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서울에서 절대로 먹을 수 없는 음식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서울에서 절대로 먹을 수 없는 음식은… [판다곰의 음식 여행·23] 이런 음식점, 찾을 수 없나요?
서울은 거대한 도시다. 인구 천만을 넘는, 전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도시일뿐더러 그 배후지의 규모 또한 거대하다. 주변의 위성도시까지 합하면 2000만이 넘어 남한 전체 인구의 절반이 서울 주변에 몰려 있고 이 많은 사람이 직간접으로 서울과 연관을 맺고 살아간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이 대한민국 전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서울과 그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구성도 다양하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제주도 등 남한 전체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을 뿐 아니라 북한의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에서 내려온 이북 출신의 후예도 많다. 한반도 전역의 사람들이 용광로처럼 녹아드는 곳이 바로 서울이다.

게다가 서울은 이제 한국 사람만의 도시도 아니다. 중국 연변에서 온 교포들의 거리가 따로 있으며,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도 수도권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 유학이나 상업, 또는 여러 목적으로 온 외국 사람도 무척 많다. 많은 외국인이 있기에 외국인 거리도 있고 세계 여러 지역의 음식을 파는 음식점도 많다. 예전에는 특별한 외국 음식을 파는 음식점이 이태원과 같은 일부 지역에만 있었으나 이제는 서울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몇몇 지역의 요리를 빼면 서울에서는 팔도의 향토 음식과 전 세계의 음식 거의 전부를 맛볼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입맛으로 평준화되는 향토 음식

경제적 부를 따라 사람이 모이고 사람을 따라 입맛이 모인다. 향토 음식만 해도 그렇다. 이제는 오히려 본고장보다도 더 많은 지방 음식점이 서울에 몰려 있다. 전라도의 이름난 한식집도 있고, 개성의 깔끔함으로 무장한 개성식 한식집도 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황해도 만두도 맛을 볼 수 있다. 대구의 따로국밥, 진주의 비빔밥, 목포의 낙지, 흑산도의 홍어무침, 마산의 아귀찜, 안동의 찜닭, 동래의 파전, 강원도의 감자전, 춘천의 닭갈비와 막국수, 전주의 콩나물국밥, 서산의 어리굴젓 등 서울에서는 전국의 거의 모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그런데 서울에 풍부한 입맛을 제공한 지방은 오히려 서울에서 유행하는 음식점이 밀려들어 지방 고유의 독특한 전통마저 위협받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전국의 입맛은 서울을 중심으로 뭉치고, 평균화된 입맛과 유행이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향토음식을 위협한다. 몇몇 음식을 빼면 지방에 가도 대동소이한 음식점만 눈에 띈다. 이제는 팔도의 향토 음식이라 할지라도 겉모습만 고만고만할 뿐이지 제대로 낸 맛을 찾기는 어렵다. 제대로의 설렁탕, 제대로의 비빔밥을 맛보기 어렵다.

어디 지방 음식뿐이랴! 양식과 세계 각국의 음식도 유행만 변할 뿐이지 맛과 재료 자체를 신뢰할 만한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실내 장식과 식기가 세련되어지고 서비스가 나아지는 것은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정감 있고 특색 있는 음식점들이 많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서울의 음식들이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니 전국 어디나 비슷비슷한 것들을 사 먹을 수밖에 없다. 음식 맛의 평준화는 다른 어느 것보다 실천이 잘되는 느낌이다.

음식 장사는 굶어 죽지 않는다고?

서울의 거의 모든 거리에 음식점이 넘쳐난다. 피자, 도넛, 햄버거, 샌드위치, 치킨 등의 패스트푸드점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고, 외국 상표의 패밀리레스토랑도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어느 지역에나 먹자골목은 거의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매일 저녁이면 곳곳의 식당에서 푸짐한 안주에 술잔이 오간다. 불과 20년 전과 비교해도 음식의 종류가 엄청나게 늘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처럼 외식은 이제 무척이나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아직도 아침은 집에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차츰 점심은 학교와 직장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외식으로 해결하는 추세다. 주말이나 휴일에도 음식점은 외식하러 나온 가족들로 넘쳐난다. 외식의 빈도가 늘어가고 선택의 폭도 훨씬 넓어진 게 사실이지만,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은 여전히 크다.

이런 고민을 풀어주려고 음식점의 품평을 담은 맛 기행 책들이 적지 않게 발간된다. 이름난 식도락가가 지은 책도 있고, 음식 칼럼을 전문적으로 쓰는 직업도 생겼다. 신문이나 잡지, 방송매체에서 다루는 '맛집' 관련 기사의 양도 제법 많다. 인터넷에는 '식객'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곳곳의 맛집을 찾아 소개하는 글을 음식 사진과 함께 올리는 사이트도 많다. 그런데 그런 책이나 글을 쓰는 사람들의 고충은 새로이 발견한 맛있는 음식점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 맛이 변하거나 음식점 자체가 아예 없어지는 경우도 흔하다는 데에 있다고 한다.

