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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 없었다, 時運과 국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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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가진 것 없었다, 時運과 국민뿐" <노무현 최후의 인터뷰> "리더십 핵심은 국민의 힘"
프레시안은 대선 이틀 전인 지난 17일 오전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단독으로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노 후보는 4월부터 12월까지 겪었던 일들을 회고하고,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행정 수도 이전, 한-미 관계, 노-정 단일화 과정들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털어놓았다.

프레시안은 당초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하였으나 이 후보측이 응하지 않아 인터뷰가 성사되지 못했음을 밝혀둔다. 편집자

<사진 1>

선거를 이틀 앞둔 17일 오전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만났을 때 그는 빠르게 담배를 한 대 태웠다. 여러 종류 중에서 가장 순한 담배였다. 지난해에 금연을 시작, 1년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태우게 된 것은 10월부터라고 했다. 민주당 내 의원들의 집단 탈당 움직임이 거셌던 때, 말하자면 "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때"였다. 그의 지지도는 17%를 밑도는 최악의 시점이었다.

2개월이 지난 지금, "끊어야지요. 다시 끊을 겁니다" 하는 그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MBC에서 선거 전 마지막 방송 연설 녹화를 마친 후였다. 그 전인 오전 8시에는 당사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낡은 정치 청산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민주당부터 전면적으로 환골탈태를 하고, 신당을 창당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는 것이었다. '국민통합형 국정 운영'을 하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이날 아침 발표한 "낡은 정치 청산과 새로운 정치 시대 개막"이라는 주제의, A4 용지 3쪽 분량의 새 선거 공약도 이틀 뒤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가 새로 짜고 싶은 국정 운영의 틀을 제시한 것이었다.

노-정 단일화 협상 당시 노 후보가 정몽준씨의 여론조사 방법을 전면 수용한다는 발표를 한 직후 이미경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그를 '거인'이라고 불렀다. 어느새 거인, 또는 거물이 된 '3무(無) 정치인', 곧 돈과 계보와 조직이 없는 노무현의 컴백(come back)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국민의 힘이 리더십의 핵심이다"**

선거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캠페인 기간을 돌이키는 총평부터 해 달라고 하자 그는 놀랍기도 하고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놀라웠던 것은 국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입니다. 예측하지 못했던 그 움직임이 모든 상황을 다 바꿔 놓았습니다"

그는 그동안 있었던 국민과 자신의 상호 호응 관계가 정치 문화를 "이만큼 바꿔 놓았다"고 주장했다.

"제가 실패한다면 효과가 반감되겠지만 성공하면 정치 모델로 뿌리를 내려갈 거거든요. 이미 그동안에 바뀐 것만 뿌리를 내려도 엄청난 정치 발전 아닌가요?"

그는 그래서 뿌듯하다고 했다.

그는 "바뀐 것"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 금권 선거가 사라졌다는 점을 들었다. 정치인들이 2004년 총선에서 돈 안 쓰는 선거를 할 수 있게 된 것만도 큰 변화라는 것이었다. 그밖에 미디어 선거, 인터넷 선거, 국민의 정치 의식 변화 등등을 꼽았다.

하지만 그런 변화에 관한 이야기보다 정작 궁금한 것은 노 후보가 지난 8개월 동안 '후보 자격 전쟁'을 도대체 어떻게 치러 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한 참모의 말을 빌자면 "피가 마르는 날들"을 어떻게 지내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먼저, 당내 갈등의 원인에 대한 자평을 들어 보았다.

"기존의 정치적 사고와 국민들의 변화가 서로 일치되지 않는 데에서 생기는 갈등"이었다고 풀이한 노 후보는 "후보가 되고 나서도 뭔가 후보가 안 될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내의 분위기였고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다 본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 문제 뒤로 6.13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8.8 재ㆍ보선에서의 실패가 현실로 나타나자 당내에서 노 후보로는 안 될 것이라고 보고 바꾸기를 원했던 것을 "국민들이 다시 힘으로 뒤집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낡은 관점과 새로운 힘이 충돌하는 시점'에 자신이 서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결국 당 외에서는 인기가 있을지언정 당내 리더십이 부족했다는 말일 수도 있었다. 리더십은 포스트 3김 시대를 여는 이번 대선에서 새로운 형태를 요구하는 화두이기도 했다. 노 후보는 그것을 이렇게 풀이했다.

