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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벌어지는 기괴한 '인간 경매', "이름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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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벌어지는 기괴한 '인간 경매', "이름도 몰라요" [반월·시화 공단서 본 파견 노동 현실·①] 불법·탈법 판치는 공단
외환위기 구제금융 사태로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가 본격화됐던 1998년 이후, 노동자들은 사회 곳곳에서 유랑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노동 유연화' 정책이 15년 이상 꾸준히 지속한 결과, 노동자들은 자신이 어느 회사에서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 며칠, 몇 달 만에 일터를 수시로 바꾼다. 노동법의 기본 정신인 '직접 고용'이라는 말은 멀겋게 희석된 지 오래며, '간접 고용'은 그 틈바구니에서 사회 구조를 좀먹고 있다.

"이익을 보는 자가 책임도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은 상식이다. 조금 과장하면 사장이 노동자 여럿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가 사장을 여럿 두는 간접 고용이 만연하면서 이 상식은 깨져가고 있다. 간접고용을 통해 쌓인 이익은 사용자가 누리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노동자가 전담하는 구조는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듣도 보도 못한 채용 형태들이 늘어가면서 '노동 제공-임금 지급' 체계 자체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정치,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노동하는 사람들이 건강해야 한다. 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바로 세금을 내고, 소비를 하고, 선거에서 표를 던지는 우리 사회의 다수이자 '골격'이기 때문이다. 노동이 죽은 사회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데 그 '골격'이 삭고 있다. <프레시안>은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함께 안산·시흥 지역의 반월·시화 공단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노동을 좀먹는 '간접 고용'의 '샘플'을 채취해 그 적나라한 실태를 짚어본다. <편집자>

반월·시화 공단서 본 파견 노동자 현실
① 매일 아침 벌어지는 기괴한 '인간 경매', "이름도 몰라요"
② 고용시스템이 무너졌다…'파견'마저 '파견'하는 현실
③ 법대로 하자고? 불법파견·위장도급, 법이 키웠다

10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을 마치고 막 집 앞에 당도했을 때였다. 문을 따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진아(28·가명) 씨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파견업체 사장이었다. 그는 무채색의 목소리로 '어 난데' 라더니 '너 일하던 데가 오늘이 마지막이었대. 내일부터 안 나가도 돼'라고 말했다.

당황한 진아 씨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내쳐버리다니 믿을 수 없었다. '당장 내일부터요?'라고 다급하게 묻는 말에, 파견업체 사장은 '일단 오늘까지 일한 거 넣어줄게'라고 답했다. 며칠 전부터 난로 라인이 멈춘다는 소문이 돌아 걱정이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이렇게 또,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의 반월·시화 공단 인근에서 만난 진아 씨는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허탈함을 누르기 어렵다. 길지 않은 전화 통화를 마친 후, 진아 씨는 한참을 집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고 했다. 그는 "다음날 출근해야 하니 일찍 들어가 잘 생각이었다"며 "그런데 출근을 하지 말라니, 집에 들어가 잠을 잘 필요가 없어졌더라"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래도 진아 씨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함께 난로 라인에서 일하던 사람들 중 몇몇은 아침 출근길에 파견업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통근 버스를 타려다 '넌 안 타도 돼'란 소리를 듣고 집으로 돌아선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칼부림이 난 거예요. 50명을 한꺼번에…. 그때 파견 노동자들은 그냥 소모품이란 걸 알았어요. 전화로 소모품 신청하듯이, 언제든 파견업체에 전화만 하면 사람을 대주고, 필요 없어지면 그냥 버리는 거예요…. (근로)계약서도 파견업체랑 썼으니, 해고도 아니고요. 해고는 없지만 일자리를 잃는 사람은 생기는 이상한 구조예요, 이 파견이란 게."

매일 아침 벌어지는 기괴한 '인간 경매'

입주업체 수, 생산 실적, 고용 인원수 면에서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국가산업단지, 반월·시화 공단. 최근엔 '안산·시흥 스마트 허브'란 새 간판을 달았다. 낡은 공단 이미지를 벗기 위해 위해서다. 그러나 이름을 바꾼다고 공단에 만연한 불법성 초단기 파견 노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안산시 비정규직 노동자 지원센터 김진숙 정책실장은 "이곳의 삶은 전혀 스마트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진아 씨가 일했던 공장의 운영 방식만 봐도 그렇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이 운영하는 가전제품 제조공장. 그러나 그 안은 10여 개 파견업체에서 보낸, 서로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유일한 정직원인 공장 관리자들은 파견 노동자들을 '어이'라고 불렀고, 노동자들도 서로 이름을 물을 필요를 못 느꼈다.

이곳에선 매일 아침 "인간 경매"가 벌어졌다. 파견업체 사장들은 아침마다 "자기 애들"을 봉고차 등에 태우고 공장에 데려갔다. 공장에 당도하면, 노동자들을 휴게실에 쭉 앉힌 후, 칠판에 자신이 데리고 온 사람 수를 적었다. 그러면 공장 관리자가 나와 작업 배치를 위한 '경매'를 진행했다.