어느 통계를 보니 새로 연 음식점의 30퍼센트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중이 워낙 높기도 하거니와, 퇴직한 사람들도 가장 만만하게 보고 또 가장 많이 실패하는 자영업이 이 음식 장사인 셈이다. '음식 장사는 굶어 죽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예전에 가난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음식 장사를 하면 장사가 조금 안 되더라도 자신은 팔다 남은 것을 먹을 수 있으니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논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음식점이 12.2개나 된다고 한다. 미국이 1.8개, 일본이 5.7개인 것과 비교해보면 정말로 엄청나게 높은 비율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외식을 많이 하는 나라라고는 할 수 없기에,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고 규모도 영세할 것이다. 그러니 문을 닫는 음식점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자본주의적 생존 경쟁이 치열한 서울은 음식점의 정글과도 같다. 금세 새로 음식점이 생기는가 하면 어느새 문을 닫는 집도 그만큼 된다. 개장하고 미처 칠이 마르기도 전에 문을 닫는 집도 많다.

너무 쉽게, 너무 많이 생기는 음식점

오늘 음식점 건물을 뜯어내는가 하면 내일이면 새로운 음식점의 간판이 눈에 띈다. 그런가 하면 또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문을 닫고 다시 다른 음식점이 들어선다. 이런 현상은 음식 장사의 진입장벽이 낮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상황이 이러니 음식점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부족하다고 봐야 한다. 그만큼 음식의 평균적인 질도 떨어진다. 그래서 밖에서 사먹을 수 있는 것들에는 아직도 문제점이 많다. 특히 맛이 문제다.

새로 생긴 음식점에 들어설 때 우선 보는 것은 간판과 실내 장식이지만 처음으로 대하는 것은 밑반찬이다. 대체로 밑반찬의 맛은 본음식의 맛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반찬의 가짓수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주방장의 음식 솜씨는 대체로 밑반찬 솜씨와 그다지 차이가 없게 마련이다.

요즘은 이 밑반찬을 식당에 전문적으로 대주는 업체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런 방식이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그런 밑반찬을 내놓는 집이라면 실상 본음식의 맛도 거기에서 큰 차이가 없으니 그저 한 끼 때우고 간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허름한 음식점이라도 주방에 김치를 담그려고 배추나 무를 쌓아두었다면 왠지 신뢰가 가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여하튼 새로 생겨나는 식당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 가운데 하나는 음식의 종목이나 솜씨에서 아무런 특색도 없는 음식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음식과 요리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의 숙련과 맛의 실험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음식을 내놓기까지 챙겨야 할 과정도 무척 많다. 음식점을 연다는 것은 실내 장식이나 세련되게 하고 요리사만 적당히 고용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음식점이 있기에 양이나 가격이나 맛이나 무엇 하나 특화하지 않은 음식점은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데도 너무 쉽게, 너무도 많은 음식점이 들어서고 있다.

맛보다는 유행을 따르는 세태

새로 생긴 음식점이 문을 닫는 것은 꼭 음식 맛이 없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몇 달 전에 연 음식점이 괜찮다 싶어 찾아가면 다른 음식점이 들어선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렇게 새로 열고 문을 닫는 음식점들을 보면서 드는 의문은 왜 그렇게 음식점이 유행에 민감한가 하는 문제다.

경기가 나빠져서 비교적 값싼 국숫집이 잘된다 싶으면 사흘이 멀다 하고 국숫집들이 들어선다. 예전에 한때 조개구이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조개를 직접 구워서 소스를 찍어 먹는 재미에 조개구이집이 잘되자 너도나도 조개구이로 업종을 전환하여 서울 거리는 그야말로 '한 집 건너 조개구이, 한 집 건너 PC방'이었다. 그 결과 다 함께 망해버려 이제는 거리에서 조개구이집을 찾기도 쉽지 않다. 쭈꾸미집이 잘된다면 너도나도 쭈꾸미집을, 쌈밥집이 잘된다면 너도나도 쌈밥집으로 업종을 변환하니 서로 장사가 여의치 않을 것이다.

음식도 문화이니 유행을 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식성은 다양한 것을 찾는다. 좋은 음식도 여러 번 먹으면 물리게 마련이다. 거리에 음식점이 넘쳐나도 그 많은 음식점이 거기서 거기인 까닭에, 개성이 뚜렷한 특색 있는 음식점은 찾기 어렵고 음식점 고르기도 결코 쉽지 않다. 따라 하는 음식점은 청출어람의 신공을 가졌어도 성공하기 어렵다. 세계 최고의 인구당 음식점 수를 자랑하는 수도권에서 음식점을 하려면 남의 흉내보다는 확실한 내 것과 내 특색을 갖춘 음식점을 열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요즘 들어 나타난 새로운 현상 하나는 같은 이름으로 여러 곳에서 영업하는 이른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늘었다는 것이다. 손쉬운 조리로 음식을 만드는 치킨이나 패스트푸드가 그런 형태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원료와 조리 방법이 균질화된다면 음식 맛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렁탕, 곰탕이나 냉면, 비빔밥처럼 슬로푸드로 꼽히는 음식마저도 그런 집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대부분은 전통이 오래된 집들인데, 나름대로 맛있는 집으로 평판을 받거나 이름 있는 주방장을 앞에 내세운 음식점들이다. 음식점 하나로는 이윤에도 한계가 있으니 현대적 기업으로 시장 확대를 꾀하는 것일 테다.