"정치적 리더십은 인격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더 큰 것은 힘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대중 민주주의 사회에서 힘의 근원은 국민에게 있다는 것, 그것이 이번에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제가 세속적 언어를 쓰는 것에 대해 불안감은 가지고 있지만, 모두들 능력이 있다고 진심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자회견이나 토론을 마치고 난 후에 사람들이 박수치는 것을 보고, 아 이 사람들이 이제 진정으로 나를 인정하기 시작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러나 저를 인정하게 된 것이 국민적 지지라는 현실적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것입니다"하며 "결국 국민의 힘이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하긴 노 후보가 선거 이틀 전 강력한 대권 후보로 자리잡게 되기까지 오로지 그가 믿을 수 있는 바위는 국민이었다. '막말'로 하면, 광주에서 "뒤집어지면서" 노풍이 불고 난 뒤에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씨와 단일화 협상을 하게 될 때까지만 해도 노 후보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국민의 힘'은 확신할 수 없는, 갈 방향을 알 수 없는 '바람' 같았다.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가 추락하면서 정몽준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새로운 상대로 떠올랐던 것을 상기해 보면, 노-정 단일화 과정에서 노 후보가 선택된 역전의 '사고'는 어떻게 이루어졌던 것인지 당사자의 정황 설명이 필요했다.

<사진2>

노 후보는 단일화 협상을 시작할 때만 해도 후보단일화(이하 후단)는 "처음에는 후보가 누구냐를 결판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지 단일화 이후 협력 관계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랬는데 만나서 합의를 하면서 선거 기간 중에 협력해야 한다는 조건을 정몽준 후보가 내걸기에 그것을 거절하기가 어려워서 선거 협력이야 할 수 있다, 생각하고 승락했습니다"

그후 그는 조금씩 정책 조율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이 본래 자신의 생각과는 달라 부담이 되었다고 했다. 둘 중 한 명이 이기면 다른 한 명은 "승복하고 끝내는 것"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던 협상에 "점차 옵션이 붙어 나가기에 협상 과정에서 새로 생긴 약속이므로 지키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공동정부' 문제를 물었다. 공동정부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초기부터 같이 운영을 한다는 말이 곧 그 말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다. 합의 과정 중에 그런 의미가 들어 있었는가 물었더니 그는 단호하게 "공동 정부에 관해서는 일체 약속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국민통합21 측에서 요구는 했었지 않았느냐고 했으나 "어떻든 저는 약속하지 않았습니다"라고만 답했다.

알려진 바로는 국민통합21의 공동 정부 요구를 놓고 노 후보와 당내 의원들, 핵심 참모들은 며칠 동안 날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격렬한 토론을 했다. 그리고 대세는 공동정부안을 받아들이자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거의 노 후보 혼자 남을 정도로 주변에서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노 후보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 참모들, 선대위 간부들하고 많이 싸웠습니다. 선거 때의 상황에서 약속은 경솔한 약속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절박한 상황에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보면 그것이 엄청난 제약이 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초당적으로 국가적 인재를 모으고 여야 동반자 관계까지를 꾸려 나갈 수 있는 초당적 인재 영입을 해야 하는데, 정몽준 대표와 저 사이에 인사에 관해서 합의가 이뤄져 있으면 그것이 제약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앞으로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여지를 두어야 하고, 정책 공조까지는 약속했지만 그 이상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이 제 마지막 결론이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정몽준 대표도 명확한 이해를 갖고 있는지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로서는) 어떤 기대도 있겠지만, 저로선 구속받을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참모들과 대화하면서 '내가 낙선해도 좋으니 제대로 하는 대통령이 나오도록 하자. 제대로 할 수 있는 대통령이 아니면 저는 대통령 하지 않겠다' 했습니다"

실제로 공동정부 문제가 마무리돼 갈 즈음 노 후보 측근으로부터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노 후보가 결론을 지으며 "실패한 대통령이 되느니 실패한 후보가 되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재벌개혁 문제는 국민 요구를 수렴해 풀 것"**

8개월 동안 '노무현 흔들기'를 겪으면서 언제 가장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묻자 공동정부안 문제로 팀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를 꼽았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이었다. 정책 조율 과정보다는 단일화 협상과정에서 통합21의 여론조사 방안을 전적으로 수용할 때가 더 힘들지 않았을까. 그러나 노 후보의 생각은 달랐다.

"그때는 승부수였죠. 원칙의 문제라기보다는 승부수였고, 결국 절차에 부족함이 있었지만 그것은 승부수일 따름이었습니다" 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공동정부안 때보다는 단일화협상때가 오히려 합의하기가 쉬웠다고 했다.

