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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 가는 길, 창 밖 북한 농촌 풍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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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 가는 길, 창 밖 북한 농촌 풍경은… [김동수의 북한 방문기] <6> 국가적 사업과제인 북한의 나무 심기
김동수 교수의 북한 방문기를 연재합니다. 김 교수는 평안남도 덕천 출신으로 미국 버지니아주 노폭주립대학교에서 27년 간 교수로 재직하며 평화와 통일 운동에 몸담았던 국제평화운동가입니다.

남북 간 교류가 사실상 막혀있는 가운데 김 교수는 지난 4월 21일부터 28일까지 북한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코인 선교재단'(COIN Mission Foundation)의 폴 유 목사 부부와 함께 북한의 곳곳을 방문했습니다.

재미교포로 북한을 여러 번 드나들었던 김 교수는 북한은 스스로가 말하는 것처럼 "인민의 낙원"은 아니지만, 남쪽의 일부 사람들이 믿는 것과 같은 "생지옥"도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2015년 현재 북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 총 7편의 김 교수 방북기를 통해 북한의 실제 모습을 이해하고, 나아가 남북이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김동수의 북한 방문기>

새로운 만남

4월 27일, 월요일. 이날은 우리 일행이 북을 떠나는 날이다. 우리가 요구한 대로 기차 편으로 떠나게 됐다. 국제열차여서인지 여권, 비자, 세관 등 탑승 수속이 복잡하다. 그동안 우리 일행의 북한 일정에 항상 함께해 준 라인철 안내원 동무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는 중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난 금요일 헤어졌던 조카 성숙이와 그 아들 영성이가 역 승강장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엄격하게 통제된 구역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너무나 반갑고 기뻤다. 그런데 성숙이는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영성이는 의젓한 소년이 되어 그동안 도와준 큰할아버지와 큰할머니를 멋쩍은 미소로 반겼다. 별 할 말은 없으나 "건강해서 다시 만납세다"하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과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차창 밖에서 끝없이 손 흔드는 모자의 모습이 잠시 후 사라졌다. 아쉬움을 남기고 영원히 사라졌다.

▲ 평양역에서 김동수 교수의 조카 한성숙 씨(가운데), 아들 영성(가운데 아래)과 함께 ⓒ김동수

이 기차는 아마도 중국을 거쳐 러시아까지 가는 모양이다. 우리가 탑승한 칸은 양쪽에 두 개의 이층 침대와 창 앞에 작은 탁자가 있었다. 아늑하고 깨끗했다. 우리가 열차여행을 택한 것은 여유 있게 북의 농촌을 보기 위해서다. 물론 누구의 눈초리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작은 자유의 공간과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다.

서서히 달리는 차창으로 여러 농촌과 지방도시를 보며 역시 빈곤과 고역의 인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사람들의 허름한 옷, 거의 다 사람 손에 의존하는 노동활동, 부족한 기반시설, 포장 안 된 도로 길, 벌거숭이 산....가끔 달리는 차들이 먼지를 날리며 이 불비한 현실을 감추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은 동남아에서 흔히 보는 빈곤과 절망과는 그 성격이 현저하게 다르다. 대개 집과 거리는 깨끗이 정돈되어 있고 사람들이 활기를 가지고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다. 희망이 있고 신념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놀랍게도 행복해 보인다.

차창으로 보게 된 새로운 발견은 철도노선 좌우로 약 5m 넓이로 묘목 밭을 끝없이 조성해 놓은 사실이다. 어떤 곳에는 자리만 마련하고, 어떤 곳에는 작은 묘목이 심어져 있고 어떤 곳에는 한길이 넘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 나무밭은 신의주에 도달하기까지 계속된다.

지역마다 배당이 됐는지 가는 곳마다 나무 심기를 도와달라는 요청이 결국 국가적인 사업과제가 된 것이 분명하다. 늦었지만 현명한 정책선정이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구호는 이 사회의 결속과 집중적 실천력을 과시한다. 우리는 이 나무들이 어서 속히 자라기를 바라면서 평양역에서 사온 도시락을 배부르게 먹었다. 차내 식당보다 싼 가격이었지만 내용은 더 풍성했다.

▲ 북한의 한 농촌 풍경 ⓒ김동수

정치구호와 실천

북에서는 상업성 광고가 전혀 없다. 큰 건물마다 커다란 정치구호가 높이 붙어 있고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이나 꽃이나 붉은 깃발이 꽂혀있다. 지방 소도시에도 정치선전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치구호가 모두 '위대한 수령님 만세'나 '조선로동당 만세' 만이 아니다. 지방마다 다소 다르고 창의적인 구호도 많다. 이 중 몇 개를 살펴보면 이 사회의 전반적인 정치문화 형태를 가늠할 수 있다.

