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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영 사장, 철도공사는 경찰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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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영 사장, 철도공사는 경찰청이 아니다" [오건호 칼럼] 또 철도파업을 유도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철도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옛날만큼의 정겨움을 주진 않지만 철도는 안전하고 빠르고 친환경적인 서민의 발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공공부문이 지탄의 대상인 우리나라에서 철도라도 괜찮은 공공서비스로 자리잡은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인문학자 배병삼은 '양갱'이라는 수필에서 한 아이가 열차 안에서 밤양갱을 먹고 있는 것을 보면서 흐믓해 한다. "열차 안에서 파는 먹을거리가 거의 변함이 없다는 것은 일종의 든든함이다"라면서. 양갱뿐만 아니라 찐 계란, 천안명물 호두과자, 배불뚝이 바나나우유도 있단다. 이렇게 철도는 서민에게 추억이며 친구이다.

철도민영화로 시작된 철도 갈등

그런데 한국철도를 둘러싸고 좀처럼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처음은 철도민영화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10여년 전인 1999년, 김대중 정부가 철도민영화 방침을 발표한 이후 우리사회는 철도민영화로 몸살을 앓았다. 다행히 2005년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철도민영화가 철회되고 국유철도인 철도청이 한국철도공사로 개편되었다. 우리사회에서 드물게 사회적 조정을 거친 결과이다.

이후 철도공사에서 내부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노사갈등이 발생했지만 'KTX 여승무원 비정규직' 문제를 빼곤 무난하게 흘러온 편이다. 노사가 다툴 때 다투더라도 점차 '게임의 규칙'을 숙지해 나간 덕택이다.

경찰청장 출신 사장 부임 이후 급변한 노사관계

▲ 허준영 철도공사 사장. ⓒ뉴시스
작년부터 철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 경찰청장 출신 허준영 사장이 부임한 이후 철도 내부에 긴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마침내 작년 11월 철도파업까지 발생했다.

파업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파업도 노사갈등을 해소하는 제도적 과정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노조가 적법절차를 거치듯이 사용자도 법에 따라 대응하며 후속 협상을 벌이면 된다. 노동자가 마냥 파업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후속 교섭으로 며칠 이내에 파업이 마무리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노사관계론은 파업을 중요한 갈등해소 제도로 이해하고, 헌법은 더 나아가 파업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허준영 사장이 부임하면서 철도에서 노사관계가 사라졌다. 철도 역사 60년 만에 처음으로 노사간 계약문서인 단체협약이 일방적으로 해지 통보되었다. 당시는 철도노조의 파업예고일을 앞두고 막바지 교섭이 한참일 때였다. 협상은 보통 이 때 타결되는 게 '게임의 규칙'이다. 그런데 돌연 사측이 '단협 해지 통보서'를 팩스로 철도노조에 보냈고 결국 철도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작년 철도파업은 합법파업

노사관계를 전공한 내가 이해하는 한 당시 철도파업은 합법파업이었다. 협상 현안이 단협개정, 해고자복직 합의사항 이행 등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노사관계 사안이었고, 단체행동은 모든 적법절차를 거친 후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허준영 사장은 파업초기부터 불법파업이라고 단정했다. 당일 지하철 플랫폼 안내판에 흐르는 '철도노조 불법파업'이라는 글자를 기억한다. 밀리는 열차에 나 역시 불편했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불법으로 몰아도 괜찮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후 알려진 것처럼, 철도공사의 파업유도 문건이 발견되면서 야 4당이 파업유도 국정조사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고 법률가들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은 '철도공사가 노사관계를 극한 대립상태로 몰고 가는데 상당한 책임이 있었다'고 결론내린바 있다.

