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바로 가기 : )은 2015년 7월에 출범한 시민 단체입니다. 흩어져 있는 사회 진보 의제들을 모아 소통하고 공동의 지혜를 그러모으는 장을 만들어보려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바꿈이 기획한 '기억을 기억하다'는 많은 이가 외면하고 잊어가는 이 땅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얼굴들을 만나 그의 기억을 함께 나누려는 기록 연재입니다. (필자)
<2> '기억'을 기억하다 : "현실이 이러니 우리가 할 말 없지요"
"아이고, 뭐 이렇게 빨간 책을 들고 다니시나?"
얼마 전 만난 친구가 내 손에 들린 책을 보고 풉~ 하고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빨갛다고? 내가 들고 있던 책은 누가 봐도 초록 일색인 표지에 심지어 낱낱의 책장도 연둣빛을 은근하게 머금고 있었다. 거기에 큼지막하게 적힌 책 제목도 이랬다. '행복하려면, 녹색'. 빨갛다는 친구의 농담이 다소 과격했다. 그래도 이 친구, 알아봐 준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친구는 거기까지였다. 나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눈치껏, 대충, 어렴풋이 그쪽이겠거니. <행복하려면, 녹색>(하승수, 서형원 지음, 이매진)은 하승수 위원장을 만나기로 하고 빈 머리로 갈 수 없어 뽑아든 책이었다. 그가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는데 나도 녹색당에 대한 풍문은 그만 주워듣자 싶어 급한 대로 찾아 읽던 차였다.
2012년 3월 4일 창당해 그해 4월 11일 총선에 뛰어든 녹색당, 결과는 참담했다. 0.48%의 정당득표율을 얻었다. 두 명의 지역구 후보는 모두 낙선했고 비례대표를 통한 원내진입도 실패했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득표율이 2%에 미달하면 정당등록이 취소되는 정당법에 따라 총선 다음날 정당등록이 취소되는 곡절을 겪었다.
"4.11 총선에서 10만3811표를 얻었어요."
비례대표 의원 당선을 위한 득표율인 3%에는 한참 모자란 수였다며 뒤통수를 긁던 하승수 위원장이 당시 득표수를 정확하게 읊었다. 지역구 당선의원이 압도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와 지역기반으로 세워진 거대 양당제로 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구조에서 녹색당과 같은 소수정당의 생명은 늘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녹색당을 지지한 10만3811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선거가 집어삼킨 사표가 아니라 녹색당을 함께 가꾸려는 사람들의 소중한 손길이었다. 10만3811표를 곱씹는 담담한 그의 목소리엔 녹색당에 대한 미더움이 묻어났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정당등록 취소 위헌소송을 통해 녹색당을 지켜냈다.
"정당 활동은 노동 강도도 세고 엔지오 활동보다 몇 배는 더 힘들더라고요. 저는 사실 국가, 지구차원의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고 지역 풀뿌리 정치에 관심을 두고 내 동네, 내 지역에서 정치를 바꿔보자 했었는데, 제가 좀 늦게 깨달았다고 할까요. 그 사건 이후로 국가 정치,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건, 2011년 3월 11일에 터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녹색당이 창당 된 2012년 전에도 한국에서 녹색당을 만들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5개 시도에서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집해야 정당을 만들 수 있는 정당법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고 이후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녹색당 창당에 뛰어 들었다. 하승수 위원장도 그랬다.
"저는 환경운동보다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인데 후쿠시마 사고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어요. 후쿠시마도 로컬푸드운동이 있던 곳이고 생협도 있는 지역인데 한 순간에 지역 사람들이 몇 십년간 쌓아온 것들이 무너져버렸잖아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단순히 하나의 사고가 아니라,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더 이상 유지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피부로 느끼게 된 사건이었어요. 지금까지 나는 내가 사는 사회를 좀 더 나은 사회로 바꾸려고 노력해오며 살았는데, 그나마 이정도의 사회도 유지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아무리 지역 풀뿌리 운동과 시민운동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구나, 한순간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 거죠."