언론들은 노 후보의 '승부수'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 왔다. 노 후보 자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11월 24일 밤, 국민과 언론과 정치인들이 숨을 죽이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즈음 정작 본인은 시내 한 호텔에서 두 시간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이러한 노무현식 승부수, 혹은 대담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본시 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제가 청문회 스타가 될 때부터, 되기 이전에 가지고 있던 정치적 포부와 이상은 한 인간이 가지는 것으로서 한계를 지니고 있고, 그 이후 제가 역량을 가지게 된 것은 시운과 국민들의 지지니까요. 결국 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결단하고 기다리고 했습니다."

<사진 3>

정몽준 대표와 관련하여 한나라당은 재벌과 손을 잡아놓고 재벌 개혁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공격하고 있다. 노 후보 자신도 그와의 협상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만약 당선된 이후에도 일정 정도 갈등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 만큼 그야말로 재벌개혁을 소신껏 할 수 있겠는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노 후보는 이 문제를 '국민의 관심과 요구'로 풀었다.

"국민들은 지금 낡은 정치를 청산해 달라는 강력한 요구 의지로 뭉쳐 있습니다. 그 이외의 정책 분야에 있어서 소상히 알고 있거나 다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소위 재벌과 정치 사이의 문제점은 지금 당장 국민들의 현안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몽준 씨와 저 사이에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면 국민들은 또 다시 새로운 요구를 하게 될 것입니다. 또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엔 새로운 요구를 하지 않겠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에 그 문제를 예측하는 것은 누구도 어려운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문 부수가 아니라 신뢰성"**

지지율이 16% 대까지 떨어졌을 때, 노무현은 담배를 다시 찾았다. 당시 그는 답답함만큼이나 대통령직에 대한 회의도 가졌던 듯했다.

"나 혼자 이렇게 고립되어서 어떻게 정권을 잡을 수 있으며 잡으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대통령 혼자서는 못하는 거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16%'는 역으로 그를 붙잡아 주었다고 했다. 배신감이나 서운함은 없었을까?

"16%나 지켜주고 있는 지지자들에 대해서 고마웠습니다. 포기하고 싶긴 했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그 16%가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데 포기한단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텼는데..." 하던 그는 "허허. 그 참, 갑자기 성금이 들어오고..." 하며 말을 멈추었다.

노 후보뿐만 아니라 대권 주자들의 일과를 보면 말 그대로 '격무'다. 엄청난 신체 에너지 소비와 더불어 정신적 스트레스는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는 신념 또는 자신"이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 저런 우여곡절들을 겪으면서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회의를 가졌던 적이 없었을까?

노 후보는 "겸손하게 말하자면 회의를 가졌다고 해야 하지만, 사실 그런 회의는 없었습니다. 결국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니까요. 제 개인의 문제만도 아니고... 아시지 않습니까? 아들게이트, 6.13, 8.8... 그 기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겪었던 일들의 배후에는 '거대언론'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거대언론에 대한 불만을 그는 숨기지 않았다.

"내가 한 의미 있는 메시지는 전혀 전달되지 않고, 실수와 말꼬리만 가지고 그것을 시커멓게 뽑아버리는 언론들 때문에 더욱 더 심각하게 타격 받고... 그랬던 것은 시대의 문제이지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노 후보의 상대는 한나라당이 아니라 '거대언론'이었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거대보수언론과 노 후보는 사실상 '전면전'을 벌였다. 조중동이 전체 신문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 후보는 대안으로 인터넷을 선택했다. 노 후보의 인터넷 선거에 대한 열의는 올 봄부터 선거캠프의 최대 핵심 사업이라 할 만큼 비중이 높았다.

그런 덕분인지, 인터넷 덕택을 톡톡히 보았다는 게 노 후보 진영의 자평이다.
한편 언론계 자체내에서도 선거 이후 가장 많은 지각변동을 일으킬 분야로 언론계를 지목하기도 한다. '전면전'을 촉발시킨 당사자이기도 한 노 후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언론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정치를 그만 둔다면 언론 중재 전문 변호사를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애착 또는 애증을 가지고 있는 노 후보는 이렇게 답했다.

"언론 상황은 저도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칼을 들고 나설 수도 없고" 하던 그는 "역시 국민들을 믿습니다" 하면서 한동안 웃은 뒤에 이렇게 말했다.

