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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교차로 앞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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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교차로 앞에서 길을 찾다 [나도원의 '대중음악을 보다'] 왜 한국 사회는 음악을 가두었나
지난 2월 19일 발행된 '왜 한국사회는 음악을 울타리 안에 가두었을까'(바로 보기)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편집자>

눈 없는 겨울행색처럼 황량한 공터에 홀로 서 있는 작은 건물이 음악소리와 인파로 들썩였다. 꼭 한 달 전인 5월 1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온종일 노래하고 연주한 60여 팀의 밴드와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1000여명의 음악애호가들이 '두리반'이 처한 부당함에 공감을 표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여러분 인디밴드 좋아하시죠? 저는 인디파티(indie party)의 대표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바지 차림의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재개발 문제의 절박함과 인식확산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영화와 음악 애호가로 알려진 그는 특유의 유머도 잊지 않았다. "여러분 락 좋아하시죠? 저도 길바닥에서 락(rock)을 들고 투쟁했습니다."

행인들의 차림새를 관찰하거나 시끄럽게 떠들며 2차로 이동하는 인파 사이에 긴 줄이 만들어지는 곳이 홍대 앞이다. 클럽 입구에서 요즘 주목받는 음악인을 볼 수 있는 무대까지 고작 몇 걸음 떨어져 있는 동네가 바로 옆에서 벌어진 사건에 공감을 표했다. 어떤 이들이 이런 페스티벌을 찾는 이유는 '코코어'가 <주기도문>을 연주하는지 여부와 극우 컨셉으로 몰상식을 역풍자하며 조소하는 '밤섬해적단'의 블랙코미디 하드코어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들썩이는 분위기를 마냥 즐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들도 두리반에서 막걸리를 삼으로써 후원했다. 장소와 사건이 만났고, 참여와 놀이의 장인 페스티벌이 현실을 만난 것이다.

▲지난 5월 1일(노동절), 홍대 앞 음식점 '두리반'에서 페스티벌 '전국 자립 음악가 대회 51+'가 열렸다. ⓒ프레시안(허환주)

음악이 오늘을 노래하다

작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대 나온 여자'는 <군계무학>에 20대의 항변을 "자본의 노예, 세계화의 희생양"이란 가사로 담아냈고, 카카오 농장의 아동노동착취를 소재로 한 노래는 금상을 수상했다. 로큰롤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올 만우절에 시작하여 노동절에 완성한 [Wild Days]의 <나의 지구를 지켜줘>는 "북극곰 집이 녹아 사라진대. 내 집도 재개발로 사라진대"라고 읊조리며, '굴소년단'은 '촛불' 목격담인 <메신저>를 새 미니앨범에 담아 발표했다. 일스(Eels)의 목소리로 부르는 펑크라 할 '이상헌의 생각하는 사람들'은 동시대 동년배를 위하여 소탈한 노래들을 만들었다. 기시감 있는 몇몇 곡들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술 처먹는 세대]는 21세기를 사는 젊은이들의 오늘을 그린다.

그 무렵, 잔잔한 울림을 스민 앨범이 조용히 세상에 나왔다. 시적인 가사를 장식 덜어낸 순수한 노래에 실어 보내는 포크 싱어송라이터 '생각의 여름'은 동명의 데뷔앨범을 "여백이 공간을 넓히고 떨림은 마음을 건드리는, 사람과 나무와 쇠줄이 내는 소리"로 채웠다. <활엽수>는 김광석을 그립게 하고, 참 시린 노래인 <서울하늘>은 이장혁과 루시드 폴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아류라는 비하가 아니라 찬사를 위한 비교이다. 그는 자본주의의 극단을 서술한 <동변상련>을 나지막이 불렀다. 공세적이지 않은 말투로 아픔을 풀어내는 노래가 많아지고 있으며, '뇌태풍'의 <너무 많은 너무 적은>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노래에 현실을 담거나, 음악은 비정치적이지만 행동으로 참여하는 두 가지 양상이 활발해졌다. 관목 덤불 속 새떼의 지저귐처럼 현실과 살을 잇댄 노래의 증가와 연대의 일상화는 신자유주의 본격화와 이명박-한나라당 집권 이후 고통과 비극의 체감도 상승, 그리고 기존과 다른 기준을 지켜온 인디음악의 성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음악동네에 오랫동안 시선을 보내온 이들은 '촛불'과 '콜트-콜텍 노동자 투쟁', 그리고 '용산'만이 시작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론 그 사건들과 함께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연대공연과 작품발표가 줄을 이었으나 이전에도 눈여겨볼 움직임이 없지 않았다.