"용접에 남자 3명!"
"어 우리 3명!"
"도장에 남자 5명!"
"여기! 여기!"

경매를 마친 후, 다양한 공정으로 흩뿌려진 노동자들은 곧바로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섰다. 진아 씨는 "경매가 끝나면 무작정 기계 앞에 데려다 세워놨다"며 "아무리 파견이라지만 캐비닛도 없었다. '가방이나 짐은 어디에 두느냐'고 물으니 대충 봉지에 쏴서 (기계) 아래에 놓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사물함은 물론이거니와, 작업복도 제공되지 않았다. 이곳 노동자들은 각각 예전에 다니던 회사 작업복을 가지고 와서 입었다. 사람들의 가슴팍엔 서로 다른 회사 이름이 박혀 있었고, 색깔도 제각각이었다. 진아 씨는 "짜깁기해놓은 모습이 기괴했다"며 "어느날 갑자기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 매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 지하철 4호선 안산역 인근에선 파견업체 통근버스에서 내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지난 12일 저녁. ⓒ프레시안(최하얀)

"귀 뒤로 머리카락 넘길 시간도 없었다"

진아 씨는 스물다섯 살에 가족과 떨어져 홀로 안산으로 왔다. 이곳 공단에서 일하면 통근버스가 다니고 하루 세끼 밥도 줘서, 돈 모으기에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아주 거짓말은 아니"라며 "아침에 눈 뜨면 출근하고, 잔업 마치면 집에 와서 자는 게 생활의 전부다. 안산 밖으로 나갈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파견 노동자로 일하며 가장 힘들었던 곳을 꼽아보라고 하니, 진아 씨는 ㄱ 식품의 한 커피 공장을 들었다. 그곳에 있다가 "정신병자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이 공장 역시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만한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이다. 그러나 ㄱ 식품에 고용된 정규직 직원을 공장 안에서 찾기는 어려웠다고 진아 씨는 말한다.

공장은 진아 씨와 같은 최저 시급 파견 노동자들만을 데리고, 24시간 쉬지 않고 기계를 돌렸다. 진아 씨가 한 일은 커피 기계에서 '뚝뚝' 떨어지는 믹스 커피 봉지를 150개씩 가지런히 포장하는 일.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커피 봉지가 저 앞까지 지나가 기계 사이에 끼어버렸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길 시간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화장실에 가려면 지나가는 사람한테 '잠깐만 봐주세요'라고 부탁한 후 재빨리 자리를 교체하곤 했다"며 "퇴근할 때도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바쁘게 움직이다, '어 왔어'하고 신속히 자리를 바꾼 후 '수고해'하고 퇴근했다"고 말했다.

주변에선 "그래도 커피 공장이니 커피는 원없이 먹겠네"라며 부러워했다. 실제로 공장 안 정수기 위에는 언제나 불량 커피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러나 이는 '그림의 떡'. 진아 씨는 "그거 있으면 뭐해요. 기계가 안 멈추는데"라며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을 땐,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후다닥 (커피를) 탔다. 그러고는 화장실에 들고 가서 한 번에 들이켰다"고 말했다.

1년 365일 멈추지 않는 기계

진아 씨에겐 두 살 아래 여동생이 있다. 동생 현아(26) 씨도 얼마 전 언니가 있는 안산으로 건너왔다. 지금은 스마트폰 터치스크린을 만들어 삼성전자 등에 납품하는 ㄴ 공장에서 일한다. 좀 더 정확히는, ㄴ 공장의 ㄷ 협력업체에 ㄹ 파견업체가 보낸 파견직으로 일하는 중이다.

형식적으론 ㄴ공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셈이지만, 입사 면접도 ㄴ공장 임원한테 받았고, 업무 지시 등도 모두 ㄴ공장 관리자들로부터 받고 있다. 현아 씨는 "처음 근로계약서 쓸 때 이후로 파견업체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며 "누군가 시끄러운 일을 만들어 파견업체 직원들이 '출동'하지 않는 한, 볼 일이 없다"고 말했다.

시급은 기본 5500원이라고 했다. 최저 시급에 딱 맞추어 주는 여타 공장들에 비해 급여 수준이 좋다. 반면 노동 강도는 엄청나다. 처음 공장에 들어갈 때는 3조 2교대로 일한다고 들었지만 막상 현장에 들어가니 쉬는 날에도 특근을 시켰다. 오롯이 쉬는 날이 365일 중 단 하루도 없다. 대기업이 요구하는 납품량을 맞추려 밤낮으로 기계를 돌리는 모양이다.

