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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주의로 그린 한국 좌파의 역사, 결함은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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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주의로 그린 한국 좌파의 역사, 결함은 많지만…

[프레시안 books] 로버트 스칼라피노 · 이정식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1. 바뀌는 메모, 움직이는 생각

몇 년 전 일이다. 책장을 훑어보다가 저쪽 귀퉁이에 바스러질 듯 겨우 버티고 있는 얇은 책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교 1학년 때 어렵게 구해 읽었던 <노동자의 철학>이다. 그때 그 책은 불온한 책이었고 금서였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책장을 뒤적여보니 곳곳에 밑줄을 긋고 내 생각을 적어놓지 않았는가. 깜냥에 열심히 읽었나 보다. 밑줄과 메모는 내가 그때 어떤 것에 가슴 벅차했는지, 또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치열한 현실주의자는 이상주의자가 된다"는 구절에는 밑줄을 북북 긋고 물음표를 몇 개나 쳐 놓았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헛소리라고 생각했나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쉬운 말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한 달 전 일이다. 나에게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돌베개, 2015년 1월 펴냄) 서평을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나보다는 공산주의 운동사를 훨씬 잘 아는 연구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원 때 읽었던 책을 다시 읽기 싫다는 이유가 더 컸다. 읽어야 할 새 책이 어디 한두 권인가.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는 30년 전에 나온 것을 다시 펴낸 책인데, 새삼스럽게 무슨 서평이란 말인가. 30년 전에도 누군가 서평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어찌해서 지금 서평을 쓰고 있다. 내가 대학원 때 읽었던 빛바랜 3권짜리 옛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책을 다시 꺼냈다. 그 책에도 촘촘하게 무언가 적어놓고 밑줄도 많이 그어 놓았다. 무엇을 메모하고 어디에 밑줄을 그었을까. "분파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음", "반공주의 시각임", "친미적 시각이 두드러짐", "소련의 진보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음". 이런 식의 메모가 곳곳에 적혀 있다. 사료에 관련된 곳에는 색연필로 밑줄을 그어 놓고는 "꼭 찾아서 읽을 것"이라고 적어 놓았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면서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왜 공산주의 운동사를 공부하려 했었을까.

참말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예쁘게 단장하여 한 권으로 두툼하게 낸 신판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가 지금 내 옆에 있다. 나는 새 책에 다시 밑줄을 긋고 또 무엇을 메모했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다. 이제 그 메모장을 여기에 적는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내 메모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그러나 "책 읽기란 사냥과 같은 것이다"라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그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2. 예전에 몰랐던 것

ⓒ돌베개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에 여러 책을 금서로 지정해서 불온한 사상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 정책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만 공부하는 모범 대학생에게나 통했다. 시대를 앓아야 했던 불온한 대학생들은 오히려 금서를 필독 도서로 삼았다. 국가 정책에 엇박자를 내며 나도 내 나름대로 '거꾸로 금서'를 정했다. 곡학아세하는 어용학자들이 쓴 글을 절대 읽지 말 것, 꽃과 나비를 찬양하며 음풍농월하는 '순수문학'을 내팽개칠 것, 엄혹한 현실에 눈감은 채 인간 본성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내 생각을 헷갈리게 하는 책에는 눈길도 주지 말 것, 등등.

그런 기준을 댄다면, '반공주의적'인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도 내 금서 목록에 올렸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때로서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에 대해서 이만큼 많은 정보를 담은 책이 없었다. '옮긴이 말'에도 적혀 있듯이 "북한 김일성이 일제 시기 김일성 장군이다"라는 그때로서는 충격적인 팩트(fact)도 담겨 있었다. 그렇다. 팩트는 참고하되 비판적으로 읽자. 이것이 대학원 시절 이 책을 읽는 내 태도였다.

비판적으로 책을 읽는 것이야 독자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지나치면 책을 곡해하기 십상이다. 책에 담겨 있는 어떤 진실까지 눈감게 만든다. 그때 나는 너무 비판적이었던 나머지 이 책이 지닌 힘을 놓쳤다.

첫째, 이 책은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전체를 아우르는 시야를 지녔다. 어찌되었든 이 책은 자신들의 잣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운동사의 흐름을 그려내고 있다. 겨우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 운동사에 대해서만 몇 편의 글을 써봤던 나로서는 흉내조차 내기 힘든 일이다. '전문화' 깃발을 들고, 특정 시기와 특정 분야만 파고 들어가는 연구자라면 아예 꿈조차 꾸지 말아야 할 일이다.