2004년 9월에 세워진 음악공동체 카오스클래스가 있다. 여기에 참여한 크러스트 펑크 밴드 익스플로드(Explode)는 음악으로만 발언하는 것을 넘어 실제 행동으로 사회를 바꾸어보겠다는 행동주의 사상을 드러냈다. 상업주의에 찌든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비판하며 문제개선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했고, 일반적인 음악 공연뿐만이 아니라 각종 집회와 운동에 참여했다. 카오스클래스는 저항문화와 사회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새로운 펑크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커뮤니티로 하위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정치와 사회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 구성원들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안에서 만들어지는 마인드와 외부로 표출되는 애티튜드는 고민과 경험이 있어야 획득할 수 있지만 동료의식과 연대가 중시되는 집단에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곤 한다. 헤비메탈과 하드코어가 대표적이다. 대부분 영어 가사여서 잘 드러나지 않아도 한국어로 노래하는 '블랙홀'처럼 건강한 애티튜드와 충실한 마인드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폐기처분된 것으로 착각하는 스피릿과 애티튜드는 폐기처분씩이나 해야 할 정도로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마음이 몸을 움직일 뿐이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만이 아니라 김두수는 <시대는 전사를 거두지 않는다>고 노래했고, 더블유(W)는 송두율 교수를 소재로 <경계인>을 발표한 바 있다. YB(윤도현밴드)와 이상훈의 왓(What)도 현실비판적인 노래를 발표하고 있으며, 이승환은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한다. 한번 끓은 물은 식은 다음에도 금방 끓기 마련이다.

감성은 정신을 내포한다

근사한 브런치를 먹고 요가를 배우고 정신과 의사를 둔다고 드라마 속의 뉴요커가 되진 않는다. 자신에게 충실하겠다며 자신을 둘러싼 문제로부터 도주하는 모순, 고립되지 않으려 시장의 유행에 동조하는 모순의 극단이 문화소비에 드러난다. 그런데 '19금 음악'(19세 이상 청취불가)이 대세였던 대중음악이 점차 현실을 품고 있다. 어떤 이야기가 뜬금없다고 느껴지는 것이 시대와 동떨어져서라면 주된 소재로 자주 등장하여 익숙해지는 건 시대가 그렇기 때문이다. 악당 덕에 당연한 소리를 해도 (물론 본질은 여전히 의심스럽지만) 상식적으로 보이는 압박기라든가 불리한 환경, 혹은 불황기에 예술은 돌파구를 찾아 더 창조적이 되곤 한다. 남 보기엔 멍청해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이럴 때엔 강점이 된다.

혹자는 한국의 문화예술이 유난히 이념에 따라 대립한다고 했다. 이해관계를 떠난 내부논쟁의 역사는 길다. 해방 후 문학의 순수-참여논쟁에서 서정주와 김동리는 문학의 현실참여에 반대했다. 펜으로 일제에 부역한 서정주가 순수를 강조했으니 일관성이 없었던 것이자 일관성을 지킨 셈이다. 이 논쟁에 다른 시점, 다른 각도에서 참여한 이어령은 훗날 노태우·민자당 정권에서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앙드레 말로의 드골정권 참여에 비견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이 우리 문단, 아니 사회 전체에서 큰 어른들로 대접받고, 참여 편에 섰던 이들 중 다수가 월북하여 그 논쟁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전달되지 못한 건 안타깝다. 하지만 순수문학 진영을 대변하여 논쟁을 펼친 김동리 역시 진정한 예술가였으며, 참여를 강조한 이들 역시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 모두는 역사의 단계에 따른 임무를 수행했다.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말과 행동을 하며 단계의 일부가 되듯이 저마다 자기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적 선배에 감사하며 자기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제 의문을 표출하지 않는 법을 배우며 어른이 된 이후, 어른이라는 이유로 궁금하지 않은 척 했던 의문과 물음을 밖으로 꺼내는 이들이 대중음악 안에도 늘어나고 있다. 특별히 정치성을 지녀서가 아니다. 비판성과 심미성을 모두 중시하는 음악인들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에 거부감을 표한다. 관찰하는 사람인 작가는 외부세계와 내면을 함께 주시하기 마련이며, 자신에게 성가실 정도로 음악에 충실하다보니 다양성의 한 갈래가 자라난 것이다. 공중그네를 타다 그물망으로 떨어진다 해도 웃을 수 있는 그들에겐 상식이기 때문인데, 이런 상식의 표현을 정치성으로 본다면 편협한 것이다.