"추석 때도 (근무가) 의무는 아니라고는 하는데 '다 나올 거지? 빠지는 사람 있어? 누구야?' 라고 하더라고요. 추석 때 집엔 못 갈 것 같아요. 여긴 돈은 좀 더 주지만 일이 워낙 힘들어 어린 애들이 많이 일해요. 보통 고등학교 막 졸업한 스무 살에서 스물 두 살 정도고, 전 나이가 많은 편이에요."

쉬는 날도 없이 하루 열두 시간 공장에 머무르는 이들은, 그래서 연애도 주로 공장 안에서 한다고 했다. 파견업체들은 '연인 동반 입사 가능'을 광고하고, 한 기숙사에 연인들을 같이 배정해주기도 한다. 현아 씨는 "그러다 보니, 동거하는 직원들이 많다"며 "여기서는 결혼도 되게 빨리한다. '언니 나 결혼해'란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 왼쪽은 반월·시화 공단 소재 한 제조업 공장 내 화장실 벽 낙서. 오늘쪽은 공단 내 부착된 파견업체의 인력 모집 광고. ⓒ안산시 비정규직 노동자 지원 센터 제공

"파견직들은 무슨 이유든 3일 쉬면 자동 퇴출"


몇 주 전, 진아 씨와 현아 씨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 소식을 들은 현아 씨는 회사에 연락해 휴가를 신청했다. 그러자 예기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파견직은 3일을 결근하면 자동 퇴사'라는 답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요?'라고 물으니 회사 관리자는 '예비군 훈련을 가도 파견은 3일 결근하면 무조건 자동 퇴사'라고 말했다.

황당했다. 노동조합이 있는 정직원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파견 노동자들에겐 가족의 삼일장을 치를 권리도 없다는 사실에 진아 씨와 현아 씨는 서러웠다. 하지만 일자리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는 일. 결국 현아 씨는 삼일장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장례 마지막 날, 야간 조로 복귀했다. 장례식장서 이틀 밤을 꼬박 세운 후였다.

복귀도 순탄치 않았다. 복귀 날 조회 시간, 관리자는 현아 씨를 사람들 앞에 불러 세운 후 면박을 줬다. 현아 씨는 "조회를 서는데 관리자가 갑자기 '야 너 나와봐' 하더니 사람들 앞에서 '쿠사리(핀잔)'를 줬어요. '그래, 삼일장은 잘 치르고 오셨어요?'라고 비아냥거리는데 왈칵 눈물이 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결국 사태는 언니 진아 씨와 해당 관리자의 전화 말싸움으로 이어졌다. 울면서 사망 진단서를 보내달라는 동생 전화를 받은 후, 진아 씨는 현아 씨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막 성을 냈어요. 아무리 파견이라지만 3일 쉬면 자동 퇴사라는 말도 안 되는 규정을 두는 곳이 어디있느냐고요. 정직원이라면 이랬겠어요. 우리를 인간으로 안 보는 거예요."

"불법인 줄 몰랐어요"…법망 피해 '6개월 파견 돌려막기'도 횡행

공단 내 파견 노동자들은 이렇듯, 노동자가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파견업체, 파견을 받은 협력업체, 실제 노무를 제공받는 사용업체 등이 만든 복잡한 노무·관리 구조 속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져 있다.

그나마 파견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고 만들어놓은 '파견근로자보호법'도 반월·시화 공단에서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법은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에서의 파견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다만 일시·간헐적 사유가 있을 때에만 3개월 파견 사용(1회 연장 가능)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모르는 노동자들은 물론, 이를 모르는 업체도 부지기수다.

김진숙 정책실장은 "공단 내에 이런 사실을 아예 모르고 파견을 계속 쓰는 공장들이 많다"며 "불법이라고 알려주면 '뜨악'하는 사장들을 많이 봤다. 그만큼 간접 고용이 만연하고, 그 가운데서도 불법성 초단기 파견이 공단 내에 깊숙이 뿌리내렸다"고 말했다.

법을 아는 사장들도 '꼼수'를 부려 파견직 계속 사용을 한다. 한 사람을 6개월 파견으로 쓴 후 버리고 새 사람을 6개월간 또 쓰거나, 6개월이 지난 후 1~2주 집에서 쉬게 하고, 다시 불러들여 6개월 파견으로 다시 쓰는 '돌려막기'도 횡행한다.

이날 공단 인근에서 만난 수한(46) 씨도 자신의 회사가 '불법'으로 파견을 쓰고 있는 줄 몰랐다고 했다. 올해 초 회사에서 제때 수당을 받지 못해, 관련 상담을 전문가에게 받던 중에야 불법 파견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됐다. 수한 씨는 "'사람을 이렇게 막 쓰면 안 되지 않나'란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뭐가 불법이고 뭐가 합법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김진숙 정책실장은 "그간 대기업 사내하청 중심으로 불법 파견 문제가 수차례 제기되긴 했으나, 안산·반월 공단에서의 초단기 불법 파견은 잘 주목받지 못했었다"며 "고용불안과 저임금,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파견 노동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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