둘째, 사료를 대하는 태도에서 다시금 배워야 할 것이 있다. 옛 사건을 보여주는 사료야 끊임없이 발굴된다. 특히 러시아문서보관소를 비롯한 해외 자료를 손에 넣으면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에 빠져 있는 수많은 사실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료와 인터뷰 등은 소중하다. 그 사료를 엮어내는 솜씨도 빼어남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옮긴이의 노고와 꼼꼼함에 대해서 칭찬하기를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번역이 매끄러울 뿐만 아니라, 착오를 고치고, 다른 사료를 덧붙이며 책의 신뢰도를 높였다. 옮긴이는 '진보적'인 책을 쓰는 역사학자일 뿐만 아니라, 역사 사료를 발굴하고 보급하여 연구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나는 옮긴이의 각주를 보면서 새로운 정보를 많이 얻었다. 어디 그뿐인가. 옮긴이의 역주는 번역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착오를 교정하고 꼼꼼하게 사실을 밝혀 책을 아주 훌륭하게 보강하고 있다.

3. 아직도 모르는 것

옮긴이는 이 책의 단점을 말한다. 이 책은 "다소 반공적이고 1970년대 이후 이북이 겪은 역사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 또 옮긴이는 이 책의 장점을 말한다. "근 100년에 이르는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전체를 아우르는 책으로는 아직 이 책을 능가하는 것이 없다." 이 땅에서 공산주의 운동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로서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장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체를 아울렀다는 것만을 인정할 뿐이지, 모든 해석이 다 빼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각 시기로 파고들어 가면 이 책의 성과를 훨씬 뛰어넘는 연구 성과가 참 많다. 식민지 시기만을 보기로 들면, 초기 사회주의 운동에서 생긴 '분파'의 원인이 전략과 전술의 차이였음을 밝히는 연구가 있다. 그밖에도 많다. 이 책에서 거의 다루지 않은 '이재유 그룹'과 박헌영의 경성콤그룹 등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다. 요즈음에는 운동으로서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문화로서 사회주의'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장점이 곧 단점으로 뒤바뀌는 일이 흔하다. 이 책은 스케일이 크고 다루는 시기가 길어서 숱한 비판의 영역을 곳곳에 남겨놓았다. 어디 그뿐인가.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사료 하나하나야 소중하지만, 그 사료의 조각 그림을 잇대어 놓은 전체 그림판까지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전체 그림판의 색조는 '반공주의적'이며 미국보다 소련을 훨씬 가혹하게 다루고 있다.

그 무엇보다 궁금한 것이 있다. 글쓴이들이 품고 있는 공산주의 이미지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코뮤니즘을 '공산주의'라고 번역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많은 사람이 지적한다. 아무래도 글쓴이들은 번역어 '공산주의'가 본래의 이미지를 일그러뜨린 것보다 더 나쁘게 '공산주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공산주의'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공산주의란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공산주의자들은 '인간 본성'을 전혀 모른 채, 어떤 착한 프로그램만 무턱대고 위에서 내리꽂는 무식한 사람일까. 동의하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저자들이 설명하는 '유물사관'이란 그야말로 기계적인 유물사관이다. 그래서 그들은 식민지 시대 진보적 청년들은 유물사관이라는 '신비로운 마취제'에 빠졌다는 평가를 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내친김에 공동전선, 다시 말하면 흔히 '통일전선'이라고 말하는 것도 저자들이 잘못 정의하고 있음을 지적하자. 저자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은 모두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동화될 수 없다거나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정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한다. 나는 오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그 둘은 분명히 다르지 않은가. 다른 것을 서로 인정하고 어떻게 하면 공동의 적에 맞서 함께 손을 잡을 것인가 하는 것이 공동전선의 핵심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막후에서 일어난 정치 활동의 상세한 내용을 수집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의 경우 이런 막후 활동이 가장 중요했다." 이 책은 공산주의 운동사라기보다는 공산주의 운동가의 '막후 역사'라고 읽힐 만큼 운동가 개인의 행적을 쫒는 데 많은 지면을 쓰고 있다. 공산주의 운동의 자금줄에도 온 신경을 써서 '자금 횡령' 사건을 촘촘하게 다룬다. '해방' 뒤의 조선공산당에 대해서는 "조공 지도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좋은 의복과 자동차를 구입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면서 정치자금에 의혹을 제기한다.