"결국 부수와 독자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뢰성입니다. 기사 하나 하나에 대한 신뢰성,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기사, 어떤 의도가 끼지 않은 생생한 현장 중계 방식의 기사와, 의도의 순수성, 그런 것들에 대한 신뢰가 국민에게 퍼져 나가면서 힘을 갖는 것이죠. 인터넷의 위력은 거기에 있습니다. 기사와 정보의 자발성과 거기에 대한 네티즌들의 신뢰, 그것이 부수 많은 (거대)언론의 힘을 상당히 많이 밀어 부친 거죠"

노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고맙게 생각하는 또 하나의 매체는 TV였다. 3회에 걸친 대선 주자 합동 토론회는 물론이고 여러 차례의 방송 연설이 그동안 그에게 씌워져 있던 왜곡된 이미지를 벗겨 내는, 좋은 기회였다는 것이었다. 노 후보는 TV를 통한 국민과의 직접 대면이 자신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자평했다.

***"행정수도 이전은 국민경선 때 제기한 것"**

노-정 단일화 이후 한나라당의 캠페인 전략에 혼선이 빚어지자 한 보수 언론인은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집중 거론하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그 이후 한나라당은 수도 이전 문제를 쟁점화하며 집중 공략했다. 그러니 어찌 보면, 굳이 선거 막판에 그렇게 큰 화두를 던짐으로써 스스로를 수세적 입장에 몰리게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법한 일이었다.

노 후보는 당내 국민경선 토론 때에 이미 분권화, 지방화 이야기를 하면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조심스러운 일이라 아직 공약화 하긴 이르지만 행정수도 이전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후보가 되면서 바로 당 정책팀에 주문을 했어요. 지방화 전략을 연구해서 보고해 달라고 몇 번 재촉을 했었습니다. 그 전략 구성 안에 본시 지방대학 육성, 분권, 행정수도 이전이 자리잡고 있었던 거죠"

행정수도 이전은 오래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것임을 강조한 그는 선대위가 출범한 뒤 이 문제를 정책적 이슈로 하자는 당내 제안에 "좋소. 타당성이 있습니까?" 했더니 "있다" 하여 진행된 일이라고 했다.

"발표 시점이 늦었던 것말고는 오래 생각해 오던 일이었고, 나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생각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조선, 동아에도 나와 있던 겁니다"

그는 충청권 표 공략을 위한 선심성 발언이라는 한나라당 측의 주장에 대해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것은 한나라당의 비논리적인 선동성 때문에 생긴 것이지, 주제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닙니다. 아주 비논리적인 선동성 때문에 지금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을 그렇게 선동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민주당이 소재 선택을 잘못한 것이 아니고 정치 풍토 때문입니다. 어떻게 (수도권이) 공동화된단 말입니까? 어떻게 집값이 폭락한다는 말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청와대 개입? "제발 그런 생각 마라"**

선거 때만 되면 나오는 각종 음모설은 '설'이기 때문에 진위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일단 어떤 설이 나오고 나면 믿고 싶은 사람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내 경선에서부터 언론을 통해 줄곧 쏟아져 나온 음모설을 두고 한 정치인은 "그들은 머리카락도 음모라고 할 것"이라고 일갈한 적이 있었다. 현 자민련 총재 대행 이인제씨가 민주당 내 경선에서 들고 나온 청와대 음모설은 그 후 여러 차례 대상을 달리하며 꼬리를 물었다.

"청와대 개입은 전혀 없었습니까? 과정에서 청와대가 일정 정도..."라고 묻자 노 후보는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제발 그런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이 판단을 그르칩니다. 경선 때나 지금이나 청와대가 개입하고 말고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청와대가 나한테 '불리하게 개입했다' 했을 때에도 관심이 없었고, '유리하게 개입했다' 했을 때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건 이미 아니다' 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청와대 개입설은 그렇다 치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노 후보의 생각은 변함이 없을까?

지난 여름 노 후보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그는 김 대통령이 "욕심만 아니었으면 대단히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김대중 정권의 부패와 실정에 책임이 있는 세력과 인사들도 응분의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김 대통령의 개인적 역량에 관한 평가에는 변함이 없는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것인데, (김 대통령은)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드문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문제에서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잠시 자신을 과신했거나, 방심한 틈에 생긴 소위 측근, 가신, 가족, 그런 부분이 결정적인 발목이 되었고..."

그는 '김대중' 개인보다 더 큰 문제로 지역과 언론의 반대를 꼽았다.