"위험한 상상을 통한 예술가들의 위대한 소통 능력은 한 시대의 환부를 꿰매기도, 해부하기도 한다"는 이지상의 말은 당연하다. 해외의 페스티벌도 시대정신을 내걸고 명분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민운동과 협력한다. 자연스러운 문화이다. 이조차 부인한다면 약탈문화재로 채워진 제국의 박물관을 옹호하는 순진한 애호가일 뿐이다. 또한 구체적인지 아닌지, 실천적인지 아닌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쉘 실버스타인의 동그라미 이야기처럼 없어진 조각을 찾는 길에서 너무 꼭 맞는 조각은 동그라미를 불완전하게 한다. 거대담론이 해체되고 개별성이 중시되면서 오히려 특수성에서 보편성의 시대로 넘어왔고, 문제 있는 상태를 문제 있는 상태 표출하며 사회단계를 설명하게 된다. 이렇게 감성은 정신을 내포한다.

교차로에 선 대중음악과 저항음악

여기까지 오는 동안 오랫동안 '삭제된 페이지'가 있었다. 그나마 삭제된 페이지라도 존재했던 건 민중음악인 덕분이다. 그들은 비보호구역에서 벽을 허물다 떨어지는 벽돌에 다쳐왔고, 자유(극우주의자의 자유를 포함하여)를 위해 몸을 바쳤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사실상 자기합리화가 아니었나 싶은 청산주의의 과잉접수와 사회변화로 입지가 작아지고 현장수요가 감소한 후,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날은 지나갔고 다시 오려면 멀었다'와 같은 쓸쓸한 기운이 경향성처럼 감돌았다. 이 때 "시대가 변했다? 음악은 그늘 아래 웅크리고 있어야 하나?"라고 물으면서 정작 민중가요 영역 축소의 원인을 외부환경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설명일 수는 있으나 설득이 되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다른 길은 보지 않고 막다른 골목으로 달려가면 답이 없다.

내부원인은 없었을까? '3S'에 대한 반감과 '대중문화=소비문화'란 인식이 배타적 태도를 낳은 적이 있다. 문화제국주의의 관점에서 자기검열을 했다. 박정희 정권도 팝과 록을 외래·퇴폐문화라며 정화하려 애썼으니 아이러니다. 트렌드 추종이 필요했다는 것이 아니다. 장르를 막론하고 조류 추종은 세련되기는커녕, 록과 랩을 어설프게 차용했다가 오히려 시대에 뒤쳐졌음을 증명해버리는 식의 결과를 낳는다. '천지인'의 <청계천8가>가 새로운 버전으로 발표되었을 때 안타까웠던 이유이다. 2000년대 민중음악의 다양화는 이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영역이 축소된 현실에서 스스로 갱신해온 소수가 생존할 수 있었던 증거로 봐야 적절하다.

강력한 에너지인 결기는 그 자체로 예술이 된다. 어떤 연구자의 정리대로 "목적가요에 있는 선동성과 현장성, 형상성과 비장미"는 강점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부터 <바위처럼>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불려지는 민중가요들은 그 결기에 단순해보여도 실은 음악적으로 뛰어난 감각이 만난 경우들이다. 음악의 전제는 의식이 아닌 내용이다. 결국 여러 사람들 사이에 벌어진 이런 해묵은 논쟁의 21세기적 결론은 예술성과 사회성 중 한쪽만이 아니라 모두 중요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조화가 필요하다. 카페 손님이 좋아하는 창가자리를 늘리는 것, 음악의 영역을 넓히는 것, 정치의 '장'을 만드는 것은 비슷하다.

아울러 태도와 표현의 관계도 지나칠 수 없다. 오래된 책은 입을 제압할 뿐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라 전한다. 토론에서 개혁·진보적 인사들의 언변이 더 좋은 건 명분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만 제압하는 논객은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대화마저 공격형이 아니라 공감형 대화법이 화두다. 돼지와 논쟁해 이긴 자는 본 적 없으나 마두금을 연주하여 낙타가 눈물을 흘리게 한 몽골인은 본 적 있다. 과거 민중가요의 화자는 '가르치는 자'였고 수용자는 '배워야 할 자'였다. 그러나 지금, 강사와 청중의 차이라곤 서있는 것과 앉아있는 것뿐이다. 홍어가 올려진 상을 앞에 두고 노동가수 김성만은 "지금도 민중가요의 존재가치는 분명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동의한다. 세상을 관통하는 흐름이 방향을 틀지 않았기에 유효하다. 그처럼 공평한 자리에서 노래하는 이들이 있기에 유효하다.