초기 연구이기 때문에 운동가들의 실상을 밝히는 것이 중요했다손 치더라도 이 책은 지나치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개인의 '막후' 행적을 추적하다보면 운동가들 사이의 '분파' 문제는 더욱 두드러져 보이기 마련이다. 파벌 투쟁이 "전통적인 파벌주의와 지방주의가 결합하면서 복잡해졌다"는 저자들의 평가는 그런 추적을 통해서 나온 것이었다. 게다가 파벌성이 마치 한국인의 습속처럼 굳어진 것이라고 설명하는 곳에서는 일제의 시선마저 겹친 느낌을 준다. 마치 이 책이 분파분자들의 '주도권 다툼'과 합종연횡만을 써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운동가들의 행적을 통해 전체 운동사를 보여주는 것은 '영웅사관'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공산주의 운동과 대중투쟁이 정세에 따라 어떻게 결합하고 어떤 난관에 부딪혔는지를 형상화해야 한다. 투쟁의 지형도를 그려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공산주의 운동에 동조했던 대중은 공산주의자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자동인형이 되어버리고 만다. 저자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주도권 장악 다툼'에 신경을 기울이다보니 6‧10만세운동, 신간회, 광주학생운동 등에서 조선공산당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다루지 않는다. 또 일제 관헌 자료 어디엔가 "모든 파업과 소작쟁의에 붉은 색이 돌았다"고 적었는데, 이 책은 그 의미를 해설할 뜻이 없다.

이 책에서 '파벌'이라는 말 못지않게 자주 쓰는 단어가 '지령'이다. 코민테른과 소련의 '지령'에 따라 한국 공산주의자들이 움직였다는 뜻이다. 코민테른과 한국 공산주의 운동 사이의 관계는 짚어야 할 것이 많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재유 같은 자주적인 공산주의자도 있었다. 선진 노동자들은 코민테른의 테제를 받아들이되 실천 과정에서 창조적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해방' 뒤에 우익이 미군정의 '지령'을 받은 것과 똑같이, 좌익이 소군정의 '지령'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얼마나 냉소적인 역사 해석인가. 다 알다시피 모든 것은 상호 침투 과정을 거친다. 미·소 군정이라는 엄청난 규정력 밑에서도 대중의 자발적인 운동이 있었고 공산주의자들은 그 운동을 어떻게든 반영해야 했다는 것만을 또 기억하기로 하자.

'박헌영 일파인 경성콤그룹'(책에서 '경성제대그룹'이라고 한 것은 착오임)에 대한 저자들의 평가는 균형을 크게 잃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공산당의 좌경화는 미군정 측의 강경 대응을 가져왔다"는 주장이 가장 좋은 보기이다. 조선공산당의 '신전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일 것이다. 신전술은 조선공산당이 말한 것처럼 '정당방위의 역공세'였던가, 아니면 저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극좌적인 전술이었는가. 미군정의 점령 정책과 9월 총파업, 10월 인민항쟁에 이르는 정세를 꼼꼼하게 살펴야만,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공산당이 좌경화하지 않았다면 미군정의 강경 대응이 없었을 것이라는 저자들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미군정은 남한에서 안정적으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려면 언제 어떻게든 남한 좌익을 척결해야 하지 않았던가. 저자들의 주장은 이어진다. "공산당의 급격한 좌경화는 미군정에게 우익 측과 긴밀한 협력을 하면서 좌익의 활동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는 태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저자들은 결론을 내렸다. "불안정한 정치 상황, 이는 대부분 공산당에 의해 조장된 것이다." 마치 미군정과 우익은 아무런 오류도 잘못도 없는 것처럼 읽힌다. 나만 그렇게 읽고 있는 것일까.

때로는 감정이 섞인 표현은 이 책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박헌영에게는 극좌주의자라는 딱지를 곳곳에 붙이고, 김일성에 대해서는 "공산주의자에게 극히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성격을 겸비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 그 보기이다. 이러한 설명법은 저자가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무엇을 재단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4. 다시 묻기

내가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 운동사 강의를 하고 나면 "어디 한 권으로 쭉 사회주의 운동사를 훑을 책이 있나요?" 하고 물어오는 사람이 때때로 있다. 없다고 대답했었다. 김준엽‧김창순이 쓴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5권이 있지만, 너무 분량이 많고 책도 절판되었다. 그래서 각 시기별로 대표적인 저서 몇 권을 대신 추천하곤 했었다. 이제는 한홍구가 옮긴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소개해도 될 성싶다. 그러나 나는 꼭 단서를 달겠다. "시기별로 이 책의 각 장을 읽되 그에 관련된 최근의 책도 반드시 함께 읽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한쪽으로 치우치고 공산주의 운동가들의 이미지가 일그러지기 십상이에요."

그리고 당부하겠다. '분파' 발생의 원인,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성과와 한계, 공산주의 운동의 영향, 냉전 체제와 한반도 등등의 굵직한 문제에 대해서 늘 스스로 질문하시라고. 질문이 절실하면 이미 답은 그 안에 있으니까.

또 넌지시 제안하고 싶다. 비록 패배했을망정, 삶을 바쳐 아름다운 세상을 건설하려 했던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리고 내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전하고 싶기도 하다. "치열한 현실주의자는 이상주의자가 된다." 이 말을 다시 읊조리는 내가 몽상가로 비친다면, 그만큼 나는 치열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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