"지역감정과 거대 언론이라는 두개의 적에 맞서서 싸워야 하는 버거운 상황이었다는 것도 이해해 주어야 하고요. 버거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그만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는데, 용납되지 않는 실수가 주변에서 일어나 버린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것을 압도할 만한 역동성이나 재치를 가진 분은 또한 아닙니다. 그의 역동성은 과거 반독재 투쟁의 그것이었지, 국민들에게 새로운 어떤 변화의 역동성과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부분은 없었고...그러니까 언론의 반대를 극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선거 막바지 변수, 북한과 미국**

미사일을 싣고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 화물선이 미국에 의해 나포되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사람이 적지 않았었을 것이다. 남한 선거의 3분의 1은 북한이 쥐고 있다는 농담(?)이 있는가 하면, 외신들은 한반도 핵위기가 이번 대선의 와일드 카드(wild card)가 될 것이라는 예측 보도를 하기도 했었다.

노 후보는 6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선거 막바지에 북풍이나 지역등권론 등으로 인해 결정적인 패배를 맛보았던 쓴 경험들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노-정 단일화 이후 노 후보 진영에서는 "이대로 가면 승리한다"는 자신감과 함께, 두 가지 변수로 북한과 미국을 들면서 두 나라만 잠잠해 주기를 바란다고 기도(?) 했지만, 사건은 여지없이 터졌다.

"가슴이 철렁했다"는 노 후보는 그러나 그것이 여론조사에 영향을 미치더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치적 성향이 적잖이 다른 점 때문에 집권하면 부시와 갈등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전혀 문제 없다"고 자신감을 표했다.

"문제를 푸는 방법이 다를 것 같은데요" 하자 "그 차이 때문에 미국과 협력하고 공존하는 관계는 지금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것은 정상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문제없습니다"고 답했다.

***8개월의 역경, "쑥쑥 큰" 노무현**

6.13과 8.8 선거 공천 과정에서 노 후보가 불만이었던 것은 하향식 임명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당내 낡은 사고 방식이었다. 그는 상향식 공천이 중요하며, 이력서가 화려한 사람들보다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을 발굴해 내어 선거를 치르게 하는 것이 2004년 선거에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사람은 선거 한번 치르면서 쑥쑥 큽니다"라는 것이다.

그런 그 자신도 국민경선 이후 8개월을 지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가 주변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추스리는 데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최근 그를 평가하는 주변 인사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초기보다 훨씬 더 "무게가 실렸다"는 것은 무게 있는 표현이고, 그의 대중 연설을 지켜 본 주변 사람들은 "물이 올랐다" 거나 "신 내렸다"는 우스개 소리를 할 정도로 그가 안정감을 찾았다고 평한다. 노 후보 자신이 선거를 치르면서 "쑥쑥 큰" 점도 있을 법했다.

지난 8개월 동안 정치에 관해 새로 배운 게 있느냐고 묻자 그는 "예" 했다.

"87년 6월 항쟁을 시작할 때 이기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이젠 지겠구나' 했는데 국민들이 뒤집어내는 과정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 제 2의 6월 항쟁이다'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역동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 나라 정치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다, 이 말을 이젠 뒤집어 말합니다. 우리가 국민의 수준을 비하해서 그렇게 말했는데 이젠 국민의 수준을 그야말로 놀라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할 때가 되었다, 이젠 국민들이 정치 수준을 강제로 끌고 가고 있지 않느냐 말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새로 발견한 노 후보의 자신감은 전적으로 국민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에도 입에서 웃음이 번질 정도였다. 자신이 당 후보라기보다 '국민 후보'라는 주장은 두 번 재 신임을 받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고, 그가 유권자들을 향해 "죽었다 살아나는 것이 제 특기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던 때의 절박함이 말 그대로 "살아나서" 다시 강력한 대권 주자가 된 그동안의 과정이 국민 때문이었다는 고마움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이 날 오전 기자 회견장에서 나온 '국민 참여형 정부' 비전도 3무(無) 정치인 노무현이 믿을 바위는 국민밖에 없다는 기대에서 나온 정책인 듯했다.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거대한 야당을 국회에 두어야 하는 난제가 있다. 숫자적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지는 당은 와해된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누가 정권을 잡든 이번 대선을 계기로 정치권의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다.

노 후보는 '국민 참여형 정부'와 '신당 창당 가능성' 그리고 민주당의 환골탈태 개혁을 통한 새 정부, 새 정치 질서 수립 비전을 들고 나왔다. 그가 그 비전을 실행하게 될 것인지, 못하게 될 것인지는 조만간 결판나겠지만, 노 후보나 주변 민주당 쪽 사람들의 얼굴은 밝다.

승리를 낙관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글쎄요. 대체로 여러 가지 분석들이 앞선다고 하니까, 안정권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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