물론 구체적인 변화가 있었다. 첫째로 과거에 공유되던 계급과 민족 등은 생태, 연대 등으로 확장되었다. 둘째로 수용층이 대학생과 조직노동자에서 시민으로 옮겨갔고, 운동을 중심으로 모였던 노래패도 획일성을 떠나 취미활동 등으로 다양해졌다. 셋째로 학교·단체·서점을 통했던 경로는 인터넷 등으로 다변화했다. 넷째로 풀의 크기 변화는 필연적으로 경향변화로 이어져 결연했던 가풍(歌風)이 유연해졌다. "민중가요에서 시민음악으로"는 이 모든 변화의 결과로 제시된 것이다. 또한, 전에는 전통대동놀이와 교회율동을 접목하여 통로와 계기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개별적인 관심에서 전문영역에 투신하고 있다. 유인혁은 안석희라는 본명으로 '노리단'을 이끌었으며, 류형선은 국악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뒤를 잇는 젊은 창작자들이 더 이상 유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중음악과 저항음악은 갈림길이 아닌 교차로에 있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를 공유한다. 바로 당위가 된 효율성과 시장성이다. 전염성 강한 당위와 지배논리에 음악이 포획된 결과는 시장주의의 속령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말을 하는 음악의 자리가 좁다. '윈디시티' 김반장의 말대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로 이루어진" 한국의 엄연한 음악현실에서 사회·경제권력의 집중도와 예술의 획일도는 비례한다. 민중가요의 축소와 아이돌스타의 1990년대 저항마케팅과 2000년대 순응으로의 변화도 이 선상에 있다. 하지만 음악으로도 얻지 못하는 자유라면 세상에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도 우리처럼 아파했고, 고민했구나'

영화 <타이타닉>과 <파 앤드 어웨이>의 배경에 수탈당하며 하층생활을 하던 아일랜드인들의 아메리카 이주가 있다. 총과 칼 한 자루에 운명을 거는 건맨과 사무라이가 활보하는 스크린 뒤에는 미국 남북전쟁과 멕시코혁명 이후 흩어진 무장 세력이 행정력 약한 지역에서 할거하던 역사와 일본 전국시대 이후 무사들이 주군을 잃고 떠돌던 시대가 있다. 청말과 만주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 아편 흡입 장면이 많이 나오는 이유 역시 역사와 관련 있다. 현대도 마찬가지다. 늙고 뚱뚱한 마피아 아저씨들을 보며 의아해 했을 영화는 이탈리아계가 미국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젊은 층이 암흑가를 찾지 않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한 때 미국영화에서 한국인은 슈퍼마켓과 세탁소 주인으로 등장했던 것도, 유난히 천식환자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디테일한 당대 반영이다. 왜 미국영화에선 오래된 TV만화를 보는 장면이 많을까? 글쎄, 그건 아직 연구 중이다. 영화만이 아니다. 음악엔 그런 이야기가 훨씬 많다.

'공일오비'의 <텅 빈 거리에서>를 듣고 '그 땐 공중전화가 20원이었지' 회상할 수 있겠지만, 우리 음악은 표백된 듯 소재가 제한되어 왔다. 그런데 훗날 '그들도 이별에 아파했구나'만이 아니라 '그 시대도 아팠구나, 당신들도 우리처럼 고민했구나'를 알려줄 노래가 전보다 더 많이, 더 자주 남겨지고 있다. 개인의 산물이 공동체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우리 이야기를 함으로써 우리 음악이 만들어진다. (이런 음악인이 우월하며 음악은 그래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한 조각을 누군가는 지켜보고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에리히 프롬은 "깊은 소신을 가지되 광신적이 되지 않고, 애정이 넘치되 감상적이지 않고, 상상력이 풍부하되 비현실적이지 않고 … 규율을 몸에 지니되 굴종적이지 않은 사람"을 꿈꿨다. 지식인과 CEO의 시대를 거쳐 21세기는 문예인의 시대라고 하기 전에 그만한 자격이 필요하다. 예술가의 역할과 사회구성원의 책무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 자기 이름에 책임을 지는 건 외롭고 힘들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재미없게 카메라 앞에 반듯이 서자는 것이 아니다. 측면으로 서서 정면을 응시하는 얼굴 사진이 오히려 의지와 정신을 보여주며, 연극에서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콘피단트가 때론 주인공이 된다. 지금, 음악동네에도 지도를 펴든 사람들이 보인다.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들여다본 골목의 풍경은 썩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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