정당 운영을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던 그가 창당에 뛰어들 만큼 시대적 절박함이 있었다고 했다. 국가, 지구차원의 정치로 개입하지 않고서는 원전사고와 같은 참사를 막아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왜 녹색당일까. 우리나라 정치지형에서 군소정당의 정치참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변호사로, 대학교수로, 다년간의 시민운동가로 살아왔던 그가 모를 리 없다.
"녹색당은 국가가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업은 매출증대가 목표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국가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국가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좋은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지요. 국가가 경제성장을 목표로 삼는 순간 국민들의 삶의 질이나 환경, 인권, 먹을거리, 이런 것들은 뒤로 밀리게 되어 있어요. 경쟁에 뒤처지는 사람은 배제되고 그러면서 사람 사이의 차별이 생기고 소외가 나타나잖아요. 경제성장이 아니라 좋은 사회를, 좋은 삶을 만드는 게 국가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녹색당이 유일하게 하고 있어요."
그도 한때는 체제 내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정도로 삶을 계획했었다. 제도권에 들어가 양심적으로 살아볼까 싶었다. 그래서 사법시험을 보고 변호사가 됐다. 2006년부터는 국립대 교수직도 맡았었다. 그러나 하승수 위원장은 변호사도, 교수직도 스스로 그만뒀다. 변호사 생활은 시민운동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갈 수 없었고 대학에선 행복하지 않은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게 견디기 어려웠다.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그가 선택한 곳은 늘 시민과 함께 하는 운동현장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치다. 선거 때마다 50% 내외를 겨우 오가는 투표율이 보여주듯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가 만연한 사회에서 정치, 그것도 탈핵과 탈성장이라는 녹색 정치를 들고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다. 녹색 정치는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었다.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고, 내가 누군가와 비교당하고 이런 것들이 개인의 행복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비교하다보면 자기다운 삶을 찾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사회는 비교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게 살아가는 공동체와 그렇지 않은 공동체가 뭐가 다를까 비교해 보고, 대한민국 사회보다 좀 더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회와 서로 비교해 보고. 이런 비교를 하다보면 상상력이 나오잖아요. 지금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많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는 꿈이나 상상력을 가져야 이 사회가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승수 위원장은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그의 출마는 당선을 위한 출마는 아니라고 했다. 녹색당의 가치와 정책을 알리려는데 집중하는 모양이다. 더불어 녹색당은 내년 총선에 나설 비례대표 후보를 내는데 벌써부터 담금질을 하고 있다. 녹색당이 낼 비례대표는 당원들이 추천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밟게 되고 순번 역시 당원투표로 정해진다. 그리고 모든 과정은 공개 된다.
녹색당은 녹색이다. 어설픈 농담이 들어설 틈이 없는, 꽉 찬 녹색이다. 생태적 지혜와 사회정의, 직접·참여·풀뿌리 민주주의, 비폭력 평화, 지속가능성, 다양성 옹호, 지구적 행동과 국제연대를 강령으로 삼은 정당, 녹색당. 이 정당 강령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녹색당이라는 작은 씨앗입니다'. 그 씨앗이 푸릇푸릇하고 보드라운 싹으로 움터 올라 거친 바닥을 덮고, 그 위를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걸어 볼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아, 물론 알고 있다. 현 정치권이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하는 비례대표제의 전면 확대와 정치개혁 없이는 어쩌면 꽤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승수 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녹색당은 이름을 바꾸지 않고 100년 가는 정당이 되겠다고 했다. 유럽을 비롯해 지구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각국 녹색당도 창당 이후 초반엔 어려웠다. 그렇다고 정치적 시민권을 얻어 원내에 진입하고 국회의원을 배출하는데 100년까지는 안 걸렸다. 이 땅에도 그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눈을 질끈 감자. 그리고 무작정 녹색을 떠올려보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녹색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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