물론 여기에는 신선한 재료나 규격화된 조리 방식이 필수적이다. 이름을 같이 쓰는 만큼 이름에 먹칠할 정도의 음식이라면 그 이름의 가치도 급속히 떨어질 것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관리만 잘된다고 해서 음식의 제맛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프랜차이즈 음식점은 깔끔할지는 몰라도 왠지 '원조' 본점의 제맛이 나지 않는다. '관리'만으로는 제맛이 날 수 없고 주방장과 주인의 정성이 더해져야만 한다. 그러니 한동안은 번성할지 몰라도 관리가 느슨해지면 금세 몰락하게 된다. 이런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유행하는 것보다는 몇 대를 이어 오랜 음식점들이 살아남는 것이 먹는 사람 처지에서는 훨씬 바람직하다.

음식을 믿지 못하는 세상

서울에서 50년이 넘은 오래된 음식점을 발견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손님의 까다로운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음식점 경영이라는 게 쉽사리 이루어지지도 않으며, 무엇보다도 요리의 맛을 전승하고 유지하는 게 정말 어렵다. 뛰어난 요리사 한 사람만 있으면 다 해결될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요리사는 늙고 음식점의 규모가 커지면서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만일 요리사가 솜씨 좋은 후계자를 둔다면 100년 넘는 전통을 지닌 음식점도 생기겠지만 10년이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을 다 갈아엎는 우리네 현실에서 이 같은 일은 좀처럼 쉽지 않을 것 같다.

성공한 음식점은 그 나름대로 비법이 있기 마련이다. 특출한 맛, 풍부한 양, 좋은 분위기, 적당한 위치, 정감 있는 서비스, 이 모두를 갖출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몇은 갖추어야 한다. 특히 장수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은 특출한 맛이다. 아무리 외진 곳에 있어도 이것만 있다면 찾던 단골은 계속 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특출한 맛을 내는 데에 가장 으뜸으로 필요한 것은 역시 신선하고 좋은 품질의 재료다. 그게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아무리 좋은 요리사라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다니는 음식점 가운데 이런 신뢰감을 주는 곳이 얼마 되는가.

광우병으로 제한되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이후 거의 모든 음식점에 원산지 표시라는 것을 하고 있다. 쌀은 어디 것, 쇠고기는 어디 것, 김치는 어디 것, 모든 식당이 이렇게 써 붙여놓고 있다. 하지만 과문해서 그런지 몰라도 미국산 쇠고기를 판다는 곳을 본 적이 없고, 중국산 김치를 쓴다고 밝힌 집도 보지 못했다. 분명히 미국에서 쇠고기도 수입하고 중국에서 김치도 들여오는데 이를 쓰는 집은 거의 없는 셈이다. 이제 재료에 대한 불신은 그런 것을 보고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게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음식점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양심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 전체에 깔린 협잡과 탐욕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유기 농업으로 좋은 재료를 힘들게 생산한다고 해봐야 실제로 이익은 적당한 방법으로 유기농 인증만 따낸 사람들이 차지한다. 음식점으로서는 좋은 재료를 쓴다고 해도 많은 이가 알아주지도 않거니와 결국 가격 경쟁에서 밀리게 마련이다. 결국에는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들조차 믿지 못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세상이 이러하니 가끔은 이런 음식점을 꿈꿔 본다. 윤기 흐르는 쌀밥은 지난 해 승철이네 논에서 우렁이로 잡초를 없애가며 수확한 쌀로 짓고, 맛깔스러운 반찬은 개똥이네 식구들이 밭에서 농약 쓰지 않고 기른 채소로 만들고, 김치찌개에는 영희네 넓고 깨끗한 우리에서 좋은 사료 잘 먹고 자란 돼지고기와, 철수네 밭에서 퇴비를 주고 정성껏 기른 배추로 담근 김치를 넣으며, 이 모두를 희섭이네 엄마가 정성껏 조리하는 그런 음식점.

재료에 어떤 정성과 노력이 들었는지 그 사연을 알고 먹을 수 있는, 음식값으로 만 원을 내더라도 가고 싶어지는, 마음 놓을 수 있는 밥상을 차려주는 그런 음식점은 없을까? 아마도 이제 앞으로 서울에서는 이런 음식점과 음식을 영원히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