"조국이 기억하는 애국자가 되자!",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최후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위대한 김정은동지와 끝까지 뜻을 같이하자!",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 유격대식으로!", "일심 단결!", "김정은원수님께서 올해 신년사에서 제시하신 강령적 과업을 철저하게 관철하자!", "충성의 한 마음으로, 건설에서 대번영기를, 언제나 앞장!"

모두가 정치 이념적 강령이나 강요이지 개인·가정의 행복이나 단체의 목적을 위한 선전·설득은 아니다. 집단주의체제에서 유일 노선의 경직된 통치방법이다. 북에서 가장 신성시하지만 밖의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는 것은 통치자의 절대화라 하겠다. 그것도 3대에 걸친 세습의 절대화는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민주주의 공화국' 보다는 왕조에 가깝다.

그렇다고 흔히 여러 탈북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인민들이 강압에 억눌려 노예처럼 지배당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노예들에게는 자유가 없지만 자발적 헌신이나 영웅적 희생도 없다. 북의 인민들은 민족 자주성과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결속과 강력한 유대에 집착하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다.

사회주의와 효율성

기차가 다섯 시간 만에 신의주에 도착했다. 일부 승객이 내리고 타며 국경선 넘을 준비에 들어갔다. 매 칸 각 부서에서 나온 기관원들이 차례로 조사에 들어가며, 모든 승객의 여권을 함께 거둬갔다. 일일이 조회를 하는 것인가? 인천공항에서 몇 분도 안 걸리는 출입국 수속이 여기서는 영원히 걸리는 것 같다. 잘생긴 장교 한 명이 우리 칸에 들어와 앉아 한가하게 미국 생활에 대해서 묻고 웃다가 나간다. 자본주의 남쪽사회의 '빨리빨리 문화'에서 벗어난 우리는 느긋하게 마음먹고 기다렸다.

한 시간 반 후에 기차가 슬슬 움직여 압록강을 건넌다. 철교 북쪽 끝에 이르렀을 때 새 천지가 갑자기 나타난다. 높은 건물이 즐비하고 많은 차들이 달린다. 중국 접경도시 단둥(丹東, 전 안동)이다. 이 도시는 남과 북, 그리고 조선족 사람들이 많이 어울려 사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 도착해서도 여권을 맡기고 기다려야 한다. 한 시간쯤 차에서 기다려서야 대합실로 가서 입국수속을 밟았다. 중국인의 전통적인 '만만디'(慢慢的)인가, 사회주의의 전형적 비효율성인가?

역 광장에는 거대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동상이 중국 사회주의의 찬란한 건설을 알렸다. 역전에는 약 100명으로 추산되는 '조선' 운동복을 입은 여자들이 차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어느 국제체육대회에 참가하는 북의 선수들인 모양이다. 반갑다. 그런데 말을 걸 수 없다.

▲ 단둥시의 마오쩌둥 동상 ⓒ김동수

남이든 북이든 조선족이든, '한민족'

미리 약속했던 조선족 사람들이 나와서 우리 일행을 맞아줬다. 약 반 시간 산기슭으로 달려서 시골 별장 같은 곳에 도착했다. 리원도가촌(利源度假村)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집은 완만한 비탈에 나무와 흙, 돌로 만든 전통 조선건축 양식의 긴 본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ㄴ'자로 여러 숙실과 창고 등을 짓는 중이었다. 널찍한 마당 가운데에는 여러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바비큐, 둥근 돌상 등이 준비되고 있다.

이 집 주인 오민필 씨는 단둥에서 사업을 하며 앞으로 이 시설을 펜션처럼 꾸려 여러 여행객들을 맞으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둥근 상에서 각종 산나물, 텃밭에서 재배한 유기농 채소, 김치, 닭, 조개 등을 즐기며 동포애를 나눴다.

여기 사는 조선족 사람들은 같은 사회주의 북쪽보다는 통신과 방문이 수월한 자본주의 남쪽과 더 교류가 많다고 한다. 남쪽의 TV 수신이 고정 프로그램일 정도라고 한다. 물론 매우 많은 사람들이 남쪽에 가서 취업을 하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추세라고도 볼 수 있다.

어디에서든 같은 말, 같은 풍습, 같은 감정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인정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왜 우리는 서로 떨어져서, 흩어져서, 나뉘어서, 피하면서 살아야 하나? 사회주의 국가에 살든 자본주의 국가에 살든 우리는 종국적으로 하나다. 모두 만나야 한다.

우리의 북한 방문은 이날로 마감됐다. 그러나 민족화해를 위한 우리의 꿈과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실은 내일 색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다시 북과 북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역사의 조명을 받으며 필자의 가족사를 통해 우리의 분단과 화해의 뒤안길에 숨은 기막힌 사연을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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