죽음을 둘러싼 오래된 의문을 다시 끄집어내는 듯하다. 하지만 저자 구자형은 섣부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김광석이 떠나기 직전의 여러 모습을 독자들에게 들려줄 뿐이다.

많은 사람은 "대체 불가능한 목소리"로 김광석을 평가한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김광석은 목소리 하나로 '대체 불가능한 가수'가 되지 않았다. <김광석 포에버>는 고교생 김광석이 처음 무대에 올라 씁쓸하게 실패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세상 어느 가수, 그 어떤 사람과 마찬가지로 김광석도 많은 노력으로 실패를 딛고 일어섰다. 저자 구자형은 그의 노래를 이렇게 기억한다.

"모든 힘을 빼고 그냥 툭 던지듯 노래 부르는 것만 같았다. 처연했다. 힘없는 자의 아픔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진솔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꿈틀, 저녁 강 어둠 속에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가 만져지는 것 같았다."

스무 살의 언덕을 넘으면, 서른 살의 고개를 지나면, 더는 김광석이 그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의 노래가 청승맞게 들릴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그의 노래를 들으면 여전히 종종 코끝이 시리다. 지나간 시절만큼, 그 남자가 그립다.

두 눈을 감은 채 노래 한 곡 끝까지 부르기는 나의 꿈이다. 언젠가 그 '미션'을 완수하면, 아마도 그 노래는 김광석이 불렀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일 것이다. 나의 18번, 훗날 천천히 한 번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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