지금 이 파업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상식적인 판결을 기대하지만, 어찌되었든 아직 법원의 판단은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철도 내부는 이미 무참한 징계가 행해지고 있다. 200여명이 해고되었고 천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직위해제되었다. 정직이나 감봉을 당한 노동자도 1만 2천여명에 이른다. 모두 다 불법적 행위를 저질렀다는 철도공사의 자체 판단에 따른 일이다. 갈등은 더 큰 갈등을 낳기 마련이다. 철도노조는 다시 절차를 밟아 오는 30일 파업할 수 있음을 예고했다.

허준영 사장, 아직도 파업 이유를 모른다?

또 허준영 사장이 나섰다. 그는 23일 "한국철도공사 직원 여러분께 알립니다"라는 글을 통해 놀랄만한 발언들을 내뿜었다.

그는 '무엇 때문에 파업을 하는 지 이번에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번 파업은 고사하고 작년 파업 이유를 모른다니 말문이 막힌다. 당시 단협개정, 해고자 복지 합의 이행 등으로 노사가 갈등을 벌이고 있었고, '파업 유도'로 비판받는 단협해지를 통보한 당사자도 허준영 사장이다.

이번 갈등 역시 작년에 통보된 단체협약 해지를 막기 위해 진행 중인 협상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단협해지 통보 6개월이 되는 다음달 24일에 기존 단협이 백지화되기 때문에 철도노조는 사실상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사장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글은 이어진다. '이번에 또 파업을 한다면 정부에 한국철도공사의 조기 민영화를 공식 요청하겠다'고.

우리 서민의 벗으로 자리잡고 있는 한국철도가 왜 민영화되어야 하는지 나는 의문이다. 철도 모국 영국이 철도민영화로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루고 있는 지는 잘 알려져 있다. 게다가 사용자 대표로서 노사갈등을 관리하지 못한 게 철도민영화의 이유라니!

또 파업을 유도하려는가?

글을 보면서 갑자기 걱정이 밀려 왔다. 왜 지금 철도민영화를 요청하겠다고 나선 것일까? 철도노조를 다시 자극하려는 것 아닌가? 또 파업을 유도하려는 것은 아닌가?

지금 허준영 사장은 작년 철도노조의 파업에서 불법성을 찾아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다. 이미 철도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해 국민에게 알렸고 수천명의 노동자를 징계한 상태다. 먼저 '자르고' 사후에 '근거'를 만들어 내야하는 처지에 서 있다.

그래서 또 한번의 파업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철도의 공공성을 활동의 핵심으로 삼아온 철도노조에게 민영화는 노조의 정체성을 허무는 일이다. 이미 파업에 필요한 적법 절차도 밟은 상태이므로 사장의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서라도 노조가 파업을 벌일 개연성이 높다.

아마 이번에 파업을 벌인다면 철도노조는 허준영 사장의 민영화 요청 발언을 규탄하며 철도민영화를 비판할 것이다. 그러면 이번 파업이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정치파업'이고 그래서 '불법파업'이라고 몰아가려는 것은 아닐까?

누가 나의 바람을 깨고 있는가?

이미 허사장은 며칠 전 글에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은 채 이번 파업은 불법파업이 될 것이라고 예단했다. 심지어 파업을 벌이면 "국가 형벌권의 유무를 판단하는 법원의 형사재판과는 별도로 징계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경찰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보안조직이다. 경찰청장이 지도 방침이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민간인 신분인 철도노동자에게는 헌법적 권리인 노동3권이 보장되어 있다. 아무리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노사관계' 룰에 따라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혹 자신의 지도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 근거가 노동자의 법적 권리에 따른 것이라면 인정해야 하는 게 민간인 사회의 규칙이다. 철도공사가 경찰청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철도에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니 혹 갈등이 생기더라도 '규칙'을 지키며 풀어갔으면 좋겠다. 국민의 철도가 특정인의 자산처럼 우롱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철도를 탈 때마다 밤양갱을 먹는 아이들을 상상하는 정겨움에만 흠뻑 빠지고 싶다.

누가 나의 이 바람을 깨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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